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개신교의 '혼인담론'

‘교중혼’(敎中婚)

by 황미숙

세계투데이 매거진(2021년 4월 30일/유제린 기자), “이왕이면 같은 기독교인끼리 결혼할래요”라는 기사를 보면, 결혼 적령기에 들어선 전문직 최모(34세)씨가 결혼정보회사를 전전하며 자신과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자를 찾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외적인 조건인 직업, 외모, 나이, 성격 등 모든 부분이 완벽히 매칭되는 상대를 만났지만, 딱 한 가지, 종교가 달라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른 상대를 찾아야만 했다는 것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기독교에서 결혼이 갖는 의미에 대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존귀한 행위이자, 성경에서 말하는 가치관 확립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이므로 매우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는 것이다. 대다수 기독교인이 그렇듯, 그 역시 같은 신앙을 가진 상대와의 결혼을 희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개신교인들은 결혼 상대를 고를 때 같은 신앙인을 선호한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개인적 삶보다 신앙의 가치관을 공유하게 되면, 가정 내 종교적 갈등을 예방하고 결혼생활 또한 평온하게 이어갈 것이라는 기대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의 삶에서는 이러한 신앙적 기대와는 다른 모습이 나타난다. 결혼 조건으로 작용했던 ‘교인끼리의 결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의 이혼 사례가 꾸준히 늘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2014년 혼인·이혼통계’(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자료)에 따르면, 전체 이혼 상담자 중 개신교인이 27%를 차지한다고 한다. 불교인(10%), 천주교인(8%)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개신교인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심지어 목회자들의 이혼도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과의 결혼’이 곧 평온한 가정생활을 보장한다는 일종의 통념에 다시금 의문을 던지게 하는 대목이다.

2015년 5월 13일에 업로드된 CBS 노컷뉴스, “하나님이 짝지워준 것' 옛 말?.. 이혼하는 성도들”(조혜진기자)에 따르면,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자료를 근거로 개신교인들의 이혼 이유가 그들이 말하는 ‘세속인(불신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지적한다. 2014년 상담통계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여성의 경우는 성격 차이와 경제 갈등 등을 가장 많이 꼽았고, 가정폭력과 남편의 외도가 그 뒤를 이었다.


교인끼리의 결혼은 한국 개신교 문화에서 오랫동안 중요하게 여겨져 온 주제이다. 그렇다면, ‘교인끼리’ 혼인을 해야 한다는 개신교인들의 강박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한국 개신교의 공의회는 1904년 혼인에 대한 5개 조항의 규칙을 마련하여 통과시켰다.


1. 비정상적 혼인 관계로 사는 자는, 처음 상태로 회복하기 위해 모든 가능한 노력을 다할 때까지 세례를 주어서는 안되며, 혹은 진정한 회개를 할 때까지 책벌해야 한다.

2. 음행(간음)만이 이혼의 합당한 사유이다. 다른 이유로 이혼하는 자는 교인 자격을 정지한다.

3. 불신자와의 결혼은 죄다.

4. 정혼(약혼)은 한국에서 중요한 일이므로, 주의를 요한다.

5. 이상 모든 복잡한 경우에 얽힌 자는, 오랫동안 교인 자격을 정지시키든지, 원입인으로 남겨 두는 것이 최선이다.

(C. A. Clark, Digest, 21-2: 『1904년 영문회록』; 곽안련 편, 『장로교회사전휘집』(경성: 조선야소교서회, 1918)


이처럼 공식적으로 ‘불신자와 결혼하는 것은 죄’라는 규정을 만들어 교중혼을 강하게 권장했다. 그 목적은 “종교적 정체성과 교회의 결속을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불신자와의 혼배(婚配)는 ‘순결’하지 못한 일이며, 교인끼리의 혼인인 ‘교중혼’(敎中婚)만이 이상적인 혼인이라고 인식시켰다.


이 규정은 초기부터 매우 강하게 적용되었다. 신자가 불신자간의 결혼을 원할 경우, 결혼을 허락하는 조건으로 남편이나 아내가 반드시 개종하도록 책임을 지웠다. 원입교인이 된 딸을 불신자에게 시집보낸 사람은 입교인 지위를 박탈하기도 하였고,(부산진당회록, 1905년 7월 17일) 불신자 집에 장가든 사람을 불러 책망하고 개유하기도 하였다.(부산진당회록, 1908년 12월 18일) 이러한 기록은 당회록이나 선교보고서에 자주 등장한다.


