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와 한국인의 조상제사

유일신의 라이벌 한국의 조상신!

by 황미숙

에드워드 사이드는 그의 저서 『오리엔탈리즘』에서 오리엔탈리즘을 “동양과 서양이라는 이분법적 구별에 기반한 대립적 사고방식이자, 동양을 지배하고 재구성하며 억압하기 위한 서양의 제도 및 스타일”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오리엔탈리즘 형성 과정에서 기독교 세계관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오리엔탈리즘의 핵심 인식구조는 ‘타자화(他者化)’다. 타자화란, 특정 대상을 이질적 존재로 규정하고 지배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근대 서양은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반면, 동양은 비합리적이고 열등하며 무례하다는 것이다. 오리엔탈리즘에는 서구 중심의 세계 질서와 권력 구조를 유지·강화하려는 서구의 탐욕이 깊숙이 배어 있다.


근대 이후 막스 베버를 비롯한 유럽의 지식인들은 동양 문화를 비합리적이고 열등한 문화로, 유별나게 특이한 관습으로, 희화화하거나 낯설게 만들었다. 특히 오랜 역사의 불교를 ‘우상숭배’로 간주했으며, 공동체적 결속과 효(孝)의 의미를 지닌 조상제사 문화 역시 비이성적, 후진적인 타자(타문화)로 보았다. 이러한 시각은 조상숭배를 통해 돌아가신 이에게도 후손된 도리를 다하고자 하는 오랜 ‘효’의 전통을, ‘낡고 비과학적인 관습’이나 ‘합리화가 불가능한 신앙’이라는 편견 속에 가두는 역할을 했다.


이러한 관점은 중국에서 발간한 기독교 소책자인 『청명소묘지론』의 ‘時勢論’에서 언급하고 있다. 조상제사는 시대착오적인 허례허식이며 타락한 행위이므로, ‘가장 진보적인 종교’인 기독교를 통해 서구적 문명화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오리엔탈리즘에 입각한 이분법적 해석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이향순은 자신의 논문에서 “미국 선교사들은 제국주의자로서 행동한 일면이 있으며, 한국과 한국인을 오리엔탈리즘의 시각으로 인식하고 이해하여 한국을 타자화하고 야만적이고 미개하여 우월한 기독교 문명으로 계몽하고 문명화하는 것을 사명으로 믿었다”라고 주장하였다.


그의 주장대로 19세기 말에 내한한 미국선교사들 역시 오리엔탈리즘의 전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게일(James S. Gale)이 1909년에 저술한 『전환기의 조선』에 담긴 몇몇 단편적인 문장만 보아도, 그가 조선의 역사와 전통문화에 대해 어떤 인식을 지니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는 말이 한국인의 모든 일에 대해서 쓰인다. ‘오행’이나 ‘오륜’ 또는 ‘오상’에 관한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두뇌 회전이 정지되어 있다. 독자적인 사고는 꿈도 꾸지 못한다. 천년에 걸쳐 조선은 발명도 없었고 발견도 없었고 진보도 없었다. 무의식중에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라고 되뇌면서 국가는 조금씩 퇴보하고 있다.”

(게일, 신복룡 옮김, 『전환기의 조선』(집문당, 1999), 83)


한마디로, 그는 한국(인)의 역사와 문화를 발전 가능성이 전혀 없는 퇴행으로 규정하며, 이를 극단적으로 경시하고 왜곡하는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러나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문자 체계로 그 독보적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글의 발명만 보더라도, 그의 주장이 얼마나 근거 없는 억측인지 분명히 알 수 있다. 이러한 시각은 게일만의 것이 아니었다. 당시 알렌을 비롯한 의료 선교사들 역시 자신들의 선교 행위를 통해 의학적 오리엔탈리즘(medicine in orientalism)을 형성했다.


게일은 가부장제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기술했다. 한국 사회가 가부장제라는 권력의 족쇄에 묶여있어 퇴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가부장적 권력으로 인하여 개인이 독립된 사고를 할 수 없으며, 인과론이라는 규범이 분명치 않으며, 행동에 있어서 애국심, 진실성, 정확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게일이 말한 한국인의 가부장제의 중심에는 바로 조상제사가 있었다. 한국의 가부장 전통은 권위적 행태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조상제사를 주관하며 가족 구성원을 결속시키고 가족 공동체를 이끄는 중심적 역할을 해왔다.


