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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도호도 Sep 16. 2022

제주도에 진짜 비건 식당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제주살이 29일차 2022년 8월 29일

여행 계획 짜는 것부터 어그러지던 혈육과의 여행은 끝내 무산되는 듯했으나... 내가 호흡곤란이 올 정도로 우는 것을 보고(https://brunch.co.kr/@hodohodo/28 지난 일기 참고) 혈육은 급하게 비행기를 예약하였다. 그렇게 우리의 첫 여행이 성사되었다. 힘들게 만난 혈육과 잘 놀으라는 건지 날씨가 너무 좋았다. 작년 5월에 친구와 제주도에 놀러 왔다가 태풍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안 좋은 추억이 있는 나는, 제주도 여행은 날씨가 10할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쾌청한 하늘이 더욱 고맙고 반가웠다.


작년엔 태풍 때문에 친구와 갈 곳이 없어 간 981 파크에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갔다. 981 파크는 실내 놀이시설도 잘 되어 있지만 실외에 있는 중력가속도 레이싱 카트가 유명하다. 뚜벅이 여행자인 우리는 981 파크에서 자체 운영하는 셔틀버스를 탔다. 일 년이 조금 지나서 다시 방문한 981 파크는 못 본 새 리뉴얼이 많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두 번째 방문에도 재미있게 놀 수 있었다. 다만 주변이 허허벌판이라 식당 선택권이 없는 게 아쉬웠다.


나의 혈육은 채식주의자(비건)라서 식당 가는데 제한이 있다. 그런데 딱 981 파크 내부에 '베지테리안'이라는 식당이 있어서 그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하지만 역시나... 대다수의 채식, 비건을 내세우는 식당들과 다를 것 없이 비건에 대한 이해가 1도 없는 식당이었다. 요즘 유행이니까 하는 느낌이 강했다. 비건은 고기는 물론이고 생선, 계란, 우유(우유로 만든 치즈, 버터, 요거트 등 유제품 포함)를 먹지 않는다. 더 철저하게 식단을 하는 사람은 벌이 만드는 꿀도 안 먹는다. 심지어는 자연적으로 떨어진 열매만 주워 먹는 걸 지향하는 프루테리언도 있다.


대학생 시절 들은 창업 수업에서 '채식주의자를 위한 레시피 공유 사이트&어플'을 주제로 과제를 한 적이 있다. 혈육이 비건이니 쉽게 쉽게 가려는 마음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래도 그때 채식에 관하여 나름 자료 조사도 하고 채식 카페에 가입하여 채식하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었다.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아서 짧은 일주일이지만 채식에 도전해 보기도 하였다. 결과적으론 쥬씨 과일주스에 들어가는 파우더에 우유 원료가 들어가는 걸 몰라서 실패했지만 말이다. 하하... (블로그 '일주일 간 채식하기' 카테고리 참고 https://m.blog.naver.com/ouogb)


일주일 간 채식 식단을 하면서 겪은 가장 큰 어려움은 아르바이트하는 곳에서 주는 밥을 마다하고 혼자서 사과랑 바나나 싸들고 다닌 게 아니었다. 동물성 재료를 제하느라 밥과 콩나물 무침, 과일만 먹는 나를 보고 "채식이 몸에 더 안 좋은 거 아시죠? 인간이 살면서 단백질을 꼭 섭취해야 하는데... 블라블라블라" 떠들어 대던 한 사람이었다.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이 무슨 밥상머리 예절일까 싶었다.


종교, 다이어트, 환경, 동물 인권, 건강 등 채식을 하는 이유는 정말 다양하다. 하지만 어떤 이유든지 채식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그렇게 먹으면서 살길 원했기 때문에 채식을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본인이 선택해서 남에게 피해 끼치지 않고 하는 일인데 그걸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사람을 직접 마주하니 정말 피곤하고 화가 나기도 하였다. 일주일만 채식을 체험하는 나도 타인과의 식사 자리가 이렇게 불편한데 남은 평생을 채식주의자로 살아가기를 선택한 사람들은 밥을 먹을 때마다 얼마나 많은 시선을 견뎌야 할까.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나 또한 꽤 오랜 시간 동안 혈육에게 그렇게 대한 게 너무 미안했다. 나는 더 잘 살고 싶어서 채식을 선택한 혈육을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정크 비건'이라며 핀잔만 주었다.


제주도에 진짜 비건 식당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나의 바람은 사실 내가 나의 가족과 어디든 맘 편히 놀러 다니고 싶다는 바람이다. 이 글은 비단 채식주의자만을 위해 쓰는 글이 아니다. 휠체어나 지팡이가 있어야지만 이동이 가능한 사람, 어린아이가 있는 사람, 한국말이 서투른 사람 등 우리 사회에서 소수로 지칭되는 모든 이들을 응원하는 글이다. 우리는 모두 어떤 기준인지에 따라 소수가 될 수 있다. 그때 소수가 아닌 척하느라 애쓰기보다 소수가 되어도, 약자가 되어도 편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싶다.



참, 이건 981 파크를 욕하려고 쓰는 글이 아니다. 나는 981 파크를 두 번 방문하면서 981 파크가 관광객은 물론이거니와 제주도민들도 즐길 수 있는 제주도의 랜드마크, 테마파크로 성장할 여력이 충분한 곳이라고 느꼈다. 내외부 놀이시설은 물론이거니와 잘 교육받은 직원들, 자연과 어우러지는 건축물도 마음에 들었다.(아무거나 잘 먹는 나에게도 밥은 정말 아니었지만 말이다. 햇반을 용기 모양 그대로 주는 건 너무 했다.)



중력가속도 레이싱보다 자율주행으로 되돌아갈 때가 더 신기하고 재미있었던 981 카트.
굉장히 흉한 자세로 게임을 하고 있는 나의 모습. 마지막 레벨을 못 깨서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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