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시스가 역동성을 강화한 G80 스포츠를 선보였다.
럭셔리 브랜드인 제네시스의 핵심 모델은 무엇일까? 아마 플래그십 모델인 G90를 꼽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가장 크고, 가장 비싸며, 가장 고급스러운 대형 세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제네시스에서 최고가 아니라 핵심이 되는 모델은 G80라고 할 수 있다. G80는 제네시스가 단일 브랜드로 독립하기 전 제네시스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사용했으며, 2013년 2세대로 거듭난 후 해외에 제네시스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린 모델이다. 현재의 3세대 G80는 제네시스 브랜드의 새로운 디자인 방향성이 반영된 모델로, 2020년 3월 데뷔해 그해 말까지 5만 대가 넘게 팔린 것만으로도 그 존재 가치가 충분히 입증됐다고 할 수 있다.
이번에 새로 선보인 G80 스포츠는 무엇보다 선택의 폭을 넓혔다는 의미가 가장 크다. 최근 사회 전반에 불고 있는 개인 맞춤 제품 전략(비스포크, Bespoke)은 럭셔리 시장에서 더 중요하다. 똑같이 만들어진 공산품이 아니라 고객의 용도와 개성에 따라 원하는 대로 조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럭셔리 시장에선 ‘나만의 물건’을 갖게 될 때의 만족도가 아주 중요하다. 제네시스 역시 GV80를 출시할 때 ‘유어 제네시스(Your Genesis)’라는 이름으로 파워트레인, 구동 방식, 편의안전 사양, 외장 컬러 및 내장재 등 선택의 자유도를 크게 높였다. 이에 따라 다양한 조합을 통해 개성 있는 차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에 G80 스포츠 패키지가 추가되며 보다 역동적인 디자인을 별도로 고를 수 있게 됐다. 겉모습에서의 차별화는 에어 홀을 추가해 기능성까지 개선한 전용 디자인의 앞뒤 범퍼가 대표적이다. 아울러 다크 크롬 컬러의 라디에이터 그릴과 옆 창문 몰딩 등으로 은근하게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내장 역시 스포츠 전용 3스포크 스티어링 휠, G-MATRIX 패턴을 추가한 페달, 스포츠 전용 시트 퀼팅, 전용 인테리어 가니쉬 등으로 차별화했다. 여러 부분에서 차별화된 디자인을 보여주지만, 럭셔리 대형 세단이라는 G80의 성격에 맞게 스포티한 이미지를 강화하면서 고급스러움까지 놓치지 않은 것도 특징이다.
중요한 건 모든 엔진에서 스포츠 패키지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엔진에 따라 휠의 크기나 서스펜션, 프런트 브레이크 캘리퍼의 컬러 등 조합이 조금씩 다른데, 모두 일반 G80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다. 스포츠 패키지를 선택하는 것만으로 남들과 다른 개성을 강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신형 G80 스포츠의 핵심은 가솔린 3.5 터보에서만 선택할 수 있는 다이내믹 패키지라고 할 수 있다. 다크 스퍼터링으로 꾸민 20인치 전용 휠, 미쉐린의 고성능 스포츠 타이어인 파일럿 스포츠 4S, 18개 스피커가 포함된 렉시콘 사운드 시스템, 액티브 로드 노이즈 컨트롤 등이 더해진다. 여기에 후륜 조향 시스템(RWS, Rear Wheel Steering system)과 스포츠 플러스 모드는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다. 주행 성능을 확연히 다르게 만들어주는 기술들이기 때문이다.
