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CEO를 넘어 미국의 대권에도 도전하는 인도계 후손들
2024년은 선거의 해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총선이 있지만 서남아시아의 주요 3개국인 인도(5월), 방글라데시(1월), 파키스탄(2월)에서도 각 나라 대권의 향방을 결정할 선거가 일제히 실시된다. 미국에서도 2024년 11월에 대선이 있다. 미국 민주당에서는 현직 대통령인 바이든 대통령이 저조한 지지율 때문에 고생깨나 하고 있는 반면, 공화당 쪽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금까지 열린 당내 예비후보 토론에 참여조차 하지 않는 여유를 뿜뿜하고 있다. 지금 추세가 계속된다면 공화당 후보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선출되는게 따놓은 당상처럼 보인다. 다른 공화당 후보들끼리의 경쟁은 마치 호랑이가 잠시 외출한 사이 2인자 자리를 놓고 싸우는 여우들의 싸움같아 보인다고나 할까? 그런데 이들 공화당 예비후보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알 수 있다. 인도계 후손이 무려 2명이나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공화당내 경쟁은 ‘답정트럼프’인 듯 하니 당선 가능성이야 제쳐둔다 하더라도, 인도계 후손들이 이제 세계 최고 강대국의 대권을 넘보는 수준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1] 무시 못할 인도계 후손들의 정치적 영향력
우선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2013년만 해도 미국 하원에 인도계 의원은 단 한명에 불과했고 상원의원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주의회(State Legislature)에는 채 10명도 되지 않는 정치인들이 진출해 있었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50여명에 달하는 주의회 의원, 5명의 하원의원과 한명의 부통령(카말라 해리스) 그리고 2명의 대통령 예비후보(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 및 스트라이브 애셋 매니지먼트 창업자인 비벡 라마스와미)를 보유한 막강한 정치세력으로 성장했다. 미국에는 약 450만명의 인도계 후손이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전체 인구의 약 1.3% 가량을 차지하면서 아시아계 이민자중 중국계(약 520만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이민자 그룹을 형성한다. 미 하원의원 전체 의석수가 435석인데, 이중 1%가 조금 넘는 5개의 자리를 인도계 하원의원이 떠억하니 차지하고 있으니 자신들의 인구수에 걸맞는 의석수를 솜씨 좋게 차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잠시 다른 나라들로 눈을 돌리면 인도 후손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더욱더 뚜렷해진다. 영국(리시 수낙 총리, 2022년 선출), 포르투갈(안토니오 코스타 총리, 2015년), 가이아나(모하메드 알리 대통령, 2020년), 수리남(찬 산토히 총리, 2020년), 모리셔스(프라빈드 주그노트 총리, 2017년) 등의 나라는 인도계 후손이 현재 국가수반을 맡고 있다. 국가수반은 아니지만 아일랜드 총리직을 맡고 있는 리오 버라드커도 있다. 여기에 2020년 미국 부통령에 선출된 카말라 해리스(아버지는 자메이카계 미국인, 어머니는 타밀계 인도인)까지 더하면 인디안 디아스포라가 가지는 전 세계적인 정치적 영향력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한마디로 세계 최고(最古)의 민주국가인 영국, 세계 최대(最大)의 민주국가인 인도, 그리고 세계 최강(最强)의 민주국가인 미국에서 인도계 정치인들이 권력의 최정점에 앉아있다 해도 과장은 아니다.
[# 2] 꾸준히 정치적 영향력을 확장시켜온 인도 후손들
미국에 인도계 주민들이 본격적으로 이주하기 시작한 계기는 1965년에 개정된 ‘이민 및 국적법(Immigration and Nationality Act of 1965)’이다. 1920년대 이후 미국은 주로 북유럽 및 서유럽 이민자들을 우대하여 받아들이면서 동유럽이나 아시아 출신 이민자들을 훨씬 적게 받아들이는 정책을 공공연하게 유지해오고 있었다. 1924년에 통과되어 40년 가까이 시행되었던 이민법은 그 법의 전문에 ‘미국의 통일성이라는 이상을 보존하기 위하여(“to preserve the ideal of U.S. homogeneity”)’ 동 법을 채택한다고 버젓이 써놓을 정도였으니 뭐 할말 다했다고 하겠다. 1960년대 인권운동의 거센 물살에 떠밀려 이 법이 개정되면서 아시아인이 미국으로 이주할 기회가 넓어졌고 인도인들의 미국내 IT 기업 등에 대한 취업이 본격화되면서 미국내 인도교민사회는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국 정계로의 진출도 꾸준하게 일어난다.
