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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 에이치 Apr 19. 2022

수집 상자에 지붕 올리기

내려다보던 공간 속에서 그가 내민 손

나는 늘, 나와 비슷한 사람에 대한 결핍감을 느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 더 나아가서 나보다 많은 것을 알고 더 넓은 사랑을 가진 사람. 늘 그런 기대를 품고 그런 사람들을 기다렸지만 그런 사람과 마주치거나 사람들의 내밀한 취향을 알아차리기란 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10년 뒤의 나를 미리 당겨와서 내 앞에 두고 커피 한잔을 할 수 있다면 모를까, 나와 비슷한 사람과의 만남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외로움이었고 있지 않은 존재를 향한 막연한 그리움이었다.


언젠가부터인지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함께 좋아해 줄 법한 사람들을 모아 대기 시작했다. 독서를 하다가 마음에 드는 책이 생기면 책 제목의 해쉬태그를 타고 다니며 같은 책을 읽은 사람들의 사진과 글을 둘러보았다. 그 글에서 좋은 냄새가 나면 그 발원지를 쫓아 그의 계정으로 들어가 그가 정성껏 모았을 그 취향 콜라주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러다 보면 '아-!' 하고 들러붙고 싶은 사람들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나와 같은 조각을 주워 담아 놓고 바라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그리고 어쩌면 내가 담고 싶어 할 조각들을 품고 있을 사람들. 그런 사람이 아닐까 싶으면 모아두었다.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얼마나 넓은 사랑을 가진 사람들일까 궁금해하면서.


나는 특히나 페소아나 보르헤스, 한강을 좋아했다. 그리고 이 작가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좋아했다. 비록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그들 콜렉션에는 극히 사소한 부분이라 하더라도 그것마저 좋았다.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작가들이 작은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책장이라면 어쩐지 그 서가는 더 넓고 깊을 것 같다는 어림짐작을 하면서 그들을 쭉 좋아했다. 그게 그들 서가가 풍기는 매력이기도 했다. 내 우주에서는 태양과 같은 작가들이  여리게 빛나는 별로 박혀있는 다른 편의 우주라니, 그곳에는 어떤 태양을 모시고 사는 외계인들이 있는걸까 궁금해서 그들 주위를 어슬렁거리게 되는 것이었다.


북클럽의 불씨를 댕겼던 그도 나를 매료하던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는 아시아, 중남미 등 세계 문학을 함께 읽을 사람이 있을지를 물었다. (물론 이 '어느 날', '갑자기'는 나의 감각 시계에 따른 것으로 다분히 자기중심적인 시간 관념이다. 그는 그 나름 오랫동안 꾸준히 고민하고 갈증해왔던 일이었을 것이다.) 불씨가 떨어진 곳은 마침 나의 마른 마음 위. 갑작스러운 제안에도 나는 앞 일을 따져 헤아려볼 신중함은 제쳐두고 "저요!"를 외쳤다. 


나와 같은 조바심으로 답신을 던진 사람이 꽤 여럿이었는지, 그는 하룻밤 새에 구체적인 모임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알렸다.


이것이 내 수집 상자에 생명력이 얹히던 순간이었다. 내 수집 상자는 더 이상 좋아하는 것을 쌓아두기만 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이제는 내가 들어가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었다. 지붕이 있는 집.


어떤 마른 마음들이 모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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