후륜 조향 기술이 널리 알려진 건 1980년대 후반에 데뷔한 몇몇 일본산 스포츠 모델을 통해서다. 당시 일본은 급격한 경제 발전으로 전례 없던 호황을 겪고 있었으며, 이에 힘입어 일본 자동차 브랜드들은 다양한 신기술을 양산차에 실험적으로 적용했다. 대표적인 것이 후륜 조향 기술이다. 그런데 거의 30년이 지난 요즘, 럭셔리 대형 세단을 중심으로 후륜 조향 시스템을 사용하는 차들이 다시 나오고 있다. 왜 그럴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동차라는 기계가 어떻게 달리고 돌고 멈추는지 알아야 한다. 기본적으로 자동차는 타이어와 노면의 마찰력으로 움직인다. 즉, 4개의 타이어가 땅에 붙어 있을 때 발생하는, 한정된 접지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자동차는 엔진이나 모터 등 동력원의 위치와 구조에 맞춰 앞바퀴나 뒷바퀴, 또는 네 바퀴 모두에 동력을 전달한다. 하지만 이런 동력 전달 구조와 상관없이 앞바퀴는 반드시 스티어링 휠과 연결되어 차의 방향도 바꿔야 한다. 후륜구동 차가 운동 성능에서 유리한 것은 조향과 구동이 앞뒤 바퀴에 나뉘어 각각의 타이어가 가진 접지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자동차는 그랬다.
그런데 차체 크기를 점점 키우면서, 특히 실내 공간 확장을 위해 앞뒤 차축의 거리인 휠베이스를 늘이면서 이 조합만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문제들이 발생하게 된다. 자동차의 앞바퀴는 꺾을 수 있는 각도가 정해져 있는데, 앞바퀴와 뒷바퀴의 거리가 길어지면서 회전 반경이 늘어나고, 앞바퀴를 돌렸을 때 차체 뒤쪽이 따라오는 시간차가 커지는 것이다. 게다가 차가 주로 달리는 도심 환경은 점점 더 좁아지고 복잡해졌다. 후륜 조향 기술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배경이다.
후륜 조향의 효과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뒷바퀴를 앞바퀴와 반대 방향으로 꺾는(역상) 방법으로 회전 반경을 줄인다. 편도 이차로 도로에서 유턴하거나 아파트 화단이나 인도 등을 향해 전면 주차를 해야 할 경우 매우 유용하다. 좁은 골목길에서 운전대를 많이 돌리지 않아도 되는 효과도 있다. 두 번째 효과는 뒷바퀴를 앞바퀴와 같은 방향으로 꺾는(동상) 방법을 이용해 차체 뒤쪽의 반응 속도를 높이는 것이다. 고속 주행 시 차로 변경을 하는 경우 뒷바퀴 조향 기능이 없다면 앞바퀴가 옆 차로로 들어간 후 차 뒤쪽이 따라가는 모양새가 된다. 앞으로 고정된 뒷바퀴가 옆으로 끌려가기 때문에 구름 저항이 생기고, 휠베이스가 길수록 이질감이 커진다. 이 때문에 후륜 조향 시스템은 저속 주행 시의 민첩함과 고속 주행에서의 안정감을 모두 개선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그런데 자동차 브랜드들은 그동안 어떤 이유 때문에 후륜 조향 기술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글로 읽으면 별것 없어 보여도 이를 실제 차에 구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특히 앞바퀴와 연동해 저속 역상과 고속 동상을 언제 어떻게 전환할 것인가는 많은 자동차 엔지니어들을 괴롭힌 문제였다. 너무 낮은 속도에서 이 위상을 바꾸면 역상 상태의 날렵함이 사라지고, 너무 높은 속도에서 바꾸면 고속 안정성을 되려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후륜 조향과 연관된 부품의 내구성과 제어 정밀도를 확보하는 것 또한 해결이 어려운 문제다.
G80 스포츠 다이내믹 패키지에 들어간 후륜 조향 시스템도 기본적인 작동 원리는 앞서 언급한 것과 같다. 뒤쪽 서브프레임 위에 스텝 모터 방식의 제어기를 장착하고 주행 상황에 따라 뒷바퀴 캐리어에 연결된 어시스트암을 좌우로 밀어 각도를 조절한다. 저속으로 전진할 때는 뒷바퀴를 최대 3.5°까지 앞바퀴와 반대(역상)로 꺾고, 고속에서는 같은 방향(동상)으로 최대 2°까지 비튼다. 30° 이상 방향을 바꾸는 앞바퀴와 비교하면 크지 않지만 효과는 대단하다. 가장 많이 느낄 수 있는 것은 좁은 길에서 유턴할 때인데, G80 기준 회전 반경이 5.81m에서 5.45m까지 줄어든다. 휠베이스가 3,010mm에 달하는 대형 세단인 G80가 중형 세단 정도가 돌 수 있는 공간에서도 유턴이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와 무엇이 달라졌기에 제네시스는 ‘능동형’이라는 단어를 붙였을까? 주행 모드에 따라 역상에서 동상으로 전환하는 작동 시점이 능동적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컴포트 모드에서의 전환 시점은 시속 60km이며, 스포츠 모드는 시속 80km다. 이번에 추가된 스포츠 플러스 모드에서는 시속 100km 이하는 역상, 이상은 중립으로 제어한다.
