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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로 서울에서 땅끝마을까지

by HMG 저널

얼마 전 아이오닉 일렉트릭으로 우리나라 최남단 ‘땅끝마을’에 다녀왔습니다. 이틀만에 서울에서 해남까지 후딱 다녀오는 일정이었는데 이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했더니, 모두들 “전기차로 거기까지 다녀왔단 말야? 엄청 불편했을 텐데, 고생했다”는 반응들이었습니다. 잠깐만요. 이틀 동안 1000km가 넘는 거리를 달렸으니 힘든 것이 맞기는 한데, 왜 다들 ‘전기차를 타고 달렸으니’라는 말을 붙이는 걸까요. 아니,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릅니다. 전기차로 장거리를 달리는 건 아직 시기상조라는 것이 일반인들 사이에 자리한 상식이니까요. 걱정의 기저에는 ‘배터리가 떨어져서 멈추면 어떡해?’라는 명제가 깔려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다녀오니 걱정했던 것과는 조금 다르던데?”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물론 불편하고 힘든 부분도 없지는 않았죠. 하지만 재미있었던 것들도, 새롭게 발견하게 된 것들도 많았습니다.



전기차 여행을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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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전기차로 장거리 여행을 떠나려니, 생각보다 걱정이 많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아이오닉 일렉트릭의 공인 주행가능거리는 191km. 한 번에 해남까지 가기는 어렵고, 몇 번의 휴식과 충전을 거쳐야 할 것입니다. 쉴 때마다 전기차를 충전한다면 주행에 큰 무리는 없겠지만, 쉬는 시간이 평소보다 길어진다는 점, 만약 충전소에서 다른 차량이 충전기를 차지하고 있다면 대기시간은 더욱 길어진다는 점 등이 여행을 떠나기 전 걱정으로 남았던 부분이었습니다.

이른 아침 차에 올라 전원 버튼(시동 버튼이 아닌)을 눌러 아이오닉 일렉트릭의 잠을 깨웁니다. 내연기관에 너무 익숙해진 탓인지 ‘부르릉’하는 소음과 진동 없이 바로 아이들링 상태가 되는 것이 아직 어색하네요. 하지만 갈 길이 멀기에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고 바로 출발하는데, 여기서 생각지도 못한 전기차의 장점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예열이 필요 없다는 점입니다. 내연기관 자동차는 겨울철 내부 부품의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예열이 필수입니다. 하지만 전기차는 별도의 예열 없이 전자기기를 사용하듯 전원 버튼을 누르고 곧바로 달리는 것이 가능하죠. 이 점은 겨울철 예열을 칼같이 지키던 제게 신선하면서도 큰 장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필연적으로 겪게 될 전기차의 약점도 있습니다. 겨울에는 배터리 효율이 다소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는 주행거리 조절과 연비(‘전비’가 맞는 표현이지만 편의상 연비로 부르겠습니다) 조절에 더욱 신경 쓰며 주행해야 합니다. 이런 배터리 효율 문제는 앞으로 개발될 미래 전기차가 해결해야 할 숙제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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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때문에 배터리가 생각보다 빨리 소진될 때를 대비해 동선 상에 충전소 위치를 미리 확인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아이오닉 일렉트릭은 충전소 안내 기능을 갖추고 있어 주변의 충전 시설을 쉽게 검색하고 찾아갈 수 있습니다. 또한 내비게이션에서 설정한 최종 목적지가 현재 전력량으로 도달하지 못하는 거리에 있을 경우 안내를 띄워 충전을 유도하는 등 전기차에 맞춘 다양한 전용 기능을 갖추고 있어 불안감을 덜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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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가 제공하는 전기차 충전소 조회 서비스(http://ev.or.kr)를 이용하면 스마트폰으로도 쉽게 충전소를 검색할 수 있습니다. 이 서비스는 충전소 위치 검색은 물론 내비게이션 어플과 연동해 길을 안내하기도 하고, 실시간으로 충전소 이용 현황을 보여줍니다. 무척 편리하죠.



