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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영덕으로 떠나야 하는 이유

by HMG 저널

2016년 12월, 상주와 영덕을 잇는 고속도로가 개통된 후 영덕에는 부쩍 관광객들이 몰리고 있습니다.

동해가 워낙 사시사철 빼놓을 수 없는 여행지기도 하지만, 크게 단축된 이동시간이 사람들의 발길을 움직이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이 시기에, 다른 도시가 아닌 영덕으로 떠나야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살이 가득 오른 대게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죠.



제대로 물오른 영덕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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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 시간을 고려해 오후 3시에 출발했더니 늦저녁에야 영덕에 도착했습니다. 곧장 강구항 근처 대게거리로 갑니다. 가게마다 내놓은 찜통에서 하얀 김이 뭉게뭉게 피어올라 뿌옇게 거리를 적십니다. 누구든 그 속에서 익고 있을 보드라운 게살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도록 말이죠. 식당에서는 수족관에서 살아 움직이는 게를 직접 고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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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게 중에서도 속이 꽉 차고 맛있기로 유명한 영덕박달대게는 다리에 띠를 두르고 있습니다. 기세 좋게 완장을 찬 모습이죠. 일반 대게와 차별화해 품질을 보증하는 라벨입니다. “영덕까지 와서 먹을 거, 이왕이면 박달대게가 낫지. 일반 대게는 속이 80퍼센트 정도만 차서 많이 권하진 않아. 박달대게를 잡으려면 일본 해협 근처까지 가서 배가 일주일 만에 돌아와. 그러니 비싸지.” 박달대게와 일반 대게, 홍게는 맛과 양, 가격이 모두 제각각입니다. 헷갈리면 찬찬히 물어보세요. 시원시원한 웃음을 머금은 가게 사장님들이 친절하게 알려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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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족관에서 고른 대게는 통째로 찜통에 넣지 않습니다. 다리 몇 개는 빼서 회로 준비해 줍니다. 껍질을 제거하고 얼음물에 5분 정도 담갔다 꺼낸 생살은 결이 오돌도돌합니다. 집에서 해 먹기 어려운 음식이니, 한번쯤 경험해 보기를 권합니다.



여명이 눈부신 영덕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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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7시 반, 어스름한 빛이 도는 아침에 풍력발전단지로 향했습니다. 일출 명소로 유명한 해맞이공원 맞은편 오르막길을 따라 발전기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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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은 해안을 끼고 있어 사계절 바람이 많은 곳입니다. 풍력발전에 최적화된 도시죠. 큰 산불이 난 뒤 이 자리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다 풍력발전단지를 만들게 됐다고 합니다. 구불구불한 길을 오른지 얼마 지나지 않아 풍력발전단지 한 가운데 도착합니다. 총 24기 중 23기의 발전기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바람이 몸을 휘감고 쉬익쉬익 허공을 가르는 날개 소리가 귓전에 와닿습니다. 순식간에 새로운 세계에 도착한 기분입니다. 당장 몇 분 전까지 바다를 끼고 달렸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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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오른 바다의 장대한 풍경을 만끽하며 조금 더 올라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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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력발전단지 옆 산림생태공원을 뒤로 하고 신재생에너지전시관을 지나자, 정크트릭아트전시관이 나옵니다. 재활용소재를 활용한 정크아트(Junk Art)와 착시현상을 이용해 그림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트릭아트(Trick Art)를 융합해 만든 테마 전시관입니다. 작품들의 면모가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대체에너지인 풍력발전과 묘하게 연결되는 지점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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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방파제, 공원, 길거리 담벼락 등 어느 곳 하나 빠짐 없이 대게 그림과 조형물이 가득합니다. 설령 영덕이 어떤 도시인지 모르고 왔다 해도, 대게가 특산물임을 모를 수 없도록 말이죠.



