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CPM은 다양한 PBV를 만들 수 있는 플랫폼입니다.
‘목적 기반 모빌리티(PBV, Purpose Built Vehicle)’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PBV는 기존의 승용차와 무엇이 다를까요? 지금의 자동차 대부분은 운전과 이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실내 또한 운전의 능률과 탑승자의 편안한 이동을 중시해 구성합니다. 반면 PBV는 사용 목적에 초점을 둡니다. 간결한 구조로 최대한 넓은 공간을 확보한 뒤, 이를 목적에 따라 활용하는 것이죠.
그런데 본격적인 PBV 시대를 열기 위해 꼭 필요한 기술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자율주행입니다. 해당 기술을 도입하면 운전에 필요한 여러 장비를 실내에 달지 않아도 되니 패키지 설계 자유도가 늘어납니다. 그만큼 최대한 넓고 효율적인 공간을 만들 수 있죠. 그리고 공간이 커지면 이동식 병원, 이동식 가게는 물론, 로봇과의 결합을 통한 자율배송 시스템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두 번째는 전기 구동계를 담은 전용 플랫폼입니다. 목적에 따라 필요한 공간의 크기는 달라지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형태의 PBV를 만들어야 합니다. 따라서 크기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전용 플랫폼과 바닥에 평평하게 장착할 수 있으면서 다양한 크기의 플랫폼에 달 수 있는 전기 구동계가 필요합니다.
현대모비스가 개발 중인 ‘e-CCPM(Electric Complete Chassis Platform Module)’은 미래 PBV의 기초가 될 통합 플랫폼입니다. 프레임에 전기차용 섀시 모듈과 배터리를 통합한 일체형 플랫폼 모듈이죠. e-CCPM 위에 승객이 탑승하는 ‘라이프 모듈’을 결합하면 다양한 모양의 PBV를 만들 수 있습니다.
현대모비스는 지난 2019년 프로토타입 제작과 함께 e-CCPM의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전기차 기반의 다양한 PBV가 등장할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이에 선제 대응하기 위해서는 현대모비스만의 독자적인 기술을 담아낼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현대모비스가 e-CCPM 개발 과정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다양한 크기 조절과 저상화 구조입니다. e-CCPM은 크기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알루미늄 프레임을 사용해 차종별 별도의 플랫폼 개발 없이 다양한 PBV를 만들 수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플랫폼 하나로 라스트마일 운송용 소형 PBV부터 이동식 병원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 가능한 대형 PBV 등을 만들 수 있는 것이죠.
PBV의 쓰임새를 고려한 저상화 설계도 인상적입니다. PBV의 프레임은 낮아야 합니다. 위에 라이프 모듈을 올리는 구조상, 프레임의 높이는 문턱의 높이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입니다. 가령 이동식 병원의 경우 문턱이 낮아야 환자가 발을 높이 들지 않고 편안하게 입장할 수 있죠. 그리고 프레임이 낮으면 라이프 모듈을 더 높게 지을 수 있어 더 넓은 공간을 확보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PBV의 프레임은 단단하고도 가벼워야 합니다. 다양한 물건을 싣고 여러 사람을 태우는 특성 때문이죠. 따라서 e-CCPM은 저상화와 경량화 구조를 위해 어퍼 암의 높이를 낮춘 더블 위시본 서스펜션과 기존의 코일스프링을 대체하는 가로배치형 GFRP(Glass Fiber Reinforced Plastic, 유리 섬유 강화 플라스틱) 리프 스프링을 달았습니다. GFRP 리프 스프링은 스틸 소재와 비교하면 약 30% 가볍습니다.
