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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do Lee Oct 03. 2021

컴퓨터 혹은 나의 죽음

갑작스러운 소멸에 대하여


바로 며칠 ,  컴퓨터가 아무런 전조도 없이 고장  버렸다. 실로 급작스런 죽음이라 외에 달리 비유할  없는 그런 사건이었다. 누군가 물어볼 것이기에 말하자면, 당연하게도 나는 그간 꾸준히 데이터를 백업해왔다. 하지만   , 내가 클라우드 백업을 하던 업체의 약관이 변경되어 어쩔  없이 백업을 클라우드에서 지우게 되었다.  주간 고민을 했다. 어떻게 다시 좋은 백업 환경을 만들 것인가. 그래, 보다 확실한 하드 백업을 위해 나는 외장하드를 구입했다.  공백기간이   그리고 바로  기간 안에 컴퓨터가 사망해 버리고 말았다. 내가 잃은 것은 20 년간 기록했던 수필들, 그리고  1 8개월간의 사진 작업이다. 사진 작업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20년간의 문서자료들이 사라진 것은 정말 충격이 크다. 마치 나라는 사람의 모든 것이 사라진 그런 기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컴퓨터의 고장에 감히 사망이라는 단어를 썼다.


어쩌면, 분명히 내가 다른 외장 하드디스크에 남겨놓은 백업이 있을 것이다. 몇 년간의 데이터는 소실될지언정 20년 이상 분량의 문서들을 깡그리 잃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작업실은 제주도고, 내 백업 하드들은 서울에 차곡차곡 쌓여있으니 아직은 희망이 있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하지만 내가 문서들을 어느 정도 복구한다고 하더라도 나에게 남은 어떤 종류의 상실이라는 큰 상처는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몇 년 전, 선배와 차를 타고 가며 이와는 조금 반대되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한 사람이 죽는다면 그 사람이 남긴 데이터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그리고 그 후 디지털 장례식이란 개념이 등장하는 것을 나는 목도했다.


이제는 내가 데이터이며 데이터가 나인 세상임이 어느 정도 받아들여지는 바, 다시 말하지만 내 컴퓨터의 급작스런 죽음에 따른 데이터 상실은 내게 지금 망연자실함을 느끼게 하고, 어떤 종류의 큰 상처를 주었다.


만약 어떤 방식으로든 데이터가 되살아난다거나 한다고 하더라도 이 강렬한 경험은 웃음으로 넘기지 못할 것 같다. 모든 것이, 아니 꽤 많은 것이 사라졌다는 것을 느낀 날, 그래도 새롭게 다시 무엇을 해야 한다고 느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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