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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성 Aug 11. 2024

모로가도 서울로 가는 인생을 위해

갈림길에 서 있다

창창한 26살. 

학교에선 화석이면서 사회초년생인 애매한 나이.

아직도 철들지 않았나 싶으면서 타협점을 찾기 위해 여러가지로 골머리를 앓는 나이.

어떻게 살겠다고 마음 먹었던 것들이 주변을 상처 받게 만들기도 하는 나이.

어쩌면 마음먹은대로 살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고리타분한 건 나였을 수도 있겠다.


졸업을 앞둔 시기, 누구나 이맘때쯤 하는 고민을 하고 있다.

주변은 나름 살길을 찾아가는데, 나는 왜 아직 이러고 있나.

그건 내가 다르게 살겠다고 마음 먹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르게 산다는 건 무엇인가?


어떤 노래에서는 특별함이 모이면 평범함이 된다고 하는데, 나는 이제 모든 사람이 특별해보이는 지경에 왔다. 각자가 내린 선택들을 책임지며 사는 모습들이 아름답기까지 하다. 나는 그렇게 살고 있는가?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다.


모로가도 서울로 가는 인생을 위한다는 제목은 과정이 중요하지 않다고 쓴 말은 아니다. 첨예하게 깎아놓은 삶의 나침반의 N극이 북쪽을 향하고 있는가, 그것만이 중요한 문제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것보다 중요한 건, 북쪽으로 가기를 내가 선택했는가이다.


결국 그런 고민을 하면서 갈림길에 서 있다. 머릿속에서 따져보는 가능성들의 늪에 빠져있지만, 물에 뜨는 법을 배우고 있다. 지금까지의 성취도 있고 실패도 있다. 그걸 정리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1. 회기 유나이티드


안 되는 것을 붙잡고 있다는 생각을 참 많이했다. 일이 진행되는 것에 비해 내가 하는 일이 너무 많았고, 돌아오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지쳤다. 어느 누구도 나한테 그렇게 하라고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나는 회기 유나이티드로 사업을 하고 싶었다. 승격을 하고 싶었고, 빠른 시간 안에 결과를 내고 싶었다. 오기에서 온 깊은 우울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아주 쓰게 인정하기로 했다. 실력을 쌓는 일과 팬을 만드는 일이 아주 오래 걸릴 것이라는 것을, 어쩌면 내 인생이 끝나도록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짝사랑인 것이다. 이것은 오기가 아니며, 이제는 다만 아주 순수한 호기심인 것이다. 이 팀이 결국 하나의 구단이 될 수 있을까. 그 생각만으로도 평생 설렐 수 있다면, 해볼만 하지 않은가.



2. 취업(광고, 영상, 영화, 언론사 pd)


진짜 취업을 하게 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어서 분야를 정했다. 미디어-크리에이티브 쪽이다. 어찌됐건 나는 창작이 좋다.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좋고, 예술이 뒤섞이는게 좋다. 영화가 영화라서 좋은게 아니다. 모든 예술이 한데 모여서 각자의 분야를 해치지 않고 빛을 발하는 모습이 좋은 것이다. 나는 창작과 가까운 쪽에서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다만 내가 하고자하는 것이 예술인지, 기획인지, 연출인지, 아니면 전부 다인지 아직 모르겠다. 방학이라 여기저기 포트폴리오와 자소서를 써서 보내고 있기는 하다. 재밌는 건 포트폴리오를 정리해보기 전에는 막연하게 pd가 되기 좋을 포트폴리오 같다고 생각했는데, 정리하고 나니 오히려 광고나 프로덕션에 더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하고싶기는 한데, 크레딧에 올라가는 일을 하려면 취업계가 안 나온다. 대부분 프리랜서 계약직이기 때문. 그래서 하려면 영화 마케팅이나 기획사, 배급사 쪽으로 알아봐야한다. 언론사는 특히 내가 들어가고 싶다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선택지에는 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예능 피디는 고민을 많이 했는데, 나는 예능감이 좋은 사람은 아니라서 제외.



3. 대학원


내가 대학원을 생각하다니, 26년 살고 볼 일이다. 하지만 1~5번 중 가장 희박한 선택지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나는 공부를 더 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일단 공부가 재미가 없고, 연구를 하고 싶은 분야가 없다. 이런 마음가짐으로는 대학원에 가는게 민폐일 정도이다. 안정감을 위해서 하는 선택은 예의가 없다. 나는 도전하고 성취하고 싶지, 발디딜 공간을 만들고 싶은게 아니다. 하지만 역시나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분야를 정했다. 아주 쥐어짰다. 철학, 심리학, 그리고 영화이다.



4. 공부


공부하기 싫다고 했는데, ai 프롬프트 공부는 해보고 싶다. 앞으로 크리에이티브 쪽에서 ai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 같기 때문이다. 영상울 구현할 기술이 없지만 아이디어가 뛰어난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무기가 될 것이다. 어쩌면 이 분야에서 프리랜서 수요가 크게 늘 것 같기도 하다. 프리랜서와 디지털 노마드라면 꺼뻑 죽는 내가 당연히 생각해볼 법한 선택지 아닌가. 노트북과 ai를 다룰 수 있는 능력만 있다면 세상 어디에서도 일할 수 있다니.



5. 창업


유력한 선택지 중 하나다. 최근 회기 유나이티드 운영진에서 따로 에이크 스튜디오라는 영상제작팀을 만들었다. 회기 유나이티드의 상황에 매너리즘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롤모델은 돌고래 유괴단이다. 그래서 애칭이 고릴라 납치단이다. 우리는 광고를 만든다.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깔의 영상을 지속적으로 만들 강제성을 부여하기 위해 공모전에 나간다. 상금이 목적은 아니지만, 이 또한 큰 동기부여가 된다. 운이 좋게도 처음 나간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성과였지만, 그래서 고무적이다. 처음으로 회기 유나이티드 사람들과 만든 무언가에서 돈을 벌게 됐다. 그게 자신감을 준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입맛대로 영상을 만들어내느냐 이다. 그게 우리의 포트폴리오가 될 테니까.

최근에 영상업계에서 일하시는 분이 내게 해준 조언이 있었다. 다른 분야라면 실무를 경험해보지 않고 사업으로 성공하고자 하는게 위험할지 몰라도, 광고나 영상이라면 가능하다고. 내가 만들고자 하는 영상을 계속 만들어보라는 얘기였다. 이게 왜 위안이 되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잃을게 없지 않은가. 앞으로 취준과 함께 유연하게 병행하고자 한다.



여기까지가 요즘 내가 하는 고민들이다. 

아, 요즘 청약도 엄청 넣고 있다. 

그건 또 왜 이렇게 귀찮은지 모르겠다.

그래도 해야할 일을 하고나면 기분이 좋다.

항상 거창하게 시작하고 마무리는 옹졸하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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