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는 '시 자체'였다. '나의 작은 시인에게'

브런치 무비패스 리뷰 #2 '나의 작은 시인에게'

by 예술호근미학

시의 타자성, 리사 그리고 지미

독일의 시인이었던 파울 첼란은 게오르크 뷔히너 상 수상 연설에서 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시는 하나의 타자에게 가고자 하고, 이 타자를 필요로 하며, 상대를 필요로 한다. 시는 타자를 찾아가고, 타자에게 말을 건다. 타자를 향해 나아가는 시에게는 모든 사물, 모든 인간이 타자의 형상이다. 시는... 여전히-지각하는 자, 현상하는 것을 지향하는 자, 이 현상하는 것에 질문을 던지고 말을 거는 자의 시가 된다. 시는 대화가 된다. 그리고 흔히 절망적인 대화가 된다. 이 대화의 공간 안에서 비로소 말 상대가 구성되고, 이 말 상대는 그에게 말을 걸고 이름을 지어주는 나의 주위에 집결한다. 그러나 말 상대는, 그리고 이 이름을 통해 말하자면 너가 된 자는 그 자신의 다름 또한 현재 속으로 가지고 온다."

- 파울 첼란, 뷔히너 상 『주오문』중에서-


시 안에서는 화자는 '내'가 아닌 '타자'를 설정한다. 이 타자는 나를 초월하는 존다. 익숙해져 버린 내 삶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그런 존재다. 그 존재에게 질문을 던지고, 말을 거는 것이 바로 시다. 시의 방법은 은유적이며, 일반의 방법과는 전혀 다르다. 시 안에서 나는 자신을 얽매는 환경과 직업, 사상을 벗어난다. 시는 자유를 제공한다.

'나의 작은 시인에게' 영화 속 주인공인 리사(메기 질렐할)는 유치원 교사이며,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두 아이의 엄마이다. 그녀는 일상에서 행복과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매일 지루한 일과를 반복한다. 그녀는 '시 수업'을 통해 이를 해결하고 극복해 내고자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녀는 시에 대한 재능이 없다. 그녀가 지은 시들은 마치 어디선가 들은 시인 것 같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선생은 리사의 이름조차 모를 정도로 그녀는 그저 그런 학생이다. 그러던 와중에 리사는 우연히 자신의 반 학생인 지미가 시를 읊는 것을 발견한다. 그의 시는 다음과 같았다.


애나는 아름답다
내게는 충분히 아름답다
태양이 그녀의 노란색 집을 두드린다
마치 신이 보낸 신호처럼


그녀는 지미의 시가 뛰어나다는 느낌을 받고, 이를 시 수업에서 마치 자신이 지은 것처럼 발표한다. 시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시에 크게 감명을 받고 그녀에게 푹 빠져 버린다. 그리고 둘은 무엇에 흘린 것처럼 사랑을 나눈다. 지미의 시는 리사를 그동안 규정하던 것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었으며 매력적으로 바꿔준 것이다.


그녀는 급작스럽게 지미에 대해 관심을 쏟기 시작하고 그에게서 시를 이끌어내려고 노력한다. 지미는 자신과는 다르게 시에 천부적 재능을 갖고 있었다. 지미는 리사의 완벽한 타자이자 '시 그 자체'였다. 그것은 여성, 유치원 선생, 가정 주부라는 자신의 답답한 브래지어를 풀고, 아름답고 편안하며 자연스러운 젖가슴을 내놓게 하는 행위 같았다.


사라지고 묻혀버릴 재능, 두려움


리사는 지미에 대해 조사해본다. 지미는 평범한 가정에서 보모에 의해 키워지고 있었다. 지미가 지금 지내는 대로 자란다면, 그의 특별한 재능은 곧 사라져 버리고 그는 평범하게 변하고 말 것이다. 그것은 리사에게 있어 자신의 '시'를 잃는 것이다. 그녀는 다시금 자신을 가두었던 그 평범한 일상으로 빠질까 두려웠다. 평범한 현실이라는 그 답답한 브래지어의 훅을 풀어줄 수 있는 것은 지미밖에 없다.

그녀는 매일 평범한 아이들 가운데서 낮잠을 자고 있는 지미를 깨우고 그의 시적 재능을 이끌어 내려 노력한다. 또한 그녀는 지미의 아버지를 설득해서 유치원이 끝나고 난 후 몇 시간 동안 스스로 지미의 보모가 된다. 리사는 지미가 예술적 영감을 잃지 않도록 미술관에 데려가기도 하며 그를 비범한 아이로 키우고자 한다.


리사는 '특별한 지미는 특별한 교육을 받으며 자라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특별함은 자신만이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지미가 혹여나 평범해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저항하는 것처럼 보인다.


모차르트, 그리고 그의 아버지


리사는 지미를 모차르트와 같은 천재로 생각한다. 모차르트가 어릴 적, 즉흥적으로 흥얼대거나 연주를 하면 그의 아버지는 이를 악보로 옮겼다. 그것과 같이 리사는 지미가 시를 읊으면 그것을 받아 적었다. 리사에게는 섹스를 하거나 일하는 와중에도 모든 것을 멈추고 지미의 시를 받아 적는다. 그녀에게는 성적인 욕망이나 사회적 욕구보다, 지미를 통해 현실을 벗어나는 욕망이 더 중요했다. 리사는 모차르트를 위대한 음악가로 키워준 아버지의 역할을 하고 싶었다.

