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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MG 저널 Aug 30. 2023

환경을 위한 현대자동차의 저온 경화 도장 기술

도장 공정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에너지를 소비한다.


자동차는 수많은 제조 공정을 거쳐야 비로소 완성된다. 가령 차체 패널 제조 공정은 정제된 철을 얇게 펴서 프레스로 패널을 찍어내고, 다시 이를 조립하고 색을 입히는 일련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차체에 색을 입히는 과정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자동차는 대체로 꼬박 하루 정도의 시간에 걸쳐 완성되는데, 도장 공정은 이 전체 시간의 절반 가량을 차지한다.




시간 뿐만 아니라 도장 공정에서 발생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전체 제조 공정의 약 절반에 해당하는 비중을 차지한다. 당연히 비용 역시 만만치 않다. 현대차의 일부 차종을 도장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재료 비용은 연간 375억 원이며, 전력과 가스 사용 등 에너지 관련 비용으로는 연간 342억 원이 쓰이고 있다.



자동차의 도장 공정은 매우 많은 에너지와 자원의 소비를 필요로 한다


자동차의 도장은 크게 전처리, 하도, 중도, 상도 공정으로 나뉘어 도장과 건조 과정을 반복한다. 마무리 작업이라고 볼 수 있는 상도 공정에서는 최종적인 색상을 입히고 광택을 더한다. 여기에는 이른바 ‘베이킹’이라는 건조 과정을 거치는데, 클리어 도료의 도포 이후 *도막의 경도를 비롯한 내구 성능을 확보하기 위해 ‘오븐’이라는 장비로 높은 열기를 가한다.


*도료를 도포하여 형성되는 피막, 수지·식물성 기름·건조제·셀룰로오스 유도체·안료 등으로 이루어진다.



고온의 열기로 도장을 건조하는 베이킹 과정에선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1시간 가량 최대 180도에 달하는 고온의 열기를 부스에 투입하기 때문에 오븐 하나가 1년간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는 무려 약 873톤이며, 사용하는 가스의 양도 시간당 92.5N㎡에 달한다. 이러한 고온의 환경은 도장 설비의 노화 속도를 촉진시키고 높은 열량으로 에너지 소모량을 키운다. 그러나 베이킹은 도장의 내구성을 확보하고 변색 등의 문제를 방지할 수 있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현대차는 이와 같은 도장 공정에서의 환경적 문제를 줄이고자 고온 환경 조건을 완화해 에너지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저감하는 ‘저온 경화 도장’ 공법을 개발했다. 기존에 상도 공정을 비롯한 도장 과정에서 고온의 환경이 필요했던 이유는 도료를 굳히기 위한 최소 온도가 높기 때문이었다. 대부분 차종에 사용되는 클리어 도료의 경우, 섭씨 140도 이상의 온도를 20분 가량 유지해야 경화가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도료의 멜라민 성분이 경화 반응을 일으켜 합성수지와 함께 단단히 굳어지는 것이다.



고온 경화 도료(좌측)와 저온 경화 도료(우측)의 1일 경과 후 성질 변화 모습. 우레탄 기반의 저온 경화 도료는 상온에서도 굳는 성질을 지녔다


그러나 현대차의 새로운 공정은 기존 도료보다 훨씬 낮은 온도의 환경에서 경화 반응을 보이는 우레탄 소재의 도료를 사용한다. 실제 적용 예정인 저온 경화 도료는 상온에서도 서서히 굳는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합성수지와 결합했을 때는 80~90도 수준에서 단단히 경화가 이뤄져 상도 공정에서 소모하는 열량이 대폭 감소한다.


해당 기술은 도료 교체와 함께 오븐 온도의 설정을 변화시켜 간단하게 공정 적용이 가능하며, 추가적인 인프라 구축 비용도 발생하지 않아 경제적이다. 게다가 낮은 온도 환경은 도장 설비의 수명을 늘리는 데에도 기여한다.



저온 경화 기술의 적용으로 범퍼를 비롯한 플라스틱 소재와 금속의 차체를 동시에 도장하는 것이 가능하다


저온 경화 도장 공법을 적용하면 서로 다른 소재를 동시에 도색하는 것도 가능하다. 물질, 혹은 소재에 열이 가해졌을 때 변형 없이 견딜 수 있는 최대 온도를 ‘열변형 온도’라고 한다. 차체는 철과 알루미늄 같은 금속 뿐만 아니라 플라스틱을 비롯한 비금속 소재가 함께 쓰이는데, 주요 소재인 플라스틱의 경우 130도 수준의 온도에서 열변형이 발생해 금속과 동시에 색을 입히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저온 경화 도장 기술은 90도로 설정된 오븐 환경에서도 경화가 이뤄진다


