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12년 차, 하루 48시간도 부족해
내 노래를 부르고 싶어
은퇴隱退는 사전적 의미로 일선에서 뒤로 물러나(退) 사회 활동에서 손을 떼고 한가히 지냄(隱)을 의미한다. 영어로는 retirement 즉, 타이어를 갈아 끼운다는 의미로 좀 더 적극적인 의미를 띠기도 하다. 어떤 경우든, 무대의 중앙에서 내려와서 새로운 체제로 삶을 살아가는 변화의 분기점이면서 내리막길을 알리는 서곡이기도 하다. 해서 대부분 이 단어 앞에서 씁쓸해진다.
혼자 글을 끄적이다가 어느 날 갑자가 브런치에 입성한 지 7개월이 되었다. 남들 다하는 매거진, 브런치 북이 언감생심이었는데 최근에 매거진을 쓰면서 용기를 얻게 되었다.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데 어지간히 예열시간이 오래 걸리는지라 속도가 더디다. 그래도 진득하게 붙어있으니 뭐라도 하나하나 진행되고 있음이 눈에 드러난다. 이제는 주제별로 묶어서 일관성 있게 매거진 발행을 해보자는 생각을 적극적으로 하게 되었고 그 여럿의 주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은퇴이다.
이유인즉슨 내가 바로 은퇴 이후의 삶을 12년 차 살고 있기 때문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시간을 훌쩍 뛰어넘은 시간을 보내고 있기에 뭔가 할 말이 남들보다는 좀 더 있지 않을까 싶고, 실제로 할 이야기가 많다. 내 경험은 고작 동네 어귀 작은 조각에 불과하지만 혹시 누군가 은퇴 이후의 세상이 궁금한 사람들의 불안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만나 줄 수 있다면 하는 작은 바람으로 문을 연다.
저는요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에 그러니까 40대 후반에 20여 년 몸담은 직장에 사표를 냈다. 인생의 황금기인 30,40대를 함께 한 직장을 50대의 결실을 앞두고 그만두기로 결정하는 건 쉽지 않았고 은퇴 이후에 대한 두려움도 발목을 붙잡았지만 어. 쩔. 수. 없. 이. 사표를 냈다. 다 알만한 이유였다. 한창 청소년기에 든 세 아이의 양육과 직장병행의 현실적 어려움이 이유였다.
은퇴를 할 때만 해도 지금보다는 훨씬 젊은 시절이라 나름 용기도 있었고 좀 더 멋진 삶을 살아볼 테야 하는 꿈도 있었고 그토록 바라던 세계 여행길에도 오를 생각이었다. 먹고살아야 하는 경제적인 책임은 남편 한데 전가하고, 나는 아이들 학업, 막 대학 입학을 앞둔 아이들 뒷바라지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뭐 나름 장밋빛 미래 같은....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가 바로 그 장밋빛 미래의 실상의 이모저모가 되겠다. 시간 순서대로 글을 쓰려하니 호흡이 딸린다. 우선 지금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하여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오가며 이야기를 풀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요즘,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요.
며칠 전에 지인과 이야기를 하는 중, “아, 하루 48시간이어도 모자랄 지경이에요.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서요!” 이게 누구 이야기냐 하면, 스스로를 루저라 여기며 비관에 찌들어 있던 내 입에서 나온 말이다. 분명 내 이름이 내 직함이 있었는데, 무대를 벗어나는 순간부터 서서히 나는 내 이름은 온데간데없이 00 엄마, 아줌마, 이봐요, 간혹 꼬맹이들한테 할머니 하는 호칭에 익숙해가고 있었다. 가장 숭고하다는 어머니의 역할을 심장에 붙이고 자부심을 아무리 가지려 해도 이상하게도 쪼그라드는 마음이 있었다. 어느새 루저라는 딱지를 스스로에게 붙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내 입에서 나온 말이라, 순간 내가 나한테 놀랐다. 이게 무슨 소리야? 48시간도 모자랄 지경이라고?
사실이다. 뭐 48시간처럼 많은 일을 하며 버틸 체력은 말할 것도 없이 없다. 오히려 24시간도 제대로 버티기 힘들어, 자주 쉬어야 하고 많이 자야 하고, 병원을 들락거리며 온갖 검사에, 약 복용과 함께 몸이 무리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갱년기를 지나며 중년에서 노년으로( 이건 잘 모르겠다. 요즘 노년의 기준이 몇 살인가?) 가고 있는 지점에서 몸은 더 이상 이전 같지 않다. 그럼에도 왜 내가 48시간 운운했을까? 너무 갑작스러운 변화 아닌가? 좋은 신호임에 틀림없다. 사실 나는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지고 있다. 어떻게 보면 진짜 인생을 사는 것 같다. 내가 이렇게 변하게 된 계기, 과정 등을 글로 나누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뭐 대단한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루저에서 열정가로 변하게 되는 이야기 속으로 초대하고 싶다.
은퇴 이후를 미리 준비하는 밀레니얼 세대
은퇴 이후를 미리 준비하는 영민한 집단을 일컫는 FIRE족이라는 말이 있다.
FIRE족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은 30대 말이나 늦어도 40대 초반까지는 조기 은퇴하겠다는 목표로, 회사 생활을 하는 20대부터 소비를 극단적으로 줄이며 은퇴 자금을 마련하는 이들을 가리킨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젊은 고학력·고소득 계층을 중심으로 확산됐는데, 이들은 ‘조기 퇴사’를 목표로 수입의 70〜80%를 넘는 액수를 저축하는 등 극단적 절약을 실천한다. (출처: 시사상식사전)
FIRE족은 1990년대 미국에서 시작되어 온라인을 통해 확산되었는데, 불황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베이비붐 세대에 해당하는 부모세대가 은퇴 후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본 밀레니얼 세대 (1980년대부터 2000년 초반 출생)가 이것에 주목했다고 하니 요즘 젊은 세대의 최대 관심 중 하나일 듯하다.
