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싸움에 짓밟히는 풀들, 『보라색 히비스커스』

아프리카 세션 두 번째 책,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데뷔작

by H 에이치

아디치에, 당신은 캄빌리인가요 이페오마인가요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created by Google Gemini, Nano Banana

<보이지 않는 세계들> 아프리카 세션, 두 번째 책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보라색 히비스커스」다.


아디치에는 1977년생으로 나이지리아 남동쪽의 에누구주 주도에서 태어났다. 부모님 모두 나이지리아 대학에서 일하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박사과정 후 나이지리아에 돌아와 교수 생활을 시작하셨고, 어머니는 입학처에서 일하셨다고 한다.


「보라색 히비스커스」에는 두 개의 상반된 분위기의 가정이 등장한다. 남매인 유진과 이페오마가 각각 이룬 가정이다. 아들 유진은 성공한 사업가로 부유하지만 가부장적이며 억압적인 모습으로 가정을 꾸린다. 「보라색 히비스커스」의 여주인공인 캄빌리는 유진의 딸로 아버지가 강요하는 가치에 순응하며 지낸다. 반면 유진의 여동생 이페오마는 일찍 남편을 여의였지만 독립적이고 자유분방한 사고를 가진 지식인이다. 이페오마는 국립대학의 교수로 일하며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아이들과 웃음을 잃지 않고 생계를 꾸려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주인공인 캄빌리가 가정에서 겪는 일화들과 내면의 묘사가 사실적이면서도 섬세해서, 작가 아디치에가 캄빌리와 비슷한 성장배경을 겪었을 것이라 어림짐작 했다. 성장배경을 찾아보니 아디치에는 캄빌리보다는 이페오마 고모와 비슷하게 자유로운 분위기의 가정환경에서 자라났던 것 같다. 실제로 아디치에의 부모님은 온화했고, 가족 간의 대화와 토론이 활발했다고 한다. 아디치에가 대중에게 알려지게 된 TED의 강연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We should all be feminists>(2013)에서의 강단 있고 유머러스한 모습은 이페오마 고모를 떠올리게 한다.


코끼리들 싸움


Gemini_Generated_Image_2umhqz2umhqz2umh.png 코끼리 두 마리 created by Google Gemini, Nano Banana


아프리카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고 한다.


"When elephants fight, it is the grass that suffers."
코끼리 싸움에 짓밟히는 건 풀

우리나라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와 일맥 상통하는 속담인데, 아프리카 습생이 드러나 재미있다. 이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가 코끼리 싸움이다. 소설은 나이지리아가 영국의 식민 지배로부터 벗어난 이후 전쟁을 거쳐 군사 쿠데타와 같은 정치 격동 속에서 숙명처럼 겪게 되는 가치관들의 충돌을 보여준다. 소설은 어린아이 캄빌리의 시선에서 사회문화적 갈등에 휩싸인 나이지리아의 모습과 이러한 혼란 속 아이들의 방황과 아픔을 잘 서술하고 있다.


오늘 글에서는 소설에서 드러나는 대표적인 충돌 세 가지를 소개한다.


첫 번째, 토착 종교와 가톨릭


소설 속에서 종교는 하나의 큰 주제이다. 종교 가치관에 대한 갈등이 세대 간의 갈등으로 확대되기도 한다. 할아버지 파파 은누쿠, 아버지 유진, 아들 자자, 삼대가 종교를 대하는 모습은 각기 다르다.


Gemini_Generated_Image_5jkvyo5jkvyo5jkv.png 파파 은누쿠, 유진, 자자 created by Google Gemini, Nano Banana


1. 할아버지, 파파 은누쿠


파파 은누쿠는 나이지리아 이보족 고유의 토착 신앙을 믿는다. 그는 아침마다 신에게 감사 인사와 함께 가족의 번영화 평화를 평온한 모습으로 빈다.


