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을 보기 위해 넷플릭스를 선택한 사람이 적지 않을 정도로, 2017년도 공개된 후부터 꾸준히 넷플릭스의 골수팬을 만든 작품이다. 나조차도 다양한 SNS에서 이 작품 추천을 보고 넷플릭스 동지들을 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넷플릭스를 놓지 못하는 이유 또한 이 작품이 되었다. 내 사랑 앤과 떨어질 수 없기 때문에!
동명의 원작 소설은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거다. 원작을 읽지 않았더라도, 가볍게 각색된 그림동화 등으로 거의 모두가 접해보았을 작품일 것이다. 우리 집에는 명작동화의 원작 소설이 딱 두 개 있는데 그게 빨간 머리 앤과 키다리 아저씨다. 지금 생각해보면 취향이 참 유구하다. 소녀의 성장담은 나에게 언제나 최고의 장르다.
현재 넷플릭스의 Anne with an E는 시즌 3까지 올라와 있다. 워낙에 긴 내용을 담다 보니 이번 리뷰는 나눠서 올려보려고 한다. 너무나 사랑하는 앤, 이 이야기를 소개하는 것이 감격스러울 정도로, 정말로 잘 만든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끝에 e가 붙은 앤
한국어로는 그냥 빨간 머리 앤으로 번역되었지만, 나는 드라마 원제인 Anne with an E가 조금 더 마음이 간다. 고아인 앤의 삶은 망가진 캐리어와 천가방 하나에 다 담긴다. 무언가를 가지는 건 앤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앤은 아무런 대가 없는 것을 소유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 예를 들면 길가에 핀 꽃이나, 아름다운 풍경, 가득히 들어오는 햇살 같은, 지극히 모두에게 평등한 것들이다. 앤의 이름은 앤이 직접 고른 것이다. 앤 이라는 이름은 고르지 못했지만, 소녀는 철자 e 하나로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 된 것처럼 느낀다. 자기가 아는 끝에 e가 붙은 앤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앤이 가진 유일하고도 소중한 것이다.
이 드라마를 주변 사람들에게 영업하면서, 첫 2화를 넘기기가 너무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이 시리즈가 가진 유일한 단점이다. 진입장벽이 다소 높다는 것. 다른 에피소드에 비해 시즌 1의 1화는 러닝 타임이 거의 두배나 길다. 또, 2화까지의 내용이 다소 우울하고 날카롭다. 이건 앤의 이야기를 조금 더 귀 기울이게 된다면 사실상 당연한 것이다. 1화의 앤은 본인이 입양되었다는 사실에 뛸 듯이 기뻐하며, 자연과 e 말고도 자신이 가질 수 있는 것이 생긴다는 것에 열광한다. 과격하고 커다란 표현을 쓰는 이 여자아이는, 큰 것을 표현하려면 큰 단어를 써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드라마를 보는 우리는 초반부 앤의 정리되지 않은 생각과 표현에 거부감을 느낀다. 그건 지금까지 앤이 배워온 전부다. 앤은 누군가의 이유 없는 적의에 대처하는 법을 모르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잠시 돌아가는 길을 택하는 법도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그저 솔직하게 부딪힐 뿐이다. 앤이 보여주는 소통방식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지만, 아이에게는 인생의 전부를 함께해 온 방식이다. 에번리 마을의 사람들과 앤은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겪고, 그 과정에서 상처 받는다.
더해서 앤이 마릴라의 브로치를 훔쳤다는 오해를 받고 파양과 입양을 반복하는 모습은 더 이상 극을 보기 힘들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앤의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이 상처는 마법처럼 극복하거나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앤의 삶이 입양과 파양뿐인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에 실패와 상처가 없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앤이 주는 감동은 아이의 삶을 지켜보며 어떻게 역경을 헤쳐나가는지, 서로를 어떻게 위로하는지. 그 가운데에서 우리가 받고 싶었던 것은 무엇 일지를 고민하는 지점에 있다.
Anne with an E를 보면서 매 화 울지 않은 적이 없다. 아이의 과거에 깊게 파인 상처는 당연할 수 없는 것이다. 앤은 때때로 주변 사람들에게 고약하게 비추어지기도 한다. 걸러지지 않은 말들, 세상을 표현하는 앤의 방법은 이 조그만 마을의 사람들이 수용하기에는 너무 낯설다. 보호자인 마릴라와 매튜는 마찬가지로 어려움을 겪지만 앤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앤의 과거를 이해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앤이 그런 만큼 앤에게 이곳이 얼마나 날 서있을지를 걱정하게 된다. 이 시리즈의 가장 큰 쟁점은 앤을 둘러싼 마을의 변화에 있을 것이다. 아무도 환영하지 않던 소녀가 바꾸는 조그만 관점들은 고리타분하고 가부장적인 마을에 돌을 던진다. 그리고 서서히, 아주 조용하게 그들은 바뀌어간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은 함께 성장길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