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써야만 하는 이유
지난 12월 말에 브런치 글을 쓴 뒤로 한 달이 넘어서야 비로소 글을 쓰게 됐다. 2025년 새해가 밝자마자 “올해는 꾸준히 글을 쓰자!”라고 마음먹었지만, 어느새 2월이 되어서도 첫 글을 발행하지 못했다. 설날이 지나야 진정한 새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이미 설날도 일주일이 지났다.
그렇다고 전혀 글과 담을 쌓은 건 아니다. 떠오르는 생각들을 간단히 메모하며 ‘글감’이라는 메모장에 차곡차곡 쌓아두곤 했다. 하지만 그 글감을 한 편의 글로 옮기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어렵다’기보다는 ‘미뤘다’에 더 가깝다. 그러던 중 롱블랙의 아티클 하나를 읽고, 내가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를 깨닫게 됐다.
<이모개 : 10을 준비하고 9를 버려라, 천만 영화 촬영감독이 선 넘는 법>에서다.
“현장에선 기획한 것 10개 중에 9개가 허탕이에요. 그래서 제가 가장 많이 하는 게 버리기예요. 현장에 가면 가장 먼저 뭘 버릴지부터 생각해요. 그래야 문제가 안 생겨요. ‘내가 다 버려도 이건 버리지 말아야지’ 하는 딱 하나만 기억하면 돼요.”
이 문장을 보는 순간, “아, 내가 버릴 용기가 없어서 글을 쓰지 못하고 있구나!” 하고 깨달았다. 그래서 무언가를 버리지 못해 글쓰기를 주저했던 이야기를 글로 써보기로 했다.
나는 글을 쓸 때마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글을 쓰는 과정을 굳이 요약하자면 이렇다.
글감 폴더에 쌓아두었던 아이디어 중 하나를 고른다.
일단 생각나는 대로 쭉 써본다.
다 쓴 뒤 이리저리 보며 수정을 시작한다.
수정이 반복되면 지치곤 한다.
그 상태로 글을 잠시(or 오래) 방치해 둔다.
시간이 흐른 후 다시 수정하려고 열어본다.
마음에 들지 않아 대부분 문장을 지우고, 다시 쓴다.
그래도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지만 “이 정도면 됐다”라고 생각하며 발행 버튼을 누른다.(이러다는 영영 밖으로 내놓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발행된 글을 다시 봤을 때, 종종 오탈자를 발견해 수정한다.
전체적으로 아쉬워도 일단 그 상태로 둔다.
“완성했다”는 만족감에 취해 또다시 글쓰기를 미루게 된다.
그렇게 쓰다 보면 글이 짧아질 때도 있고, 다시 채우다가 다시 지우기도 한다. 사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날은 1월 25일이었다. 1월 25일부터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잠시 멀어지는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까지 왔다. 이 과정이 힘들다고 느껴지지만, 글쓰기를 꾸준히 하지 않으면 더 오래 걸린다는 것도 안다. 문제는 이 ‘버리기’ 과정이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글을 쓰며 힘든 건 쓴 문장을 지우는 일 자체가 아니다. 쓴 문장을 버리면, 그 문장을 쓰느라 들인 시간도 함께 버린 것처럼 느껴진다. 나름 고민하고 노력해 쓴 글이 결국엔 내 마음에 들지 않아 통째로 지워질 때, “이 시간을 그냥 허비했나?”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글쓰기는 점점 미루고, 어느새 나는 글에서 멀어져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하지만 쓰던 글을 다시 꺼내 읽어보면, 내가 버리려고 했던 문장들이 새로운 관점으로 이어지곤 한다. 그 시간마저 완전히 사라지진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순간, ‘버린 줄 알았던 문장이 또 다른 글의 시작이 될 수도 있겠구나’라는 희망이 생겼다.
(최근에는 내가 쓰고 있는 글에서 문장을 지워야 할 때는 한번 고민하고, 혹시나 나중에 다시 쓸 것 같은 문장은 맨 아래에 빼둔다. 마음이 가는 문장들은 언젠간 다시 쓰게 된다.)
결국 글쓰기에 쓴 시간은 절대 버려지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오히려 “내가 쓰지 않는 시간”이야말로 진짜 버리는 시간이었다. 글을 다듬거나 지우는 시간이 아무리 길어져도,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은 내 안에 남는다. “시간을 버린다”는 두려움이 오히려 나를 글에서 멀어지게 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내가 피아노를 잘 칠 때쯤이면 몇 살이 되는지 알기나 하세요?”
“물론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것을 배우지 않아도 그 나이를 먹는 건 마찬가지죠.”
— <아티스트웨이> 중에서
이 말처럼, 글을 쓰는 데 드는 시간도 마찬가지다. 결국 글을 쓰든 안 쓰든 시간은 흘러간다. 그렇다면 차라리 글을 쓰면서 시간을 ‘채워’ 가는 게 더 값진 일이 아닐까. 내가 써온 문장과 버린 문장들이 결국 나에게 계속 쌓여갈 테니.
롱블랙 아티클 덕분에, “글쓰기가 두렵다”는 마음을 담은 이 글을 결국 완성하고 있다. 사실 그동안도 ‘써야겠다’고 다짐만 하고 메모로 남기곤 했는데, 이번에는 글을 마무리해 보자는 의지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글을 쓰지 못하는 두려움'에 대해서 글을 쓰면서 스스로 '극복'하고 싶었나 보다. 결국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또 써진다. 지금 이 문장을 쓰면서도 일단 처음 다 쓴 글을 보면 어떤 문장들은 버려야 할 수도 있을 거다. 그럼에도 무언가는 남지 않겠는가.
나 역시 글을 쓰면서 두려움을 조금씩 극복하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쓰는 두려움에 대해 글을 쓰는 또 다른 이유는, 나와 같은 두려움을 안고 있는 누군가에게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해서다. 나에게 무언가를 시작할 때는 항상 '계기'가 필요했다. 내게 ‘계기’는 한 잔의 커피, 짧은 여행, 영화 한 편이 될 수도 있었다. 그 작은 계기를 발판 삼아 새로운 도전을 해왔다. 이번 글을 쓸 수 있게 된 계기는 '롱블랙 아티클'이었던 것처럼, 이 글이 누군가에게 글을 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누군가 이 글을 보고 노트북을 열거나 펜을 잡았으면 좋겠다. 두려워도 괜찮다. 일단 써보는 거다. 오늘 마음에 들지 않아도, 내일 더 나은 글이 나올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배우는 건 결국 그대로 남으니까.
“쓴 글을 버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글을 쓰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오늘 내가 쓴 문장이 내일은 사라질지라도, 그 시간이 쌓여 더 단단한 이야기를 만들어줄 거라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두렵다면,
그래도 일단 써보자.
그 한 문장이
다음 걸음을 위한 ‘계기’가 될지 어떻게 알겠는가.
ps.
이번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왠지 하루 만에 완성하고 발행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1월 25일부터 쓰기 시작해서, 2월 9일이 되어서야 발행을 하게 되었다. 그래도 버릴 것을 각오하고 글을 쓰니, 어떻게든 써진다. 당연히 버려야 하는(다음에 쓸) 문장이 있었다. 이번에도 그런 문장들을 아래로 빼두었는데, 그 문장이 다음 글의 주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