“치네케! 새 아침에 감사드립니다! 떠오르는 해에 감사드립니다. (...) 치네케! 제 아들 유진을 축복하소서. 아들의 사업이 계속 잘되게 하소서. 아들이 받은 저주를 거둬 주소서.”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보라색 히비스커스』


캄빌리는 파파 은누쿠가 기도하며 충만한 미소를 짓는 모습에 놀란다. 자신의 집, 아버지 유진과의 기도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2. 아버지, 유진


아버지 유진은 성인이 되어 가톨릭으로 개종한 인물이다. 서구 교육과 종교에 완전히 동화되어 개종하지 않은 나이지리아인들을 죄인이자 계도 대상으로 본다. 할아버지 파파 은누쿠도 예외가 아니다. 유진은 파파 은누쿠를 야만이자 악으로 규정하며, 아이들(캄빌리와 자자)과의 교류도 차단한다.


아버지의 식전 기도는 평소보다 길었다. 아버지는 하느님에게 자기 자식들을 정화해 달라고, 이교도와 한집에 있다는 사실을 자신에게 숨기게 만든 것이 어떤 사악한 영이든 없애 달라고 부탁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보라색 히비스커스』


그의 기도 속에서 종교적인 완벽주의를 엿볼 수가 있다. 그에게 이보족으로서의 전통과 정체성은 씻어야 할 오명이다. 유진의 종교관은 완벽주의를 넘어서 극단적이기도 한데, 이는 딸의 죄를 씻겨야 한다며 캄빌리에게 뜨거운 물로 벌을 주는 장면에서 극에 달한다.


3. 아들, 자자


마지막으로 아들 자자는 아버지 유진의 엄격한 통제 하에 가톨릭 신자로 양육되었다. 하지만 자자는 이페오마 고모의 집에서 파파 은누쿠의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종교관의 혼란을 겪는다. 파파 은누쿠의 종교 의례나 생활은 악마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파파 은누쿠의 평화롭고 온화한 모습을 지켜보며 이보족 전통의 가치에 대해 깨닫게 된다.


이후 자자는 영성체를 거부하고 견진성사를 통한 서구식 성인 이름을 받는 것도 거절한다.


“교회의 주장은 서양식 이름이 있어야만 견진 성사가 유효하다는 거잖아요. ‘치아마카’는 하느님이 아름다우시다는 뜻이에요. ‘치마’는 하느님이 제일 잘 아신다는 뜻이고요. ‘치에부카’는 하느님이 가장 훌륭하시다는 뜻이죠. 이 이름들이 ‘바오로’나 ‘베드로’나 ‘시몬’만큼 하느님을 찬미하지 않나요?”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보라색 히비스커스』


파파 은누쿠, 유진, 자자 삼대의 종교적 갈등은 마치 작용과 반작용의 연속을 보는듯하다. 기존의 힘과 파괴하려는 힘, 그리고 다시 반항하려는 힘의 싸움이다. 전통적 가치를 파괴하고 서구의 가치관, 종교관을 차용하려는 유진의 힘은 결국 자자에게 그를 거부하고 다시 전통적 가치와 이보족으로서의 정체성을 보전하고 자신만의 길을 가고자 하는 힘을 만들어 낸다. 소설 속에서 이 삼대의 갈등은 결국 봉합되지 않는다.


두 번째, 침묵과 웃음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또 하나의 큰 대비점 하나는 침묵과 웃음소리다. 침묵과 웃음소리는 단순히 각 공간을 묘사하는 것을 넘어서서 억압과 자유를 상징하기도 한다.


Gemini_Generated_Image_868arl868arl868a.png 두 개의 식탁 created by Google Gemini, Nano Banana


침묵이 내려앉은 식탁


유진의 집에서의 식탁은 규율이 지배하는 공간이다. 유진의 식전 기도, 엄마의 식사 배분, 식사, 그리고 홍차. 시전 기도에서는 언제나 악으로부터의 정화와 죄에 대한 용서를 빈다. 대화는 언제나 일방적이다. 유진이 질문하고, 가족들은 답한다. 유진은 아이들에게 학교 성적에 대해서 묻고 질책한다. 식사는 언제나 차로 마무리 된다. 홍차, 잘한 자식에게만 내려지는 사랑의 한 모금.