주의회가 아닌 미국의 중앙정치 무대로 시선을 좁혀보자면 최초의 인도계 하원의원은 2013년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에서 당선된 아미 베라(Ami Bera, 민주당) 의원이었다. 이민 및 국적법이 시행된지 거의 50년이 지나서 인도 후손이 중앙정치 무대에 첫 진출한 것이다. 새크라멘토 카운티의 공중보건국장을 거쳐 하원의원에 당선된 이후 현재까지도 쭈욱 연임하고 있다. 3년 뒤인 2016년에는 카말라 해리스 당시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이 인도계로서는 최초로 미 연방 상원에 진출하였다. 같은 해인 2016년에 당시 루이지애나 주지사였던 공화당 소속 바비 진달(Bobby Jindal)이 대권 도전을 선언하기도 했었으나 중도에 하차하였다. 그는 2008년 36세의 젊은 나이에 루이지애나 주지사에 취임했었는데, 당시 재직중이던 미 주지사중 최연소이자 인도계로서는 최초로 주지사에 오른 사람으로 기록되었다.
공화당의 당내 경선이 2023년 들어 한껏 달아오르면서 가장 먼저 주목을 받았던 사람은 인도계 출신의 젊은 백만장자 비벡 라마스와미(Vivek Ramaswamy)이다. 하버드대(생물학 학사) 및 예일대 로스쿨(법학 석사)을 졸업한 만 서른여덟살의 젊은 후보로서 투자펀드 근무 경험과 제약업체 창업을 통해 10억 달러가 넘는 엄청난 부를 축적한 ‘영앤리치’이다. 그 동안 줄곧 당내경선에서 2위를 달려오던 론 디샌티스(Ron DeSantis) 플로리다 주지사를 바짝 추격하면서 경선 초기에 라이징 스타로 부상했다.
하지만, 열혈 힌두교 신자이면서 채식주의자인 그의 정치적 성향은 공화당내 온건주의자들마저 갸우뚱할 정도로 지나치게 보수적이다. 뜬금없이 9/11 사태에 미 정부가 연관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음모론에 동조하기도 했고, 어느 날은 과거 미 정부의 코로나 대처 방식을 맹비난하다가 몇 주 전에는 하마스와의 전쟁에 나선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펼쳤다. 오히려 토종 백인보다도 더 심한 극단적인 미국 우선주의를 주장하자 그에 대한 인기가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그의 주장을 듣고 있자면 트럼프의 주장이 오히려 온건하게 들릴 정도이다. 그가 가진 전형적인 인도인의 외모와 종교 그리고 관습이 꼴통 백인우월주의자보다도 더 극우적인 그의 정치적 신념과 충돌하면서 빚어내는 ‘괴랄한’ 조합에 공화당 당원들이 ‘얘는 도대체 뭥미?’라며 거부반응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라마스와미의 인기가 떨어지면서 지금 주목을 받고 있는 대체재 역시 인도계 후손인 니키 헤일리(Nikki Haley)이다. 그녀는 불과 32세의 나이에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주의회 의원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본격적인 정치 인생을 시작했다. 이어, 2011년에는 불과 39세의 나이에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의 역사상 최연소 주지사이자 최초의 여성 주지사로 선출된다. 주지사 재선에 성공한지 얼마되지 않은 2015년 6월,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최대 도시인 찰스턴(Charleston)에서 백인우월주의자가 흑인 교회에 난입하여 성경 공부 중이던 흑인 9명을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에 헤일리는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주의회 의사당 앞에 게양되어 있던 ‘남부연합(Confederate)’ 깃발을 더 이상 게양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면서 미국에서 전국적인 관심을 받게 되었다. 남부연합 깃발이 가지는 인종차별적 메시지를 더 이상 용인하지 않겠다는 뜻을 확고히 하면서, 그녀는 남부 한 귀퉁이에서 주지사를 하던 변방 정치인에서 일약 전국적인 지명도를 갖는 전국구급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공화당내 대권 후보 경선이 한창이던 2016년에 그녀는 처음에는 플로리다주 출신 마코 루비오(Marco Rubio) 상원의원, 그리고 그가 경선을 포기하자 텍사스주 출신 테드 크루즈(Ted Cruz) 상원의원을 각각 지지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와는 대척점에 서 있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는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그녀를 주유엔대사로 지명했고 2018년말까지 주유엔대사직을 수행하게 된다. 도널드 트럼프가 상징하는 극우 보수 정치를 견제하던 정치적 경쟁자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외교를 가장 앞장서서 다자외교무대에서 실현하는 선봉장으로 자신의 역할을 변신한 셈이다.
