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기독교이다 보니 따로 제사를 드리지는 않고, 매년 엄마 기일이 되면 다 같이 모여 음식을 차려놓고 추도예배를 드린다. 세월이 흘러도 많이 흘렀구나 생각은 했지만 올해 세어보니 벌써 14년 전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한창 어렸던 서른 초반이었는데, 나는 참 일찍부터 마음이 단단해져야만 했구나 싶어 스스로가 안쓰럽게 여겨지기도 한다.
공교롭게도 4일은 친정 오라비의 생일이다. 엄마에게 직접 확인할 길은 없지만, 성격 깔끔한 양반이 아들 생일에 먼 길 떠나면 안 된다 싶었는지 하루 전 그렇게 서둘러 급히 갔나 보다며 아버지는 얘기하시곤 한다. 엄마는 배려였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아들 입장에선 그 해 이후로는 생일에 축하받는 일이 전혀 달갑지 않은 날이 되어 버린 듯하다. 어차피 나이 드는 게 갈수록 반가울 리 없으니 생일이라고 요란 떨게 없다 싶지만, 그래도 늘 강박적으로 생일을 챙기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 같아 딱한 마음도 든다.
오라비와 마음 착한 올케가 마침 한국에 있는 경우에는 이것저것 음식을 다양하게 준비해 주는데, 올해도 덕분에 내 수고가 많이 덜어졌다. 대신 난 무슨 음식을 준비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새삼스레 김밥이 떠올랐다. 우리 엄마는 꼭 김밥을 쌀 때 새콤달콤 초밥을 만들어 싸주셨는데, 나름 엄마의 비법을 전수받아 나는 항상 우리 엄마가 해주시던 그 방법대로 김밥을 말곤 한다. 요즘 파는 김밥들이 하도 다양하게 등장해서 가끔 남편과 딸아이가 참치와 깻잎을 넣어 달라는 주문을 하곤 하지만, 나는 꼭 우리 엄마가 하시던 방법 그대로 싸는 것을 고수하는 편이다.
예전 호주에서 오라비랑 둘이 살던 시절에도 아주 가끔씩 내가 직접 김밥을 말아먹곤 했는데, 오라비가 참 맛있게 잘 먹어주던 게 떠올랐다. 간혹 밥이 좀 더 새콤하면 좋겠네, 간이 좀 더 들어가면 좋겠네 등등 인심 잃을 잔소리 직구를 잘 날리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내가 만들어준 음식들을 아마도 가장 잘 먹어주던 사람이 오라비였지 싶다.
그래서 이번 엄마 기일 저녁상에 김밥을 준비해 갔다. 엄마의 비법대로 싼 김밥을 엄마도 반겨주시려니 하는 마음 하나에 생일이 기쁘지 않은 오라비에게 입이라도 즐겁게 해주고 싶단 마음 하나가 더해졌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무슨 음식 좋아하셨었지?"
식사 중에 오라비가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참 속상한 건, 그게 뭔지 단번에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우리 시대 어머님들은 뭐 하나라도 자식 입에 넣어준답시고 부득부득 짜장면이 싫다고 하시던 분들이기에, 지금 이렇게 애써 돌이켜보려 해도 엄마가 정말로 무슨 음식을 좋아하셨는지 솔직히는 잘 모르겠다. 그게 그렇게 죄송스러운 마음이 든다. 엄마가 잘 드시던 음식들이 몇 가지 떠오르긴 하지만, 그걸 정말로 좋아하신다고 제대로 말씀해 주신 적은 한 번도 없었더랬다. 자식은 그렇게 언제나 저 살기에 바쁘고, 자식을 낳아 키우는 입장이 되고서야 비로소 부모의 마음을 뼛속깊이 알아간다.
난 가끔씩 우리 딸한테 이야기해 준다. 엄마는 회덮밥을 참 좋아하고, 망고도 가운데 씨 부분만 먹는 것보다 한 개를 통으로 다 먹는 걸 좋아한다고.. 엄마도 짜장면이 너무 맛있고, 피자랑 햄버거도 좋아한다고...
아이한테 한 치의 양보할 마음도 없는 철없는 엄마처럼 보일지 몰라도, 나는 이다음에 내가 세상에 없을 때 우리 딸이 엄마를 떠올리며 당황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더 크다. 최소한 우리 엄마는 무슨 음식을 좋아했는지 정도 만이라도 명확하게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럼 내가 엄마한테 이토록 무심했구나 떠올리며 속상하지 않아도 될 테니 말이다.
살면서 딱히 속 썩여 드린 일이 없었다고 자신했다. 그래서 난 내가 효녀인 줄로 착각했는데, 돌아가시고 나니 어쩜 그렇게 소소하게라도 내가 잘못했던 일만 죄다 떠오르나 모르겠다. 아주 큰일이 아니었어도엄마에게 짜증 부렸던 일들까지 모두 다 떠올라 그렇게 죄송한 마음이 떠나질 않았다. 그러게 옛날 조상님들은 부모님 묘에서 3년상을 지켰다고 하는데, 나름 그 행위의 의미를 알 것도 같다. 그러나 돌아가신 후에 3년이나 슬퍼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나. 한 번이라도 살아계실 때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건네고 표현하는 것이 그나마 나중에 덜 후회하는 방법인 것을..
5월은 늘 그렇게 참 아련하다. 잘 지내고 계실지... 그저 하늘만 한 번씩 올려다본다.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이야기를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로 담아 갑니다. 이번 달 주제는 <추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