시흥, 군산을 거쳐 땅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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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출발해 처음으로 들른 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도로 위 휴게소인 ‘시흥 하늘 휴게소’입니다. 부지 확보의 어려움과 자연훼손을 피해 국내 최초로 고속 도로 위에 휴게소를 지었죠. 서울에서 약 40km 정도 밖에 떨어져있지 않아 충전 거점으로서의 의미가 약하기는 하지만, 도로 위에 세워진 휴게소의 모습이 궁금했습니다. 마침 서해안 고속도로를 향하는 동선 위에 놓인 곳이라 잠깐 차를 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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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 하늘 휴게소에 도착했을 때 배터리 잔량은 78%.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에 설치된 급속 충전기로는 90%까지 충전이 가능한데(100% 충전은 완속 충전기로만 가능) 휴게소를 둘러보는 30여 분 동안 이미 충전이 완료돼 89%까지 충전 게이지를 채울 수 있었고 남은 주행 가능거리는 181km로 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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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에 대천 휴게소에 들러 한 번 더 충전을 거친 뒤 군산에 들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빵집 ‘이성당’에 들르기 위해서였습니다. 땅끝마을로 가기에도 빠듯한데 너무 곁길로 새는 것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마침 충전을 위해 들러야 하는 지점에 군산이 있어 잘 됐다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확실히 전기차는 주행질감도 그렇지만, 운전자에게도 설명하기 힘든 여유를 줍니다. 해남까지 가야 하는 바쁜 일정에도 잠깐 샛길로 빠질 수 있는 느긋함이 생긴 건 아마 전기차를 몰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예전이라면 흐르는 시간에 조급함을 느끼며 무조건 ‘땅끝을 향해 직진’하고 있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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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당에서 생애 최고의 빵을 맛보고 난 뒤, 다시 땅끝으로 향할 준비를 합니다. 주변에 충전소가 있었다면 충전하는 동안 이성당에 들렀겠지만 가까운 충전소는 3km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게다가 이미 다른 차량이 충전 중이었죠. 어쩔 수 없이 다른 충전소를 찾아 떠나야 했습니다. 수도권을 벗어나면 아직 충전소가 많지 않다는 점이 다소 아쉽게 느껴졌습니다(하지만 지방의 전기 충전소 설치는 점점 확대될 예정이니 앞으로는 좀 더 편히 충전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때 첫 번째 위기가 찾아옵니다. 배터리 잔량이 10% 아래로 떨어지게 된 것이죠. 마음 속에 서서히 긴장감이 엄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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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전 가능한 충전소를 찾아 헤매는 사이 배터리 잔량은 5% 아래로 떨어집니다. 잔량이 5%가 되자 전력을 아끼기 위해 출력을 제한하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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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잔량이 2%에 다다랐을 때 가까스로 현대자동차 군산 서비스센터에 도착해 충전을 할 수 있었습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했을 때의 기분이 이럴까요? 참으로 가슴 쫄깃했던 경험이었습니다. ‘이런 경험도 전기차를 탔을 때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일지도 몰라’라는 생각을 해보니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앞으로의 주행에서는 좀 더 신중하게 동선을 짜야겠다는 깨달음도 얻게 됐습니다. 급속 충전으로 50분 만에 배터리를 90%까지 빠르게 채웠습니다. 지금부터는 땅끝을 향해 조금 속도를 내도 좋을 것 같네요.



대한민국 최남단, 땅끝에 도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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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마을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7시 30분. 400km가 넘는 거리를 주행하기 위해 충전소를 네 번 들른데다, 군산까지 들어가는 바람에 도착이 늦어졌습니다. 완속 충전(100% 충전은 완속 충전기로만 가능)으로 배터리를 가득 채웠다면 3번의 충전으로도 충분히 땅끝마을에 당도할 수 있었겠지만, 도착 시간이 조금 더 늦어졌을 것 같습니다. 해가 저문 뒤 도착한 땅끝마을의 저녁 풍경은 컴컴하고 인적마저 드물어 기대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내비게이션이 내가 땅끝에 있음을 알리고 있을 뿐, 어둑한 풍경 속에서 땅끝마을에 도착했음을 실감하기란 무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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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마을을 제대로 보지 못한 아쉬운 마음에 대신 둘러볼만한 곳을 찾아봅니다. 차량 배터리 잔량이 넉넉하지 않았기에 우선 충전소가 있는 곳 주변 위주로 물색하던 중 우수영 관광지를 찾아냈습니다. 우수영 관광지는 1597년 충무공의 명랑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옛 성지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곳입니다. 우수영 관광지와 바로 옆에 있는 진도대교는 야경이 멋지기로 유명한데, 마침 그곳에 충전소까지 같이 있더군요. 차량을 충전하는 동안 우수영 관광지 주변을 걸으며 해남의 아름다운 야경을 감상하니 땅끝마을을 제대로 보지 못한 아쉬움이 조금은 사그라드는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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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가장 구석진 곳이지만 이곳에도 전기차 충전 인프라는 갖춰져 있습니다. 해남에 있는 전기차 충전소는 총 세 곳. 조금 부족해 보이기는 하지만 이용률이 높지 않아서인지 실제 두 곳의 충전소를 이용하는 동안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충전 시설을 이용하려면 실시간으로 이용 현황을 미리 확인하고 충전소를 방문하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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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다시 땅끝마을을 찾아갑니다. 조용했던 마을은 여객선에 몸을 싣는 여행객과 차량들로 분주한 모습입니다. 어둠 속에서 파도 소리만 들리던 어젯밤과는 달리 활기가 넘치는 마을의 모습에 저도 함께 힘이 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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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 34도 17분 21초에 위치한 ‘땅끝’은 이름 그대로 한반도의 최남단 지점입니다. 육당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서는 땅끝에서 서울까지 천 리, 서울에서 함경북도 온성까지를 2천 리로 잡아 우리나라를 ‘삼천리 금수강산’이라 이름 붙이기도 했습니다. 이곳에는 현재 전망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또한 조선시대까지 횃불과 연기로 소식을 전하는 통신수단이었던 봉화대도 그 옆에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채 서있는 것을 볼 수 있죠.



