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가 궁금한 이유...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2003년에 쓴 저의 글입니다.

by 한명라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이곳 아파트로 이사를 온 지 벌써 3년이 다 되어 갑니다.


처음 이사를 와서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아파트 화단에 꽃이 피는 봄이거나, 매미소리가 요란한 여름이거나, 단풍잎이 고운 가을이거나, 가끔 눈발이 날리는 겨울에도 손수레에 빈 물통이나 음료수병을 싣고 소리도 요란하게 손수레를 끌고 아파트 광장을 가로질러 관리사무소와 어린이 놀이터 뒤편에 위치하고 있는 수돗가에 지하수를 받으러 가고, 오는 일이 거의 매일이었습니다.


그런 저의 모습을 보면서 저와 같은 라인 15층에 살고 계시는 할아버지는 혀를 끌끌 차면서 제게 이렇게 말씀하시고 했습니다.


"거~ 그렇게 힘들게 물을 뜨러 다니지 말고 신랑한테 정수기 하나 놔 달라고 하지~"


그러면 저는 웃으면서


"집에서 노느니 운동 삼아서 물을 뜨러 다니는 거예요~"


다음에 또 우연하게 물을 뜨러 다니는 저의 모습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할아버지께서는 여전히 혀를 끌끌 차면서 또 "신랑에게 집에 정수기 한대 놔 달라고 해~~ " 말씀하시고는 하셨습니다.


그러면 저는 또 "집에서 별로 하는 일 없이 놀면서 남편이 힘들게 벌어다 주는 돈을 아껴 써야지요~"라고 대답을 하면 그 할아버지는 "아니~ 남편이 처자식을 벌어 먹이는 것이 아주 당연한 일인데, 이렇게 힘들게 물을 뜨러 다니는 부인을 위해서 정수기 한대 놔주는 일이 그 무슨 힘든 일이고 대단한 일이라고..." 하시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의 가족 중에서 어쩌면 정수기하고 관련 있는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했는데, 어느 날부터인지 15층의 그 할아버지의 모습이 통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손자와 손녀, 또 할머니와 함께 사시던 그 할아버지께서 그 모습을 보이지 않는 이후로 저는 '혹시나...' 하는 불안한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결국은 우리 라인의 반장님을 길에서 우연히 만나 15층 할아버지의 안부를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더니, 저의 불안한 생각과는 달리 그 할아버지네 가족이 우리 아파트 내의 더 넓은 평수로 몇 개월 전에 이사를 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로 봄이 되고 날씨가 풀리면서 아주 느린 걸음으로 아파트 근처를 서성이는 그 할아버지의 모습을 자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 할아버지의 건강한 모습은 저를 기쁘게 합니다.


그리고 또 한 분의 할머니.


그 할머니는 제가 이곳 아파트로 이사 오기 전에 살았던 동네의 시장에서 분식집을 하시는 분입니다. 한 줄에 1000원씩 하는 김밥과 촌국수, 수제비, 칼국수 등을 만들어서 파는 재래시장 한가운데에 있는 허름하기 그지없는 분식집에는 마치 어린이 만화영화의 주인공인 호호 할머니를 닮으신 할머니와 나이 50이 넘어 보이는 딸인지 며느리인지 모를 아주머니와 그리고 아직 결혼하지 않은 것 같아 보이는 손녀들과 함께 그 분식집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1000원에 한 줄 하는 김밥에 들어가는 재료는 달랑 4개. 굵직한 단무지, 소금간만 한 것 같은 시금치나물, 그리고 얄팍한 계란 지단과 게맛살 하나가 고작이지만 그 김밥 맛만은 오랜 세월을 함께 한 할머니의 손맛 때문인지 얼마나 맛이 있는 줄 모릅니다.


이곳 아파트로 이사를 오고 나서는 가끔 그 동네에 있는 단골 미용실에 들를 때마다 그 분식집에 들러서 김밥 도시락 몇 개를 사 가지고 오면 우리 아이들이 그 김밥을 얼마나 맛이 있게 먹는지 금세 앉은자리에서 뚝딱~ 하고 먹어 치워 버립니다.


그 할머니와 아주머니, 그리고 손녀들이 서로 어울려 일하는 밝은 모습은 바라보는 사람들의 기분마저 즐겁게 하더니만, 언제부터인가 그 분식가게에는 그 할머니의 모습만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또 알 수 없는 불안한 생각이 들곤 했지만, 차마 아주머니나 손녀들에게 할머니의 소식을 물어 불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행여라도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라는 마음 아픈 이야기라도 듣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며칠 전 저는 다시 그 분식집에 김밥을 사러 잠시 들렀다가 몇 번이나 망설이던 끝에 아주머니께 할머니의 소식을 묻고야 말았습니다.


"저기.. 그동안 내내 궁금했었는데 차마 묻지 못했어요. 할머니께서 얼마 전부터 보이지 않으신데 몸이 편찮으세요?"


그때 아주머니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할머니의 소식을 궁금해하더라면서 그동안 힘든 일을 너무 많이 해 오셨기 때문에 지금은 그냥 집에서 쉬고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때서야 한동안 불안한 마음으로 그 할머니의 안부를 궁금해했던 것이 사라지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저는 제가 알고 지내는 제 주변의 연세가 지긋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그분들의 안부가 궁금해지고는 합니다.


특히나 추운 날씨가 풀리고 따뜻한 날씨가 시작되는 봄날이면 추운 겨울 동안 모습을 뵙기 어려웠던 나이 드신 분들의 안부가 더욱 궁금합니다.


그것은 제가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부터 였지 않나 싶습니다.


예전에는 제 주위에 알고 지내는 사람들의 연로하신 부모님이나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연세 80살이 넘어서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게 되면 저는 위로를 한답시고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도 사실만큼 많이 사시고 돌아가셨네요... 그러니까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하고 위로를 했는데, 지금은 그런 말조차를 애써 조심하고 아끼게 됩니다.




올해로 연세 83살이 되신 친정엄마를 생각하면 이제는 연세가 90살을 넘어 100살이 넘는다 해도 결코 '사실만큼 사신' 연세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결혼 12년이 넘도록 추석이든 설날이든 명절에 단 한 번도 친정엄마를 찾아뵙진 못했지만, 그래도 마음먹으면 언제든지 달려가 만나 뵐 수 있음에, 전화를 하면 언제든지 반가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음에, 오래도록 우리 열 두 남매들 곁에 살아계셨으면 좋겠고, 어쩌다 제가 지치고 힘이 들 때면 친정엄마의 날아갈 듯 힘이 되어 주는 목소리를 듣고 다시금 용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작은 상에 물 한 그릇 떠 놓고, 한 자루 촛불과 향을 피워 놓고 그 많은 자식과 자손을 위해 두 손 모아 올린다는 친정엄마의 간절한 기도가 제게는 아직도 더 필요한 까닭입니다.




이른 새벽,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식들을 위한 새벽기도를 빠트리지 않았던 엄마..



2013년 2월 17일 엄마는 떠나고... 안방에 덩그라니 놓여 있는 엄마가 자식들을 위해 기도를 하던 상
매거진의 이전글엄마가 여럿이라는 말을 들어도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