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학교에 적응하는 꿀팁 (1) : 영어(상)

영어시간에는 영어를 배우지 않아요... '영어로 된 문학'을 배워요...

글을 시작하면서....


지금까지도 그래 왔고 앞으로도 제 브런치에는 저희 가족들이 이 나라 저 나라에서 살았던 주재원 생활을 소재로 한 글을 주로 올릴 겁니다. 하지만, 틈틈이 국제학교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한국 학생과 그 가족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될만한 좀 실용적인(?) 글도 올리고자 합니다. 국제학교 적응에 어려워하는 한국 학생들을 종종 목격한 두 딸이 저의 이 아이디어를 적극 응원해주었고 이 글의 상당 부분을 수정해줬습니다.


외국은 물론 국내에 있는 국제학교에 관심 있는 독자님들에게도 흥미 있는 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국제학교에 관한 글은 일주일에 한편 정도 올리는걸 제 스스로의 목표로 정했습니다. 독자님들 반응이 좋으면 아래의 목차에 추가해서 몇 꼭지 더 쓸 생각도 있습니다. 만약 반응이 별로이면 조용히 중간에 덮으렵니다... 제가 좀 소심하거든요..^_^;)


“국제학교에 적응하는 꿀팁” 글 쓰는 순서


1. 영어 : 학생들을 가장 괴롭히는 바로 그 과목(상)

2. 영어 : 학생들을 가장 괴롭히는 바로 그 과목(하)

3. 역사 : 연도와 이름을 안 외우면 그럼 뭘 해요?

4. 수학과 과학 : 답만 맞춰서는 소용없어요

5. 예체능, 클럽활동, 학생회 활동 등등...

6.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거운 학교생활

7. 국제학교 적응 꿀팁(1) : 출국이 결정되고...

8. 국제학교 적응 꿀팁(2) : 출국을 앞두고...

9. 국제학교 적응 꿀팁(3) : 입학 후 첫 한 달 적응

10. Epilogue : 못다 한 이야기들..


대략 이 정도로 목차를 생각하고 글쓰기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1) 영어 : 학생들을 가장 괴롭히는 바로 그 과목(상)


매번 학기 초가 되면 누군가는 한국으로 귀국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새롭게 전학 온다. 첫째 딸 호비와 둘째 딸 호지가 다니는 국제학교에도 매 학기마다 수십 명의 한국 학생들이 밀물과 썰물처럼 드나든다. 이중 몇몇은 이미 해외에서 학창 시절을 경험한 친구들이지만 상당수의 아이들은 처음으로 한국을 떠나 낯선 외국학교에 두려움과 설렘을 갖고 들어서게 된다.


처음 해외에 나오는 경우라 하더라도 나이가 좀 어려서 초등 과정으로 전학 오는 친구들은 그나마 조금 어려움이 덜한 듯하다. 하지만, 중등 또는 고등학교 과정 중에 처음으로 외국에 나오는 한국 학생들의 경우에는 상황이 사뭇 다르다.


2021년 봄방학이 시작되었던 어느 저녁 식탁에서 첫째 딸 호비와 둘째 딸 호지가 지금 재학 중인 미국계 학교에 처음 전학 와서 겪었던 크고 작은 충격과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한참을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나도 살짝 호기심이 발동했다.


"뭐가 그렇게 어려웠는지 말해줄래? 아빠가 글로 한번 잘 정리해볼게.

혹시 알아? 너희들의 경험이 다른 한국 학생과 학부모님들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잖아."




[# 1] 읽고 또 읽는다.


한국에서 전학 온 학생들, 좀 더 범위를 넓혀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들을 가장 괴롭히는 과목을 꼽으라면 두말할 필요 없이 영어다. 왜 그리도 영어가 힘든 걸까? 단순히 어휘력 부족 때문일까? 그렇다면, 단어만 엄청나게 외워 오면 국제학교 영어 수업에 적응할 수 있을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7년의 기간 동안 아이들을 프랑스 학교(2014년 ~ 2019년)와 미국 학교(2020년 이후)에 보낸 경험으로 감히 주제넘게 진단해보자면 좀 더 근본적인 문제는 어휘력 부족보다 훨씬 큰 것 같다. 한국의 교육현장과 외국의 교육현장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이야 많겠지만, 막상 교육을 받아야 하는 학생의 입장에서 맞닥뜨리는 현실적 어려움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프랑스 학교와 미국 학교 모두 정말 많이 읽고 정말 많이 쓰기 때문에 힘든 것 같다.


호비와 호지가 지금 다니는 학교의 예를 들어보자.


