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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 에이치 Apr 21. 2022

명패 달기, <보이지 않는 세계들>

애써 찾아 읽는 마음들의 모임

모임은 한 사람의 의지와 추진력에 의해 빠르게 구체화되어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보다가 가끔씩 주어지는 질문들에 날름 응답하는 일뿐이었다. 

Copyright ⓒ - 이열음

첫 번째 질문이 구글 폼으로 던져졌을 때, 이 모임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세계들>. 만든 이는 이 이름을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따왔다고 밝혔다. 우리가 눈길 준 적 없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비추어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라니, 조사표를 작성하며 내 기대감은 자꾸만 부풀어갔다,


우리가 이 넓은 세상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 앞에서 눈을 감아버리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우리가 눈길 주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우리는 사람들이 품고 있을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다. 우리는 사람들에게서 얻어낼 수 있는 경제적 가치, 편익 따위에만 눈을 흘긴다. 가령 태국 방콕 마사지숍, 식당에 대한 글은 수천 건이 쓰이고 읽히는 동안에도 태국인들의 일상적 삶에 대한 호기심은 한치도 자라지 않는다. 어쩌다 그들의 삶과 이야기에 관심이 기운다고 해도, 그들의 이야기는 극히 드물게만 소개되어 찾아 읽기 어렵다.


과연 우리는 반쪽 세상만을 보고 사는 눈뜬 장님들이다. 이때 우리가 애써 찾아 읽지 않는 삶들을 읽어보자는 욕심은 얼마나 선하고 아름다운지. 모여든 사람들을 상상하며 또 감격하고 만다.


최초에 제안된 모임의 틀과 규칙은 이러했다.


모임은 게더 타운을 이용해서 진행한다.

공지 등 의견 교환은 카카오톡 단체 카톡방을 개설해 이용한다.

첫 세션은 아시아 문학이 될 예정이며, 리스트는 아래와 같았다.
「물결의 비밀」 공저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
「단풍은 락엽이 아니다」, 리희찬 (북한)
「그럴 수도 아닐 수도」, 공저 (베트남)
「델리」, 쿠쉬완트 싱 (인도)
「여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 샤힌 아크타르 (방글라데시)

다음 세션들로는 아래 지역들이 제안되었다.
라틴 아메리카
중동
아프리카
동유럽

각 세션별로 여성 작가를 한 명이상 포함한다.

혐오 발언을 지양한다.

젠더, 나이, 성적 지향, 직업 등에 대해서는 당사자가 밝히기 전까지 묻지 않는다.


최초의 응답을 보낸 이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단톡방이 개설되었다. 참여자들과는 일면식도, 말 나누어 본 적도 없었지만 나는 그들에게 이미 내밀한 친밀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 조심스러움을 듬뿍 머금은 조용함 속에서 감히 많은 말을 조잘댈 수는 없었지만 내 마음은 반가움으로 가득 차있었다. 그들의 침묵 뒤로 보글대는 호기심이 느껴지는 듯했다. 


우리들은 첫 책과 첫 모임일을 정했다. 「물결의 비밀」, 4월 17일 일요일 오전 9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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