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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임 Nov 11. 2023

엠지티안, MZ티안나게 살게12

제발 연락좀 받아줘...

한 남자후배가 있었다. 그 친구와는 4년간 함께 근무했다.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MZ에 대한 글을 쓰려고 마음 먹었던 것도 그 친구가 큰 계기가 되었다. 입사부터 퇴사까지, 절대 변하지 않는 게 있었으니 '연락불가'였다. 우리 팀은 외근과 주말근무가 많았다. 외근의 경우에는 현장 출퇴근으로, 늦은 출근 이른 퇴근이 가능한 시스템이었고 주말근무는 대체휴무로 대신했다. 아무튼 출퇴근에 대한 자유가 있었고 근무유연성이 좋은 편이었는데, 문제는 그만큼 소통이 잘 돼야한다는 거였다. 우리의 근무시간과는 별개로 내근직은 9시부터 6시까지 근무였으므로, 그 시간만큼은 연락이 닿아야한다는 뜻이었다. 필수는 아니었지만 연락이 안되면 사무실의 업무효율이 엄청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이 친구가 4년간 지켜온 고집이 있었으니 회사관계자로부터의 연락은 10%내외로만 받는다는 거였다. 실제로 그런 마음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화하면 한 번에 받는 법(근무 시간 내라도)이 없었고 콜백은 더더욱 전무했다. 물론 본인의 업무를 깔끔하게 다 하고 쿨하게 마감하는거라면 괜찮다. 하지만 그랬다면 오늘의 주인공이 되지도 않았겠지.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에 대해 생각해보자. 나는 '시간'에 있어서 공사의 구분이 없다. 어떤 의미냐면, 하루 24시간을 두고 봤을 때 근무시간이나 근무외시간이나 동일한 시간으로 본다. 근무시간이라도 사적인 연락을 취할 때가 많고 근무시간 외에도 공적인 연락을 취할 때가 많다. 다만 '공간'에 있어서는 공사의 구분을 두는 편이다. 집에서 굳이 회사일을 갖고오지 않으려 하고, 회사에서 사적인 일을 보지 않으려 한다. 사실 이것도 말이 안되는 노예근성의 일부이긴 하다. 내 스스로가 최소한의 스트레스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최소의 조건이었다. 근데 대부분은 그렇게 지내지 않나. 업무 전화를 집에서는 절대 받지 않는다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정도는 그냥 받아들이고 살아야된다고 살아가는 직장인이 많지 않으려나. 내가 놓친 전화가 내일 나에게 흉기가 되어 돌아오리라는 공포심을 생각한다면.


아무튼 처음에는 그 친구를 이해하려 애썼다. 이 친구는 퇴근했으니 연락을 받지 않는구나, 개인적인 시간이니 건들지 말아야 하는구나, 이해해야하는구나, 그냥 내가 참고 내일까지 기다려야하는구나, 일을 이따구로 해놓고 아무 신경이 쓰이지 않는구나. 수없이 되뇌였다. 여기서 연락이라하면 전화와 카톡 모두를 이른다. 심지어 카톡은 하도 안보길래 차단당한줄 알았다. 가끔 그친구와 주고받은 카톡을 보는데, 이건 뭐 내 질척임의 끝판왕을 보는것 같다.


아, 그렇다고 근무시간을 잘 지키느냐고. 11시에 현장으로 출근해서 2시쯤 현장 퇴근할 때가 있다. 11시가 되기 1분전 그에게 전화가 왔다. 늦잠자서 지각하겠다고. 그리고 12시에 현장으로 간다. 2시 이후론 칼퇴하여 연락이 되지 않는다. 사실 이런 일이 참 비일비재했다.


내가 태어나서 가장 많이 모닝콜을 해드린 분이 그분이다. 현장에 잘 갔는지, 매일 아침마다 그에게 안부를 물었다. 물론 안부를 받지 않았다. 당연하지, 전화를 받아야 안부를 물을게 아닌가. 몇 시간뒤 겨우 연락이 닿아서 왜 전화를 받지 않았냐고 물으면 자느라 못받았단다. 뭐, 할말도 없다. 그의 휴대폰은 왜 아침마다 밧데리가 닳아있는것인지.


