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불 친절하게 의도된 영화 ,'우상'

브런치 무비패스 1 우상, 무엇을 믿느냐보다는 무엇을 믿게 하느냐

by 예술호근미학

<브런치 무비패스>

브런치 무비패스라는 것을 시작한다는 광고를 보았다. 6개월에 10편의 영화를 보고 글을 쓰면 되는 거라고? '이렇게 좋은 기회라면 한번 신청해봐야지' 하는 마음에 이전에 썼던 영화 리뷰를 통해 응모했다.

덜컥 당첨이 되었다. 글을 써서 당첨이 된 것은 중학교 시절 교지에 글을 써서 냈던 것이 실린 이후로 처음이다.

그리고 처음으로 브런치 무비패스에 초청되었다. 나는 당연히 예술영화에 초대될 줄 알았다. 원래 그런 영화들은 입소문 홍보가 필요하니까. 그러나 초대된 영화는 상업영화였다. 안에 내용이 어떻든 간에 CGV 아트 하우스가 제작배급사이니 어쨌든 간에 이 영화를 상업영화라고 본다.

이 영화의 주연배우들은 한석규와, 설경구 천우희다. 옛날만큼은 아니지만 영화계에서 네임밸류라고 하면 서러울 정도의 배우들이다. 특히 천우희는 최근 가장 핫하게 뜨고 있는 배우 중에 한 명 아닌가. 연기력만큼은 보증된 배우들이기에 기대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관람하게 되었다.


영화의 기본적인 줄거리는 세 인물의 이야기가 연결되어 하나의 스토리를 이룬다. 첫 번째로는 도지사 유력 후보인 도의원 구명회(한석규)가 아들의 뺑소니 교통사고로 인하여 정치생명이 위험에 처하게 되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벌어지는 사건들이다. 두 번째는 뺑소니 피해자의 아버지인 유중식(설경구)이 아들이 교통사고로 바로 죽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구명회의 죄를 드러내려는 시도, 그리고 아들과 함께 있던 며느리가 임신했다는 것을 알고 그 며느리를 찾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이다. 세 번째는 뺑소니 피해자의 아내였던 불법 이민자 최련화(천우희)가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다. 이 세 가지의 상황들이 얽혀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영화의 배경>

영화에서 시기와 장소, 직업과 성격, 그리고 배경 등은 정말 중요한 요소들이다. 이것들의 관계를 통하여 감독은 메시지를 관객에게 반쯤은 전한다. 영화 '우상'의 시기와 장소, 그리고 인물들의 직업과 배경은 다음과 같다.


시기와 장소

영화의 시기는 원전이 들어오느냐 마느냐를 놓고 논의하는 것으로 보아 최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감독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수도 있겠다' 문제를 다루려는 것을 알 수있다. 장소는 구명회의 지역구 인 경상도다. 그러나 유중식의 주요 무대는 구로구 쪽이다. 최련화의 무대는 부산이다. 뺑소니 사고가 난 곳은 해안가의 도로이다. 그리고 최련화의 아는 언니는 강원도에 살고 있다.

영화에서는 이 외에도 차고, 화장실, 경찰서, 철물점, 외국인 보호시설, 폐 주유소, 안마방, 강당, 저택 등의 장경을 제시한다. 감독은 럭셔리하고 대중적인 장소와 음침하고 불법적인 장소를 대비하여 차이를 보여준다. 그러나 영화 안에서는 그 장소가 우상에 대한 욕망과 만났을 때, 그 장소들에 대한 일반적인 시각과 달라지는 것을 나타내고자 애쓴다.


인물들의 직업과 배경

주요 인물들의 직업과 배경 또한 영화를 읽는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이다. 각각의 인물들은 다음과 같은 직업과 배경을 갖고 있다.

신망받는 도지사 후보 구명회 - 구명회는 한의사 출신의 도의원이다. 그는 학위를 중국에서 받았다. 정말 그런지는 모르지만, 누군가는 그가 중국에서 학위를 받은 것 때문에 자격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TV쇼에 많이 출연하였고, 인기를 얻게 되어 도의원까지 되었다. 중국에서 사업을 했던 아버지를 두고 있지만 아버지가 치매에 걸렸다. 아들이 하나 있으나 관계가 좋아 보이지 않는다. 평소에 정직한 성품으로 도민들에게 존경을 받는다. 교회를 다닌다.

에어컨 설치 기사이자 철물점 주인인 유중식- 유중식은 말을 어눌하게 한다. 그는 고등교육을 받은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아내는 죽거나 이혼했다. 아들이 하나 있었으나 그 아들은 정신지체아였다. 아들을 끔찍이 사랑하여 아들에 맞게끔 집을 개조하기도 했다. 아들과 결혼한 며느리가 보험사기로 아들을 죽일까 봐 결혼 전에 보험도 해제했다. 이를 볼 때 그는 의심이 많고 아들 이외에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 아들을 위해 성매매를 많이 했다.


