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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 에이치 Mar 12. 2024

알려주려는 손이 넘치는 본사 생활

주물주물

새로운 생활


데이터 아키텍처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는 나에게는 회사생활이 두 가지로 나뉜다는 점을 먼저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첫 번째는 프로젝트 생활, 두 번째는 본사 생활이다. 


프로젝트 생활이란 배정된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보내는 기간이다. 그 기간 동안은 고객사로 출퇴근을 한다. 고객사가 요청사항과 이에 맞게 협의된 기간과 인력, 최종 아웃풋이 명확하게 설정되어 있다. 기간 안에 정해진 과업을 수행하면 되니, 어떻게 보면 심플하다.


본사 생활은 배정된 프로젝트가 없는 때이다. 프로젝트 투입 전 준비를 하는 기간이거나, 예정된 프로젝트가 없을 수도 있다. 대부분의 시간을 본사에서 보내며, 새로운 프로젝트 제안 작업을 하거나 투입 예정인 프로젝트 수행 준비를 한다. 


얼마 전 여의도에서의 프로젝트 생활을 마치고 본사로 복귀했다. 언제 끝날 지 알 수 없는 본사 생활의 서막이 오른 셈이다. 


프로젝트 생활 vs 본사 생활


프로젝트 생활을 할 때와 본사 생활을 할 때, 어느 때가 더 여유로울까? 개인적으로는 프로젝트 생활을 할 때의 마음이 더 편안하지 않나 싶다. 아무래도 프로젝트 생활을 할 때는 프로젝트 태스크만 생각하면 되기 때문에 좀 더 정갈한 정신으로 일할 수 있다. 소규모의 프로젝트 팀원들로 인간관계가 단순해진다는 점도 좋다. 무엇보다 회사 이윤 창출에 직접적으로 기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편안하다.


반면, 본사 생활은 많은 면이 열려 있다. 프로젝트 수행을 할 때보다는 시간을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다. 때문에 필수 업무(제안서 작성, 지식 자산화, 기술 조사 등) 외 시간에는 이전 프로젝트 경험을 정리하거나, 기술 공부를 하며 하루를 보낸다. 평소 부족했던 지식이나 관심 분야를 공부하기에 더없이 좋은 시간이다. 본사에 함께 머무는 컨설턴트분들과 네트워킹을 하기에도 좋다. 하지만 내게는 이런 점이 오히려 스트레스로 다가오기도 한다. 폭증한 관계망의 사이즈, 열린 미래로 인한 불안감, 시간 운영에 대한 자기 책임감. 이런 것들이 부담스럽다.


본사 생활에 녹아드네


본사 생활로 잔뜩 어지러워진 마음 상태에도 불구하고 점차 본사 생활에 녹아들고 있다. 이제는 본사에 계신 분들과 인사도 많이 나누어서(내향인에게 이보다 어렵고 힘든 일이 또 있을까) 동서남북 어디로 눈알을 굴리나 낯선 사람들이던 사무실이 조금은 친근하게 느껴진다. 본사에서 해야 할 업무 정의도 끝냈고, 어느 정도 진척도 보이고 있다는 점도 안절부절 못하던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 큰 몫을 했다.


Anna Tarazevich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5697255/


하지만 내 마음을 가장 따뜻하게 녹여낸 것은 열린 손들이었다. 여기에는 다른 사람들을 돕고자 손 흔들고 계시는 분들이 정말 많다.


먹자고 부르는 손


본사에 복귀하고 나면 이런저런 사람들과 점심 식사를 할 기회가 많다. 복귀자가 들어오면 본사에 있던 사람들에게 식사 제안을 하고 함께 밥 한 끼를 나누는 게 자연스럽다. 사업부장님이 복귀자 웰컴 런치를 열어주시기도 하고, 오랜만에 다시 뵙는 분들이 식사 초대를 해주시기도 한다. 같은 동호회를 한 분들이나 같은 팀분들, 나른하고 몽롱한 오후에 잠시 티타임을 가지자고 불러주는 분들까지. 물론 대화의 온도는 천차만별이다. 반가움에 손 붙들고 격하게 흔들며 고주파를 내뿜기도 하고, 처음 보는 분들과 통성명을 하기도 한다. 안면만 있던 분들과 이런저런 대화로 공통점을 찾아가며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각자 다른 고객사에 파견되어 상주하는 근무 형태 때문에 본사에 머무는 때가 아니면 교류하기 쉽지 않은데, 본사의 이런 분위기 덕분에 다른 분들과 한층 가깝게 느낄 수 있다.


프로젝트 공유회

ThisIsEngineering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3861962/

본사에 복귀하는 프로젝트 팀이 가장 먼저 받게 되는 요청은 프로젝트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와 나눠달라는 것이다. 본사 복귀 신고식이라고 하면 될까. 보통 프로젝트 매니저가 작성해 발표한다. 사업 수행 단계에서 사용한 기술이나 문제 해결에 대한 노하우, 성공 요인들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프로젝트 공유회의 세 가지 효과

프로젝트 공유회는 세 가지 면에서 강력한 효과가 있다. 


(1) 각 수행팀의 프로젝트 경험을 지식화 할 수 있다. 우리 업무는 엄격한 보안 통제 하에 수행되기 때문에 프로젝트 관련 정보나 직접 만든 산출물을 수행기관 밖으로 가지고 나올 수가 없다. 때문에 프로젝트 목적과 수행 절차, 사용된 기술과 노하우를 지식화하려면 수행자들이 기억에 의존해 스토리라인을 재구성할 수밖에 없다. 구성원들에게 공유하고 질의응답을 주고받으면서 상기되는 것들도 있어서 공유 과정에서 지식이 더 풍성해진다.  


