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너는 엄마가 있어서 좋겠다.

나도 너처럼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

by 한명라

오전 강의와 오후 강의를 마치고 동네 시장에 들렀다. 저녁 찬거리를 사 가지고 집으로 바쁜 걸음을 옮기는 중이었다.


복개천 주차장 옆에 있는 2층 단독주택 베란다에 서 있는 어느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나의 심장이 쿵하고 멈추는 듯했다.


어디서 많이 본 뒷모습. 머리가 온통 하얗게 센 곱실거리는 파마머리와 자그마한 체구. 영판 7년 전 세상을 떠난 바로 우리 엄마의 뒷모습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나는 재촉하며 집으로 향하던 걸음의 속도를 늦추었다. 그 하얀 머리의 할머니가 뒤를 돌아보기를 기다리며 천천히 걷고 있을 때 할머니가 나의 시선을 느끼기라도 했을까? 몸을 돌려서 나를 쳐다보았다. 아니었다. 우리 엄마가 아니었다.


맞아 우리 엄마일 수가 없지.. 하는 서운한 마음에 느려졌던 걸음에 더욱 힘이 빠진다.

세상을 떠난 지 벌써 7년이 넘었는데 나는 아직도 살아가는 순간순간마다 엄마의 모습을 떠올린다.

시장에서 엄마가 좋아할 만한 고운 빛깔의 옷을 발견하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TV를 시청하다가 투박한 손으로 뚝딱뚝딱 고향의 맛이 느껴지는 음식을 만드는 어르신들을 만나면

문득 엄마가 만들어 주던 음식이 먹고 싶어서 더욱 엄마 생각이 난다.

그리고 명절을 앞두고 친척들에게 줄 명절 선물을 고르다 보면 불현듯 나도 선물 보따리를 들고 어느 때고 찾아가면 만날 수 있는 그런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고등학교 때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을 했던 딸은 유난히 엄마 밥, 엄마 반찬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친구들에게도 우리 엄마가 해 주는 밥이 제일 맛있다고, 우리 엄마가 해 주는 반찬을 먹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는 말에 나는 그 말이 왠지 낯설게 느껴지고는 했다.


그게 뭐라고. 그냥 쌀에 잡곡 몇 가지 섞어서 하는 밥인데. 특별히 요리학원을 다니면서 배운 것도 아니고 엄마의 등 뒤에서 대충 보고 하는 반찬인데.

우리 엄마가 해 주었던 음식 맛을 기억하고 있다가 그 맛을 흉내를 내려고 했을 뿐인데 그게 무엇이라고 엄마 밥, 엄마 반찬이라고 할까? 이렇게 생각을 했다.


그날은 유난히도 무더운 날씨였다. 강의를 마치고 시장에 들렀다가 집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땀을 식힐 시간도 없이 압력솥에 잡곡밥을 앉혔다. 닭볶음탕을 하기 위해서 서둘러서 사 온 닭을 씻어서 뜨거운 물에 삶으면서 동시에 감자도 깎고 양념장을 만드느라 마음도 손도 바빴다.

후다닥 남편 퇴근시간에 맞추어 저녁 상을 차렸는데, 이제 막 갓 지은 잡곡밥과 닭볶음탕을 먹으면서 딸은 맛있다, 맛있다를 연발한다.


"역시 엄마 밥이 맛이 있어요. 그리고 엄마가 해 준 닭볶음탕도 최고로 맛이 있고요."


딸에게서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하고 말았다.


"딸아 너는 좋겠다. 이 더운 날씨에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맛있는 밥이랑 닭볶음탕을 해 주는 엄마가 있어서. 나도 그런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 더운 날 땀 뻘뻘 흘리며 밥을 해 주지 않아도 좋다.

그냥 나에게도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


엄마는 이만큼 공부하셨던 것일까? 엄마께서 돌아가신 후에 발견한 연필이 꽂혀 있는 엄마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