아버지는 식탁에 앉은 다음 분홍색 꽃무늬가 가장자리에 둘러진 찻잔 세트의 주전자에서 홍차를 따랐다. 나는 아버지가 늘 하던 대로 오빠와 나에게 한 모금씩 마시라고 권하길 기다렸다. 사랑의 한 모금, 아버지만의 표현이었다. (...) 하지만 그날 아버지는 “사랑의 한 모금 해라.”라고 말하지 않았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보라색 히비스커스』


사랑의 한 모금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유진의 불만족과 화를 의미한다. 그의 엄격한 잣대에 올곧게 잘 맞으면 한 모금, 그렇지 않으면 침묵. 유진의 집 식탁은 가족들에 대한 일방적인 훈계의 공간이며, 유진의 권위와 가족들의 복종을 확인하는 공간이다.


웃음이 가득한 식탁


반면에 이페오마 고모의 집의 식탁은 차린 건 검소하나 늘 떠들썩하고 웃음이 멎지 않는 공간이다. 이페오마 고모네서의 식사는 온 가족이 준비부터 정리까지를 함께 돕는다. 식재료가 넉넉지 않아 고기도 없고, 물이 넉넉하게 넣어 묽은 수프를 끓여 먹었지만 이페오마와 아이들은 식탁에서 화기애애하고 화목한 시간을 보낸다.


웃음소리가 내 머리 위를 떠다녔다. 대개 대답을 구하지도 않고 얻지도 못하는 말들이 모두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우리 집에서는, 특히 우리 집 식탁에서는 항상 목적 있는 말만 했지만 사촌들은 그냥 말하고 말하고 또 말하는 것 같았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보라색 히비스커스』


캄빌리가 이페오마 고모네에 처음 갔을 때엔 말수가 적다가 점차 자유롭고 따뜻한 가족의 분위기에 녹아드는 모습이 참 좋았다. 언제나 식탁 앞에서 주눅 들어 있던 아이가 고모의 가족들과 농담하고 웃는 걸 보며 마음이 아프기도, 놓이기도 했다.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만 침묵이 지배하는 식탁과 차림새는 빈곤하지만 행복이 가득한 식탁이 대비해 자유의 가치를 보여주었다.


세 번째, 변혁의 꿈과 탈주의 꿈


「보라색 히비스커스」는 나이지리아가 영국의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난 지 20~30년 이후, 쿠데타를 통해 독재 정권이 득세하던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나이지리아 독립 이후 새로운 나이지리아, 새로운 아프리카를 꿈꾸는 사람들의 여러 목소리가 교차한다. 새 바람의 목소리의 교차 지점에 아버지 유진과 이페오마 고모가 있다.


변혁의 꿈


독립 이후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나라로 나이지리아를 변화시키는 꿈을 꾸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고국에서 정부를 비판하며 체제와 싸우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를 주도한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아버지 유진과 그가 운영하는 신문사의 편집장 아데 코커다. 유진은 부패한 정부에 맞서 비판하는 대표적인 신문사를 운영하며, 신문사 내에서도 가장 날카로운 목소리를 가진 아데 코커를 물심양면 지원한다. (아데 코커는 유진을 '고결한 사람'으로 추앙하는데, 그가 집안 내에서는 폭군이자 독재자로 군김하던 사실과 대비된다.)


하지만 일주일 후 그를 감옥에서 꺼내 온 뒤에도 (...) 아데 코커를 꺼내 왔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스탠더드》에 사설이 다시 실리기 시작한 것을 보고 알았을 뿐이다. 그는 자유의 가치에 대해 쓰고 나서 자신의 펜은 진실을 알리길 멈추지 않을 것이며, 멈출 수도 없다고 적었다. 하지만 자신이 어디에 갇혀 있었는지, 누가 자신을 체포했는지, 자신이 어떤 일을 당했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보라색 히비스커스』


아데 코커는 선봉에 서서 정부의 비리를 폭로하고 변화를 촉구한다. 대표적으로 총구에 맞서 펜을 든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나이지리아에 실질적은 변화를 이끌어내는 사람들은 남아서 싸우는 사람들이다.


