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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비와 호지의 아빠 Aug 10. 2024

인도 양궁팀이 한국감독을 황당경질한 뒷 이야기

도대체 왜 인도양궁팀은 파리 올림픽에서 한국인 감독 뒤통수를 쳤나

올림픽이 막 시작되던 지난 7월 20일을 전후하여 프랑스 파리에서 조금은 어이없는 소식이 하나 전해졌다. 인도 양궁 대표팀 총감독을 지난 2년간 맡고 있던 백웅기 감독이 올림픽 양궁경기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뉴스였다. 더욱더 황당했던 것은 백 감독도 모르게 프랑스에서 인도로 돌아갈 비행기표까지 이미 발권된 상태였다는 점이다.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거였다. 당연히 심한 모욕감을 느낀 백 감독은 인도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우리나라 언론과 몇몇 유튜버들은 인도양궁협회 고위층 인사와 친했던 물리치료사가 '지인찬스'를 써서 출입증을 빼앗는 바람에 백웅기 감독이 출입증을 받지 못했다는 주장을 폈는데, 사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이다. 사실, 백감독의 황당한 퇴출에 문제의 물리치료사보다 더 주도적 역할을 한 인물들이 있었다. 또한, 그들 뒤에는 이런 갈등이 나타날 수 밖에 없었던 인도 체육계의 씁쓸한 현실도 숨겨져 있다. 우리나라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이야기들을 다뤄보자. 




[# 1] 정말로 물리치료사에게 출입증을 주려고 백웅기 감독을 배제시켰나?


백웅기 감독에게 왜 입장권이 배정되지 않았는지 그 내막을 한번 자세히 알아보자. 이번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인도 양궁대표팀에 배정된 출입증은 총 4장이었다. 이중 2장은 경기장에 선수와 함께 입장할 수 있는 공식 출입증(Full-fledged Accreditation Card)이었고, 나머지 2장은 선수촌에는 입장할 수 있지만 경기장에는 입장할 수 없는 일일 출입증(Daily Pass)이었다. 한마디로 반쪽짜리 출입증이었다.


인도 양궁협회는 여성팀 코치인 푸르니마 마하토(Purnima Mahato)와 남성팀 코치인 소남 체링부티아(Sonam Tshering Bhutia)에게 공식 출입증을, 물리치료사와 심리치료사에게 각각 일일 출입증을 줬다. 경기장까지 선수들을 동행할 수 있는 공식출입증이 2장밖에 없다보니 백웅기 총감독을 제외하고 남성팀과 여성팀 코치를 포함시킨 것이다. 따라서, 물리치료사를 포함시키기 위해서 백웅기 감독을 제외했다는 일부 한국 언론의 보도는 정확하지 않다. 오히려 두명의 코치 즉, 푸르니마 마하토와 소남 체링 부티아에게 출입증을 주기위해 백 감독을 제외시켰다고 보는게 정확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들 2명이 출입증을 받아가게 된 걸까?


왼쪽부터 백웅기 감독, 디피카 쿠마리, 푸르니마 마하토


인도양궁협회 고위관계자는 인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인도양궁협회는 인도 올림픽위원회(Indian Olympic Association)에게 총 3장의 공식 출입증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다른 종목과의 형평성을 생각할 수 밖에 없었던 인도올림픽위원회는 공식출입증을 2개로 제한하였다. 양궁협회 관계자는 '일일 출입증을 하나 더 받을 수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경기장까지 동행할 수 없는 일일 출입증을 백웅기 감독이 받아봤자 쓸모가 없을 것이라 판단했다.'라고 밝혔다.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는 예상하다시피 파벌 때문이다. 인도와 같은 개발도상국에서 비인기종목인 양궁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대기업이나 정부의 후원이 꼭 필요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번 인도 양궁팀의 남자 선수들은 모두 인도육군체육부대(Army Sports Institute) 소속 군인이고, 소남 체링부티아가 이들의 코치이다. 여자 선수들은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인도 재벌기업인 타타그룹이 운영하는 타타양궁아카데미(Tata Archery Academy)에 소속되어 있다. 이들을 오랫동안 지도한 코치는 누구일까? 예상했다시피 푸르니마 마하토이다.




[# 2] 스승과 제자가 줄줄이 '국민훈장'을 받았다...


푸르니마 마하토는 1990년대 인도 양궁팀에서 리커브 선수로 활약했다. 올림픽은 고사하고 아시안 게임에서도 메달을 딴 경험은 없지만 다양한 국내외 대회에서 이러저런 메달을 획득하는데에는 성공했다. 그녀는 1998년까지 인도 국가대표팀에서 활약을 했고, 2000년부터는 인도 국가대표팀 및 타타양궁아카데미에서 양궁지도자로서 제2의 인생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올림픽 대표팀을 본격적으로 이끌기 시작한 것이 이미 2008년 베이징 올림픽부터였다. 이쯤 되면 인도 양궁계에서 고인물 중의 고인물이다. 


