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 맛있는 음식 하나 먹겠다고 멀리 찾아가 긴 줄까지 서 가며 기다리는데, 난 도무지 미식을 모른다. 같은 냉면집인데 그냥 내가 알던 냉면 맛, 딱 그 정도 맛이겠지. 맛있어봐야 뭐 얼마나 더 맛있을 거라고. 굳이 지루한 줄 안에 서서 안쪽을 여기랑은 다른 세상인 양 쳐다보며 혹시 나오는 사람 없나, 빈자리가 생기진 않나 눈치를 주고받는 일은 정말 조금도 내키질 않는다. 간혹 이 계절엔 뭐가 제철이라더라, 어떤 횟집에 가서 무슨 생선을 꼭 먹어야 한다느니 하는 이야기에는 사람이 원래 저렇게도 사는구나라는 생각에 신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그런 음식을 먹을 때 꼭 등장하는, 먹는 일에 쓸데없는 자부심을 부리며 훈수나 두는 사람은 혐오스럽다. 이건 불행히도 그 음식 이야기를 가장 열정적으로 하던 사람인 경우가 많다. 누구는 뭐 먹을 줄 모르네 따위의 말을 달고 사는. 먹는 방법이 따로 있나, 입에 넣고 씹으면 그게 먹는 방법이지. 혹시 그쪽은 입 말고 뭐 다른 걸로 드세요?
평소 여행을 가게 되는 경우에도 음식에 대해서는 다소 시큰둥한 편이고, 애써 한참 멀리까지 나가지 않더라도 서울 안에 유명한 맛집들도 정말 많은 걸 아는데, 음식 때문에 지하철 타러 갈 일은 아마 오랜 시간 없을 듯하다.
미식에 대한 별다른 열의가 없는 여러 이유들 중에 가장 주요한 건, 맛에 대한 쓸데없이 넓은 아량이다. 다른 건 까탈스러워도 맛에 있어서는 이렇게나 관대한 사람일 수가 없다. 어떤 종류의 음식이건 일정 수준 이상의 것이 드러내는 우월한 맛을 모르는 건 분명 아닌데, 굳이 그 경지까지 갈 생각도 없는 음식들도 충분히 맛있게 먹는다. 비싼 초밥집 연어초밥은 참 맛있지만, 롯데마트에서 파는 초밥도 난 정말로 맛있더라. 일 인분에 구천원 하는 삼겹살집 고기나, 만 원에 무한리필 되는 삼겹살집 고기나 같은 구운 고기 맛이고, 고급스러운 맛이긴 한데 양과 가격이 반비례하는 파스타나, 애슐리 런치 만 삼천구백 원 납작한 접시에 집게로 퍼다 먹는 파스타나 둘 다 그 정도면 맛있다. 고깃집에서 파는 조미료 많이 들어간 된장찌개 끓이는 법을 알고 싶다고 자주 생각하고, 김치찌개는 김치가 국산이니 중국산이니 하는 것보다 라면사리 넣어주는 게 더 중요하다.
학교 다닐 땐 그날 학식 메뉴 중에 돈까스만 있으면 행복했다. 이건 자주 느꼈지만 카레 전문점 카레나 바로 밑 편의점에서 사다 끓인 카레나 마침 그날 먹고 싶었던 카레 맛이었고, 비싼 빵집들 빵 맛있는 거 나도 잘 아는데 그렇다고 고작 그 빵 맛 때문에 멀리까지 가긴 절대 싫다. 가까운 파리바게뜨 그대로 토스트 하나 사다가 프라이팬에 구우면 버터 냄새도 좋고 참 맛있는데 왜 굳이. 편의점 도시락 살 일 있을 때마다 대기업 간 무한 경쟁이 낳아준 이 시대의 편의점 도시락들의 퀄리티가 어느 정도인지 다들 좀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한다. 수입 병맥주들 파는 맥줏집에서 여러 맥주 맛이 서로 다른 거 사실 뚜렷하게는 모르겠고, 직접 로스팅 했다는 커피나 이디야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둘 다 마실 만하다. 요새 누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 물으면 피자헛 베이컨 포테이토 피자라고 말하고 싶은데 차마 그 말은 못하겠어서 그냥 다 잘 먹는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니까.
개인의 취향이라는 큰 범주에서 미각의 영역이 허술한 건 조금은 아쉬울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먹는 일이 누구에게나 큰 즐거움인 건 틀리지 않고, 세상엔 맛있는 음식이 정말 많은 것도 사실이다. 다만 내겐 우선순위의 문제다. 굳이 맛집을 찾아다니거나, 한우를 먹으러 횡성으로, 굴을 먹으러 남도로, 또 뭐를 먹으러 어디로, 신선한 식재료들을 위해 산지의 유명한 식당들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의 열의를 난 이해는 할 수 있어도 공감까진 못하겠다.
이런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참 컴팩트한 삶이다.
오늘은 가츠동을 먹을 생각이다. 길 건너에 며칠 전에 갔던 괜찮은 식당이 있다. 내가 생각했던 가츠동 맛 그대로는 아니었는데, 조금 다르게 맛있었다. 간장이 맛있고 계란이 촉촉했다. 바삭한 돈까스는 먹기 좋게 누져 있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