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의 파리에서 너그러운 삶을 생각하다
투싼과 함께 유구한 역사가 반짝이는 도시, 파리로 떠났습니다.
구도심을 지나 한 바퀴, 느긋한 드라이브에 마음까지 풍요로워집니다.
여행을 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릅니다. 누군가는 느긋하게 먹고 마시는 휴식을, 누군가는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며 여행길에 나서겠지요. 비록 짧은 여행이라 해도 거창한 낭만을 상상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잠깐이나마 다른 패턴, 다른 모습으로 살게 될 테니까요. 이왕이면 아예 낯선 곳이 좋겠습니다. 낭만과 예술로 점철된 도시, 파리는 어떨까요?
파리 곳곳에는 수백 년 된 카페와 레스토랑, 기나긴 세월을 기념하는 건축물이 가득합니다. 익히 ‘역사가 살아 숨쉰다’는 표현을 쓰지요. 유명 철학가가 다녀간 카페에서 같은 차를 주문해 마시고 희대의 비극과 영광을 기념한 조각과 건축물 앞에서 그들의 체취를 맡습니다. 달리 생각해보면 이것들을 지난 세월의 박제로도 볼 수 있겠지요. 남겨진 궤적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죽은 세월에 숨결을 불어넣은 듯합니다.
우리는 지난 것에 관대합니다. 사건 사고는 담담한 과거로 요약되고, 빛 바랜 흔적은 귀한 전시물로 남습니다. 박제된 수백 년의 세월을 보고 있자니, 흘러가면 점이 될 오늘을 너무 조급하게 몰아붙이며 살아온 게 아닌가 싶네요. 예민함에 바짝 날을 세웠던 시간, 옳고 그름을 추궁했던 순간들. 건설 당시 미관을 해치는 흉물이라고 반대가 심했던 에펠탑과 퐁피두 센터는 지금 파리의 상징이 되었고 대표적인 건축물로 꼽히고 있습니다. 한참 잘못됐다고 확신한 일들이 시간이 흐른 뒤 정반대의 평가를 얻기도 하는 것이지요.
접어버린 꿈, 위험한 도전들. 실은 다 괜찮지 않았을까요? 보드라운 러그를 발견한 것처럼 묵혀둔 생각들을 꺼내어 앉혀 봅니다. 이제껏 쓸 일이 없어 무뎌진 감각을 되살리는 야릇한 기분이 썩 좋습니다.
일상으로 돌아가면 좀 더 가볍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작은 도전부터 실행하려 합니다. 투싼과 함께 거리를 누빈 파리 여행. 어느새 나와 세상에 관대해지는 특별한 시간이었네요.
글. 안미리
여러 매거진 에디터를 거쳐 지금은 HMG 저널을 만들고 있습니다. 찰나의 아름다움, 사소함의 기적, 짙은 진심을 찬양합니다.
사진. 신창용
현대자동차그룹 뉴스 미디어, HMG 저널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