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성당을 다녔다. 상계동 살던 아주 어린 시절의 어느 봄날 명동성당에서 유아세례를 받았고, 대부의 품에 안겨 기억을 대신할 사진을 남겼다. 아우구스티노. 괜찮은 신학자의 이름이래. 그때 세례명이라는 것이 생겼다.
마냥 어린아이들이 제 발로 성당에 찾아가는 경우는 장담컨대 하나도 없을 거다. 뭐 얼마나 재미있는 곳이라고, 가만히 앉아있어야 하는 건 힘든 일이고, 기도며 신이며 하는 것들은 아이들의 눈에 하나도 중요한 것이 아닌데 어떻게 동기부여가 되겠나. 다들 부모의 손에 이끌려 성당에 온다. 그런 아이들이 대체로 그렇듯, 난 미사보다 성당 마당에서 또래들과 뛰놀던 게 좋았다. 어린 나와 같이 놀아주던 수녀님들은 항상 좋은 사람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유아 때 성수를 이마에 받은 아이들, 일요일마다 꼭 가야만 하는 거냐며 불평하면서도 부모의 손에 이끌려 성당을 꾸준히 다니던 그 아이들은 공평한 속도로 커 가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들 각자의 삶 안에서 종교나 신앙이 차지하는 공간은 결코 같지 않게 된다. 그렇게 신자가 되거나, 오래 멀어진다. 가끔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도.
지금도 스스로를 습관성 신자라 칭하곤 한다. 큰 열의는 없이 관성의 힘으로 성당을 다니는 그런 신자. 난 천주교의 일반적인 기준에서 착실한 신자는 결코 아니었다. 물론 그것은 신앙을 애써 강요하지 않는 천주교 성당들 특유의 분위기도 영향을 주긴 했다.
나름대로 열심히 다닌 기간만큼이나 아예 발을 끊고 종교나 신에 대해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산 날들이 충분히 길고, 그것들이 내 삶에서 영영 멀어진다 한들 별로 아쉬울 것 없는 그 정도의 관계였다. 당장 지금도 몇 달에 한 번씩 갈까 말까 하는 그 정도인걸.
자라온 환경을 돌아본다면 내 이런 태도는 다소 의외의 결과일 수 있으나, 이 무심함과 건조한 태도의 정립에는 역설적으로 그 환경이 어느 정도의 원인 제공을 하기도 했다. 종교적, 천주교적 요소들을 전혀 모르고 살다가 개인적 관심과 흥미로, 그리고 그것이 발전한 일종의 의지로 적극적으로 찾아 알려 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성당에서 놀던 어린아이에게 그런 것들은 자연스레 늘 보고 듣던 지리한 일상과도 같은 것이었기에 오히려 더욱 무심할 수 있었다. 친구들은 본명 말고도 열두 사도 중 한 명의 이름을 가졌고, 미사 중에 성경 일부를 발췌해 읽어주는 짧은 내용들 만으로도 성경 전체를 몇 번은 읽었을 것이다. 기도나 고해성사 같은 건 전혀 특별할 것도 없는 풍경이었으며, 복사복을 입고 미사 중에 제단 위 사제 옆에 서는 것도 새로울 것 하나 없었다. 모든 게 익숙하기만 했다.
또한 세례 이전의 필수 교육 과정에서 일종의 주입식, 혹은 일방적인 방법으로 교리나 다양한 종교적 내용들을 성인의 눈높이로 배우게 되는 성인 신자의 경우와 달리, 이미 그 안에서 자라는 어린아이들은 체계적인 교리 교육, 정석적인 내용 해석과는 다소 거리가 먼 저마다의 종교관을 커 가며 알아서 세워 가기도 한다. 내 경우엔 타고난 삐딱한 성정이 종교에 관한 영역에도 관여해서 다른 신자들과 어쩌면 많이 다를 수도 있는 생각이 심어졌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난 신의 실존을 믿지 못하겠다. 정확히는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하는 의문을 늘 가진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시대 이래로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에게, 그리고 나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주는 사람이지만, 그가 유일신의 현신이라는 건 글쎄. 삼위일체?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그건 니케아 공의회에서 합의한 내용이지 않은가. 종교관이란 것이 희미하게 생기기 시작하던 고등학생 때부터 이 생각은 변함없고, 내 눈앞에서 기적이라는 말로 불리곤 하는 어떤 초자연적 현상이라도 목격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니 사실 그렇다고 해도 변할 건 없을 듯하다. 종교가 무슨 마법인 줄 아는 그런 태도 역시 굉장히 역겨우니까.
이성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 사실 이 세상은 유일신이 다 창조한 건데 그 신의 모습이 하필 인간과 꼭 닮아 있다고? 그걸 믿으라고? 인간은 원숭이에서 진화했고 신은 인간의 창조물이었다. 그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정말 만에 하나 교리의 내용이 다 사실이라 해도, 그걸 어떻게 확신해? 정말 신이 존재한다면 인간의 논리와 사유, 인간 세계관 너머의 무엇일 텐데. 실존하지 않는 걸 증명하지 못한다고 하여 그것이 실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대학에 가고 나서야 그런 파편적인 생각들이 불가지론 혹은 미지론이라는 꽤나 체계적인 논리와 사유들로 정립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나, 그보다는 그런 문제들에 대한 질문과 답을 바꿔야 했다.
