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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임 Nov 09. 2023

엠지티안, MZ티안나게 살게11

컨트롤씨, 컨트롤에스, 컨트롤엑스, 컨트롤에이...

내가 어릴 때 우리 언니는 주산학원(주판을 배우는 곳)에 다녔다. 언니와는 세살차이(언니가 빠른 생일이라 학교로 따지면 4학년 차이가 났다)가 났지만 배우는 교과과정은 그 당시에도 달랐다. 언니는 국민학교로 입학했고 나는 초등학교로 입학했으니까 엄청난 차이였던거다. 나도 주판을 배우긴 했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학습한다는 입장보다는 그냥 그런게 있다정도의 수준으로만 배웠던것 같다.


언니가 주산학원을 다녔고, 나는 그 나이(아홉살쯤?)가 됐을 때 컴퓨터 학원에 다녔다. 나이에 비해 컴퓨터를 빨리 시작했고 당시에는 도스와 윈도우가 혼용되던 시절이라, 도스부터 컴퓨터 입문을 하게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알지도 못하는 명령어들을 입력하고 A디스크에 디스켓을 넣던 시절이었으니 컴퓨터가 우리 삶에 등장한 직후부터 지금까지 쭉 컴퓨터와 함께해왔다.


라이코스와 두루넷을 두루거치고, 야후코리아에서 세상만물을 접하던 시절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쯤 되자, 매년 사던 전과를 사지 않게 됐다. 인터넷에 모든게 널려있으니 더이상 책장을 넘길 필요도 없어진거다. 그만큼 세상은 빠르게 변했다. 네이버가 야후코리아의 자리를 점령하는 데는 오래걸리지 않았고 중학생이 되자 인터넷 생태계는 정말 급속도로 변했다. 천리안에서 세이클럽, 싸이월드로 넘어갔고, 한메일의 이름이 다음으로 바뀌며 인터넷 모든 역사를 두루 경험하며 자라왔다. 아, 중간에 태그열풍도 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코딩의 원조가 아니었다 싶다.


웹 뿐만 아니었다. 한글과컴퓨터는 모든 문서작업의 기초였다. 한컴의 아주 초창기모델부터 썼고, 97버전을 지금까지도 쓰고 있으니..(업데이트를 할때마다 못쓰는 기능이 늘어나서 차라리 옛 버전이 편할때가 많다). 대학생 때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ms워드나 엑셀, 파워포인트가 취업의 핵심 능력이라 하여, 대충 자격증도 땄다. 워드프로세서 1급이니, 그런 자격증도 필수였다.


그렇게 컴퓨터와 살아온 세대였다. 아니, 모두가 그렇게 살았다고 착각했다. 올해 삼십대 중반인 내가 회사에 입사했을 때만해도 상사는 컴맹(요즘엔 이런 표현도 사라진듯)이었다. 디자이너는 디자인프로그램을 쓰는 것만으로도 대우를 받았고, 한컴이나 워드를 다루는 것만으로도 문서작성자로서의 자질은 충분했다. 그정도로 컴퓨터를 다루는 것만으로도 호황을 누리던 세대가 상사의 세대, 우리 윗세대였다. 그러다가 우리 세대에 이르러서는 컴퓨터를 아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시대로 바뀌었다. 서론이 길었지만, 다음 세대도 당연히 그럴거라 믿었다. 기본적인 단축키 정도는 알거라고.


B라는 후배가 폴더를 열어 파일을 드래그 하고 있었다. 2000개가 넘는 사진파일이었다. 휠을 잡아내리며 그 모든 것을 드래그 하고 있었다.


"컨트롤 에이 눌러봐"

"에?"

"전체선택 하라구"

"에?"

"단축키. 단축키...(단축키라고!!!!)"


어느날은 그 친구가 작업하던 원고파일을 몽땅 날렸다.


"작업 할때마다 습관적으로 컨트롤 에스를 눌러야돼"

"에?"

"수시로 저장하라고"

"아~ 단축키에요?"

"어............ 컨트롤 세입............."


그리고 어느날은 또 그친구가 파일을 날렸다. 상황은 간단했다. 드래그를 해놓고 삭제 버튼을 누른거다.


"컨트롤 제트.."

"에?"

"실행취소..."

"아! 됐어요! 우와 대박!"


단축키를 예로 들었지만, 생각보다 컴퓨터나 워드를 다루는 능력이 낮았다. 특수한 상황 뿐만 아니라 보편적으로 그랬다. 기사를 보니, 그들은 컴퓨터를 다루는 시간보다 스마트폰과 접하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이해도가 낮다는 거다. 물론 전문적으로 컴퓨터 관련 업무를 하는 사람은 당연히 예외다. 엑셀과 파워포인트도 마찬가지다. 전문적이지 않더라도 업무에 필요한 정도의 컴퓨터 능력을 갖춘 사람이 생각보다 적다는거다.


뭐 꼭 잘할필요는 없다. 단축키 정도 모르면 어떻고 타이핑 속도가 느리면 어떠랴. 그저 윗세대와 아랫세대에 끼어 컴퓨터 좀 만진다는 이유로 엑셀이고 파워포인트고, 모든 문서작업이 내게 집중되니 문제다. 아는 지인 중에 한 아이(스물다섯)가 디자인을 배우겠다고 컴퓨터 학원을 다녔다. 그 친구에게 현수막 시안을 부탁했다. 못한단다. 현수막 디자인하는 법은 못배웠다고.


분명히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이 우리 사이를 어렵게 한다. 10년, 아니 5년, 아니 3년. 정말 짧은 시간동안 모든 것이 바뀌었다. 컴퓨터를 못하는 언니오빠들을 보며 꼰대라고 느꼈는데, 그들은 컴퓨터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나를 보고 꼰대라고 한다. 우리 그렇게 살지 말자. 사람이 사는 시대가 3년 만에 바뀐다고는 해도, 기업이, 생태계가 움직이는 시간은 그것보다 조금 길다고 생각했으면 한다.


그래서 너도 배워라. 기본적인 단축키, 적어도 내가 회사에서 쓰는 프로그램의 단축키. 쉽고 빠르게 할 수 있는 여러가지 방안을 한번은 고민해봤으면 한다. 모르면 배우고.(절대 학원이 아니라 주변의 눈치를 통해) 대학생이 아니니까. 대학생활처럼 직장생활을 하진 않았으면 한다. 다른 조원이 해주겠지? 아니. 제발 그런 안일한 생각말고. 내가 한번 더해보자는 그런 생각. 그것까지 바라면 또 꼰대겠지만, 나는 내 후배가 적어도 컨트롤 제트 정도는 알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우리에게 되돌릴 여지가 남아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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