[# 3] 무엇이 그녀의 매력일까?
우선, 그녀의 개인적인 인생사가 미국인들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51세(1972년생)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미국 대권에 도전하는 그녀의 성공 스토리가 충분히 감동적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인종차별과 가난이 세월의 때처럼 켜켜이 쌓여 있는 남부 촌동네에 정착한 인도인 가정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운영하는 옷가게에서 틈틈이 장부를 정리하던 여학생이었다. 1996년 현재의 남편과 결혼한 후 시크교에서 감리교로 개종한 그녀는 2명의 자녀를 낳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게다가 그녀의 남편은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방위군 소속으로 아프가니스탄에도 참전한 적이 있는 참전용사이다. 군인에 대한 존경과 이민자의 성공에 대한 관용이 문화에 깊이 배어있는 미국에서는 그야말로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가족이다.
게다가 그녀는 이전까지 미국 중앙정치 무대에 등장했던 여성정치인과는 상당히 다른 이미지를 구축하는데에도 성공했다. 미국 유권자들의 머리 속에 각인된 여성 정치인은 누가 있는지 살펴보자. 우선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떠오른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었던 빌 클린턴에 못지 않은 영향력을 보유한 정치인이었다. 자신과 대권을 놓고 겨뤘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009년 그녀를 국무장관에 임명하자, 그 당시 중동에 온 정신을 집중하던 미국의 외교정책을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중심 전략을 전환시키는 뚝심을 발휘하기도 했다. 하지만, 때로는 재수 없을 정도로 똑부러지는 말투로 남성 유권자는 물론이고 일부 여성유권자들까지 질리게 만들었던 그녀는 공개석상에서 치마가 아닌 바지를 주로 착용할 정도로 자신의 여성성을 드러내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는 그녀를 ‘부정직한(crooked) 힐러리’라고 부르면서 그녀를 마녀화하는데 상당한 노력을 들였고 꽤 성공을 거두었다.
힐러리 클린턴의 대척점에는 어떤 여성 정치인이 자리하고 있을까? 2008년 당시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존 매케인의 런닝 메이트인 사라 페일린(Sarah Palin) 부통령 후보가 떠오른다. 한국인들은 거의 대부분 그녀를 모르거나 알더라도 거의 잊었지만 그녀가 미국인들의 뇌리에 남긴 인상은 쉽게 사라지기 어렵다. 우선 존 매케인 후보가 그녀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을 때 언론에서는 ‘미국 역사상 가장 지명도가 낮은 부통령 후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중앙 정치 무대에는 알려지지 않은 참신한 인물이었다. 게다가 미모도 뛰어났다. 미스 알래스카 3위 출신의 출중한 외모를 지닌 여성 정치 신인을 기용함으로써 노쇠한 참전용사의 이미지를 가진 존 매케인의 득표력을 보완하리라 기대를 모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실망투성이였다. 외교정책은 고사하고 중앙정치 경험이 전무했던 그녀는 선거운동이 계속되면서 크고 작은 실수를 연발했고 결국 유명 코미디 프로그램인 Saturday Night Live에서 단골로 조롱거리가 되는 신세로 전락했다. 조금 심하게 표현하자면 ‘얼굴만 예쁘고 조금은 멍청한 백인 여자’의 전형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게다가 대선 패배 이후에는 공화당내에서도 보수주의적 성격이 강한 티파티 운동(Tea Party Movement)에 적극 몸담으면서 그야말로 ‘인종차별주의자 백인 아줌마’로 흑화해 버렸다. ㅠㅠ
[# 4] 설사 당내 경선에서 패한다 하더라도...
