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힘이 빠지지만 힘이 나는 역설의 시기

by 나모다


은퇴에 관한 글을 매거진 형식으로 쓰기로 결심을 하고 표면 위로 드러내고 나니 두려움이 찾아왔다. 초라한 내 삶이 뭐라고 이걸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거리라도 있나 하는 생각 말이다. 특히 브런치에는 젊은 작가들의 통통 튀는, 트렌드에 걸맞은, 기발한 소재의 글들이 넘쳐나는데 단조롭고 고리타분하기까지 하고 나이와 함께 꼰대스러움이 배어 있다면 어떻게 하지 하는 부끄러움이 불현듯 찾아오면 걷잡을 수 없게 되고 급기야 글을 써야겠다는 용기를 상실하게 된다.

어떤 분이 내 글을 보고 30대인 줄 알았다가 은퇴 관련의 글을 보고 내 나이를 짐작했다는 댓글을 썼다. 그만큼 내 글이 젊게 느껴졌다는 위로였지만, 내심 아,,, 그냥 30대의 신비에 싸여있을걸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의 실체가 드러났으니 이제 뒤로 물러날 수도 없고, 그야말로 늘그막의 휑한 풍경이 늘 나를 뒤따라 다니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생긴 것도 사실이다.

한편 은퇴라는 단어를 수면 위에 올리니, 한결 마음이 편해진 부분도 있다. 이제 진짜 내 이야기를 좀 더 허심탄회하게 쓸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결국 내가 살고 싶었던 삶을 사는 과정에서의 글쓰기이니 누가 뭐라 해도, 근사한 면이 없어도, 변방의 이야기라 해도 뭐 나는 내 삶을 살기로 했으니까, 그냥 엎어져도 간다 하는 심경이랄까.

그렇게 마음은 오락가락하면서 나는 지질한 나의 일상을 드러내려는 용기를 붙든다. 그래서 오늘은 힘 빼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하루의 힘 빼기는 아침 첫 시간부터


하루 명상 혹은 기도는 오랜 습관이다. 잘 안되고 시행착오를 경험하고 있지만, 계속하고 있고, 계속할 것이다. 무엇을 하는가 하면 가만히 있는 것이다. 움직임도, 생각도, 계획도, 의도도 가지지 않은 채 그저 가만히 있는 것이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온갖 생각이, 걱정이, 어제의 미련이, 오늘의 계획이 밀고 들어온다. 그것을 잠시 잠재우는 시간이다. ‘분홍색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세요’하면 더 생각하게 되듯,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일어난다. 그래서 주로 마음을 비우기 위해 호흡에 집중하는 방법들을 많이 쓰는데, 나 역시 이 방법이 효율적이었다. 들숨 날숨에 집중하고 몸의 움직임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생각이 비집고 들어오지 못한다. 사람의 감각이 한 번에 하나만 집중할 수 있는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러는 중에도 잠시라도 호흡을 놓치면 여지없이 생각이 들어온다. 이때 바로 하나의 단어(이것은 각 개인이 정하면 된다. )를 떠올려 생각을 흘려보내고 다시 호흡으로 돌아간다. 이 작업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아주 편안하고 가벼운 상태에 들어간다.


나는 이 명상의 시간이 바로 힘을 빼는 시간인 것 같다. 특히 생각의 힘을 빼는 시간. 그렇게 힘을 빼고 나면 생각을 내려놓고 나면 백지처럼 하얀 상태에 그림을 그리듯, 책을 읽거나 묵상을 하거나 계획을 하거나 어떤 것을 해도 나한테 맞는 그림이 그려지는 것을 본다.


인생의 모든 일은 힘 빼기에서


악기를 배우거나, 운동을 하거나 할 때 힘을 빼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수영을 할 때 나는 특히 배영에서 곤욕을 치렀다. 아무리 해도 누워서 수영을 할 수 없었다. 빠질까 두려우니 몸에 온통 힘이 들어가 영낙없이 물속에 빠지는 거였다. 어느 날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에라 모르겠다. 그냥 잠잘 때처럼 침대 위에 잠잔다 하고 눕자’하고 털썩 몸을 눕히듯 물 위에 누웠는데 순간 내 몸이 붕 떠 있었다. 힘이 빠진 순간이었다.



