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MG 저널 Jul 19. 2021

현대 월드랠리팀, 에스토니아에서 더블 포디엄을 차지하다

현대팀은 타낙과 누빌의 파워스테이지 활약으로 포인트 격차를 방어해냈다.


지난해 7전으로 아슬아슬하게 챔피언십 기본 요건을 충족시켰던 WRC는 올해 스웨덴과 칠레, 영국이 취소되었음에도 총 12전을 개최할 계획이다. 지난달 펼쳐진 제6전 사파리 랠리를 통해 어느덧 시즌 반환점을 넘어선 것이다.

후반을 시작하는 제7전의 무대는 발트삼국의 하나이자 현대 월드랠리팀 오트 타낙의 고향인 에스토니아다. 지난해 혼란 속에서 WRC에 입성한 에스토니아 랠리는 이제 WRC 캘린더에 훌륭하게 자리를 잡았다. 지난해에는 콤팩트한 진행 때문에 17개 SS의 232.64km에서 열렸지만 올해는 319.38km의 풀 코스(이동구간 합산 1,253.15km)에서 에스토니아가 가진 매력을 제대로 선보였다.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에스토니아 랠리는 빠른 속도로 유럽 내 주류 랠리로 자리 잡았다


에스토니아 랠리는 지난 2010년 에스토니아 국내 랠리 챔피언십의 일부로 시작됐다. 2014~2016년에는 유럽 랠리 선수권(ERC) 중 하나로 성장했고, 이후 WRC를 향한 준비 작업에 매진했다. 스타 드라이버로 성장한 자국 선수 타낙 덕분에 관중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애초 에스토니아는 2020년 WRC에 ‘준비 랠리(WRC Promotional Rally, 캘린더에 새로 추가되는 나라가 개최 전 시범 경기 성격으로 경주를 치르는 것)’를 치를 예정이었다가 지나친 등록비용 문제로 이를 포기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인해 극적으로 WRC 입성이 성사되었고, 에스토니아는 WRC를 개최하는 33번째 나라가 되었다. 랠리 팬 사이에서 에스토니아 랠리가 그다지 낯설지 않은 것은 핀란드 랠리 준비를 위해 워크스팀이 참가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에스토니아는 작은 나라이지만 마르코 마틴, 그리고 오트 타낙이라는 랠리 스타를 낳은 곳이다


에스토니아는 오랜 기간 소비에트 연방의 일원으로 철의 장막 속에 가려 있었다. 국토 크기는 우리의 절반이 안되며, 인구는 2018년 기준 131만 명에 불과하고 자동차 메이커도 없다. 하지만 랠리 세계에서는 결코 약소국이 아니다. 유명 랠리 드라이버 마르코 마틴(Markko Martin)과 오트 타낙(Ott Tanak)을 배출했기 때문이다.



에스토니아는 불규칙한 노면과 원활하지 않은 시야 확보 때문에 랠리 베테랑도 애를 먹는 곳이다. 사진 : WRC (https://www.wrc.com)


랠리 본부와 서비스 파크는 에스토니아 제2의 도시 타르투(Tartu)의 국립박물관 인근에 마련했다. 숲속 비포장길을 빠르게 달리는 에스토니아는 핀란드 랠리와 흡사하다. 부드러운 흙바닥은 상하 굴곡이 많아 점프가 잦고, 양쪽에 늘어선 큰 나무들은 조금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는다. 선수들 입장에서는 거의 1년 만에 맞이하는 고속 그레블이다. 게다가 토요일은 지난해 포함되지 않았던 스테이지라 꼼꼼한 페이스 노트 작성이 필요했다.



오트 타낙의 홈그라운드인 만큼, 현대팀에게는 확실한 분위기 반전이 필요했다


현대팀은 이번 경기에 티에리 누빌(Thierry Neuville)과 오트 타낙 그리고 크레이그 브린(Craig Breen)을 엔트리했다. 아일랜드 출신의 브린은 크로아티아 이후 4경기만의 출전이다. 누빌은 오지에(133점)에 56점 뒤진 3위, 타낙은 64점 뒤진 4위다. 제조사 챔피언십 타이틀 방어를 위해서도 이번 경기 우승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참고로 도요타는 챔피언십 포인트 리더인 세바스티앙 오지에(Sebastien Ogier)와 2위 엘핀 에반스(Elfyn Evans), 그리고 로반페라(Kalle Rovanpera)를 엔트리했다. M스포트 포드에서는 그린스미스(Gus Greensmith)와 수니넨(Teemu Suninen)이 나왔다.

