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려지지 않은 해외원조의 세계.. 일본과 인도의 독특한 관계
요새 1, 2년 사이에 인도가 많은 분야에서 일등을 하고 있다. 세계 제1의 인구 대국으로 올라섰고, 세계 최초로 달의 남극에 무인 우주선을 착륙시키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포춘 500대 기업 중에서 인도인이 수장을 맡고 있는 기업이 수십 개를 넘어선지 오래이고 해외에서 유학하고 있는 유학생들은 발에 걸리고 채이는 인도인 교수들과 유학생들에 둘러싸여 있다. 그 뿐 아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세계 최고(最古)의 민주주의 국가(영국, 리시수낙 총리),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인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 그리고 세계 최강의 민주주의 국가(미국,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의 최고 권력층에는 모두 인도계가 앉아있다.
이렇게 인도가 많은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데, 뜻밖의 분야(?)에서도 꾸준하게 1등을 달리고 있다. 바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공적개발원조(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를 받은 나라라는 점이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자면 그리 뜻밖의 이야기는 아니다. 수십년간 수억 명의 인구가 절대빈곤에 시달려 왔으며, 지금도 1인당 국민소득이 2,500달러 내외에 머물고 있으니 이런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조를 받아온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인도가 받아온 원조에 특별한 이야기는 없을까?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해외원조 커뮤니티의 속 이야기, 그리고 그 속에서 일본과 인도가 얼마나 독특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일단, 공적개발원조는 어떤 자금인지부터 간단한 설명이 필요하다. 쉽게 말하자면 형편이 좀 넉넉한 나라의 정부가 자국민의 세금을 재원으로 형편이 좀 어려운 나라의 정부 또는 민간부문에 빈곤퇴치나 경제개발의 목적으로 제공해주는 대출, 무상원조, 각종 기술협력 및 교육 등을 말한다. 공적개발 목적으로 제공되는 원조는 보통 매우 낮은 금리에 매우 긴 대출기간 동안 제공되어 개발도상국의 이자와 원금 상환부담을 대폭 낮춰주거나, 아예 이자와 원금을 상환받지 않고 무상으로 원조되기도 한다. 이자와 원금을 갚아야 하는 원조를 통칭해서 유상원조, 그렇지 않은 경우를 무상원조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이 유상원조를,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무상원조를 담당하는 대표적인 기관이다.
[# 1] 전 세계에서는 얼마나 많은 원조가 지원되나?
전 세계에서 얼마나 많은 공적원조가 개발도상국에 지원되고 있을까? 그리고 그중에서 인도는 얼마나 많은 원조를 받아왔을까? 우선 전 세계 선진국들은 1년 동안 얼마나 많은 원조를 제공하고 있는지부터 살펴보자. 2022년이 가장 최근 통계인데 그 규모는 연간 2,760억 달러(약 360조원) 규모이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가 공적개발원조 규모를 집계하기 시작한 것이 1960년부터인데, 그 때부터 2022년까지 제공된 공적개발원조를 모두 단순합산하면 그 규모는 자그마치 4조 8천억 달러(약 6,240조원)에 이르게 된다. 물가인상을 고려하지 않은 단순합산이니 현재의 화폐가치로 환원한다면 실제 규모는 더 늘어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막대한 규모의 원조가 매년 제공되다 보니 원조와 관련한 자율적 규제의 목적으로 경제개발협력기구 내에 개발원조위원회(Development Assistance Committee)가 구성되어 있고, 현재 32개 회원(우리나라 등 31개 주요 선진국 및 유럽연합(EU))이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다.
그렇다면 왜 이다지도 많은 돈을 원조하는 것일까? 선진국 국민과 정부 모두 마음이 비단결처럼 착해서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아무 조건 없이 돈을 선뜻 내주는 것일까? 아니면 그 뒤에 뭔가 숨겨진 의도가 있는 것일까? 주요 공여국들이 개도국의 빈곤탈출 이외에도 나름대로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원조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1980년대 초반의 연구에서 밝혀진 바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은 군사외교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60년대와 70년대에 이집트와 이스라엘에 전체 원조의 1/3을 쏟아부었고, 프랑스는 같은 시기에 자신들의 과거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국가에 원조를 집중했다. 이들 나라에 남아 있는 프랑스 기업들을 간접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후의 후속 연구들을 종합해보면 선진 공여국들은 대략 3개 정도의 그룹으로 분류할 수 있다. 우선, 미국이나 프랑스처럼 자신들의 군사/외교적 목적 또는 식민지 관리 등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원조를 사용하는 그룹들이 있다. 둘째로, 일본이나 우리나라처럼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원조를 제공하는 그룹들이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우리나라가 가장 많이 해외직접투자(FDI)를 실시한 베트남에 가장 많은 규모의 해외원조를 제공해왔다. 베트남에 진출한 다양한 우리기업들의 활동과 영업을 간접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셋째로, 스웨덴이나 덴마크 같은 북유럽 국가들이 독특한 그룹을 형성한다. 그들은 영국이나 프랑스와는 달리 거대한 식민지를 경영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미국과 같은 강대국과는 달리 군사외교적 목적을 관철시킬 필요도 없는 나라들이다. 이들은 주로 이타적이고 인도적인 원조를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 즉 아프리카 등지에 집중하고 있다. 1960년 이후 주요 대륙별 원조 수원 규모를 살펴보면 아래의 그림과 같은데, 역시나 개발도상국이 많이 소재하고 있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에 원조가 집중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2] 인도에는 얼마나 많은 원조가 지원되었나?