종교를 가졌다는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들이 간혹 묻듯이, 신이 정말 존재하느냐 내게 묻는다면, 난 그 멍청한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답하거나 그건 아직 알 수 없는 문제라고 답할 테지만, 그와 동시에 난 그것이 뭐 그리 중요하냐며 반문할 것이다. 신을 믿고 안 믿고의 문제, 신앙과 교리의 가치에 대한 문제는 신의 실존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가 아니냐고 물을 테고, 그런 별것도 아닌 문제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부터, 그보다 훨씬 전의 고대 신들의 시대부터 지금까지 죽은 사람이 몇이며, 낭비한 시간과 노력들이 얼마큼인데 아직도 그게 그리 중요하냐고 물을 것이다. 진짜 있다면 뭐가 그렇게 나아지고, 그런 건 없다 한들 달라질 게 무엇이 있느냐고.
그러고도 너가 정말 천주교 신자냐 묻는다면, 뭐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런 타이틀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그게 아니라면 어쩌면 나는 신앙의 형태가 조금 다른 것일 지도.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람이 실존했던 것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기독교의 신이건, 유대교의 예언자건, 그건 내게 하나도 중요할 것 없는 문제다. 그의 정체성이 무엇이든, 여전히 난 그의 행적과 말에서 어느 시대에도 통용될 수 있는 진리에 가까운 내용을 찾을 수 있다. 그가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던 사랑이라는 가치는 언제나 유효하다.
너희들 중 죄 없는 자만 저 여자에게 돌을 던지라던 그의 말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지겹도록 들었지만, 난 그 부분을 다시 듣거나 읽게 될 때마다 여전히 그가 멋지다고 생각하고, 대처가 참 현명하면서도 재치 있다고 느끼며, 그의 생각과 말엔 힘이 있다 믿는다.
그가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했다느니, 그의 어머니가 하늘로 승천했다느니 하는 문제보다, 중요한 건 그가 살았던 짧은 일생의 행적과, 그가 추구하는 바, 그의 철학, 그것에 대한 기록들이다. 그럼에도 강남역 앞 전도랍시고 소음공해만 끼치는 수많은 광신도들은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니, 영생을 얻는다느니, 부활한다느니 하는 병신같은 소리만 해 댄다. 종교가 마법인 줄 아는 부류들. 자극적이고 직관적인 거 좋아하는 한국인 취향에 그런 소리가 관심 끄는 데 딱이긴 한 걸 부정하진 않겠다.
종교를 그런 태도로 대한다면, 마치 무슨 개화기 사람들이 서학 보듯이 한다면 성당이나 교회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래 바로 이게 문제야. 답하기가 너무 어렵다. 현대에는 결코 흔치 않은 절대선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집단이라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하기엔, 이미 종교의 시대는 한참 전에 저물었을뿐더러, 막상 안에서 살펴보면 전근대적 가부장제의 모습들이 드러나고, 마냥 합리적이기만 한 집단은 또 아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야 확실히 깨달았지만, 성직자들과 신자들도 어쨌든 인간이더라. 이것에 관한 명확한 답을 찾는 건 더 많은 경험과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오래 고민해 보겠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걸 안다. 내 나름의 신앙의 형태는 굉장히 냉소적이고, 종교라는 거대한 범주에 어쩌면 굉장히 어울리지 않게 최대한 이성적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일반적인 신앙의 형태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와 내가 바라보는 방향이 완전히 반대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몇 년 전, 대전 어디쯤에서 한 신입교리교사 연수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날 밤엔 무슨 프로그램이 있었고, 조명도 일부러 끈 침묵 시간이 주어졌다. 난 지루해하며 뭘 하며 시간을 때울까 고민하며 걷다가 잠깐 잠이나 자려고 비어 있는 방에 들어갔는데, 그곳에서 촛불에 둘러싸여 바닥에 누워있는 정말 큰 십자가에 손을 대고 집중해 기도하는 또래 여자를 봤다. 난 방해하지 않으려 조용히 근처 벽에 기대앉았다. 열심히 기도하던 그녀는 이내 눈물을 흘렸다. 난 그녀의 태도가, 기도 중에 눈물까지 이어지는 그 일련의 과정이 다만 신기할 뿐이었고, 앞으로도 내가 저 눈물의 원리를 조금도 헤아릴 수 없겠다는 걸 깨달았다. 신앙의 형태는 다양했다.
난 그 순간을 내 방식으로 최대한 배려했고, 그녀 역시 벽에 기대 누가 봐도 지루해하는 표정인 나에게 눈치로라도 기도하라 말하지 않았다. 우린 같은 집단 안에서도 종교나 신에 대한 각자의 온도차를 침묵 안에서 존중했다. 다만 나와 그 사람이 신자로서 옳다 믿는 것들과, 세상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나 기준들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건 짐작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