7월 15일 목요일 저녁, 세리모니얼 이벤트를 치른 참가자들은 근처에 마련된 1.64km 특설 스테이지에서 경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에스토니아 랠리는 금요일(7월 16일)부터가 시작이다. 금요일은 타르투 남쪽으로 이동해 유명한 겨울 휴양지이자 ‘에스토니아의 겨울 수도’로도 불리는 오테패(Otepaa) 인근을 달렸다. 4개 스테이지를 반복하는 8개 SS(SS2~SS9), 128.24km 구성으로, 스테이지 이름은 지난해와 비슷해도 레이아웃이 달라졌고, 카네피(Kanepi)는 지난해와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오프닝 스테이지에서의 호조가 무색하게도, 타낙은 SS3에서 타이어가 터지는 악운을 맞았다. 사진 : WRC (https://www.wrc.com)
SS4, 타낙은 코스 이탈 후 복귀 중 다시 타이어가 터져 리타이어하고 말았다. 사진 : WRC (https://www.wrc.com)


오프닝 스테이지 SS2에서 현대팀의 타낙과 브린은 각각 1, 2위로 상쾌하게 출발했다. 타낙은 종합 순위에서도 선두로 올라섰다. 하지만 올해의 에스토니아 ‘홈그라운드 버프’는 너무나 짧았다. 타낙은 SS3에서 오른쪽 앞 타이어 펑크(펑쳐)로 이동구간에서 스페어를 끼웠는데, SS4 카네피에서 코스를 벗어나 다시 타이어가 터졌다. 갈아 끼울 스페어가 없는 타낙은 결국 리타이어할 수밖에 없었다. 누빌도 SS4에서 타이어 펑크로 17초 가량을 잃었다.

이날 종합 선두에는 5개 스테이지를 잡은 로반페라가 올랐다. 현대팀에서 그 페이스를 따라갈 수 있는 것은 브린 뿐이었다. 로반페라를 끈질기게 따라붙어 종합 2위를 유지했다. SS8에서 가장 빨랐던 브린은 선두와 8.5초 차이로 금요일을 마감했다. 워터 펌프가 고장 난 그린스미스의 차가 서행하면서 시야를 방해하지 않았다면 차이를 조금 더 좁혔을 것이다. 물론, 이로 인한 손실은 노셔널 타임을 인정 받으면서 다행히 격차를 유지할 수 있었다.



유구한 랠리 역사에 비해 파릇파릇한 에스토니아의 코스에 많은 드라이버들이 리타이어의 아픔을 맛봐야 했다. 사진 : WRC (https://www.wrc.com)
WRC2에 참가한 여성 드라이버, 몰리 테일러는 코스 이탈과 함께 차량이 수 바퀴 구르는 큰 사고를 당했다. 사진 : WRC (https://www.wrc.com)


5위까지 떨어졌던 누빌은 착실하게 추격해 SS8에서 오지에를 제치고 종합 3위로 금요일을 마쳤다. 2위 브린과의 시차는 44.9초였다. 참고로 오지에는 앞에서 출발해야 하는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누빌에 5.4초 뒤진 4위를 마크했다. 금요일은 현대팀의 타낙 외에도 포드의 거스 그린스미스, 도요타의 타카모토 가츠타가 리타이어한 험난한 하루였다. 현대 C2 컴페티션의 피에르-루이 루베(Pierre-Louis Loubet)는 수니넨의 바로 아래인 종합 7위를 기록했다.

7월 17일 토요일은 9개 SS, 132.18km 구간에서 경기를 치렀다. 타르투 남북으로 퍼져 있는 4개 스테이지를 반복한 후, 목요일의 타르투 스테이지를 다시 달렸다. 토요일을 시작하는 23.53km의 SS10(Peipsiaare)은 이번 경기에서 가장 길다. 로반페라는 여기서 압도적인 페이스로 추격자들과의 거리를 벌렸다.



전 날의 리타이어를 만회하기 위한 타낙의 연속 톱타임 쇼는 이번 랠리의 명장면 중 하나다


한편, 리타이어에서 복귀한 타낙은 SS11부터 맹렬한 연속 톱타임으로 홈 관중의 뜨거운 환호를 받았다. 하지만 금요일 달리지 못한 스테이지 개수에 따라 페널티가 부가되기 때문에 선두로부터 1시간 가량 떨어진 상황이다. 에스토니아 최강자의 리타이어가 너무 아쉬웠다. 종합 2위 브린은 오전을 마쳤을 때 로반페라와 35.7초 차로 벌어졌다.



랠리가 후반부로 흘러 갈수록 포디엄에 오를 주인공들의 모습이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점심시간, 서비스를 받은 차들이 오전 스테이지들을 반복해 달렸다. 타낙이 6연속으로 스테이지를 잡는 사이 로반페라가 그 뒤를 바짝 쫓았다. 2위 브린은 SS18에서 코너 안쪽에 있던 바위와 충돌해 서스펜션이 파손되고 오일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날의 마지막 스테이지인데다 1.64km로 단거리여서 약 5초만 손해 보는 선에서 수습할 수 있었다. 브린은 이제 선두 로반페라와 50.7초, 3위 누빌과 30.2초 차이다.

