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여럿이라는 말을 들어도 좋아

오해를 풀어 준 말 한마디. 손가락 하나, 발가락 하나...

by 한명라

1990년 8월 초, 여름휴가를 맞이하여 5개월째 데이트를 하고 있는 남자 친구의 경남 함안에 있는 시골집에 인사를 가게 되었다.


남자 친구의 시골집에 갑작스럽게 인사를 가게 된 것은 사연이 있었다.


그 사연은 남자 친구의 바로 위 두 살 터울의 30살 나이의 형님을 먼저 결혼을 시키기 위해서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28살 남자 친구는 그때까지 단 한 번의 선도 못 본 상태로 지내고 있다가 나를 만나고 있을 때였다.


그러던 중 남자 친구 어머니께서 초등학교 여교사와 선을 보라고 전화를 하셨단다. 그때 남자 친구는 서울에서 만나고 있는 아가씨가 있어서 선을 안 보겠다고 했단다.


그 이야기를 듣고 어머니는 서울 아가씨는 아무나 만나면 안 된다고 펄쩍 뛰셨단다.


서울 아가씨는 여우 같아서 남편에게는 혼을 빼놓을 정도로 잘하면서 시댁 식구들은 싫어해서 부모 자식 사이를 이간질한다고 하더란다.

또 남편이 월급을 가져다주면 반찬도 직접 해 먹지 않고 사 먹으면서 백화점에서 비싼 옷만 사 입느라고 돈도 모으지 못하고 살림도 엉망이라고 하면서 하루빨리 서울에서 만나고 있다는 아가씨를 데리고 시골에 오던지, 아니면 당신이 서울로 직접 올라오겠다고 하더란다.


그래서 당신이 직접 나를 만나보고 며느리감으로 괜찮은지 살펴보겠다는 말에 남자 친구는 여름휴가 때 아가씨와 함께 찾아가겠노라고 했단다.


그래서 남자 친구의 형님은 계속 선을 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당장 남자 친구와 결혼계획이 없는데도 인사를 갔다.


시골 부모님들은 자신이 하는 일은 무슨 일이든 확실하게 믿고 있기 때문에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남자 친구를 따라 먼 길을 나섰다.


남자 친구의 아버님은 나를 보는 눈빛이 긍정적이었다. 아들의 대학 졸업앨범과 가족 앨범을 찾아다 보여주기도 했지만, 남자 친구의 어머니는 나를 애써 반기는 표정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곳에서 이틀 밤을 자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아버지께서 농협에 다니시다가 정년퇴직한 이야기, 무남독녀 외동딸인 엄마가 5남 7녀 12남매를 낳고 키우신 이야기, 지금은 엄마 아버지와 바로 위 오빠와 동생이 함께 살고 있다는 이야기.


남자 친구의 어머니가 이런저런 질문을 하면 거짓 없이 솔직하게 대답을 했었다.


남자 친구의 시골집을 떠나 올 때는 어머니는 날씨가 덥다고 긴 나의 머리를 하나로 땋아 주기도 하, 나에게 용돈을 주기도 했다.


그렇게 떠나 온 후, 그다음 해인 1991년 1월에 서울에서 가족들이 상견례를 하기로 했다.


남자 친구의 어머니는 건강상의 이유로 참석을 하지 못했고 아버님과 큰 시누, 시누 남편이 어머니 대신 참석을 했다.


일요일 낮, 음식점에서 두 가족이 화기애애한 만남의 자리를 가졌고 기분 좋게 헤어졌다.


그런데 며칠 후 전화로 남자 친구의 어머니께 안부인사를 드릴 때였다.


남자 친구의 어머니는 나에게

"나는 네가 작년 여름에 우리 집에 인사를 와서

형제가 12남매라고 했을 때 그 말을 안 믿었다.

그래서 누나들한테 내가 그랬다. 틀림없이 아가씨네 집 엄마는 한 명이 아니고, 최소한 두 명이나 세명일 거라고 했다. 어떻게 혼자서 열두명을 낳을 수 있냐고, 아가씨가 거짓말을 했다고 내가 장담을 했다. 그런데 이번에 서울에 갔다 온 큰 누나가 전해 준 말을 듣고 내가 오해를 했구나.. 하고 깨달았다. 네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도 알았다."


상견례 때 엄마가 그랬단다. 주고받은 많은 이야기 중에 남자 친구의 큰 누나의 귀에 오래도록 남았던 말은


"우리 열두 남매가 손가락 하나, 발가락 하나 다치지 않고 잘 자란 준 것이 감사하다."였단다.


그 말은 엄마가 언제나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어서

나는 그냥 스쳐 듣고는 했는데,


큰 시누이와 시어머니의 귀에는 어떤 엄마가 자신이 낳지도 않은 자식의 손가락 하나, 발가락 하나 다치지 않은 것을 감사하다고 말을 할 수 있냐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엄마 혼자 열두 남매를 낳은 것이 맞다고 확신을 했단다.


나에게 지금 엄마가 있다면, 이제는 어떤 말씀을 하셔도 "맞아, 맞아." 열심히 귀 담아 들어주면서 맞장구를 칠 텐데...

"나를 낳아 주시고 키워 주셔서 감사하다"라고 말을 할 텐데... 끝내 그 말을 하지 못하고 엄마를 떠나보낸 것이 지금도 후회가 된다.


누군가 나에게 엄마가 둘이라도 좋고, 셋이라고 오해해도 좋다.


다른 것 몰라도 그냥 "손가락 하나, 발가락 하나 다치지 않고..."하고 이야기해 주는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의 결혼식날... 촛불 밝히는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