바이올린도 마찬가지다. 손가락, 어깨, 등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서 악기를 연주하면 어느새 온몸이 아프고 소리는 소리대로 제대로 나지 않는다. ‘힘 빼세요’ 란 말을 처음 악기를 배울 때 얼마나 들었는지 모른다. 기술을 제대로 배우지 않고 잘못된 자세로 악기 연주를 했을 때 나는 어깨, 등 치료를 위해 오래 물리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힘 빼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으며 연습을 하다 보니 어느 날 활을 붙들고 연주를 하는데 자주 활이 툭하고 떨어지는 순간이 왔다. 여하튼 힘이 빠지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오디션 프로에서 한 심사위원이 참가자에게 한 심사평 중에 ‘공기반 소리반으로 소리를 내세요’라는 말은 아주 유명한 말이 되었다. 성악에 대해 잘 모르지만, 공기반 소리반은 아마 이 힘 빼기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불필요한 힘을 빼고, 필요한 힘을 넣는 균형을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운동도 악기도 마찬가지다. 불필요한 힘을 뺀 상태에서 필요한 힘을 넣을 때 진짜 힘이 나는 것은 대부분의 영역에 통하는 것일 듯싶다. 소위 대가라는 사람들, 축구의 손흥민도, 골프의 박세리도, 그들은 그들 나름의 공기반 소리반의 비결을 몸으로 터득한 사람들 이리라.


은퇴를 해서도 빠지지 않는 힘


은퇴는 강제로 힘을 빼주는 역할을 함에 틀림없다. 삶의 아주 중요한 부분인 직장과 관련한 힘이 빠지는 것이니까. 지혜로운 사람들은 나이와 상관없이 직장을 다니면서도 자신의 힘 조절을 하는 것 같다. 나는 그렇지 않았다. 직장 다닐 때 마냥 힘이 들어갔고, 은퇴를 하고 나서도 직장이 아닌 다른 영역에 온갖 힘이 들어갔다. 내게는 바로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던 세 아이의 진학 문제, 그동안 해보지 않은 취미생활, 공부 등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그러다 번아웃(burnout)이 되면 멈추었다 다시 돌진하고 다시 멈추고 하는 사이클의 반복. 이 반복은 언제쯤 멈출까? 죽어야 멈추게 될까? 설마?


힘을 뺀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


나를 감싸고 있던 것들이 하나둘씩 나를 떠난다는 것은 큰 슬픔이다. 나이 듦이 슬픈 이유 중의 하나이다. 나를 입히고 있던 옷들 때문에 몰려들었던 사람들도 하나 둘 떠난다. 게다 코로나 상황은 많은 관계들이 정리가 되는 시기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립의 상태가 되었다. 내가 루저 같았다. 결국 이렇게 밖에 안 되는구나. 살아보려고 많이 애썼는데 그다지 성적표가 좋지 않다. 맘에 들지 않는다.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면 다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 삶의 궤적이 맘에 들지 않는다. 어디서부터였지? 누구 때문이지? 따져볼수록 수렁은 더 깊어져 같다. 내가 나 자신이 싫어졌다. 왜 직장을 그만뒀지? 왜 결혼을 했지? 왜 자녀를 셋이나 나았지? 로부터 시작해서, 왜 하나의 종교에 매달렸지? 왜 그때 집을 안 샀지? 왜 팔았지? 왜 경제공부를 미리 안 해두었지? … 결국 남는 건 바보라는 단어였다.


그래서 이 바보 됨을 극복하려고 애를 썼다. 애를 써도 안되었다. 그래서 애를 써도 안된다는 것을 받아들이려고 또 애를 썼다. 나의 삶은 끊임없이 애를 쓰는 과정이다. 쉬어도 쉬는 것이 아니다. 밤에 누워서도 내 심장은 두근거린다. 아마 잠을 자면서도 계속 두근거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몸에서 반란이 일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했다. 그때 알았다. 몸이 유통기한이 있다는 사실을. 이렇게 약해지다 죽는 것이구나. 죽음이라는 단어가 책 속의 단어가 아니라는 것을 내 몸으로 받아들이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는 삶. 나로 사는 삶. 억울하지 않은 삶. 그것을 살고 싶었다.


