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멘 안하지?

"나는 기도해 준 죄 밖에 없어!"

by 황미숙

채상병 사망사건을 수사하는 특검이 김장환 목사와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를 압수 수색했다. 개신교 입장에서는 희대의 경악할 만한 사건이겠다.


“사단장을 살려주라고 그랬으면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야!

나는 기도해 준 죄 밖에 없어

그게 대한민국의 위법이라면 공산당 나라보다 더한 나라예요.

왜 아멘 안하지?

아~멘”


교회에서 목사님 설교 중에 교인들이 화답하는 “아멘!”에는 설교 내용에 대한 공감과 성경 말씀에 대한 절대적 순종의 의미가 담겨있다. 물론 마음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아멘’이다. 위 내용은 압수수색 후 주일 예배 설교 중 김장환 목사가 한 말이다.


그런데 목사의 말에 웬만하면 교인들이 “아멘”으로 답하는 게 거의 습관화 되어 있음에도, 위 장면에서는 교인들이 침묵을 지킨다. 공감할 수 없고 순종할 수 없는 말에 대한 교인들의 거부 혹은 내면의 갈등이 읽히는 대목이다.


목사는 다그친다. “왜 아멘 안 하지?” 이에 교인들은 웃음 아닌 웃음으로 공감과 아멘 간의 거리를 뭉개며 억지 ‘아멘’을 한다. 상황의 행간에 숨은 말들을 꺼내면 이렇지 않을까.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사단장을 살려주라고 그랬으면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야!

나는 기도해 준 죄 밖에 없어(사단장 무사하게 해달라고. 나라를 지키고 북한 공산당과 싸우는 장군이잖아)

(내가 사단장을 위해 기도한 게 죄라면 또한) 그게 대한민국의 위법이라면,

(이거, 이거) 공산당 나라보다 더한 나라예요. (안그래요?)

왜 아멘 안하지? (아니, 목사가 이렇게 옳은 말을 했는데 왜 교인들 반응이 이래? 여러분들도 내 말에 공감하잖아?)

아~멘”


목사의 말과 말 그 행간에 숨은 뜻을 교인들이 모를 리 없었을 것이고, 그러므로 교인들의 침묵에는 100%는 아닐지라도 “목사님, 그건 아니잖아요!”라는 항변과 불편함이 자리해 있다고 본다. 이에 대해 목사는 물었다. “왜 아멘 안하지?” 참으로 해학적이기까지 한 풍경에 웃을 수도 없다.


이것은 한 청년의 죽음에 대한 서사이며, 이 나라 정의에 대한, 그리고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거의 보편적 현상이 되어버린 한국개신교의 권력화된 목회 현실에 대한 서글픈 담론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왜 아멘 안하지?”에 대한 공론적 대답이랄까. “난, 기도해 준 죄밖에 없어!”라고 말한 김장환 목사에게 이제 우리는 묻고자 한다. “목사님, 무슨 기도를 하셨습니까? 우린 그 기도가 궁금합니다!”


상관의 명을 받아 작전에 임하다 목숨을 잃은 젊은 병사를 위한 기도였을까. 사건의 핵심 책임자였던 임성근의 무사를 위한 기도였을까.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상, 그 기도가 어떤 기도였는지는 그리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특검은 압수 수색 명목으로 임성근 사단장 ‘구명 로비’ 의혹을 제시했다. 아마도 김장환 목사는 임성근을 위해 기도를 빌린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게 기도한 죄밖에 없다면, 그래서 그의 기도가 이루어진다면, 결과적으로 임성근은 무사하고, 채 상병의 억울한 영혼은 구천에 떠도는 형국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예수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너희가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었고, 병든 자를 돌보았으며, 헐벗은 자에게 입힐 것을 주었다. 이 모든 것은 곧 내게 한 것이다.” 또한 예수는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라고 하셨다.


기도는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영적인 통로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정신에 부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독백일 뿐이다.


임성근의 죄는 앞으로 특검을 통해 구체적으로 밝혀질 것이지만, 김장환 목사는 그 자신이 말한 “기도한 죄밖에 없다”를 ‘그게 무슨 죄라고 압수수색까지 하느냐’는 역설로 받을 게 아니라 “그렇게 기도한 죄가 크다”라고 정정해야 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이 아닐 테니까.


그리고 우리는 이 대목에서 조심스럽게 한나 아렌트의 죄의 개념을 소환하고자 한다. 아이히만에 대해 그녀가 규정했던 죄. 세상에 널리 알려진 대로 그 죄는 다름이 아닌, “생각하지 않는 죄”다. 타인의 고통, 타인의 눈물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죄.


바로 이 점은 진영이나 신앙을 떠나, 누구나 타인의 고통과 슬픔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는 인류 보편적 양심에 근거한다.


