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보는 왜목마을로 떠나다
흘러간 지난날에 대한 아쉬움 혹은 곧 마주할 새해에 대한 설렘. 매년 연말이 되면 밀려오는 복잡미묘한 감정들이 여행을 부추깁니다. 마침 다 쓰지 못한 연차가 남아있다면 떠날 핑계를 만들기도 좋은 시즌입니다. 단출하게 짐을 준비하고,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습니다. 목적지는 해가 뜨고 지는 곳, 왜목마을입니다.
왜목마을, 해가 뜨고 지는 곳
왜목마을은 충남 당진시 최북단에 위치한 마을로 수도권에서 넉넉잡아 2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입니다. 서해로 가늘고 길게 뻗어나가 양쪽에 바다를 둔 그 모습이 왜가리 목같이 생겼다 해서 왜목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런 특이한 지형은 바다 아래로 떨어지는 일몰, 바다 위로 떠오르는 일출을 모두 감상할 수 있는 광경을 빚어냅니다. 덕분에 서해의 일출 명소로 소문나며 많은 이들이 발걸음 하기도 했죠.
현재 왜목마을은 마을 양쪽으로 서해바다를 끼고 있던 과거 모습과는 달라졌습니다. 1984년 대호방조제 준공 이후 왜목마을의 서쪽 일대가 육지로 변한 겁니다. 왜목마을이라는 마을 이름의 유래가 된 옛 지형을 가늠키 어려워졌고, 더는 바다 위 일몰을 볼 수 없게 됐죠. 그대신 드넓은 평야를 붉게 물들이는 일몰을 감상할 수 있게 됐습니다.
왜목마을에서 일몰을 감상하기 좋은 곳은 석문산입니다. 마을 뒤로 자리한 석문산은 해발 약 70m의 아담한 높이를 가졌습니다. 석문산 정상에 서면 서쪽으로는 바다 대신 광활하게 펼쳐진 대호간척지를, 동쪽으로는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왜목의 바다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한반도 서쪽에 위치한 마을이지만 서쪽에는 땅을, 동쪽에는 바다를 품고 있어 서해임에도 마치 동해에 있는 것 같은 신비한 느낌을 줍니다.
바다 위로 떨어지는 일몰은 볼 수 없게 됐지만, 왜목마을의 동쪽 바다에서는 여전히 일출을 만날 수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쉬이 마주할 수 없는 서해의 일출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왜목마을은 여전히 매력적인 여행지입니다. 참고로 왜목마을의 일출은 하지와 동지를 기준으로 해 뜨는 위치가 달라져 방문하는 시기에 따라 다른 모습의 일출풍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왜목마을 앞바다에서는 선상낚시나 좌대낚시, 갯벌체험 등 즐길거리도 다양합니다. 특히 왜목마을 앞바다는 자연산 굴 서식지로 이맘때쯤이면 크고 작은 갯바위에서 직접 신선한 굴을 캐서 맛볼 수 있습니다. 부지런히 움직인다면 손바닥만큼 큼직한 제철 석화를 직접 따서 양껏 맛볼 수 있는 호사를 누릴 수 있습니다. 도시에서 맛보려면 꽤 비싼 값을 치러야 합니다.
바다 위를 달리는 제방 드라이브
왜목마을 인근에는 1970년대 처음으로 건설된 삽교호방조제를 비롯해 석문방조제, 대호방조제 등 3개의 방조제가 있습니다. 바다로 갈라진 육지와 육지를 연결하는 방조제는 수자원과 간척지 확보를 위해 축조되는데, 이 과정에서 생긴 방조제 도로는 한쪽은 인공호수를, 다른 한쪽은 바다를 품고 있습니다. 탁 트인 시야와 곧게 뻗은 도로를 가지고 있어 드라이브 코스로 제격입니다.
3대 방조제를 차례로 통과하는 드라이브코스의 길이는 총 47km. 그 시작점은 삽교호방조제입니다. 삽교호방조제를 시작으로 38번국도와 633번지방도를 따라 계속 달리면 두 번째 제방인 석문방조제가 등장합니다. 총 길이 10.6km인 석문방조제의 중간에 마련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제방 위에 올라서면 인공호수인 석문호와 바다를 가로지르는 도로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석문방조제를 지나 매년 봄 실치회 축제로 유명한 장고항, 서해 일출 명소 왜목마을을 거치면 마지막 드라이브코스인 대호방조제에 도착하게 됩니다. 대호방조제의 끝에는 도비도(搗飛島)가 있습니다. 원래는 섬이었지만 대호방조제 건설로 육지가 된 섬이죠. 도비도 전망대에서는 서해안 유일의 다도해 풍광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습니다.
바다에 뜬 함선, 공원이 되다
드라이브코스의 시작점인 삽교호방조제 인근에 있는 삽교호 관광지 내에는 수산물시장과 함상공원, 해양테마과학관, 바다공원, 놀이동산 등 다양한 시설이 마련돼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함상공원은 다른 곳에선 볼 수 없는 이색적인 공간입니다. 우리의 바다를 지키다 현재는 퇴역한 구축함과 상륙함을 직접 마주할 수 있는 곳이죠. 전투구축함인 ‘전주함’은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어 함선의 실제 시설물을 살펴볼 수 있고, 해군과 해병대 기념관으로 꾸며진 내부시설을 관람할 수도 있습니다. 상륙함인 ‘화산함’에서는 실제 탑재됐던 수륙양용정을 비롯해 모형으로 재현된 특수부대원들의 장비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화산함 후미에는 함상 카페가 들어서 함상에서 차 한 잔 즐길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습니다.
<상록수>가 태어난 곳
삽교호방조제에서 석문방조제로 가는 38번국도 옆길에는 심훈의 소설 <상록수>가 태어난 필경사가 있습니다. ‘밭을 가는 농부의 마음으로 붓을 잡는다’는 뜻의 필경사는 심훈이 서울 생활을 접고 내려와 작품활동을 이어갔던 곳으로, 그가 손수 지은 집입니다. 실제로 마을 일대와 당진의 포구들은 <상록수>의 배경이 되기도 했습니다. 필경사 옆쪽 심훈 기념관에서는 생전 그의 발자취와 유품들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이 주택은 그 역사적인 의미를 인정받아 충청남도 기념물 107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서해의 정서가 담긴 당진
일출과 일몰이 한 땅에 나고 지는 곳, 당진의 왜목마을에서는 잔잔하게 일렁이는 서해의 정서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척박한 바다의 삶을 일구기 위해 개척한 평야로 떨어지는 일몰, 자연이 빚어낸 지형으로 말미암아 누릴 수 있는 서해의 일출, 해풍과 바다가 빚어낸 맛, 그 위에 얹어진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들. 자동차에 시동을 켜고 왜목마을을 향해 떠나보세요. 바다를 가로질러 도착한 그곳에 한 해의 끝과 시작이 있습니다.
글. 정재균
사진. 박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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