미래에는 다양한 전기 구동계들이 등장할 것입니다. 지금은 주로 차축에 전기모터를 달아 양쪽 바퀴를 굴리지만, 각 바퀴에 전기모터를 다는 ‘인휠모터’가 보급될 날도 머지않았죠. 그래서 e-CCPM은 다양한 전기 구동계에 대응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프로토타입은 구동모터, 인버터, 감속기를 하나의 하우징에 최적화하여 통합한 EDU 3-IN-1 시스템으로 뒷바퀴를, 인휠모터로 앞바퀴를 굴립니다. 프로토타입에 적용되진 않았지만 현대모비스가 새로 개발한 e-코너 모듈의 탑재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e-코너 모듈은 차량의 각 바퀴 안에 구동, 제동, 조향, 서스펜션 시스템을 통합한 차세대 기술입니다. 인휠모터, e-브레이크, e-스티어링, 댐퍼 등 4개 시스템의 구성을 하나로 합친 덕분에 바퀴가 다른 장치와 기계적 연결 없이 독립적으로 주행을 주도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차량의 네 바퀴가 각각 90° 회전이 가능해 제자리 360° 회전도 구현할 수 있습니다. 복잡한 도심을 누벼야 하는 PBV에 걸맞은 미래의 바퀴죠. e-CCPM은 이처럼 서스펜션 패키지 설계부터 다양한 구동계 적용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e-CCPM 프로토타입은 가볍고 경쾌하게 달립니다. 특히 날렵하게 방향을 바꾸는 능력이 뛰어나죠. e-CCPM에 적용된 스티어 바이 와이어(Steer by Wire) 기술은 기계적 연결이 아닌 전기 신호로 바퀴의 방향을 바꿉니다. 그래서 스티어링 휠을 어디에나 자유롭게 놓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차량의 주행 상황에 따라 전륜의 조향각에 맞춰 능동적으로 후륜 조향각을 제어하는 후륜 조향 시스템이 적용되었기에 뒷바퀴의 방향을 10° 이내로 바꿀 수 있어 회전반경도 짧습니다. 제네시스 G80 스포츠에도 적용된 새로운 기술이며, 비좁은 도심을 누벼야 하는 PBV에도 유용한 기술이죠.
미래 자동차 산업의 큰 틀은 예상할 수 있지만, 세세한 부분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당연하게 여겼던 기술이 순식간에 새 기술로 대체되는 일도 잦죠. e-CCPM에서는 이런 부분까지 고려한 세심한 설계를 읽을 수 있습니다. 가령 전자-기계식 브레이크(EMB)는 캘리퍼와 드럼의 두 가지 방식 중에 고를 수 있습니다. 현재는 캘리퍼 방식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미래에는 달라질지도 모르거든요. 제동 시 브레이크에서 발생하는 마모 분진 규제가 법규화 된다면 드럼 브레이크 방식이 새로운 해결 방안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캘리퍼 방식은 바퀴와 함께 회전하는 브레이크 디스크를 캘리퍼로 붙잡아 속도를 줄이며 드럼 방식은 바퀴와 함께 회전하는 드럼 안의 브레이크 슈를 부풀려 드럼과 마찰시켜 속도를 줄입니다. 두 방식 모두 장단점이 있습니다. 캘리퍼 방식은 디스크가 바깥에 노출되어 있어 냉각 성능이 높지만 이물질이 쉽게 묻고, 분진이 대기에 그대로 섞입니다. 드럼 방식은 바퀴와 함께 회전하는 브레이크 드럼 안의 브레이크 슈를 드럼에 압착시켜 속도를 줄입니다. 폐쇄형 구조 때문에 냉각 성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지만 수명이 길고 분진이 대기에 쉽게 섞이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죠.
현대모비스의 e-CCPM은 PBV의 시대를 대비했습니다. 어떤 방식의 PBV를 개발해도 쓸 수 있는 통합 플랫폼이란 목표에 맞춰 여러 부분을 세밀하게 다듬었죠. 현대모비스는 현재 e-CCPM의 신뢰성과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으며, 1~2년 내 선행개발을 완료할 예정입니다. 이는 움직이는 공간이 우리에게 다가올 날이 더욱 가까워지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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