이렇게 사적인 시간을 중시하는 그였다. 그리고 하루는 모든 직원들이 모인 식사시간이었다. 대표님도 동석. 밥을 다 먹고 늦게 먹는 사람을 기다리는, 애매한 쉬는 시간이었다.


"사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평소 말도 없던 그가 갑자기 사장님에게 독대를 청했다.


"어? 무슨 일인가?"

"저... 회사 창고좀 써도 되겠습니까?"


나는 이쯤 뭔가 쎄함을 느꼈다. 우리 회사는 작은 창고를 갖고 있었는데, 이 친구는 그 창고에 잘 가지도 않을 뿐더러 창고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한다.


"무슨 일로?"

"아 제가 이사를 하는데 제 짐좀 넣어두려고요."


아.. 망했다..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래도 사장이 기분 좋으면 뭐 넘어가겠지 싶은 일말의 희망도 있었다.


"무슨 짐?"

"목욕가방이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황당하다. 사적인 일에 공적인 공간을 쓴다면 그에 합당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두를 긴장하게 만드는 그 순간, 목욕가방? 목욕가방이라니? 그거는 그냥 본인 자리 책상 밑에 둬도 될 일인데. 가방이 얼마나 크기에? 아니 이 모든 걸 다 떠나서, 상사인 나한테 물어봐도 될 일이고 분명히 나는 그렇게 하라고 웃으며 얘기해줬을거다. 부피도 작으니 창고에 둬도 보이지도 않을 물건이니까. 그런데 전직원이 모여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대표에게 독대를 청해 묻는다는게, 뭐? 이게 그만큼의 긴장감을 유발할 큰 일이었던가.


사장의 표정은 심각하게 일그러졌고, 이후로 뭐라 했는데 기억도 안난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에 내가 사장에게 불려가 잔소리를 들은 것만 기억난다. '도대체 그자식은 뭐냐'고.


공과 사를 어디까지 끊어야 할까. 내가 보수를 받는 시간 동안은 공적인 시간이고, 보수가 없는 시간은 사적인 시간인가. 회사라는 공적인 공간이 있어도 그곳에서 내가 쓸 수 있는 모든 것들은 사적인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인가. 이걸 참 정확하게 끊기가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기준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사생활 침해가 싫다면, 그도 역시 회사의 공적인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된다. 자기가 필요할 때만 사생활로 방어를 하는 건 너무 치사하다.


그가 퇴사할 때까지 그에게 연락좀 받아달라 애원했지만, 그는 늘 휴대폰 밧데리가 다되어 있었으며 실수로 전화를 놓쳤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공적인 업무로 외근을 나갈때 여자친구를 태워 다녔다. 점심값을 낸 적은 단 한번도 없다.(*더치페이도 안했다)


받는 데에는 익숙한데 주는 데는 인색하다. 대학생 애들을 키우는 상사들 얘기를 들어보면, 요즘 친구들이 원래 그렇단다. 개인주의성향이 강해서 그렇다고. 그런데 나는 생각이 다르다. 그건 개인주의가 아니라 비겁하고 야비한거다. 필요에 따라서 갑자기 소속감을 찾고 의지하려 든다. 단 한 걸음도 양보하려 하지 않는 그 인색함이 문제다. 일관성이 없다, 일관성이 없어.


우리 정확하게 딱 끊어보자. 내가 커피를 살 생각이 없다면, 상대에게 얻어먹지도 마라. 내가 연락을 받을 생각이 없다면, 상대의 불쾌함도 받아들여라. 퇴근 이후에 간섭받기 싫다면 퇴근 전에 완벽하게 일처리를 해놔라. 내가 보호받고 싶은 선이 있다면, 나부터 그 선을 지켜야 된다. 커피는 실컷 얻어먹고 상대에게 한잔 살 생각도 없으며, 연락도 안받아놓고 불쾌해하는 상사의 마음을 또라이라고 치부해버리고, 일은 개떡같이 해놓고 잠수하는 그런 행동은 삼갔으면 한다. 우리 지혜롭게 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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