우리 때는 은퇴 이후가 그다지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그럴 여유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그다지 느끼지 않았다. 은퇴 이후의 시간 자체가 그다지 많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처럼 평균수명이 길지 않아 노후라는 건 그저 잉여 정도의 시간으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의 젊은 세대는 부모세대의 문제점을 보며 자신들의 이후 삶을 생각할 정도로 영리하다. 지금 부모세대의 은퇴 이후의 실상을 안다면, 좀 더 건강한, 현실성 있는 노후를 준비할 수 있지 않을까?
현실에서 체감하는 은퇴 이후의 삶
은퇴 이후, 다시 말해서 노후에 흔히 필요한 것으로 경제적 독립, 건강, 취미, 그리고 관계 등을 꼽는다. 다 맞는 말이고 오랫동안의 선배들의 경험에서 우러난 이야기이고 나 역시 공감 공감하는 바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은퇴 이후에 나이 들어서 경제적 독립, 건강, 취미활동, 인간관계 모두를 누리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아주 드물게 보기도 했고, 대부분은 일부만을 가졌기에 나머지에 대한 결핍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은퇴 이후와 관련해서 필요한 요건들과 상관없이 노후의 삶이 존경스럽다거나 부럽다거나 하는 사람은 보기 쉽지 않았다. 대부분은 쓸쓸하게 무대 뒤로 사라지는 풍경이었고, 당사자나 그를 보는 사람이나 표현하기 힘든 불편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내 인맥이 좁아서 그런 걸까? 아주 드물게 책이나, 전해져 듣는 이야기 속에서의 인물들에게서는 가끔 내가 기대하는 존경심을 느낄 수 있었지만. 그래서 지금도 나는 좌충우돌하는 가운데 무대 중앙을 벗어난 음지에서도 여전히 삶을 생각하고 고민하고 있다. 어떻게 은퇴를 보내야 하는가?
48시간이 모자란 이유
48시간이 왜 모자라는가? 다시 그 질문으로 돌아가 본다. 하고 싶은 일이 많기 때문이다. 흔히 나이가 들면, 어지간해서 흥미를 갖지 못한다고 한다. 어지간한 거 다 해보았고, 시들해졌다는 말인가? objection! 어린아이들은 모든 세상이 새로워 눈이 반짝인다. 내 눈이 아이처럼 호기심으로 반짝이고 있는 이유는 온통 세상이 새롭게 보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렌즈로 보던 세상을 이제야 내 눈으로 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회 초년생이란 말이 있는데 나는 이제 인생 초년생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모든 것이 신기하다. 그래서 마음이 사실은 바빠졌다. 정말로 이런 기도가 저절로 터진다. 제게 좀 더 시간을 주십시오!
따라서 오늘의 이야기 포인트는, 나로 살기 시작하면 이 세상이 온통 다르게 보이다는 점이다. ‘궁금해요? 500원!’ 궁금하다. 누구에겐들 500원을 내서라도 여러 개의 500원을 내서라도 나는 물어보고 싶어 진다. 그리고 이제는 나의 길을 가고 싶어 진다. 내 노래를 하고 싶어 진다. 내 세상을 열어가고 싶어 진다. 은퇴 이후에 나의 길이라니...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하루가 48시간이라도 모자랄 듯 숨이 차다. 하루하루가 지나가는 것이 너무 아깝다. 내일 하루가 열리지 않을까 봐 너무 조바심이 난다.
나로 살아가는데 열정을 품게 하는데 중요한 마중물이 된 것이 글쓰기이다. 글을 쓰면서 나는 나를 만나고 세상을 만나고 있다. 실제로 다른 세상을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나의 삶의 지경이 넓어지고 있다. 그래서 더더욱 쓰고 싶다. 글을 쓴다는 것은 세상을 쓰는 것이다. 글을 쓰면 세상이 만들어진다. 매일 다른 세상이 열린다. 원더랜드로 매일매일 놀러 가는 셈이다. 나이를 거꾸로 먹게 된다. 늙지 않는다. 그저 오늘 하루를 살뿐이다.
위드 코로나로 좀 잠잠해지나 했던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해서 사적 모임이 다시 4인으로 규제되고 다시 연장 발표되고 백신 패스 관련한 규정도 매일 새롭게 들린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절은 누구에게나 힘겹다. 사실, 세상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자연재해, 교통사고, 전쟁, 전염병, 경제위기, 환경위기... 우리를 불안에 떨게 하는 것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있다. 거기다 은퇴한 입장에서 이제 기울어가는 삶을 바라보는 심경은 오죽하겠나? 그러나, 관점을 살짝 바꾸어보자. 이런 현실 속에도 매일매일 내가 만들어갈 수 있는 세상이 있다. 그렇다면 하루가 48시간이라도 모자라지 않을까?
아직도 믿기어지지 않는가요? “궁금해요? 500원!” 다음 편을 기대하세요.
허~ 이 썰렁 개그를.... 근데 이런 말이 재밌는 연식의 사람이다. 나라는 사람.
삶의 스펙트럼이 넓지 못한 사람입니다. 저의 경험에서 인식에서 비롯되는 이야기이니 일반화할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실제 살아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조직적인 구상에 따른 글이 아니라 생각나는 대로 써 볼 생각입니다. 혹시 은퇴 이후의 실상과 관련해서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질문에 대해 저도 나름 연구하며, 제 생각과 경험을 나누며 진행해볼까 합니다. 저도 저의 글이 궁금해지네요. 함께 생각해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