전환 시점에 차이를 둔 이유는 간단하다. 안정적인 주행이 우선인 컴포트 모드에서는 일찍 동상으로 바꿔 차로 변경 시 주행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이를 통해 뒷바퀴의 횡력(코너링 포스)을 조기에 확보함으로써 눈길이나 빗길에서도 마찬가지로 안정감이 높아진다. 반면 스포츠와 스포츠 플러스 모드에서는 속도가 빠르더라도 조향 성능이 우선이므로 역상을 더 오래 유지한다. 스포츠 모드의 경우 컴포트 모드보다 동상 제어량을 확대해 고속 주행 시 안정성을 높인다. 동상 제어를 하지 않는 스포츠 플러스 모드는 뒷바퀴의 횡력이 높아지는 것을 늦춰 회두성(차가 회전하려는 성향)을 높이는 방향으로 세팅했다.
이런 차이점은 차를 직접 타보면 분명히 느낄 수 있다. 가장 쉬운 확인 방법은 위상 전환 중간 속도에서 주행 모드를 바꾸며 차로를 변경해 보는 것이다. 시속 70km로 달리며 컴포트와 스포츠 모드를 오갈 때, 시속 90km에서 스포츠와 스포츠 플러스 모드를 오갈 때가 그렇다. 차 뒷부분의 선회 반응이 확연하게 달라진다.
특히 후륜 조향 시스템의 효과는 전자식 차체 자세제어 시스템(ESC)과 연동해 최적의 선회를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에 와인딩 로드나 트랙을 빠르게 달릴 때 더 크게 실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가령 인제 스피디움의 11번 코너는 노면이 코너 바깥쪽으로 기울어진 역뱅크 구간이어서 시속 60km 이상으로 속도를 내기 어렵다. 휠베이스가 긴 차라면 앞바퀴에 걸리는 부하가 커 더욱 그럴 텐데, 뒷바퀴가 역상으로 꺾이면 코너 스피드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4번, 17번 코너처럼 높은 횡가속도를 버티며 저속으로 돌아야 하는 테크니컬 코너라면 대부분 빠르게 따라오며 가속하는 뒷바퀴 덕분에 탈출 가속이 훨씬 빨라질 것으로 예상한다. 제네시스가 인제 스피디움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한 테스트 결과에 따르면, 스포츠 플러스 모드로 설정한 G80 스포츠는 4번 코너에서 뒷바퀴를 3.5° 비틀어 코너 안쪽으로 한층 더 민첩하게 파고들었다고 한다.
5m 가까운 길이에 휠베이스가 3m 넘는 차로 트랙을 빠르게 주행하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인데,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제네시스의 후륜 조향 시스템이다. 향후 후륜 조향 시스템은 G90와 같은 대형 세단은 물론, 전용 플랫폼을 통해 휠베이스가 길어진 전용 전기차에서도 핸들링, 승차감, 주차 편의성 등 여러 부분에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으로 보인다.
신형 G80 스포츠의 다이내믹 패키지에선 새로 추가된 스포츠 플러스 모드의 영향력도 빼놓을 수 없다. 이는 엔진의 절대적인 출력 변화 없이, 동력을 바퀴까지 전달하는 과정만 바꿔도 운전 감각이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증명한다. 무엇보다 변속기의 패턴 변화가 크다. 예컨대 스포츠 플러스 모드에서는 속도를 높여 달리다가 급제동을 했을 때 더 빠르게 아래 기어로 내려 재가속을 준비한다. 또한 코너를 돌고 있는 동안에는 변속하지 않고 현재 기어를 유지해 차를 일정하게 제어할 수 있도록 돕는다. 강성을 높인 스프링에 맞게 새로 세팅한 전자제어식 댐퍼 역시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인다. 주행 모드별로 서스펜션의 변화가 커 일상 주행과 스포츠 주행을 모두 만족시키면서도 지나치게 단단하지 않아 럭셔리 대형 세단다운 품위도 유지할 수 있다.
