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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황 Oct 16. 2018

클라이밍에 관심 있으세요?

클라이머의 역할에 대한 고민을 시작합니다.

17세기엔 산에 오르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산에는 신이나 악마가 살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18세기 후반, 이성의 시대가 활짝 열리면서 신과 악마는 산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렇게 유럽의 몽블랑에서 알피니즘이 피어났고, 세계로 파종됐죠. 한국에서는 이 알피니즘을 등산 혹은 등반이라고 합니다. 한국의 등반 역사는 약 100년 전에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제국주의의 거대한 파도를 타고 유럽과 일본에서 건너온 클라이머들이 한반도를 모험했고, 산과 바위가 많은 이곳에 등반이라는 모험의 문화는 금방 뿌리내렸습니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파타고니아와 블랙다이이몬드의 설립자인 이본 취나드에 의해 북한산 인수봉의 루트 개척이 시작됐고, 지금은 무려 89개에 달하는 루트가 수많은 클라이머들을 끌어모으고 있습니다.


당신의 등반은 어떻습니까?


최근엔 스포츠 클라이밍의 인기에 힘입어 클라이밍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습니다. 요즘은 대학 산악 동아리가 아니더라도 산악 학교에서, 동네의 클라이밍 짐에서, 동호회에서 클라이밍을 시작합니다. 국제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 역시 많아졌습니다. 곳곳에 생겨난 클라이밍 짐과 동호회에서는 숙련된 클라이머들이 저마다의 노하우로 등반 기술을 전수합니다. 하지만 등반의 가치나 클라이머의 역할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곳은 많지 않습니다.


수많은 등반객이 인수봉을 찾습니다. 이미지 출처 : http://dobongsan.tistory.com/272

그런 이유로 한국 클라이밍의 성지라 할 수 있는 북한산 인수봉에는 각종 쓰레기와 버려진 장비들이 넘쳐납니다. 심지어 바위에 매달려 담배를 피우는 이들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화장실이 없기 때문에 인적이 드문 숲에서 배설하고 거름이 된다며 치우지 않는 이들이 태반입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날씨 좋은 날의 인수봉은 말 그대로 몸살을 앓습니다. 뿐만 아니라 쉽게 오르기 위해 망치와 정을 이용해 함부로 바위를 깨서 손과 발을 디딜 홀드를 만들기도 합니다. 인수봉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국에 있는 바위와 암장은 빠르게 훼손되고 있습니다.


이런 훼손은 나이와 성별과 무관하게 자행됩니다. 그저 클라이머라는 이유만으로 바위를 아무렇지 않게 대합니다. 2014년엔 청년 클라이머들이 울릉도의 여러 바위에 루트를 개척하는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는데, 그 과정에서 아무런 문제 의식 없이 드릴을 이용해 바위에 구멍을 뚫고 볼트와 앵커를 박았는데, 그런 장면을 아무렇지 않게 영화에 담았습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울렁,도>의 한 장면.

우리에겐 고스란히 올라갔다가 고스란히 내려올 의무가 있습니다. 이 의무를 지키지 않는다면, 우리의 의식과 감각은 점점 무뎌질 것입니다. 한 번 버린 쓰레기, 한 번 뚫은 바위, 한 번 피운 담배, 한 번 버린 장비가 모이면 거대한 의식의 퇴행을 만듭니다. 이 의식의 퇴행은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만듭니다. 고작 사흘 동안 치러졌던 동계올림픽 활강 경기를 위해 한국은 무려 500년이나 철저하게 지켜졌던 가리왕산의 원시림을 파괴했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렇게 밀어버린 숲이 다시 원시림의 모습을 갖추려면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요?

올림픽 이후 그대로 방치된 가리왕산 활강 코스. 그 누구도 책임질 수 없습니다. 이미지 출처 : 경향신문
락앤롤 프로젝트가 클라이머의 역할을 제안합니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바위를 조심스럽게 올라야 합니다. 클라이머에게 바위를 아무렇게나 소비할 권한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등반 기술이나 실력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태도로 이 모험에 임하는가?’와 같은 고민입니다. 강조하지만, 자연을 대하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동시대의 가장 위대한 클라이머를 꼽으라면, 알렉스 호놀드를 주저 없이 꼽겠습니다. 그는 아무런 장비 없이 거대한 벽을 오릅니다. 그에게 바위란 정복의 대상도 실력을 측정하는 운동장도 아닙니다. 그는 프리-솔로 등반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해 다시금 고민하게 만듭니다. 또한 알렉스 호놀드는 등반과 광고를 통해 얻은 수익으로 호놀드 재단을 설립해 환경단체 등에 환원하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습니다. 그는 오늘도 최소한의 등반가로 존재하면서 가장 위대한 등반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모두가 알렉스 호놀드와 같은 클라이머가 될 수 는 없습니다. 하지만 알렉스 호놀드의 태도만큼은 충분히 닮을 수 있습니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엘 캐피탄을 등반 중인 알렉스 호놀드. 이미지 출처 : alexhonnold.com


바위는 일반 등산객들의 시야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져있습니다. 아무나 등반이라는 것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지금까지 클라이머들은 숲과 자연을 찾는 이들의 시선과 감시에서 자유로웠고, 특히 한국의 경우는 특유의 위계적 관습 탓에 훼손 행위가 방관되어 왔습니다.


이제 <락앤롤 프로젝트>는 클라이머의 역할이 바위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바위를 훼손하는 일체의 행위를 감시하면서 동시에 방관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고자 합니다. <락앤롤 프로젝트>는 바위와 숲, 야생동물과 식물, 나아가 환경과 생태를 위한 등반 문화가 자리잡힐 수 있도록 활동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기다립니다.


북한산 인수봉을 알리기 위해 직접 디자인한 포스터. ©최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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