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 요리에 남아 있는 참 노동에 대하여
"입맛, 그것은 집밥이 남긴 자국이다.
한 방향으로 일관되게 쌓아 올린 정성의 두께이다.
오랫동안 기쁨으로 식탁을 채웠던
어머니의 습관이 내 몸에 남아있는 것이며,
된장찌개와 김과 김치밖에 없어도
밥을 몇 그릇씩 비워냈던
씩씩했던 어린 날의 흔적이다."
-매일 매일의 식탁 교제를 기억하며-
기계가 만들어지 전 ‘가내수공업’의 시대에는 상품을 만들 때 엄청난 정성이 필요했다. 재료 선정부터 판매까지 자신이 직접 해야 했다. 그렇게 온 정신과 정성을 쏟아 만들어 낸 노동의 산물은 노동자 그 자신이 되곤 했고, 상품을 파는 것은 과장 조금 보태어 자식을 시집, 장가 보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기계의 등장 이후 대부분의 인간은 거대한 생산 라인의 일부가 되어 노동의 즐거움을 잃어버렸고, 노동을 통한 자아실현은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이제 대부분의 노동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 그 이상으로 보기는 힘들다.
이러한 배경에 ‘요리와 식탁교제’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그곳에 아직 노동의 즐거움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요리사는 요리의 과정 전반에 걸쳐 대접 받는 사람을 한 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못 먹는 음식이 있지는 않을지, 평소에 간은 어떻게 해서 밥을 먹었는지, 먹는 양은 얼마나 되는지 등을 고려하며 음식을 만들어야 먹는 사람이 맛있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식탁은 ‘하나부터 열까지 섬기는 마음’으로 간을 한 요리들이 식탁을 채운다.
이 시점에 요리사는 긴장감에 사로잡힌다. 미소를 잃지 않기 위해 애를 쓰지만 사실 쿵쾅거리는 심장을 어찌할 수 없다. 사람들이 식탁에 올라온 요리를 한 술씩 떠서 입에 넣고는 ‘기가 막히다’, ‘역시 네가 한 음식이 최고다’ 와 같은 감탄사를 연신 쏟아내놓으면 그제서야 안심하고 본인도 한 술 두 술 뜨기 시작한다. 요리사는 노동의 결실이 맺어짐을 보며, 대접 받는 이는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맛있음’을 경험하며 식탁은 즐거움으로 충만해진다.
이렇게 요리는 노동의 즐거움과 함께하는 즐거움을 동시에 맛볼 수 있게 해준다. 마땅한 대가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이 시대에, 돈 받지 않고 요리하여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 것은 어쩌면 매우 소비적인 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식탁교제는 서로를 더 깊이 알 수 있게 해주며, 먹는 것 이상으로 즐거움을 뱉어내는 생산의 중심, 함께의 공장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