이 두 사람에 비해 니키 헤일리는 상당히 다른 이미지이다. 우선, 이십년 가까이 정치를 해오면서 쌓아온 내공이 만만치 않다. 사라 페일린과 같은 ‘실패 사례’와 비교할 수준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트럼프 대통령의 막무가내식, 중2병스러운 언행에 질린 공화당내 온건파 지지자들에게서 지지를 받고 있다. 트럼프의 막가파식 언행에 질린 공화당 내 식자층과 부유층에게는 최적의 대안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는 트럼프가 주장하는 대부분의 주장들, 즉, 미국 우선주의와 반이민적 정책 등에 대부분 동조하는 자세를 취함으로써 공화당 골수지지자들의 지지도 확보하고 있다.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인 확장성이 그만큼 좋다는 이야기이다. 트럼프식 정책은 그대로 추진하되 트럼프가 가진 ‘불확실성’만큼은 제거한 ‘믿을만하고 안정적인 공화당 후보’라는 이미지를 지지자들에게 심어주고 있다.
워낙에 트럼프에 대한 공화당원들의 지지가 탄탄하다 보니 그녀가 당내 경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1월 15일과 1월 23일에 각각 아이오와와 뉴햄프셔에서 열리는 당내 경선을 앞두고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니키 헤일리가 도널드 트럼프를 오차범위 내에서 바짝 추격하고 있지만 트럼프 선거캠프는 느긋한 듯 보인다. 니키 헤일리 돌풍이 찻잔 속 태풍에 그칠거 같다는 판단에서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그녀에게 신경 꺼도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을거 같다. 일단, 트럼프가 대선 후보로 결정된다면 그녀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거나 또는 집권 후에 행정부 내 사실상 권력 2위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국무장관으로 지명할 가능성도 열려 있기 때문이다. 20년이 넘는 지방정치 경험, 주유엔대사를 지내며 트럼프의 외교정책을 현장에서 지휘했던 경험을 살펴본다면 당장 그녀가 국무장관직을 맡아도 딱히 어색하지 않아 보인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나라로서는 국무장관이 된 인도계 후손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 될 것이다.
자신의 정적에게 그렇게 중요한 직책을 맡기리라 선뜻 상상이 되지 않는다면 2007년에서 2008년에 걸친 기간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해 보기 바란다. 2007년 2월의 쌀쌀한 어느 날, 미 중서부 일리노이주의 주도(州都)인 스프링필드에서 민주당 소속의 젊은 상원의원이 대권 후보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당연히 당내 경선 1등을 차지하리라 여겨졌던 거대한 항공모함 힐러리 클린턴을 격침시키고 미합중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하고 얼마되지 않아 자신의 최대 정적이었던 힐러리 클린턴을 국무장관 자리에 앉혔다. 사실상 그녀에게 “세계의 질서”를 재설계할 기회를 준 것이다. 돌이켜 보면 버락 오바마라는 언더독(underdog)이 승리한 것도 기적이었고, 승리한 그가 힐러리 클린턴에게 국무장관직을 믿고 맡긴 것 또한 신의 한수였다. 그 기적과 묘수가 공화당 쪽에서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는 거 같다. ///
이 글은 편집을 거쳐 딴지일보에도 게재되었습니다
https://www.ddanzi.com/ddanziNews/7939819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