G80 스포츠 다이내믹 패키지는 운전자의 성향에 따라 제동감을 컴포트와 스포츠 모드로 선택할 수 있다. GV70를 통해 먼저 선보인 이 기술은 앞서 언급한 ‘운전자 선택의 폭을 넓혔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다. 페달의 스트로크, 그러니까 페달을 얼마나 밟느냐에 따라 제동 압력이 생기는 양을 변경하는 기술로 스포츠 모드일 때 브레이크가 더 민첩하게 반응한다. 평소 가족과 함께 다닐 때는 컴포트, 와인딩 도로와 같이 빠른 제동이 필요한 곳에서는 스포츠 모드를 선택하면 된다.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건 이럴 때 적합한 표현이다.
조금 의외였던 것은 가속할 때의 느낌이다. 역설적이게도 가속감은 일반 G80 3.5 모델보다 부족한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서스펜션을 더 단단하게 조여 차 앞머리가 들리는 리프트 현상이 줄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가속은 스포츠가 더 빠르다. 게다가 론치 컨트롤을 쓰면 높은 토크와 타이어가 미끄러지기 직전까지의 접지력을 모두 활용해 더 빠른 가속감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적극적인 동력 전달과 탄탄한 서스펜션, 접지력이 월등하게 높은 타이어 덕분에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에 걸리는 시간도 5.1초에서 4.9초로 줄었다. 0.2초가 크지 않다 생각할 수 있지만, 묵직한 중량급 차체를 출력 변화 없이 이렇게 바꿀 수 있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가솔린 3.5 AWD 스포츠 다이내믹 패키지 모델 기준 공차중량은 1,985kg이다.
참고로 3.5 트윈터보 엔진의 다이내믹 패키지에는 능동형 노면 소음 저감 기술(ANC-R)도 들어간다. 더 높은 접지력과 단단한 사이드월을 가진 파일럿 스포츠 4S 타이어를 적용해 주행 성능을 높이면서도 고급스럽고 아늑한 느낌을 유지하기 위해 도입한 기술이다. 능동형 소음 저감 기술은 서스펜션에서 바퀴의 급격한 움직임을 감지하면, 그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공진음을 예측해 이와 상쇄되는 소리를 스피커로 내보낸다. 이는 SUV 형태의 보디 구조 때문에 저주파 소음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GV80에 처음 도입됐는데, G80 스포츠 다이내믹 패키지는 편평비가 낮은 고성능 타이어 때문에 적용됐다. 성능과 함께 편안함도 놓치지 않겠다는, 집요하다 싶을 정도의 욕심이다.
G80에 더해진 스포츠 패키지와 다이내믹 패키지는, 눈에 띄지 않는 작은 변화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럭셔리 시장에서 점점 더 중요해지는 ‘개인 선택의 폭’을 크게 넓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이 차를 탈 사람들이 위에 언급한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봤으면 좋겠다는 점이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 그냥 첨단 사양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커스텀 모드에 들어가 자신만의 차를 만들어 보기를 권한다. 최첨단의 럭셔리 스포츠 세단을, 가장 즐겁게 탈 수 있는 방법이다.
글. 이동희(자동차 칼럼니스트)
<자동차생활>에서 자동차 전문 기자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티뷰론 일기”, “69년식 랜드로버 복원기” 등 큰 화제를 불러모은 기사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크라이슬러 코리아와 재규어 랜드로버 코리아 등에서 영업 교육, 상품 기획 및 영업 기획 등을 맡았으며 딜러로 자리를 옮겨 영업 지점장을 맡았다. 지금은 현업의 경험과 이론을 모두 갖춘 칼럼니스트 및 컨설턴트로 활동 중이다.
사진. 최대일, 김범석
◆ 이 칼럼은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이며, HMG 저널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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