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오늘도 나는 출근합니다
글 짓는 농부
별안간의 기회
“선생님! 내일부터 며칠간 근무 가능하신가요?
요즘 교사들 확진자가 많아져서 결강이 너무 많습니다.
대체수업을 위해 퇴임교사들에게 연락드리고 있어요. “
“당장 갈게요. 연락 주셔서 감사해요.”
요 며칠 학교에 대체강사로 나가고 있다. 코로나가 낳은 비상상황이다. 교사 한 사람당 하루에 수업시간이 평균 4시간이라면 코로나 관련 결근 교사가 4명만 되어도 16시간 결강이 생긴다. 이 외에도 개별적인 사정으로 생기는 결강까지 합하면 꽤 많은 결강이 생기고 이 몫은 고스란히 기존 교사들의 몫이 되는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니 학교 측에서 비상조치를 내렸다. 전국적으로 코로나 감염자의 수가 정상에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으니 학교 내의 사정도 나아져서 제반 상황이 정상화되기를 바랄 뿐이다.
여하튼, 이 비상상황에서 퇴임 교사에게 까지 연락이 왔고, 나도 학교도 서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며칠 근무를 하게 되었다. 매일매일 상황에 따라 투입 여부가 결정되고, 언제까지 이어질지도 모르는 그야말로 모든 것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불투명한 상황에 대해 함께 대체강사로 오신 한분이 ‘이건 뭐 일용직이네요’라는 말씀을 하셨다. 약간 모양이 빠진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생각이 달랐다. 와달라면 새로운 기회에 내가 도움이 되어 감사하고, 오지 않아도 된다면 학교가 정상화된 것이고 나는 다시 나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기회가 되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라도 좋은 상황이었다.
다시 젊은 날의 출퇴근의 기분, 활기찬 아이들의 모습, 기분 좋은 피곤함, 동료 교사들과의 즐거운 만남은 내게 새로운 에너지를 주었다. 마스크와 거리두기가 주는 색다른 풍경에도 아이들은 새 학기여서인지 싱그러웠다. 다시 슬슬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봄꽃처럼 일어나고 있다.
활기가 넘쳐나는 싱그런 학기초 학교 풍경
내게 생긴 직업, 작가
명퇴를 할 때만 해도, 너무 많은 체력적인 부담 때문에 지탱하기 힘들었던 직장생활이었는데, 이제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으니, 내게는 자유의 시간만 있어야 했다. 그러나 인생은 자주 예상 밖으로 진행된다. 은퇴 후의 바라던 삶의 모습은 다른 모습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첫 번째 이유는 건강문제였고, 두 번째 이유는 코로나 상황이었다. 일단 건강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꽤 오랜 시간에 걸쳐 건강 회복과 관리가 일상의 주관심인 시간을 보냈다. 코로나 상황 역시 많은 활동들을 묶어버렸다. 이 또한 새로운 환경이라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움직여야 할 때다. 이전처럼 직장에 매여 일하는 시스템과는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 돌파구로 시작한 것 중의 하나가 글쓰기였다. 블로그로부터 시작된 글쓰기가 브런치로 이어졌고, 브런치 작가 레이블인 팀라이트 활동으로 이어졌다. 나는 팀에서 막내로 아직 분위기 파악 중이지만 팀 안에서 해야 할 역할과 함께 든든한 지원군이 있으니 글쓰기에 큰 동력이 생겼다. 마치 내가 직업을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매일 눈을 뜨면 내 책상으로 출근을 한다. 글을 쓰든 안 쓰든 책상에서의 시간을 많이 보낸다. 그리고 앞으로 내 후반부의 삶을 어떻게 이어갈지를 책상에 앉아서 고민하며 찾는다. 시나브로 작가라는 직업 안으로 내가 들어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출근하는 사무실 ?
인생은 농사
A swallow does not make a summer.
