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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비와 호지의 아빠 Sep 13. 2021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에 한국에서는 그랜저로 답한다면..

성(castel) 한 채 정도는 갖고 있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오늘은 한번 대놓고 속물적인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한다. 바로 부동산 이야기이다.


몇 년 전 TV 광고에서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질문에 그랜저로 답했다는 광고가 있었다. '성공'이라는 세속적 가치를 더욱더 세속적인 물질적 소유로 단순화시킨 것도 모자라, 아예 특정 브랜드 자동차의 소유 여부가 곧 성공 여부라고 단정 짓는 단순하고도 유치한 스토리텔링에 손발이 오그라들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되풀이해서 그 광고에 노출되다 보니, '부자=그랜저'라는 반복적인 메시지에 나도 모르게 수긍하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그 광고가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꽤 오랜 기간 축적된 해당 브랜드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찰떡같이 잘 활용한 성공적인 광고였던 것 같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온 세상 사람들이 더 이상 그랜저 이야기는 하지 않고 대신에 가상화폐, 부동산 그리고 주식 이야기만 하고 있는 듯하다. 사무실 동료끼리 나누는 이야기도 뻔하다. '미국 주식 ETF에 투자해서 얼마를 벌었네', '비트코인으로 재미 봤다가 지금은 원금도 날렸네', '몇 년 전에 대출 끼고 샀던 강남의 아파트가 얼마 올랐네'...


이제, 미국 주식, 비트코인, 강남 아파트, 이 셋 중에 어느 하나라도 안 가지고 있으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내지는 ‘성공 못한 사람'으로 취급되는 시대가 되었다. 물론, 이 셋을 다 가진 사람이 혹시 있다면(그리고, 강남 아파트에 주택담보 대출마저 없다면), 정말 이 시대를 대표하는 성공의 화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몇 년 전 그랜저 광고를 지금 다시 찍는다면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질문의 '강남 아파트로 답했다'라고 바꿔야 할 것 같다.




기왕 부동산 이야기 나온 김에 조금만 더 이야기를 해보자.


우리나라에서는 강남에 아파트 한채 정도는 갖고 있어야 성공한 사람이라면, 프랑스나 인도에서는 뭘 갖고 있어야 소위 '성공한 사람' 내지는 '금수저' 축에 드는 걸까? '소유한 부동산을 기준으로 성공한 사람 또는 금수저를 나눠본다면 어떤 기준일까?'를 혼자서 생각은 해봤지만 차마 현지인들에게 대놓고 묻지는 못했다. 하지만, 프랑스와 인도에 살면서 개인적으로 체감한 '느낌적 느낌'이라면... 프랑스에서는 '성(castle)', 인도에서는 팜하우스(farm house)'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 같다.


디즈니 영화 시작할 때 화면으로만 보던 게 성(castle)이었는데, 프랑스에 체류하는 동안 현지인이 소유한 성에 두 번 정도 초대받아 방문한 적이 있다. 첫 번째 초대받은 곳은 호비와 호지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쳐주시던 선생님이 소유한 성이었다.


그 분은, 방의 개수만 해도 10개, 큰 식당(dining hall)과 뾰족탑까지 있는 자신의 성을 프랑스에서는 흔하디 흔한 '작은 성'이라고 소개한 후, 성에 도착하자마자 그 위용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는 우리 식구들을 성 안으로 안내해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먼지 뽀얀 비포장 도로 끝이라는 의외의 장소에 서있었기에 우리 가족이 좀더 놀랬던 것 같기도 하다. 자신의 증조부가 골동품 거래를 통해 상당히 많은 재산을 모은 후 그중 일부를 투자해서 1800년대 후반에 매입한 성이라는 설명을 듣고는 '이 사람들은 아파트가 아니라 성에 부동산 투자를 하는건가?'라는 쌩뚱맞은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두 번째 방문은 프랑스 중부의 리모쥬라는 도시에서 우연히 이루어졌다. 우리 가족이 프랑스 남부 여행을 마치고 파리로 돌아가던 길에 하룻밤 쉬기 위해 들른 캠핑장... 진입로부터 여느 캠핑장과는 달리 고풍스럽고 블링블링한 분위기가 느껴지더니만 진입로 끝에 웅장하게 서 있는 중세식 고성을 발견한 우리는 저절로 탄성을 터뜨렸었다.


알고 보니 그 캠핑장의 주인 양반이 그 멋진 성의 '성주'였다. 서양 사람들만 가득한 캠핑장에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우리 가족을 자기 성에 초대해 이곳저곳 친절하게 구경시켜 주었다. 성 입구에 놓여있던 그 아저씨 소유의 2대의 클래식 오픈카와 캠핑장 구석에서 자유롭게 뛰어다니던 여러 마리의 사슴 무리까지... '역시 인심은 곳간에서 나오는 것인가 보다' 싶을 정도로 클래스가 다른 부자를 본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인도에 도착한 직후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현지인 친구를 만나거나 사귈 기회도 자연스럽게 없어졌다. 하지만, 이 사람 저 사람으로부터 전해 들은 이곳 현지 금수저들 이야기들 중에서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다. 혹시라도, 국제학교에 같이 재학 중인 인도인 친구의 생일파티에 초대받아 갔다가 엄청난 규모의 대저택에 놀라고, 그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domestic helper) 숫자에 놀랐다면 그곳은 '팜하우스(farm house)'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실제, 다수의 인도 부유층들은 뉴델리 시내에 이른바 '팜하우스(farm house)'를 갖고 있는데, 이름만 듣고 순진하게 '주말 농장' 수준으로 생각했다가는 큰 오산이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막장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재벌가 대저택 정도라고 생각해야 가장 정확하다. (Google에서 'farm house in New Delhi'로 이미지 검색 한번 해 보시면 느낌이 올 것이다.) 집사와 보모, 가정부와 청소부, 요리사에 운전기사는 기본으로 있다 보니, 종업원수를 기준으로 보자면 거의 웬만한 중소기업급인 팜하우스도 적지 않다. 이쯤 되면 생일파티 다음날부터 그 인도인 친구가 나와는 다른 세계, 아니 다른 우주에 속한 존재라는 게 실감 나게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잘 지내냐?'는 친구의 물음에 몇 년 전에는 그랜저로 답했고, 지금은 '아이고, 꼴랑 한 채 있는 강남 아파트에 웬 놈의 세금을 이렇게 매기는지 모르겠네'라는 속 보이는(^_^:) 신세 한탄으로 대답한다면... 아마도, 프랑스 사람들이나 인도 사람들은 똑같은 질문에 '어이구, 내 성(castle) 유지하느라 일 년에 만 유로가 넘게 들어가..' 내지는 '팜 하우스에 있는 종업원 10명 유지하느라 힘들어..'라고 대답하지 않을까라는 약간은 엉뚱한 상상을 한번 해봤다.


이런 상상하면서 '나도 성 한채, 팜 하우스 한채 있을 정도로 부자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 안 해봤다면 물론 거짓말이다. 회사에서 주는 예산 한도에 딱 맞춰서 월세집 구해서 3, 4년 머물러 살다가 다시 귀국해서는 신도시에 있는 코딱지만한 아파트로(3대가 공덕을 쌓지 않았다면 그나마 전세일 가능성이 높다) 돌아가야 되는 주재원 입장에서는 물론 언감생심이지만..


뭐, 상상이야 한번 해볼 수 있는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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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 by Jonas Jaeken on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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