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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게바라 May 19. 2024

홍콩의 70%는 산이라니 (3): Tai Lam 저수지

멀리서 본 무릉도원

지난 부처님 오신 날 멀리 신계에 있는 Tai Lam 저수지를 다녀왔다

홍콩 관광청이 추천한느 하이킹 코스 중 가장 경치가 좋아 보여 꼭 한번 가고 싶었으나 늘 핑계가 앞섰다. 비 올까 봐 안 가고, 늦잠 자서 못 가고, TV보다 늦어버리고. 아무리 굳게 마음을 먹어도 멀어서 그런지 쉽사리 가게 되지 않았는데 게으른 행동과는 달리 Tai Lam 저수지 사진을 볼 때마다 꼭 가야겠다는 의지는 커져만 갔다.

게다가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면 하이킹은 아무래도 힘들 테니 날씨가 아직은 괜찮은 이번 휴일이 마지막 기회라 생각했다. 이번에는 전날 과음을 해서 위기였지만 아침 일찍 일어나 라면 하나 끓여 먹고 숙소를 나섰다. 최근 몇 주간 흐리고 비가 자주 와서 답답했는데 오랜만에 햇빛이 반짝거린다. 밝은 아침햇살로 기분이 좋아진다. 기온은 섭씨 25도로 부담스럽지 않고 끈적이는 습도도 없다.

몽콕에서 지하철을 타고 Long Ping역에 내려 버스로 갈아타는데 정거장에 줄 서있는 사람이 꽤 많다. 차림새를 보니 모두 나와 같은 장소를 가지 않을까 싶었는데 나중에 보니 내예감이 맞았다. 하긴, 홍콩 관광청에서 아무 데나 추천하겠어?

버스가 통과하는 Yeun Long 거리를 구경하려 버스 2층에 자리를 잡았는데 도로가 좁고 건물이 높지 않으며 오래되어 마치  수십 년 전 홍콩에 온 느낌이다. 사람들도 소박해 보이고 여유롭게 느껴졌다. 30분 넘게 버스를 타고 외곽으로 달리니 어느새 목적지다.

이제 슬슬 올라가 볼까 하고 차도 옆 보도를 따라 올라가는데 산악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내 옆을 지나간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랑 같이 일하는 직원도 이곳에서 자주 자전거를 탄다 한다.) 드물지만 자동차도 씽~하니 산 위로 올라가 신경이 쓰였지만 자동차가 금지된 길로 들어서니 남산의 둘레길이 생각나는 깔끔한 길이 이어진다.

양 옆으로는 커다란 나무들이 싱그러운 향기를 내뿜고 있고 여러 종류의 새들이 저마다의 특이한 소리를 낸다. '짹짹짹'거리며 고음으로 속사포 랩을 하는 새가 있는가 하면 '째~~ 액"하며 저음으로 화음을 넣는 새들도 있다. 며칠 동안 비가 와서 그런가 유난히 햇빛에 반사되는 모든 것이 선명하다. 안경을 새로 맞춘 느낌이다. 햇빛은 따갑게 느껴지지만 나무 그늘 밑을 지나가면 시원하기 그지없다. 바람이라도 불면 '포카리스웨트'의 여배우처럼 밝게 웃으며 뛰어갈 것 만 같다.

이 길이 겨울에는 단풍으로 유명하다는데 아쉽게도 여름이 코 앞이라 볼 수가 없었는데 내가 다시 한번 올 수 있을까?

이쁜 바베큐장을 지나쳐 한참을 잘 정비된 길을 걷다 보니 좋긴 한데 시시한 감이 막 들 즈음 드디어 산길이 나왔다. 산길 역시 깔끔하다. 적당한 경사와 오르내림이 있어 지루하지 않고 햇빛과 그늘을 반복해서 지나가니 바람만 살짝 불어도 땀이 식었다. 또한 중간중간 향내가 진동하는 작은 기도원도 있어 구경하는 맛도  있다.

얼마 안 올라갔다 생각했는데 사진으로 봤던 View Point로 가는 샛길이 나왔다. 무심코 지나치기 쉬워 안내판을 잘 봐야 한다. 200m 정도 가야 하는데 나무사이로 절벽 끝의 탁 트인 전망대가 보였다.

아~살짝 감동! 사진이랑 똑 같이 아름답다. 마치 거대한 바다에 옹기종기 가족들이 모여 있는 섬들 같기도 하고 옛 중국 고전 영화 세트장의 미니어처 같기도 하다. 무릉도원을 멀리서 보면 저럴까? 가만히 내려다보니 대자연의 압도감보다는 차분하고 편안함이 느껴진다. 인공의 저수지를 만들다 생긴 뜻밖의 절경이지만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 같다. 아내에게 전화해 영상통화로 보여주니 '어딘데 그렇게 멋있어?' 하고 묻는다. 인공의 과학문명을 통해 보이는 이 전경이 제대로 전달이나 될까 싶다. 옛날에는 솜씨 좋은 화가가 열심히 산수화를 그려 보여주며 '여기 엄청 좋지? 내가 가봤잖아~' 했겠지? 같이 보면 좋았을 텐데 혼자 보니 아까워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내려오는 길도 무난하고 깔끔했다. 산길이 끝나고 마을길로 접어들자 염소농장이 있어 몇 마리의 염소를 봤고, 염소똥을 피해 다녔지만 여전히 기분이 좋았다.

다만! 버스정류장을 지나 Gold Coast로 가는 길은 힘들었다, 오르막도 아닌데 다리가 아프고 그늘 속을 걸어도 더운 열기가 훅~하고 들어왔다. 태양은 뜨겁고 차들도 시끄러웠다. 가도 가도 거리가 줄어들지 않는 느낌이었다. 겨우겨우 Gold Coast에 도착하니 Luxury~Luxury 하다. 아파트도 고급스럽고 호텔도 규모가 상당히 컸다. 게다가 Gold Coast Yacht & Country Club이 있는데 커다란 요트들이 정박해 있다. Yach Plaza Mall도 크고 깔끔하고 고급스러운데 많은 식당들 중에서 혼자서 먹기 편한 곳은 맥도널드고 커피숍은 만석이었다. 여유롭게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 한잔 먹어보려 했는데 이도저도 안되니 너무 지쳐 그냥 빨리 돌아가 차가운 물로 샤워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힘들어서 그런지 해변도 그다지 큰 감흥이 없다. 홍콩에서 가장 긴 해변이라지만 걸어 다닐 엄두가 안 난다. 이렇게 피곤할 때는 차가운 바다에 들어가 몸 한번 식히면 피로가 싹 풀릴 것도 같은데 아쉽게도 수영복이 없다.

이렇게 빨리 지치다니 어제의 과음 때문일까? 지나친 음주는 건강에 해롭다더니 정확한 지적이다. 결국 탈진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내내 꾸벅꾸벅 졸았다.

홍콩에서 몇 번이나 더 하이킹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번 더 가고 싶은 곳이 될 듯하다. 단, 다음엔 바다까지는 버스 타고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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