불법 체류자 최련화 - 한국에 들어오기 전에 누군가를 죽였다. 그 일 때문에 최련화를 쫓는 누군가가 있는 듯하다. 자신에게 해코지를 한 사람은 반드시 복수한다고 말한다. 의심이 많고 눈썰미가 있다. 연변 출신이지만 하얼빈 출신이라 속이며 산다. 감자탕과 소주를 잘 먹진 못하지만 라면은 잘 먹는다.


<불친절한 영화>

영화가 끝나고 관람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뭐야 무슨 내용이야?' '그래서 걔는 누가 죽인 건데?'라는 등의 말을 했다. 그만큼 영화는 관람하고 이해하기에 친절하지 않다.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겠지만 그러한 이야기가 나오는 데는 아마도 메타포의 과사용과 플롯이 큰 몫을 한 것 같다.


상징물의 과다사용

이 영화에서 감독은 상징물을 사용하여 자신의 메시지를 은연중에 드러내려 한다. 문제는 연결되지 않는 상징물들이 너무 많아서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가 명확하지 않고, 그것들을 드러내는 방식이 포르노 그래피적이어서 세련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에서는 물, 피, 낙엽, 십자가, 빛, 이순신 동상 등의 수많은 상징이 등장한다. 물론 감독이 상징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욕심은 이해하지만 사건과 상징들의 개연성 그리고 상징들 간의 연계성을 알아차리기가 너무 어렵고 어떠한 것들은 굳이 넣었어야 했나 싶은 것들도 있다.

또한 이것들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배치되었다. 심지어 어떤것은 그것만 한 화면에 등장한다. 마치 보라는듯이. 상징물들은 미장센으로서의 역할이라기보다는 영화의 각 단마다 이번 단은 이것이 주제 상징이야 하면서 보여주는 듯하다. 그렇기에 관찰력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이것은 상징물로 사용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해 주는데, 이 방식이 오히려 관람자를 불편하게 만든다. 상징물들을 부각해 그것에 대한 의미를 고민하게 하지만, 그 상징물들과 사건의 개연성이 명확하지 않기에 사유는 답을 얻기보다는 스트레스를 얻게 만든다.


플롯

사실 가장 커다란 불편함을 주는 것은 바로 플롯이다. 사건과 사건을 연결하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방식이 너무나도 부실해 보인다. 대체 저 이야기가 왜 등장하지?라는 생각이 들게끔 만든다. 감독이 아닌 누군가가 대신 편집했나 싶은 부분도 있다. 원래 더 많은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었으나, 러닝 타임을 맞추기 위해서 많은 부분들이 잘려나갔나 싶을 정도이다. 풀리지 않은 실마리와 정보 없이 등장하는 인물들은 관람객들에게 혼란을 준다.


그럼에도 지루하지 않은 영화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보면서 잠을 자는 객은 없다. 그 이유는 뛰어난 연출 기술과 배우들의 연기력이다. 음향, 카메라, 효과 등은 장면에 빠져들게 만든다. 배우들은 자기가 마치 그 인물인 양, 극 중 배역에 몰입하고 역할을 소화해 낸다. 많은 사람들이 설경구의 대사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하는데, 거기에는 감독이 그렇게 요구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전 설경구의 영화에서 그가 대사를 잘 전달하지 못했던 적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 분명 이번 영화 속 불명확한 대사 전달은 감독의 숨겨진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한석규와 천우희의 연기는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두 명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영화에 빠져서 관람할 수 있다.


모든 것이 감독의 의도라면?


그렇다면 이 영화는 연출 기술과 배우들의 연기력을 빼면 정말 볼 게 없는 영화일까? 만약 불편하고 모자란 요소들이 모두 다 감독의 의도라면, 나는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극 중 인물들이 쫓고 있는 '우상'은 아직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소망이다. 그들은 이미 가진 것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그것들은 불분명하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것들을 쫓는다. 그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우상이 무엇이냐는 상관없다. 그 우상에 대한 믿음이 중요하다.

설경구의 어눌하고 씹어대는 대사 전달력이나, 알아듣지 못할 천우희의 연변 사투리와는 다르게 , 한석규나 조연들의 대사는 굉장히 확실하다. (물론 몇몇은 전혀 뭐라 하는지 모르겠지만...) 감독은 설경구나 천우희의 대사가 아닌 그들의 대사를 통해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지 않았을까?

"무엇을 믿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믿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의 의향을 모두 내포하는 것처럼 보여준다. 보기에 굉장히 불편한 인물이 알아듣지 못할 말로 소리친다. 그의 연설은 듣기에도 불편하다. 관객들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화면에 나오는 자막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그것이 진짜 연설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그럼에도 관객들은 눈과 귀를 닫은 채로, 포장된 텍스트의 내용을 믿고 그를 카메라에 담고, 그에게 환호를 보낸다.


내가 쫓고 있는 우상은 과연 무엇인가? 그 우상에 대해 나는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그것이 알고 보면 불편하고 더러움에도 불구하고 나는 만들어진 이미지 때문에 그것을 쫓고는 있지 않은가? 당신은 이 영화를 왜 보았는가? 그리고 뭐라고 평가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