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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덕 양기자 Nov 06. 2020

(2) 따릉이를 타고 출근해보자

자전거 우선 도로엔 왜 자전거가 없죠?

종로구민으로서 n년째 살고 있고, 지인들과의 약속이나 취재 등의 활동범위도 성신여대~종로~여의도 정도를 쉽게 벗어나지 않는 나로서는 버스를 타긴 민망하지만 그렇다고 걸어가긴 애매한 거리를 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택시를 타자니 택시와 대중교통이 그리 차이 나지 않거나 오히려 대중교통이 더 빠른 경우가 많다. 그럴 땐 요즘 많이 보이는 전동 킥보드를 타고 싶기도 했는데, 운전면허가 없어서 탈 수가 없다(12월부터는 면허 없이도 가능하다고 한다).


자린이가 되고선 따릉이가 보이기 시작했다. 서울시엔 정말 곳곳에 따릉이가 있다. 특히 종로엔 한 블록 건너면 따릉이 정류장을 찾을 수가 있다. 그래서 종로5가에 있는 취재처로 출근하는 어느 날, 따릉이를 타고 가보기로 결심했다. 그 이야기를 펼치기에 앞서 스포를 하자면,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구라쟁이 네이버지도

네이버 지도에선 우리 집에서 취재처까지 자전거로 6분 거리라고 나왔다. 버스가 17분, 택시가 11분이었으므로 자전거가 가장 빠른 길인 셈이었다. 길을 헤맬 가능성을 고려해 넉넉히 30분 전에 집에서 나섰다. 그런데 아뿔싸, 집에서 가장 가까운 따릉이 정류장에 따릉이가 없었다. '따릉이 어딨지' 앱을 깔고 확인해보니 혜화엔 따릉이 정류장이 정말 많은데 따릉이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다시 버스를 타야 하나 싶었는데, 멀지 않은 정류장에서 겨우 하나의 따릉이를 찾았다.


먼저 노트북이 담긴 내 가방이 자전거 앞 바구니에 들어가는지 확인했다. 15인치 LG 그램 노트북이었는데 무난히 잘 들어갔다. 가방이 떨어지지 않도록 고정하는 장치도 들어있었다. 섬세함에 감동하는 것도 잠시, 대여 비밀번호를 어떻게 입력하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따릉이 앱에서 비밀번호 재설정을 하느라 5분을 또 허비했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수없는 큐알코드 인증을 해온 나로선 큐알코드형 따릉이가 훨씬 더 익숙했다.


바구니에 가방을 욱여넣은 모습.

겨우 빌려서 길을 나서니, 인도 옆에 붙은 자전거 도로가 보이질 않았다. 인도로 가자니 출근길 인도엔 사람이 너무 많았는데, 차도에도 차가 너무 많았다. 조금 끌고 가니 인도 위에 자전거 그림이 그려져 있어서 다시 올라탔는데, 그 마저 금세 끊겼다. 대신 마찬가지로 자전거 그림이 그려진 차도가 이어졌다. '자전거 우선 도로'라는 글자와 함께.


잠시 망설이다 차도로 들어섰는데 클랙션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전거 우선 도로엔 자전거는 코빼기도 안 보이고 차들만이 쌩쌩 달리고 있었다. 차가 별로 없다 싶어서 조심히 달리다 보면 택시가 차를 세우겠다고 매섭게 앞으로 끼어들었고, 버스정류장이라도 있으면 곧장 인도로 올라가야 했다. 인도 옆에 붙은 자전거 도로라고 안전하진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도와 자전거 도로를 구분하지 않았고 벨을 울리니 따가운 눈총이 쏟아졌다. 어디서든 자전거가 여전히 반갑지 않은 존재라는 게 실감이 났다.


도로 외에도 의외의 난관이 있었는데, 바로 안장통이었다. 전날에 2시간 동안 자전거를 탄 탓에 이미 통증이 있는 상태였는데 매끄럽지 않게 인도와 차도를 오가자니 약간의 턱을 지날 때도 그 통증이 아주 심각했다. 그래도 하나의 노하우를 얻었다. 턱을 오를 것 같을 땐 엉덩이를 살짝 떼는 것이다. 손바닥에도 통증이 있었는데, 그건 자세를 똑바로 해 무게 중심을 옮기니 나아졌다.


여전히 네이버 지도의 시간 안내는 믿음직하지가 않아서, 나는 30분이나 일찍 나왔지만 취재 약속 시간에 딱 맞춰서 현장에 도착했다. 약간 땀이 났지만 엔도르핀이 분비되는 감각이 나쁘지 않았다. 힘겨운 출근길이 조금은 즐거워졌다. 자신감이 붙어서 다음 날 오후엔 약속 장소인 성신여대까지 따릉이를 타고 갔는데, 따릉이를 정류소에 세워두기만 하고 반납 처리를 안 하는 바람에 정류소에 다시 가야 했던 것을 빼고는 즐거운 라이딩이었다(그런데 이 역시 10분 거리로 나왔지만 20분이 넘게 걸렸다. 네이버 지도는 시간을 현실화해주길 강력히 바라는 바다).


조만간 정기권을 끊을 생각이다. 중간자와 같은 존재인 자전거가 어서 이 도시와 더 친해지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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