그렇다면 인도에는 얼마나 많은 원조가 제공되었을까? 1960년 이후 현재까지 개발도상국에 제공된 전체 원조 중에서 인도가 1,736억 달러(3.6%)를 받으면서 당당한 1위를 차지했고, 그 뒤에 이집트(2.9%), 시리아(2.2%), 방글라데시(2.2%) 등이 있다. 공적개발원조의 큰 형님격이라 할 수 있는 세계은행(World Bank)은 전 세계 국가를 소득 수준에 따라 4개의 큰 그룹으로 나누고 이중 소득이 낮은 3개의 그룹에 속하는 약 140개 국가를 원조대상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단순 계산하자면 나라 하나당 전체 원조규모의 약 0.7%(1/140개국)씩 돌아가야 하지만, 수원국의 인구나 경제 규모, 수원국이 갖는 지정학적 중요성 등이 고려되어 이렇게 한 나라에 3.6%나 되는 원조가 몰리게 된 것이다.
위의 그림이 말해주지 못하는 숨은 이야기를 몇 개 해야만 한다. 첫째, 원조를 주는 원조공여국들이야 까다로운 기준을 정해놓고는 군사원조처럼 공적개발원조에 해당하지 않는 원조를 OECD에 보고하는 통계자료에서 빼네마네 호들갑을 떨겠지만, 원조를 받는 입장에서야 솔직히 자신들이 받는 원조가 OECD 원조 통계에 포함되던 말던 알 바 아니다. 살상 무기가 되었던, 돈이 되었던, 식량이 되었던 자국한테 이익이 된다면야 못 받을게 뭐가 있겠는가? 실제로, 인도는 위의 그림에서 보여지는 것보다 훨썬 많은 원조를 주로 러시아로부터 받아왔다. 분야는 주로 군사 및 원자력 분야였다. 빈곤퇴치와 경제개발에 사용되는 ‘공적개발원조’로만 한정하여 취합한 위의 그림으로는 잡아내지 못하는 ‘좀 더 넓은 의미의 원조’ 형태라 하겠다.
둘째로, 아시아 개발은행(ADB)의 가장 대표적인 지원방식인 시장금리기반(Market rate based) 대출은 위의 통계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상업은행의 대출금리보다는 확실히 저렴하기 때문에 인도 정부가 1년에 30억 달러 이상 도입하고 있고 인도 경제 발전에도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이 또한 위의 그림이 잡아내지 못하는 정보라고 하겠다. 참고로, <그림 3>에서 보듯이 전 세계 개도국을 대상으로 할 경우 단일 공여국 중에서 가장 많은 원조를 제공한 나라는 미국(8,124억 달러), 일본(4,932억 달러), 독일(4,190억 달러)의 순서이다.
[# 3] 가장 규모가 큰 공여 주체는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 그리고...
인도에 가장 많은 원조를 지원하는 공여국 또는 공여기관은 어디일까? 독자분들도 눈치채셨겠지만 바로 앞에서 언급한 아시아개발은행(Asia Development Bank)이 매년 30억-35억불 가량을 지원하면서 1등을 달리고 있다. 아시아 개발은행은 아시아 국가의 빈곤퇴치와 경제개발을 위해 만들어진 국제기구이다 보니 인도와 같은 아시아 개도국에 지원을 집중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겠다. 2023년중에 아시아개발은행 뉴델리 사무소 고위층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가 들려준 이야기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에 따르면 아시아개발은행 내부에서 ‘과거 30년 동안 아시아 개발은행의 제1고객은 중국이었지만 앞으로 미래 30년 동안 제1고객은 인도가 될 것이다’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현재도 아시아개발은행은 뉴델리 사무소에는 무려 100여명에 달하는 전문가들이 근무 중이다. 아시아개발은행이 해외 사무소 중 가장 큰 규모이다. 아시아개발은행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수년 안에 지금 현재 고용 규모와 유사한 규모를 추가로 고용할 계획이다. 현재 건물 바로 옆에 똑같은 규모의 빌딩을 짓기로 인도 정부와 이미 이야기를 끝냈고 건축허가까지 다 받아놓았단다. 한마디로 아시아개발은행이 작심하고 인도에 돈을 쏟아붓기로 한 것이다.
아시아개발은행과 비슷하거나 조금 작은 규모의 원조를 세계은행(World Bank)도 매년 인도에 지원하고 있다. 아시아 개발은행(ADB)은 Asia Dam and Buildings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인프라 개발에 집중하고 있지만, WB는 인프라 건설 뿐만 아니라 공중보건,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아시아개발은행과 유사한 규모를 고용하고 있으며, 뉴델리 시가지 한복판에 있는 힌두스탄 빌딩에 멋지게 자리잡고 있는데 뉴델리에서도 가장 임대료가 비싸고 멋진 건물이기도 하다.
한 가지만 더 첨언하자면 2023년 7월, 인도 출신 미국인인 아제이 방가(Ajay Banga) 전(前) 마스터카드 회장이 세계은행의 총재로 취임했다. 개발도상국의 빈곤퇴치를 책임지는 여러 국제기구 중 가장 큰 형님격인 세계은행의 총재 자리에도 이제는 인도 출신 인사가 앉게 된 것이다. ADB(매년 약 30억-35억 달러) 및 World Bank(매년 약 30억 달러)와 더불어 단일 국가로서 인도에 가장 많은 원조를 주는 나라는 어디일까? ADB 및 World Bank와 더불어 인도에 대한 해외원조를 이끄는 삼두마차라고 봐도 무방한 그 문제적 남자, 아니 문제적 나라는 바로 일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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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이 인도를 서서히 잠식해 가는 방법..(2)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