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마스테 런던! 영국 부동산을 싹쓸이하는 그들
[# 1] 현실 속에서 007 제임스 본드가 되다
수십 년 동안 영국, 그중에서도 런던과 그 인근 지역의 부동산은 인도의 많은 억만장자들을 유혹해왔다. 수많은 럭셔리 패션 매장, 고풍스럽게 포장된 도로에 줄지어 늘어선 고급 저택들, 그리고 런던 시외로 조금만 나가도 손쉽게 찾을 수 있는 멋진 고성(古城)들까지... 인도의 억만장자들이 인도의 무더위와 공기오염을 피해 여름휴가를 보내기에 영국만 한 나라도 없을 것 같다. 인도의 부자들이 앞다투어 사들이고 있는 런던의 부동산에는 무엇이 있을까? 인도인들의 런던 부동산 싹쓸이에 부작용은 없을까? 우선 인도 최대 갑부인 무케시 암바니의 사례부터 살펴보자.
무케시 암바니는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에 런던 인근에 소재한 스토크파크(Stoke Park) 컨트리클럽을 매수했다. 1908년까지는 영국 귀족이 거주하던 개인주택이었던 것을 컨트리클럽 겸 호텔로 개조한 곳인데, 연회비가 4,500파운드(약 750만원)에 달하는 27홀짜리 고급 골프 코스, 49개 객실을 갖춘 멋들어진 호텔뿐만 아니라, 13개에 달하는 테니스 코트, 면적이 14에이커(약 5만 6,200제곱미터)에 달하는 예쁘게 꾸며진 영국식 정원까지 있는 곳이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 중 초기 작품인 「골드 핑거」에서 숀 코너리가 연기한 제임스 본드가 골프 경기를 하는 모습을 촬영한 장소로도 유명하고, 1997년 개봉한 피어스 브로스넌 주연의 「007 네버다이」의 일부 장면도 이곳에서 촬영될 정도로 유서 깊고 멋들어진 장소다. 게다가 얼마 전에 개봉하여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넷플릭스의 「더 크라운」도 이곳에서 일부 장면을 찍었다. 매입가는 5,700만 파운드(약 900억원) 내외로 알려졌다.
암바니 가족은 매년 11월마다 돌아오는 인도 전통 축제인 디왈리 축제를 항상 뭄바이에 소재한 시가 약 2조원의 자택에서 보냈으나 2021년에는 런던에서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암바니 가문이 현재 거주하는 뭄바이를 떠나서 아예 영국으로 이주하려는 것 아니냐는 소문이 잠깐 돌았는데 암바니 가문은 이를 급하게 부인했다. 하지만, 선선하고 쾌적한 곳에 널찍하고 멋들어진 영국식 고성을 매입했으니 인도가 본격적으로 더워지기 시작하는 4월만 되면 이들 가족이 인도를 떠나 스토크파크에서 여름을 보내게 될 것이라는 소문도 무성하다. 2021년 암바니 가문으로 소유권이 넘어간 스토크파크가 공식적으로 2년간 문을 닫고 대규모 리노베이션 공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2023년 가을 영국 언론을 통해 흘러나온 스토크파크의 리노베이션 공사 진행상황은 사람들이 목소리 높여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마음속 깊이 품어오던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우선, 리노베이션 공사 계획이 최종 승인을 받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미 상당부분 공사가 진행된 것으로 밝혀졌다. 원칙과 절차를 중하게 여기는 영국인들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행태이다. 리노베이션 공사를 핑계로 골프장과 호텔의 문을 닫고 수백명의 회원들을 내쫒은 후 암바니 일가는 가족 파티와 지인 초청 골프 경기를 수시로 즐긴 것으로 확인되었다. 거대한 파이톤 뱀을 목에 휘감고 의기양양하게 골프를 치고 있는 암바니 가문의 지인을 목격한 이웃 주민 한 명이 그야말로 깜놀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여기에 한술 더떠서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날을 기념하는 독립기념일 파티도 즐긴 것으로 알려졌다. 암바니 그룹은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부동산을 매입했다. 하지만, 골프 클럽의 기존 회원들과 이웃 주민들은 천년이 넘은 고성을 클럽하우스로 사용하는 유서깊은 영국 골프클럽을 교양도 없고 법과 질서를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들 눈에 암바니의 존재가 결코 반가울 수 없을 것이다.
[# 2] 철강왕 락슈미 미탈도 런던에 저택을 구입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철강왕’이라고 하면 아르셀로미탈의 소유주인 락슈미 미탈을 꼽을 수 있다. 그도 런던의 비싼 부동산을 보유한 것으로 유명한데, 지금은 아니지만 한때는 한 채가 아니라 두 채나 소유했었다. 1996년에 그는 ‘억만장자들의 거리Billionaires’ Row’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비숍 애비뉴에 소재한 거대한 저택을 1,100만 달러를 주고 구매했었다. 그가 ‘여름 궁전’이라고 이름 붙인 이곳은 12개의 침실, 6개의 응접실과 지하에는 풀장, 자쿠지 등을 갖췄다고 전해진다. 2011년에는 이곳을 5,700만 달러에 되팔아서 엄청난 투자 수익을 남겼다.
두 번째 런던 부동산은 런던 중심부에 있는 고급 거주지인 켄싱턴 팰리스 가든에 위치한 5만 5,000제곱피트(약 5,110제곱미터) 규모의 맨션을 구입했는데 12개 침실과 수영장을 갖춘 대저택이다. 이 저택은 인도의 유명한 타지마할을 따라서 ‘타지미탈(Taj Mittal)’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실제로 인도 아그라에 소재하는 타지마할을 지을 때 사용한 대리석과 동일한 대리석을 구해서 실내를 리노베이션한 때문이라고 한다.