한 마리의 제비가 여름을 만들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인생에서 갑자기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누군가 '어느 날 갑자기'라는 말을 해도, 실제로는 '어느 날 갑자기'가 아니다. 갑자기 발현된 것이지, 그것의 발현 이전에 오랜 시간의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 분명히 있었다고 나는 본다. 농부가 농사를 할 때, 땅을 갈고,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벌레를 잡고, 잡초를 뽑는 과정을 지나 싹이 나고 열매가 맺히는 것처럼 인생은 정직하다. 이전의 삶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새로운 과정을 밟아야 한다. 남의 땅을 보고 내 땅의 보잘것없음을 한탄할 필요가 없다. 내 땅을 일구면 된다. 갑자기 우렁각시가 나타나 하룻밤만에 만들어주는 것 없다. 하나하나 필요 없는 돌을 제거하고, 좋은 땅으로 가꾸어 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처음부터 시작한 글 농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글쓰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하나하나 썼다. 꾸준히 썼다. 1년이 지나 돌아보니, 작은 결과물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은 어슴푸레한 형상이다. 앞으로 어떤 열매가 맺힐지도 모른다. 그냥 매일매일 조금씩 할 수 있는 만큼 글을 짓는다. 나는 나의 첫 직업에서 은퇴를 했지만, 다시 새로운 일을 하고자 하는 갈망을 가지고 있다. 이전과는 다른 패러다임으로 말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 출근을 한다. 매일 출근을 하고 있으니, 실제로 출근할 수 있는 기회도 생겼다. 만약, 내가 무기력하게 있었다면 그런 기회가 왔어도 선뜻 탄력성 있게 튀어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주저 없이 바로 출근할게요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마음과 몸, 제반 상황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래서 알았다. 앞으로 언젠가도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온다는 것을.
오늘도 나는 출근합니다.
은퇴는 두려움과 맞서야 하는 순간입니다. 익숙한 일을 그만둔다는 것에는 많은 것이 함축됩니다.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수 없다. 새롭게 열릴 길에 변수가 작용하여 곤란을 당할 수 있다. 궁지에 몰릴 수 있다.' 예, 맞습니다. 저는 다시 이전의 직장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기도 했습니다. 예상 밖의 많은 복병들이 나타나 좌절하기도 했습니다. 나의 쓸모를 생각하며 서글픈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계급장 다 떼고 나니 내 옆에 남는 것이 별로 없어 놀라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인정하기 싫었고 많이 도망 다니기도 했습니다. 일생일대의 숙제인 엄마로서 아이들의 양육을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나니 질병이 찾아와 나를 쓰러뜨렸고, 코로나가 나의 손과 발을 그리고 마음을 묶어버리더군요.
궁하면 통하고,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는 말은 맞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황무지에서 저는 글이라는 씨앗을 발견했고, 글과의 여정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런다지요? 그걸 해서 쌀이 나오니 돈이 나오니? 왜 모든 것을 자본과 연결시키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장 돈은 안되지만요, 살다 보니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있더군요. 글을 쓰면서, 마음이 치유되고, 쪼그라든 마음이 일어났고, 몸이 일어났고, 삶이 일어났어요. 작가라는 직업도 얻었고 출근하는 사무실(나의 책상)도 생겼고, 함께 일하는 글벗도 생겼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기회가 봇물 터지듯 생기네요. 이렇게 매일매일 꼼지락꼼지락 멈추지 않고 일하는 사람에게 어떤 기회가 오니 바로 움직일 수 있었어요. 이전의 학교에도 다시 가서 임시적이지만 일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고요. 앞으로 또 얼마나 다양한 기회가 생길까 즐겁게 기대하게 됩니다.
가보지도 않고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은퇴의 벼랑 끝에서 저는 삶을 진하게 배우는 중입니다. 각자 다양한 상황이 있겠지요. 혹 뭔가 두려워하시나요? 인생, 정말 별것 없는 것 같아요. 그냥 부딪히면 또 길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아니, 길을 만들면 됩니다. 그리고 농사하듯 하나하나 하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길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생이란 게 멋진 거 아닐까요? 인생은 모험의 여정입니다.
당신의 길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