그러나 최대 90도 환경의 저온 경화 도장 공정을 활용하면 물성 변화 없이 플라스틱을 포함한 이종 소재들의 동시 도장도 가능하다. 따라서 플라스틱 소재의 도장 공정을 생략할 수 있어 시간과 비용이 줄어든다. 또한 별도의 조건에서 도장하여 차체와 범퍼의 색이 다른, 이색 현상도 현저히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게다가 PBV(Purpose Built Vehicle)나 UAM(Urban Air Mobility) 등과 같이 현대차가 개발 중인 미래 모빌리티들은 내구성 확보와 경량화를 위해 복합 플라스틱 소재가 폭넓게 사용되므로 장기적인 관점에서도 효율적인 공정으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새로운 저온 경화 도장 공정의 시험에서 차체 내부까지 건조해야 하는 과제를 극복해야 했다


현대차의 차체 제작 공정 전반을 관장하는 제조솔루션본부는 차체 패널과 동일한 시험 소재에 저온 경화 도료를 적용해 실제 차량 양산 기준에 적합하도록 재료 개선 작업과 여러 시험을 반복해 왔다. 결과적으로 새로운 도료의 물리적 내구 성능을 확인할 수 있었으나, 실제 차체에 적용했을 때는 차체 구조의 특성으로 인해 차체 내부까지 열 전달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했다. 차체 외부에 비해 건조가 완벽하게 이뤄지지 않은 차체 내부는 도장의 완성도를 높이는 보수 작업성이 떨어졌으며, 외부 자극에 의한 스크래치에도 취약했다.




제조솔루션본부 소속 연구원들은 저온 경화 기술을 성공적으로 양산 적용하기 위해 도료를 구성하는 수지의 비율과 도료 접착력을 높이는 표면조정제(Slip agent)의 첨가 비율을 조정했다. 또한 내부에 열풍이 잘 닿지 않는 점을 극복하면서 지나친 온도 상승으로 이종 소재를 동시에 도장할 수 있는 기술적 장점을 잃지 않도록 차체 내외부의 건조 온도와 공급 열량을 면밀하게 계산해 최적의 공정을 완성할 수 있었다.



제네시스 G80 생산차(좌측)와 시험차(우측)의 비교 평가를 통해 도장 품질의 수준을 검증하고 있다


제조솔루션본부는 1차 시제품 평가를 통해 저온 경화 도장 공정으로 제작한 차량이 기존 차량 대비 96% 정도의 광택 수준을 보였다고 기록했다. 이는 외관 평가 수치 기준으로 산정한 것으로, 육안으로 구분하기 힘들 정도의 근소한 차이다. 그러나 도장 공정은 고객에게 최고의 미적 가치를 제공하기 위한 마지막 단계인 만큼, 현대차는 본격적인 양산 공정 도입 전까지 지속적인 보완을 거쳐 기존 도료의 광택 수준을 충족시킬 계획이다.




현대차는 신기술의 내구성 검증을 위해 1대의 시험용 제네시스 G80를 제작해 올해 7월부터 현재까지 3,000km 가량을 운행해 오고 있다. 여러 조건의 도로 주행은 물론, 실제 소비자들의 차량 운행 패턴에 따른 내구도 테스트를 진행했으며, 정기적으로 도장면의 품질이나 색상 차이, 광택 정도 등을 꼼꼼히 점검하여 상용화를 위한 속도를 내고 있다.



저온 경화 도료로 완성한 차량의 외관 상품성은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제조솔루션본부는 향후 2년 동안 지속적인 내구성 검증과 품질 개선을 통해 저온 도장 기술을 양산 과정에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해당 기술은 현재 구축 중인 현대차의 EV 전용 생산 공장에 최초로 적용될 예정이며, 상도 공정 이외의 도장 공정까지 확장될 전망이다. 또한 탄소배출 저감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모든 글로벌 제조 공장에 기술을 확대하는 것이 현대차의 궁극적인 목표다.





저온 경화 기술은 놀라운 수준의 환경 개선 효과를 보인다. 예컨대 상도 공정에 쓰이는 오븐 한 기에 해당 기술을 적용하면, 1년 동안 사용하는 가스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모두 40% 가량 줄일 수 있다. 더 나아가 현대차의 글로벌 제조공장에 해당 기술을 모두 적용했을 때는 연간 16,000톤 이상의 탄소를 줄일 수 있다. 이는 축구장 2,350개 크기에 달하는 산림 규모로, 현대차가 완성한 도장 공정의 혁신이 자동차 제조 분야의 지속가능성을 더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현대차 제조솔루션본부는 탄소 저감 기술을 전체 제조 공정에 확대할 계획이다


스마트 모빌리티 프로바이더로의 전환을 선언한 현대차의 근간은 제조업에 있다. 고객들에게 일정하고 높은 품질의 제품을 제공함과 동시에, 제조 과정에서의 혁신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를 담당하고 있는 제조솔루션본부는 저온 경화 도장 기술의 양산 뿐만 아니라 차량 제조 과정에서의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신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또한 그린 에너지로의 전환과 자원의 재순환을 촉진하는 등 친환경 관점에서의 탄소 저감 기술을 전 공정으로 확대해 현대차가 2045년에 달성하고자 하는 탄소중립 실현에 기여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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