김장환 목사는 누구인가. 세간에 알려진 대로, 그는 극동방송 이사장이자 한국 개신교계의 대표적인 거물이다. 1950년대에 미국으로 건너가 신학을 공부한 그는, 1970년대 빌리 그래삼 목사의 집회 때 통역을 맡으면서 한국 개신교계에서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김목사는 무엇보다 철저한 친미주의자이자 강경한 반공주의자로, 설교나 발언에서 '공산당', '공산주의'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앞서, “그게(기도한 게) 대한민국의 위법이라면 공산당 나라보다 더한 나라예요.”라고 말한 설교에서 보듯이 그에게 ‘공산당’은 악의 극점에 자리하는 어떤 기준이다. 그는 Billy Kim으로 종종 소개된다. 2024년에 나온 평전 표지에도 ‘BILLY KIM’이라 적혀 있다. 스스로 강조하는 듯한 미국인의 정체성이 엿보인다. 그간, 그의 친미 성향과 반공주의는 그의 성공 가도에 우군이 되었을 것이다. 친미와 반공은 과거 군사독재 정권은 물론 현재까지도 (광화문 집회를 통해 보듯) 여전히 反민주적 극우세력의 이념적 자산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의 편향적 권력 지향을 의심케 하는 점이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크리스천 그룹이 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나를 부인하고 세상을 도구로 삼는 부류, 다른 하나는 세상을 목적으로 하나님을 도구로 삼는 부류. 김장환 목사는 어디에 해당할까. 그가 수십 년간 대한민국 개신교의 권좌를 지켜온 바탕에는 성경적 삶보다는 친미와 반공을 매개로 한 정치권력과의 지속적인 유대가 있지 않았을까.


그에 대한 신화는 만들어져 왔다. 무엇보다 한국개신교가 배경이 되었고, 그에 대한 평전 『김장환 목사 평전』(신성욱 저, 미래사, 2024)이 스토리를 구체화했다. 교보문고는 평전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6·25 전쟁 당시 가난한 시골 농부의 아들이었던 소년 장환이 한 미군의 도움으로 미국에 건너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한국으로 돌아와 수원중앙침례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해 수원기독병원을 개원하고 기독회관을 개관했으며, 1984년에는 수원중앙양로원을 개원하여 복음전파에 힘썼다. 한국에선 처음으로 ‘수원 YFC’를 창설하고 한국 십대선교회(YFC) 총재를 지내며 수많은 인재를 길러냈다. 또한 극동방송을 맡아 발전시키고,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에서 크게 활약하는 등 한국과 세계 교회의 역사에 자취를 남기는 위치에 오르기까지 하나님께서 그를 어떻게 사용하셨는지를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평전의 저자(신성욱)는 김장환 목사의 인생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근검절약으로 소문난 구두쇠

받은 은혜만 기억하는 사람

정직과 근면을 생활화하고, 복음 증거에 목숨 걸었던 사람

포용력 있고 겸손할 뿐 아니라, 활력 넘치고 생기 있는 사람

탁월한 기억력과 전달력, 시간 관리 철저 및 부지런한 사람

인간관계 중시 의리 있는 사람

겸손으로 허리를 동인 사람


목사의 평전이라기보다 마치 성공한 대기업 회장의 평전에나 나올 법한 표현들이다. 세속적인 찬사가 넘친다. 그나마 있는 신앙적 이야기는 그 근거가 의심되는 대목이다. “겸손으로 허리를 동인 사람”이라고 해놓고, 제목으로 언급된 내용 모두가 겸손과는 거리가 멀다. 자랑과 교만으로 가득하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 교회를 짓고 기독교 방송국을 만들었다 하여 성경적인 삶은 아니지 않는가.


얼핏 눈이 가는 대목이 “받은 은혜만 기억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다. 그가 받은 은혜는 무엇인가. 독일 나치 시대의 목사였던 본 회퍼가 말한, ‘값싼 은혜’일까, ‘값비싼 은혜’일까. 본회퍼가 말하는 ‘값싼 은혜’란 은혜를 아무런 희생이나 변화 없이 받는 것을 말한다. 즉, 죄를 짓고도 회개도 하지 않고, 참된 변화 없이 그저 하나님께 용서받았다고 착각하는 것이 ‘값싼 은혜’라는 것이다.