전기차 여행의 이점은 경제성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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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 전망대에서 일출을 보고 근처에 있는 두륜산 도립공원, 대홍사에 들러 쉬다 보니 벌써 서울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해남에서 서울로 복귀하는 길은 다른 곳을 거치지 않고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최단 경로를 선택합니다. 오후 1시 20분 해남 두륜산 도립공원을 출발해 서울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9시. 421km 거리를 달렸고, 충전을 위해 휴게소에 들른 두 번의 시간을 포함, 총 7시간 40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내연기관 차로 달렸을 때보다 두 시간 정도 더 걸린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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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좀 더 걸리긴 했지만, 결코 손해봤다는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더 쓴 시간만큼 새로운 보람과 가치를 발견했거든요. 지금까지 제 자동차 여행은 오직 ‘목적지까지 얼마나 빠르고 쾌적하게 도착하느냐’만을 생각하는 여행이었습니다. 휴식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간간히 과속까지 해가며 조금이라도 일찍 도착하기 위해 온갖 애를 썼습니다.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이번에도 시간을 아끼는데 성공했다’며 빠르게 내달린 스스로의 운전실력을 자화자찬하곤 했죠. 하지만 전기차로 짧은 여행을 하며 목적지를 향할 때는 미처 누리지 못했던 여행의 다른 가치를 발견하게 됐습니다. 이를테면 목적지로 향할 때의 느긋하고 여유로운 마음, 그리고 비로소 보이는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 같은 것들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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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가장 중요한 비용 문제를 따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틀 간 1070km를 달리며 기록한 계기판 상 평균연비(전비)는 7.1km/kWh 입니다. 아이오닉 일렉트릭의 복합 공식전비인 6.3km/kWh보다 훨씬 더 좋은 기록이죠. 게다가 전기차의 특성 상 고속도로에서 전비는 더 떨어지게 되는데(공식전비 도심 6.98km/kWh, 고속도로 5.8km/kWh), 이번 여행에서 고속도로 주행이 대부분이었음을 감안하면 더욱 놀랄만한 수치입니다. 그것도 배터리 효율이 떨어지는 한겨울에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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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치로 경제성을 따져볼까요. 현재 전기 1kwh 가격은 93원입니다. 이번 여행에서 아이오닉 일렉트릭이 1kwh 당 7km의 효율을 기록했으니, 10km를 주행하는 데는 약 130원의 비용이 듭니다. 가솔린의 현재 금액은 리터 당 1500원, 연비 13km/L의 차량으로 같은 거리를 달릴 경우에는 1150원의 비용이 발생합니다. 연료비용으로만 따지면 거의 10배 가까운 금액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죠. 이 계산대로라면 해남을 왕복하는 동안 아이오닉 일렉트릭은 고작 14,000원 정도의 연료비가 들었을 뿐입니다. 일반 승용차는 123,000원 정도의 비용이 드는 셈입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돈을 그만큼 아끼면 뭘 해, 중간중간 충전하느라 시간을 다 잡아먹었잖아. 시간을 놓치면 그게 무슨 소용이야?” 네, 그것도 맞는 말이기는 하죠. 하지만 무작정 빠르게 내달렸던 이전의 드라이브보다 충전을 위해 조금씩 쉬어야 했던 이번 전기차 여행이 제게는 훨씬 더 편안하고 즐거웠습니다. 누군가는 두 시간을 낭비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저는 그 두 시간을 할애한 덕분에 더 값진 여행을 할 수 있었노라 말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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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말에 반신반의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직접 전기차를 타고 평소보다 조금 더 먼 길을 떠나본다면 제 말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될 겁니다. 평소 조급한 마음으로 레이스를 하듯 자동차 여행을 했던 분들이라면, 조금 다른 방법으로 드라이브를 떠나보세요. 시간은 더 걸릴지언정 더 즐겁고 여유로운 친환경 드라이브로 자동차 여행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르니까요.







글. 사진 주태환
필자는 바퀴 달린 모든 것에 열광하는 마니아. 특히 자동차와 모터바이크, 모터스포츠에 관심이 많다. 현재는 HMG 저널의 자동차와 모터스포츠 담당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다.



◆ 본 시승기는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이며, HMG 저널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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