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싱 걸
추억追憶 : 지나간 일을 돌이켜 記憶함.
추억의 사전적 의미는 지나간 일을 돌이켜 기억함이다. 따라서 꼭 좋은 것만 아니라 아프고 힘든 일에 대한 기억도 포함된다. 그런데 유독 추억이라는 단어는 아련하게 그리움을 동반하는 긍정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나간 일을 다시 돌이켜 기억하면 힘든 일에도 아련한 베일이 씌워지고 먼 남의 일처럼 보여 그때의 고통이나 아픔도 상쇄되나 보다.
S는 추억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며, 잠시 지난날들을 소환해 보기로 했다. 무엇보다, 지금은 잃어버린 진짜 자기 모습을 찾고 싶었다. 많은 일들이 지나갔지만 유독 잊히지 않고 기억 속에 저장된 장면들이 있다. 그중에 어떤 일관성을 지닌 장면들이 포착되었다.
3.4세 정도로 추정되는 때에 찍은 사진의 장면은 늘 그녀를 가슴 뛰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공식장소로 보인다. 무대가 만들어져 있고, 여아인지 남아인지 모를 정도로 씩씩하게 보이는 꼬마아이는 무대 위에서 스스럼없이 노래를 부른다. 당시에는 사진을 찍는 것도 흔하지 않았고 당연 흑백사진이었다. 사람들의 인식 같은 것 아랑곳없는 어린아이는 그저 노래 부르고 싶었다. 너무 멋진 장면이다.
고등학교 였다. 흰색 아래위 유니폼을 입고 소풍을 갔던 여고생들이 있었다. 오락이라는 것이 낯설던 당시에 아이들은 제대로 놀 줄을 모른다. 반장이었던 소녀는 일말의 책임감을 느낀다. 요즘 말로 망가지기로 결심한다. 어설프지만 근엄한 반장이 몸을 흔드니 전체 분위기가 갑자기 왁자지껄해진다. 덩달아 아이들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고등학교 졸업한 지 20여 년 만에 재상봉행사가 열렸다. 졸업생과 재학생 은사님들이 모두 모인 강당에서 한바탕 춤파티가 벌어진다. 반짝이 의상을 장착한 그녀는 역시 여기서도 분위기를 사로잡는다. 어디서 이런 용기가 생기는 것일까?
언제부터인가 일상은 근엄하고 정적이다. 규격화되어 있다. 역할 속에 자신을 묻어두고 오래 살아왔다. 놀 줄도 춤출 줄도 모르는 사람인 줄 알고 말이다. 돌아보니 강력하게 그 장면들이 기억나는 이유는 아마 그 모습이 진짜 그녀의 모습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자신을 찾는 여행 중에 지난날을 추억하며 진짜 자기 모습의 파편들을 그러모으는 중에 신기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녀는 춤을 추고 있다. 댄싱 걸! 그녀 속에 이사도라 던컨은 아니더라도 춤꾼의 춤이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궁금해한다. "아무래도 내가 살아온 이곳의 환경은 내 속의 나를 꺼내놓기에는 맞지 않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를 좀 더 자유롭게 해주는 공간으로 이동하면 좋지 않을까? "
그러고 보니 그녀는 여행 중에 하지 않던 행동을 했던 기억이 난다. 독일에서 스위스로 넘어가는 평원에서 사람들의 시선과 상관없이 혼자서 빙그르르 춤을 춘 적이 있다. 탁 트인 평지가 주는 해방감을 표현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를 수 없었던 것이다. 함께 간 일행은 그녀보다 연령이 있으신 분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런 그녀를 보고 모두 깔깔대며 웃고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찍어 보여주기도 했다. 맞다. 그녀는 몸으로 무엇인가를 표현하고 싶어 한다. 나무의 성장을 막고 의도하는 대로 키우기 위해 나무에 철사를 꽁꽁 묶어 재배하는 분재를 싫어하는 이유를 알듯 했다. 널따란 연못이나 강이 아닌 작은 어항에 물고기를 키우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도 알듯 했다. 그 모습은 자신을 닮았기 때문이었다. 철사를 걷어내고 쭉쭉 자유롭게 뻗어가는 나무처럼, 어항을 벗어나 자유롭게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그녀는 그렇게 살아보고 싶었다. 그녀의 몸은 원래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진짜 갈망을.
추억하면 정작 진짜 자기 모습이 보인다. 살짝살짝 얼굴을 내밀며 말을 거는 진짜 자기 모습이 보인다. 오래 잊고 있었던 모습이라 낯설지만 반가운 모습이 보인다. 무거워진 일상 때문에 밀어냈던 반가운 모습이다. 추억하니 보인다.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이야기를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로 담아갑니다.
5월의 주제는 <추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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