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즈음의 날씨는 이상스럽다. 햇볕이 내리쬐기도 하고, 갑작스레 내리는 비는 당황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나는 가방에 작은 우산을 들고 다닌다. 비가 오는 날엔 당연하게 우산을 쓰고, 햇볕이 강한 날엔 양산처럼 사용해 피로감을 줄인다. 우산은 중국기업인 샤오미에서 나온 제품이다. 샤오미는 나에게 명확한 이미지가 없다. 보조배터리로 처음 알게 되었고, 캐리어나 가방, 미 밴드도 많은 사람들이 애용한다. 샤오미에서 나온 제품들을 마냥 사용하고 있는데 사실 이 기업에 대해 명확히 아는 바가 없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렇다. 내가 무관심한 것도 있겠지만 샤오미라는 중국 기업의 모습과 책에서 제시하는 중국의 현대사가 상당히 닮아 보였다. 중국을 비롯한 기업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틈을 통해 안방을 차지하고 있다. 침입하는 외세를 물리치자는 따분한 이야기가 아니다. 비를 피하려면 일기예보를 확인해야 한다. 일기예보는 지난날의 통계로 미래를 예측한다. 매번 맞지는 않지만 우리를 대비하게 해 준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는 지난날의 일기도를 열어 관측할 필요가 있다.
#. 뜬금없이 중국 관련 책을 집은 이유는 임명묵이라는 사람의 글에 감탄하면 서다. 그의 글엔 울림이 있다. 저자는 시작부터 중국에 대한 전문가는 아님을 밝힌다. 그렇기에 이 책을 다 읽고 중국에 대해 모든 걸 알게 되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누가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명쾌한 정의를 할 수 있을까도 생각하게 된다. 그는 나름의 목적성을 가지며 글을 이어나간다. 작가의 시선은 정설보단 대중에게 친숙한 언어와 비유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정 사건들을 제시하지만 시간순으로 나열하는 것이 아닌 사건의 원인이 되는 당시 사회의 모습과 이후의 변모를 연계하며 서술한다. 정신을 놓으면 시대순이 오락가락하는 맥락에 혼란을 느낄 수도 있지만, 시대순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을 갖고 보면 사건과 시대마다의 특징을 묶는 모습에 해당 사건에 대해 깊은 사고를 도와준다.
#. 매번 느끼지만 블로그를 시작하길 참 잘했다. 그 이유는 이 책을 다루며 첫 독서에 내가 모르던 중국의 모습이 있구나 정도에 감탄을 했고, 글을 쓰기 전 두 번째 독서 때 글감을 뽑아내는 시간 속에선 첫 독 서 때 놓친 덩샤오핑이라는 인물에 대해 깊은 모습들에 시선이 닿았다. 글을 쓰면서 마지막으로 정리된 내용들을 훑었을 때 작가가 끊임없이 제시하던 전반적인 중국의 현대사가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모든 책들이 그렇지만 사람과 친해질 때도 대화가 필요하듯 회독을 할수록 작가가 이야기하는 말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회독을 통해 단편적인 이미지로 존재하던 중국이라는 코끼리가 뿌연 황사 밖으로 걸어 나온 느낌이다.
#. 중국은 어느새 우리 곁으로 다가온 게 아니라 언제나 우리 옆에 있었다. 다만 우리가 시기를 놓친 이유는 그들이 도광양회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이런 자세가 세계 속에서 조용히 그들의 몸집을 키우게 만들었고, 모습을 드러내는 시진핑의 중국은 이미 준비를 마쳤다. 나는 이 모습을 보며 우둔한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나는 어딘지 결여된 사람처럼 자신을 드러내려 하고 가진 것 이상의 모습을 보이려 할 때가 있다. 그렇기에 보다 더 성장을 하기도 하지만 실패했을 때는 스스로를 자책한다. 도광양회는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묵묵히 길을 걸어가며 목표한 곳까지 닿기 위한 실질적인 방안이지 않을까? 또 하나를 배웠다.
#. 중국 공산당은 갈림길에 놓인 상황이다. 경제 발전을 통해 인민들은 풍요를 느끼고 사회적 자유를 갈망한다. 이에 대한 대처로 후진타오는 강한 권력을 선택해 시진핑에게 전권을 이양했다. 시진핑은 과거의 성공을 답습하지만 덩샤오핑의 도광양회는 내려두었다. 낮은 태도로 국제사회에 모습을 보이면, 인민들도 공산당의 낮은 태도를 보며 저항할 것을 우려하는 걸까? 중국은 다시 한번 강력한 경제정책으로 이룩할 도시의 찬란함에 인민들의 눈을 멀게 하고 다스리려 하고 있다.
#. 중국은 자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또 다른 길을 걸어간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집값을 내리려고 하면 집값이 오르고, 투기를 견제하는 집단이 전문적으로 투기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일정 수준의 성장을 했으니 이제 과정 속에 기생하던 암세포를 뽑아내야 하지 않을까? 문제를 남겨두고 성장만을 추구하던 사회 관념이 건설 카르텔이라는 괴물집단을 만든 것 아닐까?
#. 저자는 글의 끝맺음을 고민하며 이런 내용들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말 중국을 아는 게 도움이 되는지? 질문을 던지고 나름의 답을 한다. "거대한 코끼리인 중국을 각자의 시각에서 만져본 장님들의 활발한 대화" 이것이 작가가 제안한 지향점이다.
지리적으로 인접한 중국이라는 코끼리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코끼리는 의도 없이 우리를 밟을 수 있다. 밟히고 나서 저항하는 건 의미가 없다. 각자 치열한 삶 속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넓은 시야에서 소속한 공동체 문제의 해법, 개인문제의 해법을 찾을 수 있기도 하다. 내가 나의 삶의 새로운 교훈을 덩샤오핑의 도광양회에서 느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