오지에의 추격을 받으며 토요일을 시작했던 누빌은 SS17을 잡아 차이를 17.9초로 벌리고, 종합 3위 자리를 지켰다. 4위 오지에 뒤에는 에반스가 있고, 수니넨은 랠리카 트러블에 고전하면서도 6위를 마크했으며 이번 시즌 첫 완주를 노리는 현대 C2 컴페티션의 루베는 7위다. 아울러 WRC3의 유럽 챔피언 알렉세이 루키아누크가 WRC2 선수들을 압도하며 종합 8위를 달렸다.



로반페라의 첫 번째 우승이 유력한 가운데, 에스토니아 랠리의 마지막 일정이 펼쳐졌다. 사진 : WRC (https://www.wrc.com)


7월 18일 일요일은 SS19~SS24의 6개 스테이지 52.10km를 달렸다. 테크니컬한 신규 스테이지 니루티(Neeruti, 7.82km)를 시작으로 엘바(Elva, 11.72km), 타르투 발드(Tartu Vald, 6.51km)의 3개 스테이지를 반복했다. SS1 타르투를 연장한 타르투 발드는 도심 외곽에 조성된 특설 스프린트 코스다.

개인 통산 첫 번째 우승을 눈앞에 둔 로반페라는 50초 가량 여유가 있다. 1, 2위 가능성이 높은 로반페라와 브린은 안전을 선택한 반면 일부는 모험을 선택했고, 타낙과 누빌은 4분48초3의 타이 기록으로 SS19를 제압했다. 이어진 스테이지에서도 누빌과 타낙은 사이좋게 톱타임을 나누어 가졌다. 파워 스테이지를 겸하는 최종 SS24에서는 타낙, 누빌, 오지에, 에번스, 로반페라가 1~5위로 추가 득점을 챙겼다.



도요타의 로반페라가 WRC 최연소 랠리 우승의 기록을 썼으며, 브린과 누빌이 동시에 포디엄에 올랐다


최종 우승은 로반페라가 차지했다. 게다가 WRC 역사상 최연소 기록(20세)이다. 현재 도요타 팀의 감독인 라트발라(Latvala)가 보유 중이었던 기록(22세)을 경신한 것이다. 현대팀은 브린과 누빌이 끝까지 2위와 3위 자리를 사수해 더블 포디엄에 성공했다. 4위 오지에는 드라이버즈 챔피언십 포인트 148점으로 달아났다. 케냐에서 무득점이었던 누빌은 2위에 파워 포인트 4점을 더한 19점으로 추격의 불씨를 남겼지만 타낙은 로반페라에 밀려 5위로 후퇴했다. 한편, 제조사 포인트에서는 현대팀과 도요타가 평행선을 달렸다. 7전의 우승은 도요타가 가져갔지만 현대팀은 더블 포디엄에 파워 스테이지에서도 앞서 합산 점수는 두 팀 모두 42점이었다.



크레이그 브린의 반짝 2위 등극에 이어 현대팀은 벨기에 랠리에서 다시 한번 반등을 노린다


제8전은 8월 13~15일 누빌의 고향 벨기에에서 열린다. 이프르 랠리(Ypres Rally)는 1965년 시작된 벨기에 대표 랠리 이벤트로 국내 선수권은 물론 유럽 랠리 챔피언십(ERC)과 인터컨티넨탈 랠리 챌린지(IRC) 등에 포함되어 있다. 애초 지난해 WRC 편입이 기획되었다가 코로나 확산으로 취소되었고, 올해는 영국 랠리 대신 WRC 캘린더에 다시 이름을 올렸다. 벨기에는 변화무쌍한 날씨로 악명이 높으며, F1 벨기에 그랑프리가 열리는 스파프랑코샹 서킷도 스테이지에 포함되어 있어 랠리팬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글. 이수진 (자동차 평론가)
1991년 마니아를 위한 국산 자동차 잡지 <카비전> 탄생에 잔뜩 달아올라 열심히 편지를 보냈다가 덜컥 인연이 닿아 자동차 기자를 시작했다. 글 솜씨 없음을 한탄하면서도 미련을 놓지 못한 것이 벌써 27년이다. <카비전> 편집장을 거쳐 현재는 <자동차생활> 편집장으로 재직 중이다. 전기차와 커넥티드카, 자율주행 기술 같은 최신 트렌드를 열심히 소개하면서도 속으로는 기름 냄새 풍기는 내연기관 엔진이 사라지지 않기를 기원하는 ‘자동차 덕후’이기도 하다.






현대자동차그룹 뉴스 미디어, HMG 저널 바로가기

▶ https://news.hmgjournal.com


작가의 이전글 N의 새로운 도약을 알리는 공간 N 시티 서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