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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스타트업 아카이빙

마음가짐 - 어둠 속 작은 불빛을 찾아서

by Bean

평범하고 겁 많은, 한국의 작은 마을에서 살고 있던 한 고등학교 소녀가 날고 기는 유능한 인재들 가득한 스타트업 정글에서 활동하게 된 것에는 작지만 큰 빅뱅의 순간이 있었다.


내 안에 잠자던 나를 깨운 시간


나는 고등학교 때 논술 입시를 접하고, 철학을 더 깊이 배우게 되면서 당시 고3 수험생이라면 응당 해야 하는 대학입시에 대해서 깊은 반감을 가졌다.

그렇게 방황하던 어느 날 지금까지도 인생에 가장 큰 역할을 해주는 친구와 어느 가을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깜깜한 밤 커다랗게 뜬 보름달을 보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텅 빈 운동장에서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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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 너무 하기 싫다. 수능도 빨리 끝나버렸으면 좋겠어. 뭐 때문에 이렇게 공부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너는 어때?"


"그렇긴 해. 나도 얼마 전에 내가 왜 이렇게 힘든 수험생 생활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서.. 집중도 안되고 힘든 마음 좀 달래 보려고 절에 가서 기도드리는데, 내가 근심이 많아 보였는지 스님이 어떻게 지내느냐고 안부를 물어봐 주시더라고. 그러다가 스님과 나눈 이야기가 있어. 한번 들어봐."


스님이 나에게 물어보셨어.

”너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느냐."

그래서 나는 대답했지.

”고3 수험생이라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죠..”

그런데 스님이 "좋은 대학을 가면 무엇을 하겠느냐?"라고 물으셨고, 나는 ”당연히 좋은 직장을 가져야 하겠죠.”라고 대답했어.

그러자 "좋은 직장을 가지면 그다음은 무엇을 하겠느냐?"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 잘해야겠죠?"

"그렇구나. 그럼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 목표가 될 것이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서 자식을 잘 키우는 것을 목표로 살게 되겠구나."

"그다음은 무엇이냐?"

"자식을 잘 키워야 하겠죠?"

"네 자식이 좋은 대학 좋은 직장 또 좋은 결혼을 하기를 바라겠구나."

"그것이 진짜 네가 원하는 삶인 것 같으냐."

나는 대답하지 못했어.

그러자 스님께서는 "결국 너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모르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


"그래서 내가 얼마나 우매하게 끝없는 허망함을 쫓고, 그걸로 힘겨워하면서 살고 있는지 깨닫게 해 주셨지."


"아...!"


future-4022722_1920.jpg 타인이 세운 기준에 휩싸여 무한한 힘겨움을 느끼는 우리


정말이지 그 얘기를 친구로부터 들었던 그날 나는 18세 인생에서 가장 큰 충격을 받았다.

갑자기 좋은 대학이 필요 없다니 마치 인생의 목표를 잃은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동시에 어마어마한 인생의 새로운 기회를 얻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럼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수험생이기 때문에 공부를 해야 한다는 의무보다 인간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내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한시라도 빨리 깨닫지 않으면 위험해질 것 같았다.


그래서 이튿날부터 우리 반에 전교에서 한자릿수 상위 권에 있던 친구들에게 쉬는 시간마다 찾아가서 물어봤다. 너는 이 공부를 왜 하고 있느냐고. 어쩌면 당연한 대답이었지만 나를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이상하게 쳐다보며 ‘당연히 좋은 대학 가야지’라고 답했다.

그런데 그 대답을 들은 후 나는 더 이상하게도 우월감이 들었다. 그들은 나보다 문제지 안의 답을 완벽에 가깝게 잘 찾지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나만의 답을 찾지 못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남들이 정한 기준이 아닌 내가 세운 기준에 대해서 오래 고민하며 대단하지 않더라도 스스로가 인정하며 세워야 한다는 인생의 진리를 발견하고, 크게 들떠 있던 나의 고등학교 시절이 가끔씩 나에게 대화를 건넬 때가 있다. 새로운 깨달음의 기대감으로 부풀어 있던 그때의 나에게 10년이 훌쩍 넘게 지난 지금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이야기해주고 싶다.


그리고 다시 한번 에드워드 카의 명언을 마음속에 새겨본다.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 사이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History is a continuous process of interaction between the historian and his facts, an unending dialogue between the present and the past).


어제의 깨달음을 얻은 '나'와 오늘의 실천을 하는 '나'의 대화 속에서 나는 과연 어떤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일까?

부디 찬란한 내 청춘의 시간을 바치고 있는 '스타트업'이라는 과정을 통해 배우고, 부서지고, 다시 앞으로 나아갔던 일들이 대화 나누며 기록되기를 바라고 그것을 통해 내가 성장하고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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