나로 살겠다 하면서도 끊임없이 다른 사람을 동경하고 있었다. 되고 싶은 나라는 것도 사실은 내가 아닌 다른 존재의 모습이었다. 그러다 문득,


왜 이렇게 살면 안 되는 거지?

하는 질문이 나를 강하게 내리쳤다. 뭐가 문제이지? 내가 이렇게 살아 숨을 쉬고 있는데. 아무 문제도 없는데... 문제라고 생각하는 그것이 문제였다. 갑자기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평안이 느껴졌다. 아주 잠깐, 아주 살며시 틈이 생긴 것 같았다. 아! 이것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면... 힘이 빠진 걸까? 놓아버린 걸까? 뭘 본 걸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한 끗 차이의 색다른 평안이 있었다. 비유한다면, 아이가 엄마 품에 있는 듯한. 관점에 변화가 생긴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쩝. 나는 자주 표현의 한계를 느낀다.

그러고 나서도 나는 자주 힘이 들어간다. 여전히, 글을 써야 한다 라거나, 뭘 해야 한다라거나, 하는 힘이 들어가는 나를 본다. 그러다 다시 힘을 빼는 자리에 앉는다. 힘을 뺀다기보다 그저 있는 그대로를 바라본다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 같다. 힘이 들어가고 빠지는 그 사이에서 여전히 출렁거리고 있지만, 힘이 빠질 때 새로운 힘이 생기는 역설이 있다.

나를 받아들이니, 이제 아무것도 안 할래가 아니라 또는 어떤 기준을 따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다는 힘이 생긴다. 그래서 나는 은퇴를 하고 한참이 지난 지금 앞으로의 내가 기대가 된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더 많은 것을 이루려는 기대가 아니라, 내 삶에 내가 찍어낼 그 발자국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찬다.

글쓰기도 자주 힘이 들어간다. 매일 글을 쓰거나, 왕성하게 글을 쓰는 사람을 보고 주눅이 들 때는 글 쓸 때 불필요한 힘이 들어간다. 그러나 내 속에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글을 쓸 때는 생기는 힘으로 쓰기에 편하게 글을 쓰게 되는 것 같다.

오늘도 나는 삶의 부침浮沈속에 요동하고 있다. 며칠 마음이 부대끼는 일들이 있었다. 집이 답답해서 노트북을 들고 카페를 찾아 주로 젊은 사람들 많이 앉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모자에 마스크에 두터운 외투를 입어서인지, 젊은이들로 가득 찬 카페에 웬 중년 여성이 혼자 앉아 글을 쓰는 것이 티도 안 난다.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앉아 오늘의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힘이 빠진다. 신기하다. 힘이 빠지니 글이 줄줄 나온다. 힘이 생긴 것이겠지? 삶도 그럴 것 같다. 이래야 돼, 저래야 돼 하는 힘을 빼면 가고 싶은 지점이 보이고 그 지점을 향하는 힘이 생기는 것 아닐까?

은퇴, 그것은 힘이 빠지기에 힘이 나는 역설의 시기이다. 슬프지만 기쁘고, 아프지만 건강하고, 잃었지만 얻게 되고, old 하지만 new 한 역설이 피어나는 시기이다. 맛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시간이다.


그래서,

은퇴가 두려운 당신!

두려움은 기우杞憂일지도 몰라요.






힘을 빼려고 고민해본 적이 있나요? 힘을 빼려고 애쓰느라 힘이 들어가는 것 때문에 고민해본 적이 있나요? 힘을 빼기 위해 애쓰는 힘, 그것으로부터의 자유가 어떻게 오는지 저는 정확하게 모릅니다. 힘이 빠지면 좋겠다는 갈망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그 방향을 지향한다면, 각자의 방식으로 찾아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뭐든, 세상은 단 하나의 답이 존재하지 않는 듯합니다. 개인의 경험상, 짧은 시간이라도 힘을 빼는 훈련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제게는 그게 명상(기도)이었습니다. 당신의 힘 빼기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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