일단, 영어시간에 읽어야 할 문학 작품의 종류나 분량이 만만치 않다. 메소포타미아 전설인 길가메시 이야기부터 셰익스피어의 희곡, 근대 소설과 시에 이르기까지 문학의 모든 분야가 망라되어 있다. 게다가 설렁설렁 읽어서도 안된다. 줄거리 파악은 물론, 등장인물과 상황에 대한 꼼꼼한 분석, 사용된 각종 문학적 도구(literary device) 등도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기본적으로 이해해야 할 문학적 도구만 해도 simile(직유), metaphor(은유), personification(의인화)처럼 대충 뭔지 알 수 있는 것부터 alliteration(두운), anaphora(수어 반복)부터 시작해서 zoomorphism(한국어로 뭐라 번역되는지도 모르겠다)까지 한국말로 된 설명을 읽어도 한 번에 잘 이해되지 않는 것까지 다종 다양하다.




[# 2] 쓰고 또 쓴다.


문학 작품 원문은 물론이고 문학적 도구의 개념에도 채 익숙해지기도 전에 한국 학생들을 괴롭히는 거대한 장애물, 바로 에세이에 맞닥뜨리게 된다. 그런데, 그냥 에세이가 아니다. 제대로 된 문학비평 에세이를 써야 하는 것이다. 그 작품의 모티브는 무엇이었으며, 주제는 무엇이었고, 작가는 어떠어떠한 문학적 도구를 사용했는지부터 찾아야 한다.


그러한 문학적 도구들이 저자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데 어떻게 이바지하였는지, 작품 내의 주요한 문장들을 정확하게 인용해가며 똑떨어지는 문학비평을 써야 한다. 에세이의 구성이 엉성하거나 담긴 내용이 부실하다 싶으면 선생님으로부터 가차 없는 피드백이 날아온다. 조금 과장을 보태 정말 읽고 쓰는 거에 목숨 건 듯했다.


게다가 각 단계별로 정해진 날짜까지 지켜야 한다. 처음에는 글의 뼈대를 작성해서 제출하고, 이후에는 초고를, 그리고 이후에는 완성된 에세이를 제출한 후 다시 선생님의 추가 의견을 받고 다시 고치는 작업을 정해진 제출기한에 맞춰 수차례 반복하는 것이다. 한국어로도 제대로 된 문학비평 에세이를 써본 적이 없는 한국 학생들에게는 정말 진이 빠질 노릇이다.




[# 3] 영어시간에는 영어를 가르치지 않는다.


"무슨 영문법도 좀 가르쳐주고 그럴 줄 알았거든.

근데, 그런 것 하나도 없이 갑자기 로미오와 줄리엣이랑 셰익스피어의 시를 던져주시더라고.

그러고는 읽고 나서 에세이 쓰라는 거야.

와.. 정말 막막해서 죽는 줄 알았다니까."


그렇다. 국제학교의 영어시간에는 영어를 가르치지 않는다. 영어로 쓰인 '문학'을 가르친다. 이 학교로 전학 오기 전 6년 동안 프랑스 학교를 다니면서 호비는 이미 영어 시간에 셰익스피어의 희곡 작품을 몇 편 공부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셰익스피어는 어려웠던 모양이다. 하긴, 원어민 아이들도 셰익스피어라면 일단 고개부터 절레절레 흔든다고 하니 호비 같은 외국인에게는 어땠을까?


굳이 비유하자면 유튜브나 학교 수업에서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고 "비티에쓰, 싸랑해요”를 외치며 한국말을 잘한다고 착각했던 외국 고등학생이, 어느 날 갑자기 서울 한복판에 있는 고등학교로 전학 와서 허균의 '홍길동전'과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을 읽고 문학비평 에세이를 쓰라는 숙제를 받은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나마 좀 다행인 점은 대부분의 선생님이 아이들의 숙제를 매 단계마다 비교적 꼼꼼하게 읽고 적절한 도움을 준다는 점이었다. 시간 약속을 정하고 면담하려는 적극적인 학생, 이메일로 꾸준히 아이디어를 구하는 학생들을 선생님들은 귀찮아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런 학생들에게는 더욱더 많은 도움과 아이디어를 주고 계셨다.


한마디로 의욕을 갖고 시간을 더 투자하는 학생들이 더 많은 것을 얻어가고 그렇지 않은 학생은 도태되는 실로 무서운 부익부 빈익빈의 구조였다. 회화 능력이 부족하고 쭈뼛쭈뼛하는 한국 학생들은 여기서 이중으로 불리한 상황에 처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질문에 즉답을 주시는 것은 아닌 듯했다. 대부분의 경우 "You are almost there. Keep working hard."라며 더욱더 많이 고민할 것을 독려하곤 했다. '위대한 갯츠비'를 읽고 에세이를 완성하고 나더니 진이 빠지다 못해 넋이 나간 첫째 딸 호비는 "영어 선생님들은 정말 학생들을 달달 볶는데 일가견이 있으신 거 같애."라며 혀를 내둘렀다.


* "국제학교에 적응하는 꿀팁 (2) : 영어(하)" 편으로 이어집니다.


* 사진 출처 : 글쓴이가 직접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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