사람 냄새 정겨운 강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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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구항은 영덕군에서 가장 큰 항구입니다. 11월부터 이듬해 봄까지 수많은 대게잡이 어선들이 집결하죠. 8~9시부터는 강구항 공판장에서 좌판 노점이 펼쳐집니다. 상인들은 행인과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호객을 시작합니다. 서른 중반은 족히 넘었을 얼굴을 보고도 “학교가 어디야?” 하며 나이를 깎고, “둘이 형제야? 이리 와 봐, 보기 좋아서 그래” 하며 무한정 칭찬을 쏟습니다. 성격 좋은 사람들을 마주하고 있자니 못이기는 척 다 사가고 싶어집니다. 좌판에서는 저가형 대게와 홍게를 푸짐하게 살 수 있습니다. 살은 좀 덜 찼어도 쌓아 놓고 부담 없이 먹기에 좋습니다. 그 자리에서 바로 먹고 싶으면 근처 찜집을 소개받아 이동합니다. 찜비 만 원에 인당 2천원씩 상차림비를 내는 식입니다. 오전 10시도 안 됐는데 이곳저곳의 찜기에서 벌써부터 뿌연 김이 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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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에 출항한 배는 오후 5시나 돼야 뭍으로 돌아옵니다. 하루 꼬박 14 시간 노동의 산물인 셈입니다. 대게가 들어오는 날에는 오전 8시 반쯤부터 선주가 직판하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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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부터 바닷바람을 쐤더니 뜨끈한 국물이 생각납니다. 삼사삼거리에 위치한 중식당은 영덕에서 꼭 맛보고 가야 할 해물짬뽕으로 입소문이 자자한 곳. 영덕은 짬뽕도 남다르다더니 과연 그렇습니다. 게, 홍합, 낙지, 새우, 오징어, 전복까지 푸짐한 해산물이 들어가 맛 없기도 힘든 구성입니다. 오픈은 10시 반이나, 11시가 되기 전부터 가족단위 손님들이 자리를 차지합니다. 전날 거나하게 한 잔 한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해장국이겠죠.



끝없이 달리고 싶은 7번 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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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소설가 중 한 명일 윤대녕은 <그녀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것들>이라는 산문집에서 7번 국도를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고 예찬한 바 있습니다. 7번 국도를 따라가면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영덕의 명물을 차례로 만날 수 있습니다. 강구항에서 대교를 건너 다시 해안길로 접어드니 삼사해상공원이 펼쳐집니다. 전망대와 산책로가 잘 갖춰진 곳이에요. 공원에 위치한 영덕어촌민속전시관에서 강구항과 해파랑공원을 눈에 담습니다. 달려온 곳을 되돌아 바라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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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입체영상관, 조형물 등 볼거리가 많은 영덕어촌민속전시관입니다. 어촌의 삶, 어로활동을 비롯해 영덕의 역사와 문화가 다채롭게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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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에 부채꼴로 펼쳐진 삼사해상산책로입니다. 이곳에서 보는 파도와 포말, 갯바위와 갈매기들은 한 폭에 담긴 그림 같습니다. 과자를 기다리는 갈매기들이 손에 잡힐 듯 낮은 높이로 날아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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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 찰보리빵, 공주에 알밤빵이 있다면 영덕에는 대게빵이 있습니다. 이쯤 되면, 영덕은 대게로 시작해 대게로 끝난다 해도 과장이 아니겠습니다. 실제 홍게 가루를 넣은 빵에서는 베어 물자마자 게 향이 납니다. 밀가루 대신, 찰보리와 쌀가루가 들어가 부드럽고 그리 달지 않습니다.



비밀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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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에는 내륙의 볼거리도 만만찮습니다. 정갈하게 가꾸어진 벌영리의 메타세쿼이아 숲은 바다풍경에 취한 눈에 반전을 주죠. 숲 특유의 신비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열을 맞추어 촘촘하게 자리한 군락은 안전한 은신처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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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게 뻗은 메타세쿼이아 숲 가운데 있으니 판타지 영화 속에 들어온 기분이랄까요. 겨울이라 벌거벗은 기둥뿐이어도 나름의 풍요가 있습니다. 겨울빛이 땅을 적시는 그림도 썩 멋있습니다. 높다란 메타세쿼이아 나무기둥 사이, 낮고 푸른 전나무들까지 아담한 볼거리입니다. 숲은 괴시리전통마을이나 신돌석장군유적지에서 멀지 않습니다. 메타세쿼이아길은 안쪽으로 길게 뻗어 편백나무와 측백나무 숲까지 이어집니다. 사철 푸른 나무향을 들이키며 맑은 에너지를 충전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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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에서 파도소리에 아침을 맞이해 보세요. 해안가의 낮은 집들이 식당이자 슈퍼이자 민박집이고, 큰 창으로 바다를 마주한 펜션들이 올망졸망 모여있습니다. 해안드라이브가 지겨워질 즈음에는 숲길의 사색을 즐기시고요. 물론 당일치기 식도락도 해볼 만합니다. 주말이라면 식당가 어귀에서부터 정체를 각오해야 하지만, 겨울철 영덕대게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사진. 장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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