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 운명
우연히 접하게 된 바이올린과의 인연으로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었고 10년 넘게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물론 코로나로 몇 년간은 제대로 활동이 되지 않았기도 하지만 고로롱거리면서도 명맥을 이어가고 있고 직장을 그만둔 후의 내 가장 강력한 부케가 되기도 했다. 작년에 다시 일을 시작하며 시간적 여유가 생기지 않아 당분간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지 못하다 방학을 맞아 다시 참석을 하게 되었다. 어떤 기분일까?
다시 살아있는 느낌. 그래서 너는 내 운명. 내 삶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자리이다. 나는 그것의 이유를 제대로 모른다. 본능적으로 끌리는 느낌이라는 것 외에는. 아주 지치거나 힘들 때 악기를 연주하면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나만의 세계 속에 빠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편안함, 기쁨, 생동감! 다시 오케스트라 연습을 위해 자리에 앉았을 때의 느낌이 그랬다. 공백 때문에 손이 굳어 돌아가지 않을지언정, 진행하는 곡이 낯설어 당황스러울지언정 음악으로 함께 하는 그 자리에 있다는 것 자체가 주는 기쁨 말이다. 그러니 내 꿈 중의 하나는 죽기 전날까지 악기를 놓지 않는 일이다. 첼로 거장 파블로 카잘스가 90세가 되어서도 연주를 했듯이 말이다.
다시, 오케스트라를 시작하면서 만감이 교차한다. 무엇보다 내가 운명적으로 음악을 벗 삼을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아직은 체력이 되어 악기를 만질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하다. 팀과 함께 이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 감사하다. 그래서 하나의 새로운 다짐. 내내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두려움과 나의 게으름 때문에 미루고 있던 오케스트라를 소재로 한 글쓰기를 시작하기로 했다.
전문 오케스트라 아니고 동네 오케스트라이다. 동네 오케스트라 하면 생각나는 드라마가 바로 2008년 18부작으로 mbc에서 방영된 베토벤 바이러스이다. 오합지졸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이끄는 카리스마 강력한 지휘자 강마에와의 갈등 및 단원들의 따뜻한 이야기로 당시 장안의 화제였고 그중에서 잊을 수 없는 장면은 바로 강마에가 외치는 '똥덩어리' 장면이다. 드라마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오케스트라에 대한 로망을 현실화하려는 붐이 일기도 했었다. 지금까지도 유효한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화려해 보이는 오케스트라이지만 실제는 강마에의 지적처럼 똥덩어리 그 자체이다. 귀에서 피가 나오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 섬세한 소리를 만들어내야 하는 전문가들은 소음 같은 소리를 참기가 힘들다. 소음을 소리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똥덩어리이다. 그래서 웬만해서는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지휘를 맡으려 하지 않는다. 그 이야기들이 동네오케스트라에는 있다. 하늘과 땅 만큼 먼 전문가와 아마추어. 그래서 소음이 소리가 되기는 힘들다. 그러나 똥덩이리일지언정 그 자체의 향기가 있다. 이제 그 똥덩어리들의 향기를 하나씩 열어 보이고자 한다.
악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여러 가지 연주 형태 중에 합주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의 단원이 되고 싶은 꿈이 있을 것 같다. 악기를 연주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혼자 하는 솔로(solo)가 있고, 둘이 하는 듀엣(duet), 셋이 하는 트리오(trio), 넷이 하는 콰르텟(quartet), 그리고 현악기만으로 이루어진 소규모 합주인 앙상블(ensenble)의 형태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악기, 관악기, 타악기로 이루어진 가장 큰 스케일의 합주가 바로 오케스트라이다.
내가 오케스트라에 대한 꿈을 갖게 된 계기는 합창을 통해서이다. 몸담고 있던 직장에 일시적으로 혼성합창을 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늘 알토를 맡았는데 소프라노, 알토 그리고 남성 테너, 베이스가 어우러져 노래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화음이다. 어느 날 연습을 하는 중에 네 파트의 화음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순간에 나는 황홀감 같은 것을 느꼈다. 솔로로서는 경험할 수 없는 감격 같은 것이었다.
