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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비와 호지의 아빠 Sep 24. 2021

파리에서 경험한 크고 작은 범죄들

이러저러한 생활형 범죄가 참 많았어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간 파리에 거주하면서 겪은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단연코 3건의 연쇄 테러였다. 2015년 1월 7일에 발생한 샤를리 엡도 총격사건(12명 사망, 10명 부상), 2015년 11월 13일에 벌어진 바타클랑 극장 테러를 포함한 7건의 동시다발 테러 사건(최소 100명 사망) 그리고 2016년 7월 14일에 발생한 니스 화물차 테러(86명 사망, 458명 부상)는 각각의 사건 하나하나가 우리 가족에게는 물론 프랑스 사회 전체에도 큰 충격을 안겨줬다. 테러 사건이 하나씩 발생할 때마다 파리 시내 곳곳의 경비는 점점 더 삼엄해져 갔고, 우리 가족들의 생활도 조금씩 더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3년 동안 우리 가족은 물론, 다른 한국인들을 가장 짜증 나게 만들었던 것은 크고 작은 생활형 범죄들이었다. 서점에 책을 사러 들어가면서 쇠줄로 튼튼하게 묶어 놓은 큰 아이의 씽씽이(scooter)가 깜쪽같이 사라진 적도 있었고, 아파트 안에 있는 공용 창고에 잘 모셔놓은 자전거가 귀신도 모르게 사라져 버린 경우도 있었다.




파리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지하철에 탔던 날.


열대여섯 살 될까 말까 한 여자아이가 대놓고 내 주머니를 더듬으며 지갑을 훔치려 하고 있었다. 나를 포위한 비슷한 또래의 두세 명은 보나마나 한패거리였다. 나와 눈이 뻔히 마주쳤는데도 불구하고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뻔뻔한 아이들... 하도 어이가 없어 나는 영어로 소리를 질렀고, 나와 동행했던 일행(한국인)은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로 욕 한 사발을 선사하셨다(^_^;). 결국 그 아이들은 한발 물러섰다. 그리고, 비웃음인지 경멸인지 모를 웃음을 남기고 유유히 지하철에서 내리던 그 여자아이들은 동구권 악센트가 심하게 섞인 영어로 우리 일행을 향해 소리쳤다.


"Go back to f***ing China"


마치 '나도 영어로 욕할 줄 알아'라고 시위하듯이 말이다.


파리 시내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소매치기들은 주로 동구권에서 온 13, 14세 내외의 아이들이었다. 이들은 프랑스 경찰에 체포되어 봤자 하룻밤 정도 유치장에서 지낸 후 곧바로 방면되곤 했다. 형법상 미성년자이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나는 파리에서 지하철을 탈 때마다 지갑을 포함한 귀중품은 모두 윗옷 속주머니에 넣고 지하철에서 내릴 때까지 팔짱을 끼고 있는 습관이 생겼다.




내 주위에도 비슷하거나 더 심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한국인 친구나 동료가 당한 피해사례만 해도 족히 대여섯 개는 된다.


지하철 안에서 넋 놓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다가 순식간에 핸드폰을 강탈당한 이야기,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서 공원에 산책 나갔다가 핸드폰 빼앗긴 이야기(유모차 때문에 쫓아가지도 못하고 소리만 질렀단다), 월요일 아침 아무 생각 없이 차에 시동을 걸면서 '오늘따라 차 안이 시원하네'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밤 사이에 누군가 차의 뒷 유리창을 홀라당 깨고는 차를 싹 털어간 것이었다는 역대급 차량털이범 이야기, 여름휴가를 마치고 사무실에 출근했더니 사무실 책상에 보관중이던 소액의 현금을 누군가가 깔끔하게 훔쳐갔다는 이야기 등등...


내 아내 역시 평일날 호비와 호지를 데리고 외출했다가 트로카데로 지하철역에서 네댓 명의 여성 소매치기단에게 포위당하는 봉변을 당했었다. 호비와 호지는 겁에 질려서 멀찌감치 도망가버렸고, 아내 혼자서 손에 들고 있던 우산을 휘두르며 비명을 질러대자 소매치기들이 물러났다고 한다. 집에 돌아온 아내는 자기를 버리고 도망간 두 아이들에게 눈을 흘겼고, 두 아이들 역시 '너무 무서워서 나도 모르게 도망간 거란 말이야'라며 멋쩍은 변명을 했다.


2004년 역내 국가 간 자유로운 통행을 보장하는 쉥겐 조약이 동구권 국가까지 확대되면서 동구권 출신 범죄조직이 프랑스를 포함한 주요 관광도시에 활발하게 진출하였고, 그 이후 유럽 주요 도시의 생활치안은 급격하게 안 좋아졌다. 게다가 동양인은 현금을 많이 소지하고 다닌다는 소문 때문에 한국인들(주재원이든 관광객이든)도 끊임없이 이들의 목표물이 되는 짜증스러운 생활을 견뎌야만 했다.

  



가끔은 조금 위험한 상황도 발생하곤 했었다. 샤를르 드골 공항에서 파리 시내로 연결되는 광역철도(RER)는 공항과 시내를 연결하는 거의 유일한 대중교통수단이었다. 하지만, RER역에서는 물론이고 차량 안에서도 심심찮게 소매치기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에 내가 직접 회사차량을 몰고 가서 한국에서 출장 온 출장자들을 픽업해서 데려오곤 했었다. 하지만, 공항과 시내를 연결하는 A1 고속도로 역시 안전하지는 않았다. 항상 파리 시내 북부의 생드니 근처에서 교통 체증에 걸리곤 했는데, 그때마다 (이번에도 역시 13, 14세 정도 되는 아이들이 떼로 나타나) 차량의 유리창을 벽돌로 깬 후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운전자나 동승자의 금품을 탈취해가는 사건도 종종 일어나곤 했다. 내가 파리에 도착하기 전에도 이미 우리 회사 직원뿐만 아니라, 다른 한국 회사 직원도 이런 차량 퍽치기를 당했었다.


파리 생활 2년차였던 2015년 어느 날.


그날도 어김없이 파리로 출장 온 회사 직원을 공항에서 픽업해 파리 시내로 들어오는데, 생드니 근처에서 또다시 교통체증에 걸리고 말았다. 잠시 딴 생각하면서 운전대를 붙잡고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뒤에 있던 차량이 하이빔을 켜면서 클락션을 세차게 울리는 게 아닌가? 무심코 뒤를 돌아보는 순간, 나는 조수석 유리창에 얼굴을 들이밀고 차 안을 유심히 살펴보던 낯선 얼굴과 눈이 마주치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10대 청소년 한 명이 차량 퍽치기 범행을 저지르려고 우리 차량 내부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조수석에 타고 있던 출장자(여성분이었다)는 그야말로 혼비백산해서 제대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있었다.


뒤 차를 운전하던 착한 사마리아인의 기지 덕분에 차량 털이범은 후다닥 몸을 피했고, 우리는 안전하게 파리 시내에 들어올 수 있었다. 깜짝 놀란 출장자도 안심시킬 겸 비교적 늦게까지 영업하는 한식당을 일부러 찾아가 늦은 저녁도 대접했다. 낯선 나라에 출장 오자마자 이런 황당한 일을 겪었으니 얼마나 놀랐을까?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는 출장자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서 온갖 우스개 소리와, 파리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았지만 저녁 식사 내내 그녀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음식에 손도 제대로 대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안쓰럽고, 또 한편으로는 미안한 저녁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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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 by Sebatian Gabriel on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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