‘값비싼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삶의 대가가 요구되는 은혜이다. 그가 받은 은혜는 값비싼 은혜의 의미는 아닌 것 같다. 그는 세상 명예와 지위와 권세를 누렸고, 누리는 중이다. 나는 없고 오직 예수와 성령만이 전부라는 자기 부인과 십자가를 지는 삶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복음에 목숨을 걸었던 사람"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가 목사로서 활동한 시기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순교를 각오할 만큼의 박해 시대가 아니었다. 오히려 성장주의 시대와 번영신학이 나란히 꽃을 피우며, 한국 개신교가 권력과 자본의 지원 아래 날개를 활짝 펼칠 수 있었던 시대였다. 최소한 그가 걸었던 길은 가시밭길도 아니고, 골고다 언덕과도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이미 다져진 길에서 무엇보다 미국을 배경으로, 그리고 권력 가까이에서 머물러 왔다는 흔적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겸손으로 허리를 동인 사람"이라고 말하는데, 기독교에서 ‘겸손’이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자기 자랑을 버리며 낮아지는 마음의 자세를 의미한다. 수년 전에 극동방송을 통해서 들었던 이야기를 소개하자면, 어느 지역에 극동방송 설립 요청이 거론되는 과정에서 “내가 지어줄게요, 내가 하면 할 수 있어!”라고 말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발언에서 드러나듯, 그의 언어에는 “내가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식의 '나' 중심의 태도가 깊이 배어 있다. '나'가 앞서고 '나'로 가득 찬 세계 속에서, 과연 하나님이 머무를 자리는 남아 있을까.


민수기 20장에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물이 없어 원망하자,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팡이를 가지고 형 아론과 함께 백성을 모아 놓고 반석을 향해 명령하여 물을 내라고 분명히 지시하셨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반석을 향해 명령만 하지 않았다. 자신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면서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리라”라고 말했다. 마치 자신들의 능력으로 물을 낸 것처럼 말이다. 이 사건으로 모세는 그토록 들어가고 싶었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징계를 받았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백성 앞에서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극동방송 1층 벽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 역사가 일어나고,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면 기적이 일어난다.”


이 문장은 김장환 목사의 모토라고 한다. 평전에서 역사와 기적을 만들어 내긴 했다. 김장환 목사를 성경에 나오는 인물인 아브라함, 모세, 바울과 견주는 인물로 격상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는 선민을 백성 삼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하게 해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모세’를 선택하시고,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신약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성경을 집필하게 하시기 위해 ‘바울’을 선택하셨다. 그렇듯 극동방송이라는 전파매체를 통해 복음을 듣지 못하는 지역 사람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시려고 ‘김장환’이라는 하우스보이를 만세 전에 선택하셨다.”


...라고, 그러면서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한 이사야 43장 1절 말씀이 ‘김장환’이라는 사람에게 어떻게 적용되는지,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썼다.


역사적으로 종교와 정치는 분리될 수 없는 숙주와 기생체의 관계이다. 유럽 중세 교권과 왕권이 결합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종교(교회)를 숙주로 삼아 정치권력이 정당성을 얻거나, 반대로 종교가 정치권력에 기생하여 영향력을 확대하는 현상은 끊임없이 반복되어 나타났다. 한국 개신교 역시 140여 년의 역사 속에서 성장과 부흥을 거듭해왔지만, 그 이면에는 정권과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생존을 모색해온 기생적이거나 공생적인 구조가 자리하고 있었다. 종교와 결탁한 정치는 대중의 신념·분노·광기를 ‘숙주’ 삼아 정치에 동원하고, 선동하여 권력 쟁취에 활용하고, 이에 군중은 비판적 이성 없이 맹목적으로 충성해 왔다. 이것이 극단적 분열로 이어져 극우세력으로 성장했다. 그 중심에 한국 개신교회의 파시스트 목사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걸어가신 고난의 길은 외면한 채, 세상에서의 형통과 부귀영화에 집착하는 신앙의 세태는 결국 권력과 타협하고 공생하는 왜곡된 믿음의 인과(因果) 구조를 낳았다. 오늘날 한국 개신교가 겪고 있는 이러한 병폐는 바로 디트리히 본회퍼가 경고한 '값싼 은혜'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


교회의 크기, 외형적 성장으로 믿음을 재단하고 목사의 역량이 평가되는 세상에서 권력과 소통하는 거물급 목사와 교회가 스스로 세속화 권력화되는 현상은 이제 당연한 일이 되었다. 정작 하나님은 없고 목사 중심의 교회로 전락한 현실의 최대 피해자는 목사를 목자(牧者)로 인정하고 따르는 수많은 교인들이다. 아멘으로 화답할 수 없는 교인들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왜 아멘이 없느냐”고 다그치는 그 모습에는 한국교회의 오늘이 담겨있다고 단언한다.


거의 신화로 자리 잡고 있는 김장환 목사의 이야기가 평전으로 엮어져 세상에 나온 지 1년여가 되었다. “복음 증거에 목숨 걸었던 사람”으로 묘사된 평전의 개정판을 준비해야 할지 모르겠다. 특검의 압수수색과 조사를 ‘박해’라 규정하고, 역시 “그 박해에 목숨을 걸고 싸웠던 목사”로 말이다. 또 하나의 신화가 탄생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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