악기로 친다면 피아노는 솔로이다. (물론 두대 혹은 그 이상의 피아노가 함께 연주하는 독특한 형태도 있다.) 화려한 악기를 혼자 건반을 두드리며 다양한 음악적 향연을 벌인다. 그런데 다양한 악기가 어우러진다면 어떨까? 음들의 조화의 매력을 느낀 후로 악기들의 조화의 결정체인 오케스트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자연스레 단원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 그런데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내가 참여할 수 있는 악기가 없었다. 내가 만져본 건 오직 피아노와 기타.
그래서였을까? 나는 나의 세 아이들 모두에게 바이올린 교육을 시켰다. 이제 와서 솔직히 말하건대 바이올린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아이는 첫째뿐이었다. 둘째와 셋째는 관심도 없었고 재능도 없었던 것 같다. 내가 낳은 아이인데도 그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처음에 몰랐다. 당연히 나처럼 음악을 좋아할 줄 알았나 보다. 첫째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이 스즈끼 교육과 관련 있는 곳이라 유치원생들을 대상으로 바이올린 선생님을 초빙하여 레슨을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특이한 점이 아이보다 먼저 엄마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친다. 엄마가 바이올린을 하는 것을 보고 아이가 동기부여를 받게 하려는 의도라는데 나름 일리가 있다. 의도된 동기부여에 넘어간 아이는 바이올린을 시작하게 된다. 그게 5살이었던 것 같다. (당시 유치원은 5세 유아부가 있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나는 아이가 줄곧 연습하는 것을 지켜보았고 아이의 연습을 점검하는 것이 내 중요한 일과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러면서 나 스스로 아이가 하는 진도에 맞춰 악기를 연주하곤 했다. 악기욕심이 있는 내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바이올린이라는 악기가 호락호락하지 않다. 악보는 쉽게 보고 눈과 머리로는 할 수 있겠는데 실제로 소리는 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악기 중 가장 어려운 악기라고. 그래서 누군가 어른이 되어 바이올린을 시작하려면 나는 은근히 말리게 된다. 발을 들여놓지 않는 게 좋을 걸..... 그런 악기와의 늦은 인연을 여태 이어주는 역할을 한 것이 오케스트라였다.
곧잘 혼자서도 연주를 하나 했는데 한계를 만났다. 제대로 기초교육을 받지 않고 혼자서 어깨너머 독학을 했던 터라 스즈끼 4권에서 멈추어 섰다. 포지션의 이동이 필요하고 비브라토라는 기법도 나로서는 접근하기 힘들고 더 이상 발전이 없었다. 잘 되지 않으니 떨어진 흥미를 바쁜 직장생활과 육아라는 핑계를 대며 멀리하게 되었다. 그 사이 두 아이는 자연스레 악기를 그만두었지만, 첫째 아이에게는 일말의 기대를 갖고 있었다. 초등학교에서는 제법 작은 콩쿠르에도 참여하고 내가 들어도 좋은 소리를 내는 아이는 음악적인 재능이 있나 했지만 생각만큼 본인이 열정을 보이지 않았고 고민 끝에 중학교 입학을 앞둔 시점에 취미로 남기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바쁜 직장생활과 아이들 뒷바라지가 나 자신의 취미를 돌아보게 허락지 않은 20여 년의 기간이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나의 시간이 생겼고 1순위로 낮시간에 운영되는 주부 오케스트라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제2바이올린으로 시작하여 지금은 제1바이올린으로 연주하고 있다.
음력설이 되었습니다. 새해네요. 옛날에는 양력 설이 진짜 설인데 왜 음력설을 지내나 했는데 달의 운행의 중요성을 알고 난 후로는 음력설이 진짜 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핑계 삼아 음력설을 계기로 새해의 결심도 해봅니다. 그중의 하나로 오케스트라 관련 글을 발행해 보자는 소박한 다짐을 해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인연을 맺으며 활동을 하며 느낀 점, 배운 점, 아쉬운 점 등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살짝 게으른 성향이 있어 미리 계획을 치밀하게 잘 세우지 못합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일단 시작하고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들을 좇아 정리를 해보고자 합니다. 혹 악기에 관심이 많고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는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저의 글이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혹 오케스트라와 관련해서 궁금한 것이 있으시면 소통하며 글을 전개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Happy New Y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