한국인에게 조상제사는 현재의 자신을 있게 한 근원에 대한 공경과 감사의 마음이 담긴, 효와 보은(報恩)의 실천이었다. 따라서 전통 사회에서 부모에 대한 효와 함께 조상에 대한 공경은 마땅히 실천해야 하는 최상의 덕목이었다. 이러한 전통을 통해 한국 사회는 가족을 넘어 보다 넓은 의미의 ‘우리’라는 공동체적 가치를 지속시켰으며, 조상제사는 현재의 우리가 조상의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그 얼을 계승한다는 점에서 과거·현재·미래를 잇는 소통의 장이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한국인은 계층과 계급을 초월해 가부장을 중심으로 조상제사를 극진히 올려 왔다.


중국의 고전 『禮記』에 나타난 조상제례의 기능과 의미를 살펴보면, 백성들끼리의 불화나 다툼을 억제하고 욕망을 조절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한다. 중국의 제례 문화에 기원하고 있는 한국인의 조상제사 역시 종교적 원리보다는 조상신을 잘 모셔야 집안 대소사가 원만할 것이라는 세속적 믿음에서 비롯된 정성을 드리는 행위였다.

이러한 세속적 믿음에서 행해지고 있던 한국의 가부장적 제사문화를, 18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조선에 들어온 기독교(천주교와 개신교)는 한국인 신자들의 조상제사를 철저히 금지했다. 개종한 신자들은 조상제례를 종교적 우월주의 입장에서 유일신과 경쟁 관계에 놓고 하나를 택해야 했다. 신자들에게 있어서 조상제사 금지령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조상제사를 거부한다는 것은 조선사회의 틀을 무너뜨리고, 오랜 질서를 거부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샤를 달레가 저술한 『한국천주교회사』에서도 조선인에게 있어서 조상숭배 금지령은 “모든 계급의 조선국민의 눈동자를 찌른 셈”이라고 언급할 정도로 종교전쟁을 선포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천주교신자들은 양자택일의 상황에 내몰렸고, 그들은 목숨을 걸고 조상제례상을 엎었다. 결국 ‘진산사건’이 터지고, 신유박해로 이어져 순교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한국 개신교 초기에 조상제사를 강하게 금지했던 배경도 오리엔탈리즘의 맥락에서 이해된다. 종교우월주의에 입각하여 개신교 선교사들이 취한 구체적 행동은 한국인의 조상숭배를 ‘우상’과 ‘귀신’ 숭배라고 규정하면서 엄격히 금지하는 일이었다. 심지어 삶과 죽음을 담보로 하면서까지 강한 어조로 조상제사를 비판했다. 1897년 4월 14일 자 「죠션그리스도인회보」 ‘우상론’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예전부터 우상을 존숭하는 나라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고로, 양나라 무제는 불상을 제일 존숭하다가 대생에서 주려 죽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그 나라들을 멸망케 하셨으니, 이것은 다 사기에 자재한 말씀인 즉, 증거가 분명하고 하나님을 존숭하는 나라들은 나라마다 부강하며 문명 진보가 되나니 지금 유럽 나라들과 북 아메리카 제국이라 천하의 대세를 보는 자 어찌 파흑할 일이 아니리오”(「죠션그리스도인회보」 ‘우상론’, 1897년 4월 14일 자)


그는, ‘우상을 숭배하는 동양은 필연적으로 멸망하고, 하나님을 믿는 유럽과 미국은 부강하게 번영한다’는 인식을 지녔다. 이는 전형적인 이분법적·종교 우월적 오리엔탈리즘 사고방식의 반영이라 볼 수 있다.


내한 개신교 선교사들은 조상제사가 기독교 전파에 걸림돌이라 생각했다. 선교를 위해서는 장애물을 제거해야 했다. 그들은 기독교의 관점에서 폐악을 지적하면서 설득해 나갔다. 게일은 조상숭배의 폐해를 다음과 같이 열거하고 있다.


“모든 제사의 결과로 사람들의 손발은 묶이고, 벼슬을 할 수 없게 되고, 여행하는데 제약을 받고, 신이 그들에게 주신 땅을 경작할 수 없고, 조혼으로 인해 곤궁해지고 불행하게되며, 과거를 바라본 채로 더욱 더 절망적으로 헤어날 길 없는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게일, 신복룡 옮김, 『전환기의 조선』(집문당, 1999), 63)

설득의 논리는 첫째, 한국인 공동체의 조상제사는 유일신 하나님을 모르는 동양인이 하나님 외에 다른 존재에게 경배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이것이 ‘죄’라는 것을 인식시켜 죄의식을 갖도록 하였다. 둘째, 조상제사에 대한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키면서 적대감을 갖도록 하는 것이었다. 위의 자료에서 보듯이 조상숭배라는 죄에 빠져 있으면 정신이 타락하고 삶이 도탄에 빠진다는 것이다. 셋째, 한국이 근대화되지 못하고 정체된 이유는 미신적, 이기적, 물질적, 마술적, 비윤리적인 제사라는 악습 때문이라는 것이다.