(2) 미참여 구성원들이 간접경험을 해볼 수 있다. 내가 본사에 복귀해서 처음으로 들었던 공유회는 RDBMS 튜닝 프로젝트였다. 요즘 동기들과 오라클 성능 튜닝 공부를 하고 있어서 실무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궁금하던 참이라 재미있게 들었다. 두 가지 튜닝 프로젝트 공유회에 참석해서 수행 기간이나 맨파워, 튜닝의 목적에 따라서 수행 방법론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비교해 볼 수 있었고, 유용한 접근 방식을 다뤄주셨다.


(3) 다 같이 더 나은 방법을 고민해 보고 이야기해 볼 수 있다. 공유회를 진행하다 보면 중간중간 질문이 쏟아져 나온다. '이런 부분은 어떻게 하셨나요?', '이런 방식도 고려해 보셨나요?', '다른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면 좋은가요?' 질문들 속에서 그간의 경험의 깊이가 느껴진다. 질의응답의 과정 속에서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다.


(+) 부가적으로, 이러한 발표와 질의응답 과정을 통해서 개별 컨설턴트들의 업무 히스토리나 기술력에 대해서 알게 되어서 좋았다. 의료 도메인에 관련된 질문이라면 A 컨설턴트에게, 프로파일링 관련은 B 컨설턴트에게, 거버넌스나 자산화는 C 컨설턴트에게 가서 여쭤보면 되겠다 등 구체적인 길들이 보였다. 내 나름의 질문 대동여지도를 만들어가는 시간으로 느껴졌다. 


주제별 세미나

Pixabay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416320/

본사에서는 누군가의 가벼운 질문 하나가 며칠 뒤 세미나가 되어 열리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누군가 특정 영역 프로젝트를 처음으로 맡게 되면, 해당 주제 프로젝트를 해본 사람을 찾아가 해당 경험을 공유해 달라고 요청한다. 이 소식이 전파되면서 해당 주제에 경험이 있거나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회의실에 모여 앉게 된다. 가벼운 상담처럼 하려던 게 인원이 모이니 자연스레 세미나가 되어버린다. 놀라운 건, 어떤 주제든 뚝딱 세미나를 열어줄 사람이 항시 있다는 점이다. 


지난 여의도 프로젝트 투입 준비를 할 때에도 본사에서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 특히 자산화 프로젝트를 리딩하셨던 시니어 컨설턴트분이 표준화와 자산화 이론에서부터 수행 시 중요 포인트를 공유해 주셨다. 2주 간 거의 매일 2-3시간씩 강의식으로 진행해 주셔서 주니어들도 다들 참석해 듣게 되었고, 다른 시니어분들도 참석해서 다른 현장 이야기나 팁도 들을 수 있었다. 각자의 경험은 깊더라도 좁을 수 있지만 함께 나누면 깊고 넓은 샘을 팔 수 있다.


신기술 스터디


지난 일들에 대해서만 나누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기술에 대해서 학습하고 학습한 결과를 정리해 나누는 일도 많다. 긴급한 제안 작업이 있는 게 아니라면 본사에서의 시간은 컨설턴트 본인의 자율과 책임하에 유연하게 사용을 할 수 있다. 이런 시간 대부분 부족한 기술을 채워넣거나 새로운 기술에 대해서 공부한다. 요즘은 AI에 대한 공부 열기가 대단하다. 근래에는 VectorDB에 대한 발표를 참 인상 깊게 들었다. VectorDB도 인덱스 디자인과 물리 설계 최적화를 고민하는 사람들... 한 기술에 대한 깊은 이해와 탐구가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일 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실감하고 있다.


주니어 역량강화_퀴즈 타임


Karolina Grabowska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4195504/

본사에 복귀해 보니 SQL 교육이 진행되고 있었다. 주니어 SQL 실력 향상을 위해서 하루에 한 문제씩 SQL 퀴즈를 내주시고, 매일 아침 리뷰가 진행되었다.


안 그래도 지난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다른 팀원들의 SQL 실력을 보면서 스스로 아쉬움을 많이 느끼던 차였다. 새로운 업무가 생겼을 때 우물쭈물하던 내가 너무 부끄럽기도 했다. 내 SQL 실력에 대한 확신이 없다 보니 혹여나 작업을 지연시킬까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었던 것이다. 주저할 것 없이 나도 SQL 퀴즈에 참여하고 있다.


시니어 입장에서는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닐 텐데, 대체 어떤 힘이 모든 귀찮음을 뛰어넘게 하는 걸까? SQL 예제야 시중에 널리고 널렸지만, 데이터 이행 실무나 성능을 고려해 좋은 쿼리문을 짜기 위해 필요한 훈련을 준비하는 건 다른 차원의 지식과 노고가 필요하다. 미래에 대한 걱정과 준비를 함께 해주심이 무척 감사하게 느껴졌다.


작은 결론, 나도 손 내밀 준비


이렇게 많은 도움의 손들이 뻗쳐오고 있기에 지루할 줄로만 알았던 본사 생활은 꽤나 분주하고 활기 넘친다. 때로 내가 모두 맞손뼉 쳐주기에 너무 많은 손들이 눈앞에서 흔들거리고 있어서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배 부른 소리이기도 하고, 그만큼 내가 채워 넣어야 할 게 많아 느끼는 압도감이기도 하다. 그러니 작게 결론 내려야겠다. 베풀어 주시는 모든 것 잘 받아 담아두자. 그리고 내 시작은 비록 미약했더라도 몇 년 뒤에는 가진 지식을 아낌없이 나눠줄 수 있는 동료가 되자.



사진 출처

표지 사진_Alexander Mass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20479607/


직장생활 이어 읽기

https://brunch.co.kr/magazine/hwo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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