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비와 호지의 아빠 Aug 23. 2024

의대 가려고 너는 무슨 짓까지 해봤니?

의대를 지망하는 입시생은 조직폭력배와 무슨 연관이 있는걸까?

수험생을 둔 우리나라 학부모에게는 올해 상반기에 지루하게 계속된 의대 정원 확대 논란이 초미의 관심사였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의대 정원은 확대되었고, 올해가 의대에 들어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한 수험생이 제법 많았던 것 같다. 재수생과 삼수생은 물론 직장인 N수생까지 대치동을 기웃거린다는 뉴스가 나왔다. 


인도에서도 의대는 인기 만점이다. 투입 시간과 학비를 봤을 때 가성비가 가장 좋은 공대가 단연 1등이지만, 의대도 이에 못지않게 인기가 많다. 인도에서는 공대나 의대에 가려면 아예 별도의 수능을 치러야 한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인도공과대학(IIT)과 같은 유명 공대를 가려면 JEE(Joint Entrance Exam)라 불리는 시험을 봐야 한다. 최종 합격률은 대충 2% 정도. 의대를 가려면 ‘NEET UG’(National Eligibility cum Entrance Test-Undergraduate)이라고 불리는 시험을 봐야 하는데 1년에 무려 240만 명이 응시한다. 인도 전체에 흩어져 있는 약 9만 2천 개의 자리(정부 병원 부속 의과대학 입학정원은 약 4.8만 명, 민간 병원 부속 의과대학은 약 4.4만 명)를 놓고 벌이는 합격률 3.8%의 무시무시한 시험이다. 


지난 5월 초, 인도 전역에 흩어진 600여 개 도시의 약 4,700개 고사장에서 시험이 치러졌는데, 시험문제 유출 스캔들이 터지면서 인도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오늘은 인도 북서부의 구자라트(Gujarat)주로 가보자.




[# 1] 인도 전역에서 시험문제 유출 사건이 터지다   


구자라트주의 고드라(Godhra)에는 자이 잘라람 스쿨(Jay Jalaram School)이라는 유명 사립학교가 있다. 올해 5월 여기도 NEET 시험 고사장으로 선정되어 시험이 치러졌지만, 시험은 시작된 지 1시간도 되지 않아 중단되었다. 조직적 문제 유출이 발각되었기 때문이다.


NEET 시험문제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게 된 Jay Jalaram School의 전경


경찰이 밝힌 시험지 유출 계획은 단순하지만, 상당히 조직적이었다. 우선, 수험생은 자기가 확실하게 아는 문제만 OMR 답안지에 마킹하고 제출한다. 오답을 적을 경우 점수를 감점하기 때문이었다. 시험이 종료된 후 뇌물을 건넨 학생들의 답안지를 몰래 빼돌려 빈칸에 정답을 채워 넣는 일에는 유명 학원의 ‘일타 강사’들과 그들의 조교들이 동원될 예정이었다. 마지막으로 빈틈없이 정답을 마킹한 OMR 답안지를 채점이 시작되기 전에 다시 원래 있던 자리에 끼워 넣는 데에는 뇌물을 받은 자이잘라람 스쿨의 교사들이 나설 예정이었다.


수험생 1인당 뇌물 금액은 무려 100만 루피(우리나라 돈으로 약 1,500만 원). 이 돈은 자이 잘라람 스쿨이 사립 입시기관(인도판 ‘족집게 학원’) 및 NEET 시험 감독관과 나눠 먹을 예정이었다. 결국 자이 잘라람 스쿨의 교장과 이사장, 입시학원 원장, NEET 시험 감독관 등 6명이 줄줄이 체포되었다.


그런데, NEET 문제 유출은 고드라에서만 일어난 특별한 사건이 아니었다. 고드라에서 1,500km 동쪽에 위치한 비하르(Bihar)주의 파트나(Patna)에서 사용된 방식은 좀 더 대담했다. 우선, 시험 당일 오전에 동네에서 제법 힘깨나 쓰는 조직 폭력배들이 고사장에 난입해 감독관들에게 겁을 준 다음, 시험을 보고 있던 학생 중 수십 명을 고사장에서 빼내어 비밀 장소로 데려왔다. 이 학생들의 부모는 우리나라 돈으로 수천만 원을 폭력 조직에 미리 지불한 상태였다.


조직 폭력배들은 미리 입수한 답안지를 학생들에게 나눠줬고 학생들은 재빨리 답을 외우기만 하면 되었다. 다른 수험생과 감독관이 버젓이 두 눈을 뜨고 보고 있는데도 시험 중간에 소수의 수험생을 데리고 나왔다가 시험 종료 전에 다시 재입실시키겠다는 대담한 계획이 가능했던 것은 산지브 무키야(Sanjiv Mukhiya)라는 이름의 기세등등한 조직 폭력배가 이 모든 계획의 배후였기 때문이다.