영국 국적의 힌두자 형제가 소유한 런던의 고급 부동산 또한 빠질 수가 없다. ‘칼튼 하우스 테라스(Carlton House Terrace)’라고 이름 붙여진 이 멋진 저택은 이미 2013년 『포브스』에서 ‘5억 달러에 달하는 부동산 걸작’이라고 인정을 받은 곳이다.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지역에 자리 잡고 있는데 영국 여왕이 거주하는 버킹엄 궁전 인근이면서 멋진 세인트제임스 공원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뷰 맛집’이라고 하겠다. 18세기에 지어진 6층짜리 조지아식 건물 4채가 사각형 모양으로 연결된 구조로 30개가 넘는 침실을 갖고 있으며, 과거 영국왕 조지 4세(재위 기간: 1820~1830년)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으로도 유명하다.
[# 3] 2023년 런던 최고가 부동산 거래도 결국 인도인이 사들였다.
집을 매매한 게 아니고 렌트만 했는데도 인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사람도 있다. 비로 인도혈청연구소(Serum Institute of India)의 CEO인 아다르 푸나왈라(Adar Poonawalla)이다. 인도혈청연구소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중 코비쉴드(Covishield)라는 저가보급형 코로나 백신을 수억개나 생산하여 판매하면서 전세계적으로도 유명해진 제약회사이다. 그는 런던 고급 주택가인 메이페어(Mayfair)에서 저택을 렌트했는데, 그의 낙점을 받은 부동산은 면적이 2만 5,000스퀘어피트(약 2,323제곱미터)에 달하는 조지아풍의 대저택이었다. 메이페어는 버킹엄 궁전과 하이드파크의 중간에 위치한, 런던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주택가다. 1주일에 무려 6만 9,000달러라는 렌트비를 내며 임차한 저택은 인근에서도 가장 넓은 집인 것으로 알려졌다. 메이페어 지역은 영국 귀족들의 터전이었는데, 이 지역에 소재하는 총 227개의 주택 중에 무려 117개가 공작이니 후작이니 하는 귀족 작위를 가진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2024년 1월, 아다르 푸나왈라가 부동산과 관련하여 다시 한번 인도 사람들이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2023년 12월에 인도혈청연구소의 영국 자회사 명의로 무려 1억 3,800만 파운드(약 2,310억원)을 들여 자신이 렌트했던 바로 그 고급맨션을 결국 사들였다는게 뒤늦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2023년 중 런던에서 거래된 부동산으로는 최고가였으며, 유사 이래로도 두 번째로 비싼 부동산 거래라고 영국 신문들도 대서특필했다. 게다가 2023년 중에 푸나왈라의 뒤를 잇는 두 번째 고가 부동산 역시 인도의 재벌그룹인 에사르 그룹(Essar Group)의 소유주인 루이아(Ruia) 가족에게 매각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마디로 인도의 갑부들이 런던의 고급 부동산을 쇼핑하듯이 사들이고 있다.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영국이나 아일랜드 등의 국적도 보유하고 있는 인도의 억만장자들에게 어찌 보면 런던과 그 인근의 부동산은 매력적인 투자처이자 가장 먼저 발길이 닿는 목적지일 것이다. 200여 년이 넘는 영국의 식민지 시절을 견뎌내고 이제 빠른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는 인도 경제가 탄생시킨 억만장자들이 과거 대영제국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런던에, 그것도 귀족들이나 살던 고급 주택가에 소재한 부동산을 별다른 고민 없이 사들이는 모습은 달라진 두 나라의 경제적 위상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이해해도 될 듯하다. 머슴이 돈 모아서 주인집의 땅과 건물을 사들이는 모습이라고 표현하면 너무 지나칠까?
하지만, 인도인들의 영국 부동산 매입은 현지인들과 크고 작은 마찰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암바니 일가의 스토크파크 재개발이 대표적인 예이다. 유서깊은 스토크파크를 개인 사유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를 보란 듯이 무시하고 암바니 일가가 시설을 독점적으로 사용 중이다. 그 와중에 재개발 허가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2년 가까이 제멋대로 공사를 진행했고 기존회원과 주민들을 내쫒기까지 했으니 뒷말이 안나올 수가 없다.
인도에는 'sense of entitlement'라는 표현이 있다. 우리말로 옮기자면 선민의식 내지는 특권의식이라 할 수 있는데, 인도 부유층과 권력층 특유의 삐뚤어진 선민의식이 워낙에 유별나다 보니 이를 일컫는 말까지 만들어진 것이다. 웬만한 규칙은 가볍게 무시하고 자신들이 법과 규칙 보다 위에 존재한다고 믿으며 멋대로 행동하는 모양새를 말한다. 인도 경제가 급격하게 발전하면서 인도의 부유층이 여러 가지 이유로 선진국에 정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해외 정착이 늘어나면서 인도 국내에서의 거리낌없던 행태를 외국에 나가서도 그대로 행한다는 비판과 우려가 인도는 물론 해외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인도인들은 자신들의 ‘유연한’ 행동양식을 비판하는 선진국의 언론과 여론에 대해서 ‘인종차별적인 태도’라고 되받아치거나 ‘식민주의적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라고 날선 반응을 보인다. 영국인들의 인도인들에 대한 비판도 일리가 있고, 인도인들의 영국에 대한 반발도 일리가 있는거 같다...
진실은 그 중간 어디쯤에 있을거 같다. ///
* 이 글은 일부 편집을 거쳐 딴지일보에도 게재되었습니다.
https://www.ddanzi.com/ddanziNews/7958473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