인도 정부는 1985년 탁월한 체육지도자을 격려하기 위해 드로나차리야 어워드(Dronacharya award)을 제정했다. 지금까지 40년 동안 전 체육 종목을 통털어 140명이 조금 넘는 지도자들이 수상했으니 인도의 체육지도자로서는 그야말로 궁극의 상이라 할 수 있겠다. 2013년 마하토 코치는 여성 양궁인으로서는 최초로 이 상을 받았다. 더 나아가 금년 봄에는 인도의 민간인이 받을 수 있는 네번째로 높은 훈장인 파드마 슈리(Padma Shri, 파드마는 산스크리트어로 연꽃이라는 뜻)를 받았다. 교육, 문화, 예술, 체육 등 그야말로 모든 분야를 통털이 주는 상이니 인도에서는 위세가 제법 센 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민간인이 받을 수 있는 영예인 국민훈장의 서열은 각각 무궁화장, 모란장, 동백장, 목력장, 석류장이 있다. 굳이 비유하자면 마하토는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은 셈이다.) 


백웅기 감독 대신 마하토와 체링부티아를 포함시키는데에 선수들도 동의했다는 사실을 인도양궁협회가 힘주어 강조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마하토 코치는 이번 파리올림픽에서 여자팀은 물론 혼성팀 경기도 이끌면서 인도 양궁의 숨은 실력자가 누군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마하토가 인도 양궁 커뮤니티에서 가진 영향력이 워낙에 막강하다보니 선수들 입장에서도 조금만 있으면 떠날 소대장(백웅기 감독)보다는 내무반 생활을 계속 같이 해야할 내무반장(마하토)의 편을 들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마하토 코치가 파드마 슈리 상을 수상하고 있다.


마하토 코치는 그 동안 여러 선수들을 발굴하고 육성했는데 그 중에는 현재 인도에서 가장 유명한 리커브 양궁 대표인 디피카 쿠마리(Deepika Kumari) 선수가 있다. 2010년 광저우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여성단체전에서 동메달도 획득하고 2021년에는 잠시 전세계 랭킹 1위에 오르기도 했었다. 디피카 쿠마리는 스승인 마하토 코치보다 8년이나 앞선 2016년에 파드마 슈리 상을 받았다. 누가 봐도 푸르니마 마하토로부터 이어지는 인도 여자 양궁의 적통을 이어받을 후계자이다. 마하토 코치가 지금 한창 잘나가는 병장이라면 쿠마리 선수는 조만간 완장을 물려받을 기세등등한 상병쯤 된다고 보면 되겠다. 쿠마리 선수가 이번 퇴출사태에서 백 감독 편에 섰을지 마하토 코치 편에 섰을지는 안봐도 비디오이다. 인도양궁협회의 고위 관계자가 인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에둘러 표현했듯이, 이번 백웅기 감독 퇴출 사태에는 이렇게 육군체육부대나 특정 양궁 아카데미를 기반으로하는 체육계 인맥 그리고, 자신들의 선수 생명을 보존하려면 그러한 인맥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현역선수들의 부화뇌동이 가장 큰 원인이다.