모차르트의 아버지는 모차르트가 6세 되던 해에 그를 데리고 연주 여행을 떠난다. 모차르트는 이 여행을 통해 잘츠부르크라는 작은 도시를 벗어나 수많은 음악가를 만나고 비로소 자신의 음악을 완성하게 된다. 모차르트의 아버지가 그랬듯이 리사는 지미를 다른 시인들에게 소개하고 그를 데뷔시키려 한다. 리사는 많은 시인들이 모여 자신의 시를 발표하는 자리에 유치원생인 지미를 발표자로 세우기로 마음먹고, 지미와 함께 시 낭독을 연습한다. 어조를 가다듬고, 낭독에 감정을 실으며 반복에 반복을 더한다. 그리고 드디어, 낭독회가 열린다.


구원, 수치스러움

※이 단락은 영화의 결말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영화의 결말을 원하지 않는 분은 다음 단락으로 넘어가시면 됩니다.


시 낭독회에서 지미는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는 시인이 된다. 하지만 지미의 아버지는 유치원생 아이를 술을 마시는 파티 자리에 데려간 리사에게 분노한다. 지미의 아버지는 방과 후 아들의 보모역할을 하던 리사를 해고하고, 지미를 리사가 근무하는 유치원이 아닌 다른 유치원으로 전학시킨다.


리사는 자신을 평범한 일상으로부터, 아니 평범한 자신을 특별하게 구원해주던 지미를 잃었다. 그녀는 유치원 선생님과 아내이자 엄마라는 규정을 모두 버리고 지미와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지미가 옮겨간 유치원에 를 찾으러 간다.

지미는 철창 운동장 안에서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축구를 하고 있었다. 리사는 지미를 부른다. 지미는 리사에게 다가왔고, 리사는 지미에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축구가 아닌, 자신과 수영을 하러 가자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지미에게 철창을 나오는 법을 알려준다.


"문고리를 위로 올려서 왼쪽으로 밀어 넣어"


그리고 지미는 스스로 철창문을 열고 리사에게 온다. 리사는 지미를 구원했다. 평범한 일상의 철창에서 스스로 그 철창을 벗어날 수 있게 도와줬다.


리사와 지미는 북쪽으로 향한다. 그곳에 있는 호수에서 입고 있던 옷을 벗어던지고, 새 옷으로 갈아 입고 수영을 한다. 물속에 품 잠겨 수영을 한다. 마치 세례를 받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방으로 돌아와 목욕을 한다. 머리에 묻은 먼지와 모래들을 모두 다 씻어 낸다. 지미가 먼저 씻고 나온 뒤에 리사도 샤워를 하러 화장실에 들어간다. 모든 옷을 다 벗어던졌다. 이전에 브래지어 하나라도 벗어버릴 수 있었던 자유에서 더 나아가, 모든 옷을 벗어던지고, 있는 그대로의 리사의 모습으로 그녀는 자신의 몸을 씻어 나간다.


그때, 지미는 화장실의 문을 잠근다. 그리고 '자신이 납치당했다'라고 모텔 카운터에 이야기한다. 리사는 당황한다. 그리고 지미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하지만, 이내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깨닫는다.


리사는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이 옳지 않았음을 인지하고 인정한다. 그녀는 황급히 발가벗은 자신의 몸을 수건으로 감싼다. 그녀는 마음을 가다듬고 지미에게 납치 신고는 911에 해야 하며, 어느 모텔의 몇 번방으로 와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그리고 경찰에게 발가벗은 몸을 보이고 싶지 않다며 지미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부탁한다. 지미는 그 문을 열어주고 리사는 차분히 머리를 묶고 옷을 입는다.


지미는 납치범인 리사를 벗어나 가장 안전한 경찰의 품에 안겨 경찰차에 타게 된다. 그때, 지미는 시가 떠올랐다.


"시가 떠올랐어요"


지미는 소리친다. 하지만 누구도 지미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시적인 영화


왼쪽에서 두 번째가 사라 코랑겔로 감독

영화의 감독인 사랑 코랑겔로는 영화를 시적으로 표현했다. 리사라는 타인을 내세워 이 세상에 벌어질 법한, 하지만 내가 스스로 하기에는 조금 먼, 그런 이야기를 그려냈다.


그녀가 영화를 풀어나가는 모든 것에는 메타포가 숨겨져 있다. 브래지어나, 철창, 낮잠 등의 행동과 소품들은 모두 의미가 있어 보인다. 철저한 계획하에 미장센들이 설정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들은 포르노처럼 모두 다 드러내지 않고 굉장히 세련되게 연출하여, 지적 호기심을 유발하는데에 충분하다.


이 영화를 통하여 사라 코랑겔로는 34회 선댄스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게 된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이 장면에서 왜 감독은 이런 연출을 했을까?"를 생각하다 보니 그녀가 왜 감독상을 수상했는지 납득이 가는 작품이었다.


나의작은 시인에게 트레일러 영상

https://youtu.be/ruH__OHUy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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