탈주의 꿈


이와 반대로 고국을 떠나 새 삶을 꿈꾸는 사람들도 있다. 이페오마 고모가 이들 중 하나다. 이페오마 고모는 교수 생활만으로 궁핍을 면할 수 없었다. 도시에서 생필품은커녕 식량조차 넉넉히 구할 수 없게 되자 미국으로의 이민을 결심한다.


미국 이민을 위해 이페오마 고모가 감내하게 된 고통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미국에서 2등 시민으로 살아가야 하는 아픔이다. 소설에서는 미국 백인들이 아프리카 출신 이주민들의 전문성을 신뢰하지 않아 의사가 접시닦이로, 변호사가 택시기사로 일해야 하는 고충을 언급한다. 어째서 같은 인간의 전문성이 어딘가에선 냉대받아야 하는가.


두 번째는 조국 나이지리아를 버렸다는 죄책감이다. 이페오마 고모는 나이지리아에서도 고등교육을 받고 교수로 일하고 있는 지식층 인물이다. 그녀가 가정의 안녕을 위해 미국행을 결심하면서, 주변으로부터 질타를 받는다.


"고학력자들,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떠나. 약자들을 남겨 두고 가지. 독재자들은 계속 군림해. 약자들이 저항하지 못하니까. 너는 이게 순환 고리란 걸 모르니? 대체 누가 이 고리를 끊겠어?"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보라색 히비스커스』


요즘 '두뇌 유출'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현상을 일찌감치 겪어온 아프리카의 슬픔이 묻어 나오는 대사다. 한편, 사회적 문제의 해결 책임을 엉뚱한 개인들에게 묻는 것은 아닌가란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두뇌'라는 표현조차 비인간적이고 조소적 표현으로 느껴진다. 사회를 망친 암적 존재만큼이나 떠나간 사람들이 비난받아야 할까?


짓밟힌 풀밭에도 꽃은 핀다


Gemini_Generated_Image_lsgzj5lsgzj5lsgz.png 보라색 히비스커스 created by Google Gemini, Nano Banana


보라색 히비스커스는 소설 속에서 자유를 상징하는 꽃이다. 캄빌리와 자자는 자신의 집에서 완벽하게 잘 관리된 붉은 히비스커스만 보고 자랐다. 이페오마 고모의 집에서 보라색 히비스커스를 보고 매료된다. 이페오마 고모의 정원에 핀 보라색 히비스커스는 이페오마 고모의 동료 학자가 가져와 심게 된 꽃으로 이페오마의 실험정신, 낯선 것을 향한 탐구심을 상징한다.


자자는 이 보라색 히비스커스의 줄기를 꺾어 집으로 가져와 몰래 심어 돌본다. 억압의 공간인 집에 한 뼘만 한 자유의 땅을 일군 것이다.


“저기 봐, 보라색 히비스커스가 피려고 해.”

보라색 히비스커스가 피던 성지 주일 이후, 큰 변화가 캄빌리의 집을 덮치며 소설이 끝맺어진다.


결국 보라색 히비스커스는 작가 아디치에가 품고 있는 희망을 이야기하기 위한 상징물이었던 것 같다. 짓밟힌 풀밭에도 꽃은 핀다.




아프리카에 대해서는 여행 프로그램을 통해서 부족 문화를 보던 것이 전부였던 나에게 사람들의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게 해 준 소설이었다. 특히나 아프리카 토착 종교나 언어, 음식에 대해 어렴풋이 상상해 볼 수 있어 좋았다.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언급할만한 요소들과 대사들도 많았는데, 이번 리뷰에서는 다루지 않았다. 중동 문학을 읽을 때와 비슷하게(그토록 극심하지는 않았으나) 여성 혐오적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이나 대사가 몇 있었지만 이 소설에 관해서 말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니었다. 생각보다 소소하지만 무거웠던 소설로 기억하게 될 것 같다.



References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보라색 히비스커스』, 민음사, 2019

https://en.wikipedia.org/wiki/Chimamanda_Ngozi_Adichie

이미지 : Google Nano Ban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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