내한 선교사들의 조상숭배 금지령은 오리엔탈리즘의 시각에서 저술된 중국개신교의 소책자들 중에서 메드허스트의 『청명소묘지론(淸明掃 墓之論)』(1826)과 네비어스의 『축선변류(祝先辨謬)』(1859) 등에 근거한 것이었다. 이들 소책자는 예수교를 우상과 귀신 숭배를 버리고 만물의 근본인 하나님만 섬길 것을 권하는 종교로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유교의 제사는 샤머니즘적 귀신 숭배로, 불교의 종교행위는 우상숭배로 각각 간주하였다. 선교사들은 이들 소책자를 한국인 조사(helper)들과 전도인들에게 필독서로 읽혔다.


중국 개신교 소책자를 근거로, 내한 선교사들도 자체적으로 규칙서를 발간하였다. 북장로회에서는 1895년 『위원입교인규조(爲願入敎人規條』)라는 규칙서를 펴내면서, 귀신숭배, 우상숭배, 제사 등을 금지하는 조항을 제1조에 배치했다. 북감리회 선교사들 역시, 『셰례문답』을 발간하여 “마귀와 마귀의 모든 일인 하나님을 경외치 아니하고 우상을 섬기는 것을 미워한다”라는 규정을 첫 번째 조항에 두었다.


이러한 규칙서의 조항은 선교현장에서 바로 적용되었다. 스왈른(W. L. Swallen) 선교사는 “제사는 한국인들이 포기해야 할 최대의 우상”이라고 하면서, 제사를 지내는 입교인의 성찬 참여를 금지했으며, 제사 음식조차도 만지지도 먹지도 못하게 하였다. 제사 금지령의 교육을 받은 초기 개종자들은 한국의 제사 문화의 정체성에서 벗어나고자 신주를 땅에 묻어버리거나 불태워 버렸다. 그 대가로 마을 공동체와 친인척으로부터 배척을 당했다. 선교사들은 이러한 일들에 대하여 선교의 성과로 보고하면서, ‘개신교인’과 조상제사를 지내는 ‘한국인’ 사이에 울타리를 놓아 타자화하기 시작하였다.



문화 상대주의 관점에서 볼 때도, 조상제사에 대한 개신교의 인식은 명백히 잘못되었다. 조상제사는 한국인의 역사와 사회적 경험 속에서 형성된 전통문화이며, 그 의미와 기능은 해당 문화의 고유한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점을 간과했다. 오리엔탈리즘적 시각 또한 타자화 프레임에 조상제사를 끼워 넣어 ‘미신’으로 단정하고, 그 사회적 기능과 상징성을 훼손했다.


2025년 현재, 네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저승사자, 도깨비, 물귀신, 호랑이 귀신 등 한국 전통 신화와 민속에 등장하는 존재들이 악당이나 조력자, 상징적 캐릭터로 직접 등장한다. 감독과 제작진은 ‘한국적 감성’의 디테일한 재현을 목표로 하여, 한국의 과거와 현재, 현실과 판타지를 융합한 스타일을 추구했다고 밝혔다. 140년 전부터 조상제사를 비롯한 동양 문화를 ‘귀신 숭배’, ‘우상 숭배’라며 강력하게 금지했던 개신교 입장에서는 경악할 일이 아닌가 싶다.


‘우상론’에서 언급했던, “우상을 숭배하는 동양의 나라는 반드시 멸망하였고...”라고 했던 우려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문화강국이 되었다. 공동체 의식의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은 덕분이라 할 수 있다. 개신교 선교 14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비록 형식은 간소화되었지만 한국인은 여전히 절기나 기일마다 가족이 모여 조상제사를 지낸다. 공동체의식 형성에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조상제사라는 공동체 의례도 한몫했다. 이러한 공동체 의식을 김태형 소장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쓰는 ‘우리’라고 말한다. 한국이 문화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그 ‘우리’라는 집단 운명체가 있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지금, 극우로 치닫는 한국의 개신교회가 ‘우리’로부터 ‘타자’가 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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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 받은 자료 -

샤를르 달레, 안응렬 최석우 역, 『한국천주교회사(상)』 (1979)

게일, 신복룡 옮김, 『전환기의 조선』(집문당, 1999)

옥성득, “초기 한국 개신교와 제사문제,” 「동방학지」 127(2004)

김미영, “조선시대 유교의례의 사회적 기능과 상징적 의미― 조상제례를 중심으로,” 「국학연구」 14, (2009)

이향순, “미국 선교사들의 오리엔탈리즘과 제국주의적 확장,” 「선교와 신학」 제12집(2003)

김태형, 『한국인의 마음속엔 우리가 있다』(온더페이지,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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