[# 3] 대기업과 정치인, 그리고 외국인 코치를 배척하는 알력까지 버무려진 혼돈의 카오스


자 그렇다면 우리나라 언론에 '백감독 퇴출의 원흉'으로 잘못 알려진 문제의 물리치료사 이야기를 좀 해보자. 이 사람 역시 문제점 투성이이다. 이름은 아르빈드 야다브(Arvind Yadav)이고, 2013년 9월부터 인도 양궁협회(Archery Association of India, AAI)에서 물리치료사로 활동해오고 있다. 문제는 이 물리치료사가 과거에 벌인 행적이 상당히 께름찍하다는 거다. 지난해 11월 아일랜드에서 세계청소년양궁대회가 열렸다. 야다브는 이 대회에도 물리치료사 자격으로 참여했는데, 대회 도중에 캐나다팀 소속 미성년자 선수에게 소셜미디어를 통해 '부적절한 접근(inappropiate approach)'을 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자국 선수의 신고를 받은 캐나다 양궁협회는 세계양궁연맹(World Archery Federation)에 공식 항의를 했고, 세계양궁연맹은 인도양궁협회에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인도양궁협회는 야다브의 행동이 그저 평범한 인사('normal hi')에 불과하므로 그를 징계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인도양궁협회는 물론 인도 체육회(Sports Authority of India) 소속 물리치료사도 활동해 오며 다양한 체육계 인사 및 관련 공무원과 축적한 네트워크 덕분에 면죄부를 받았다고 합리적 의심을 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인도양궁협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인물은 비렌드라 사츠데바(Virendra Sachdeva)라는 인물로 인도집권여당인 BJP의 뉴델리 시당 위원장이다. 야다브에 대한 징계가 유야무야된 데에는 인도양궁협회 사무총장인 사츠데바를 포함한 야다브의 인맥이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로, 뉴델리 주정부는 야당인 AAP가 정권을 잡고 있어서 BJP가 뉴델리 주의회 내에서는 야당이지만, 중앙정치판으로 눈길을 돌려보면 BJP는 인도 연방정부를 이끄는 강력한 여당이다. 대충 우리나라로 비유하자면 국민의힘 서울시당위원장 쯤 되는 인물이라고 보면 되겠다. 물리치료사 야다브가 사츠데바와 같은 유력 정치인과 언제부터 친밀한 관계를 구축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쳬육계 및 정계와도 폭넓은 네트워크를 가진 마당발 물리치료사가 집권 여당의 델리 시당 책임자와 인맥을 쌓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물리치료사가 인도 양궁대표팀에 도움이 되기는 한 걸까? 인도 언론의 취재를 종합해보면 야다브가 인도 양궁협회에 오랜 동안 근무한 것은 사실이나, 이번 파리 올림픽 대표단의 훈련에 본격적으로 합류한 것은 불과 3개월 전이라고 한다. 그런데 야다브가 이렇게 막판에 대표팀에 올라타는 실력은 꽤 오래전부터 갖춘 듯 하다.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도 야다브가 올림픽 개회 직전에 뒷문을 통해 대표단에 합류(back-door entry)하면서 문제를 일으켰다는 것을 다수의 양궁인들이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을 둘러싼 구설수가 커지는 동안 파리에 도착한 야다브는 양궁 대표팀 코칭스태프들과 파리시내를 거니는 모습을 찍은 인스타그램 릴스를 업로드하는 등 한가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결론적으로, 한국인 감독까지 영입해가면서 메달 획득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파리 올림픽에서 인도 양궁팀은 이렇게 노메달의 굴욕을 안고 쓸쓸하게 귀국길에 오르게 되었다. 지난번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인도는 컴파운드 종목에서 무려 5개의 금메달을 땄고 우리나라는 리커브 종목에서 4개의 금메달에 그쳤다. 메달 숫자만 보면 인도가 우리나라를 제친 셈이다. 이렇다 보니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리커브 종목에서도 메달은 문제 없다'며 인도 특유의 설레발을 시전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노메달의 수모가 누구 탓인지를 놓고 자기들끼리 탓을 하고 있다. 누구는 디피카 쿠마리 같은 선수가 실제 실력에 비해 지나치게 고평가되었으니 젊고 실력있는 선수로 교체해야 된다고 인터넷 상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다른 누군가는 한국 코치를 내쫒은 인도에게는 당연한 인과응보(karma of India for kicking out Korean coach)라는 가시돋힌 댓글도 달았다.


대충 다 어느정도는 맞는 말인듯 하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근본원인을 한마디로 줄여서 말하자면 인도와 같은 개발도상국에서 비인기종목이 겪어야 하는 부조리가 드러난 사태라 할 수 있다. 정부나 대기업의 지원에 의존해야 하는 현실은 우리나라나 인도나 비슷하다. 하지만, 제한된 재원을 놓고 내부자들끼리 공정한 경쟁을 펼치기 보다는 정치권과 권력자에게 줄을 대고 파벌을 만들면 어떤 결말을 맺는지를 인도는 보여주었다. 그리고, 자신이 구축한 아성이 외부에서 굴러들어온 돌에 의해서 위협받을 때에는 보일듯 말듯 조용하지만 치밀하게 그 굴러온 돌을 제거하는 수완도 갖춰야 한다는 슬픈 현실도 보여줬다. 그 와중에 우직하고 성실하게 자신이 가진 기술을 쏟아부었던 애꿎은 외국인 코치는 제대로 된 항변 한번 못하고 귀국행 비행기를 타게 된 것이다. 그게 이번 사태의 본질이다.


사족 : 인도와 완벽하게 다른 행태를 보인 나라는 프랑스이다. 한국인 감독을 영입하고 그의 훈련 방법을 묵묵히 따른 덕분에 남자 단체전 은메달, 여자 개인전 동메달을 따냈다. 제대로 된 실업팀도 없는 불모지에서 고등학생까지 긁어모아 만들어진 팀이 2년간 한국 감독의 훈련을 받아 이루어낸 기적이었다. 반면, 인도는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남녀 혼성 단체 부문에서 4위를 한 것이 2004년 이후 20년간 최고 성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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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약간의 편집을 거쳐 딴지일보에도 게재되었습니다.

https://www.ddanzi.com/ddanziNews/816839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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