인도 하이데라바드에서 NEET 시험문제 유출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석한 학생들의 모습(출처 : India Today) 


더욱더 가관이었던 것은 이 조직 폭력배의 아내는 지역의 유력 정치인이었다. 이 부부의 아들은 이미 과거에 시험지 유출 사건에 연루되어 복역 중이었다. 아내의 정치적 영향력과 남편의 위세를 이용해서 시험지 유출로 온 가족이 먹고사는 그야말로 ‘가족 사업’을 일군 것이다. 사법부까지도 이들 가족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비하르 지방법원은 ‘경찰의 영장에 산지브 무키야의 이름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라는 이유를 들어서 보석을 허가했다.


파트나에서 또 다른 시험지 유출 사건도 있었다. 현지 경찰은 2024년 5월, 아누락 야다브(Anurag Yadav)라는 학생을 포함한 4명의 수험생과 시험지 유출에 가담한 3명의 관계자를 체포했다. 이 수험생은 경찰에 붙잡힌 후 자기 삼촌이 시험 전날 자신을 불러내 시험지와 답안지를 건네주었다고 순순히 자백했다. 건네받은 문제가 그다음 날 글자 하나 안 바뀌고 그대로 출제되었다고도 진술했다.


경찰의 추가 조사 결과, 이 수험생 가족은 우리나라 돈으로 약 4,500만 원(300만 루피)을 뇌물로 건넸다. 수천만 원의 뇌물이 오고 갔지만 애초에 공부 못하는 학생의 점수를 끌어올리지는 못했다. 아누락은 720점 만점 중에서 힘겹게 185점을 받았다.




[# 2] 인도 정부가 관리하던 시험들, 줄줄이 취소


NEET UG 시험이 치러진 직후, 고드라와 파트나에서의 시험지 유출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수험생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이미 흉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리고 6월 초에 발표된 시험 결과는 여기에 기름을 들이부었다.


우선 올해 시험에서는 720점 만점을 기록한 학생이 67명이 나왔다. 최근 5년간 만점자가 연평균 두세 명 수준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수십 배 폭증한 것이다. 게다가 67명의 만점자 중 6명이 같은 시험장에서 시험을 본 것으로 밝혀졌다. 우연이라 하기에는 석연치 않았다. 약 1,500명의 수험생에게는 제대로 된 근거도 없이 추가 점수를 줬다. NEET UG 문제가 유출되었고 채점도 편파적이었다는 의혹이 들불처럼 번지자, 인도 대법원은 교육부 장관을 불러 청문회를 실시했다. 이 자리에서 교육부 장관은 '시험지가 유출되었다는 증거는 없다'라고 자신만만하게 발언했다. NEET UG 시험 결과를 번복하거나 재시험을 실시하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인도의학협의회(Indian Medical Association)는 6월 23일 기다렸다는 듯이 모디 총리와 그가 이끄는 중앙 정부의 '신속한 대응'을 찬양하는 보도자료를 냈다. 눈덩이처럼 불거지는 의혹이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그야말로 뚱딴지처럼 보도자료를 발표한 이유는 뻔했다. 의학계를 대표하는 원로들이 예비 의사와 그 가족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곤란한 상황에 처한 정부에게 아부하는 편이 이득이 될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교육부 장관의 증언과 인도의학협의회의 아부성 보도자료가 발표되던 그 시간에도, 온라인상에서는 시험문제 유출 의혹이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인도에서는 '국가수험처(National Testing Agency: NTA)'라 불리는 기관이 NEET UG를 포함한 주요 시험을 관장하고 있는데, 시험 문제 유출 의혹은 NEET UG 시험뿐만 아니라 이 기관이 관장하는 다른 시험으로도 번졌다. 상황이 이쯤 되자 결국 인도 정부도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6월 19일, 약 60여만 명이 응시하는 인문학 분야 대학교수자격시험(University Grants Commission–National Eligibility Test : UGC NET)이 취소되었고, 이틀 후에는 자연과학 분야 대학교수 자격시험(Council of Scientific and Industrial Research National Eligibility Test : CSIR NET)도 취소되었다. 6월 22일에는 의과대학 학부 졸업생들이 응시하는 의과대학원 입학시험(NEET PG)도 연기되었다. 인도 교육부 장관이 대법원에 출석해서 '아무 문제 없어요'라고 증언하던 바로 그 시간에 인도에서 가장 중요한 전국 단위 시험 4개가 줄줄이 연기되거나 취소된 것이다. 인도의 연방수사국인 CBI(Central Bureau of Investigation)가 조사에 나섰고, 결국 NTA의 수장은 옷을 벗었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인도 북중부에 있는 우타르 프라데시 경찰은 6월 22일 라비 아트리(Ravi Atri)라는 조직 폭력배를 체포했다. 그는 각종 자격 시험문제를 사전에 빼돌려서 이를 암호화한 후에 텔레그램이나 왓츠앱, 때로는 다크웹을 통해 유통한 범죄 조직의 수장이었다. IT의 강국답게 시험지 유출에도 첨단 IT 기술이 활용된 것이다.