불신자와의 결혼이 ‘죄’라는 규정은 권고와 정죄의 도구에 그치지 않았다. 예기치 않은 불행이 발생하면 그 원인으로 내모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불신자에게 시집간 기독교인 여자들이 심한 핍박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는 사례가 생기자, 감리교는 불신자에게 시집가는 것을 금하기도 했다.(“밋지 안는자와 혼인하지 말일,” 「신학월보」 4, 1904년 11월) 또한, 어느 한 남자 교인의 집에서 화재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자, 그 남자의 부인이 “믿지 않는 외인” 때문이라고 단정짓기도 하였다. 화재의 일차적 원인을 외인과의 혼인에서 찾는 이 해석은 당시 교회가 교인끼리의 혼인을 얼마나 강하게 주장하였는지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이처럼 교중혼을 강조했지만, 교인이 적었던 개신교 초기에는 현실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기독교 언론은 교중혼을 진중하게 받아 지키는 자가 별로 없다며 개탄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인과의 혼인금지는 “교회법에도 있고 성경의 가르침”이기도 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교중혼을 이상적 혼인형태로 권면하는 방식으로 기독교 혼인윤리를 강화해 나갔다. 초기 입교인들은 선교사들이 규정한 내용을 숙지하면서 순종했다.


한국 개신교는 교중혼을 넘어서 신자와 대립하는 외인 사이를 타락이나 오염의 범주로 안팎을 나누어 울타리를 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이분법은 초기 개신교인의 정체성 형성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교회 울타리 안 사람인 성도의 범주에는 교중 형제자매, 믿는 자, 하나님의 백성, 신자, 교민(敎民) 등으로 표현하였고, 교회 울타리 밖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이방 사람, 이교도, 우상 섬기는 인민, 불신자 등의 표현으로 언어를 개념화하여 일반화시켰다. 이러한 표현을 통하여 신자와 외인은 엄격하게 분리되고, ‘순수한 우리’와 ‘타락한 그들’이라는 이분법으로 한국 개신교의 정체성을 강화해 나갔다. 또한 교회 안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선택과 구원을 받은 자라는 ‘선민의식’을 부여하여 개개인의 의식 속에 우월감이 형성되도록 하였다. 우월감을 가진 개신교인들은 외인들을 구원받지 못한 ‘죄인’인 열등한 존재 내지는 배타적인 존재로 인식하기에 이르 렀다.



결혼 적령기를 앞둔 개신교회 청년들이 이처럼 교중혼에 집착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존귀한 행위이자, 성경에서 말하는 가치관 확립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 때문이라기보다, 종교적 정체성과 교회의 결속을 위해, “불신자와의 결혼은 죄”라는 오랜 개신교 습속에서 비롯된 관념이 신념화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40여 년 동안 이어진 개신교의 혼인담론인 ‘교중혼’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현실적 흐름 앞에서 최소한 같은 개신교인끼리의 혼인이 행복을 담보하는 필요 충분 조건도 아니다. 더구나 그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녹여낸 참 기독교 정신의 구현도 아니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본다. 복음의 전파, 즉 ‘전도’를 종교 존재와 부흥의 뿌리로 삼는 기독교에 있어서, 교인끼리의 혼인 집착은 자칫 ‘끼리끼리의 배타적 울타리’를 자청함으로써 오히려 기독교적 본질을 그들만의 도그마에 가둬두는 우를 범하는 게 아닌가 우려스럽다. “하나님 짝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 할지니라”라는 성경의 지침을 단순히 교인끼리의 혼인으로 담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지, 그것이 강박관념으로 내재된 현상으로 교중혼 집착이 강화된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예수가 이 땅에 온 이유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였다. 성경에서 예수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누가복음 19:10),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태복음 9:13)라고 직접 밝혔다. 이것이 기독교의 본질이다. 개신교인과 대립하는 외인 사이를, ‘타락’이나 ‘오염’의 범주로 울타리를 치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 의인과 죄인의 벽을 허물고자 한 것이었다.

============

-참고 논문-

한규무, “초기 한국장로교회의 결혼문제 인식(1890~1940),” 「한국기독교와 역사」 10(1999)

이숙진, “초기 기독교의 혼인담론,” 「한국기독교와 역사」제32호(2010년 3월 25일)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개신교와 한국인의 조상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