고구마 줄기 캐내듯 관련 인물을 추적해 나가던 경찰은 라비 아트리와 산지브 무키야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각 지역의 토착 폭력 세력들이 거대한 산업으로 발전한 시험문제 부정 유출 비즈니스에 종사하면서 인도 전역을 가로지르는 전국적인 네트워크까지 구축해 왔다는 것이 밝혀졌다.




[# 3] 무수한 선의의 피해자들은 신음하고 있는데...


인도 수험생과 그들 가족에게는 지옥과도 같았던 2024년 6월은 그렇게 지나갔다. 그렇다면, 시험문제 유출은 올해에만 발생한 특이한 사건이었을까? 문제 유출이 전국적인 뉴스가 된 것은 올해의 일이지만, 사실 지난 7년간 인도의 15개 주에서 70여 건의 시험문제 유출 사건이 있었다. 그저 전국적인 뉴스거리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나는 인도에서 살면서 인도 정부의 급작스럽고 무지막지한 행정조치에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국가적 규모의 시험에서도 인도 정부의 과격한 행정 처리 방식은 그대로 적용되었다. 인도는 시험문제가 유출된 정황이 파악되면 해당 시험에 응시한 모든 학생의 점수를 무효로 한다. 선의의 피해자에 대한 배려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결국, 지난 7년간 70여 건의 시험이 취소되면서 무려 1억 7천만 명의 수험생들이 억울하게 점수를 받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대부분의 학생은 부정행위에 가담하지 않은 정직한 학생이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인도에서 치러지는 시험들이 하나같이 워낙 어렵다 보니 1억 7천만 명이나 되는 수험생들의 대부분이 평균 3년 이상을 수험 공부에 쏟아붓는 장수생들이다. 이들이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을 돕기 위해 수험생의 직계 가족들은 물론 일가친척이 그야말로 허리가 부러지기 직전까지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일은 인도에서는 흔한 일이다.


결국 제대로 된 일자리가 하늘의 별 따기인 인도에서는 공과대학이나 의과대학 입학시험 또는 행정고시에 온 가족이 목숨을 걸고 매달릴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막대한 인적자원과 재원이 낭비되고 있다. 비대해진 사교육 시장에서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허덕이는 동안 날이 갈수록 입시학원만 지갑을 불리는 중이다.


인도 전국적인 체인망을 보유한 Allen학원의 2021년 NEET UG 합격생 광고. 


시험문제 유출 사건이 터지면서 인도 국민들 사이에서는 울분이 섞인 여러 반응이 터져 나왔다. 정직원이 30명도 안 되는 NTA가 응시자가 240만 명이나 되는 시험을 관리한다는 게 애초부터 말이 안 된다는 의견도 있고, 중국은 대부분의 시험을 디지털화하면서 시험문제 유출을 막고 있으니 그걸 따라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수백 킬로미터를 여행해서 애써 시험장에 도착했더니 도착 당일날 시험이 취소된 사실을 알았다는 안타까운 사례도 있었다.




[# 4] 그 와중에 공무원은 무려 100만이 공석…


그중에서도 가장 아이러니한 사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인도 정부 부처에서 무려 100만 개가량의 공무원 일자리가 공석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인도 재무부 예산국(Department of Expenditure)의 2021회계연도 말 기준 통계에 따르면, 인도 중앙정부 공무원 정원은 411만 1천 명이지만 현재 현원은 311만 5천 명 수준이다. 필요한 정원 4명 중 3명만 근무하고 있는 것이다.


인도 같은 개발도상국에서 공무원은 말 그대로 모든 젊은이가 원하는 꿈의 직장이다. 그런데, 행정조직의 무능과 비효율로 인해서 엄청나게 많은 공석이 채워지지 않고 있다. 일할 사람이 부족하니 공무원 조직은 제대로 굴러가지 않고, 공무원 조직이 제대로 안 굴러가다 보니 채용 절차가 더욱 느려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한쪽에서는 헤아릴 수도 없는 많은 젊은이가 공과대학, 의과대학 그리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느라 몇 년 동안 개고생을 하고 있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100만 개나 되는 일자리가 채워지지 않고 있는 것이 인도의 ‘비현실적인 현실’이다. 그리고 이런 현실이 잘 고쳐지지 않는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부실한 인재 선발 시스템 때문이다. 툭하면 시험지가 유출되어 시험 전체가 취소되기를 밥 먹듯이 하고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그 자리를 채울 수 있을까? 인력을 제대로 선발하고 양성하는 시스템이 인도에 정착하는 날이 오는 것은 아직은 요원하기만 한 것 같다.


///


* 이 글은 일부 편집을 거쳐 딴지일보에도 게재되었습니다.

https://www.ddanzi.com/ddanziNews/818103138


매거진의 이전글 인도 양궁팀이 한국감독을 황당경질한 뒷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