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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술호근미학 Jul 12. 2019

여행이 행복했던 이유, 김영하 산문 「여행의 이유」

과거와 미래에 얽메이지 않는 현재


김영하가 쓰는 여행기

요즘 여행기를 쓰고 있다. 얼마 전 다녀온 유럽여행에 대한 글이다. ('유럽의 미술관을 가다'https://brunch.co.kr/magazine/euroartmusiem)처음에는 '유명한 미술관들을 돌아다니면서 미술관들을 소개하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행을 다녀오고 나니, 단지 미술관들만을 소개하기에는 많은 일들을 겪었고 느꼈다. 그래서 언젠가는 나의 머릿속 구석으로 처박혀질  여행 하며 겪은 아름다운 추억들을 활자로 기록해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며칠 전 서점에  갔다가 김영하 작가의 여행에 대한 산문집 여행의 기억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애정 하는 작가는 과연 여행에 대해 어떤  생각과 태도를 갖고 있을까 궁금했다. 그렇게 이 책을 구입했다.


이 책은 잘 읽히고, 책을 다 읽어가는 것이 아까울 정도로 재미있는 책이다.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여행자의 관점과 각기 다른 여행의 종류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김영하 작가의 여행에 대한 정의와 역할에 대한 부분이 가장 인상 깊었다. 글쓴이는 여행은 과거의 후회와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부터 벗어나 현재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인간은 자아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항상 어젯밤 행했던 잘못을 후회하고 내일 일어날 사건을 두려워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여행 기간 동안에는 이것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없다. 다만 현재에 집중할 뿐이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련,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은 원경으로 물러난다. 범속한 인간이 초월을 경험하는 순간이다. 자아가 지워지고 현재가 그 어느 때보다 커다란 의미로 육박해오는 이러한 초월의 경험은 시간이 충분히 흐른 뒤에야 언어로 기술할 수 있다. 81p


내가 여행을 정말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우리의 현재를 위협하는 이 어두운 두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하는 동안 우리는 일종의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된다. 낯선 곳에서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먹을 것과 잘 곳을 확보하고 안전을 도모해야 한다. 오직 현재만이 중요하고 의미를 가지게 된다. 109p



김영하 작가는 스토아학파를 끌어들여,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난 현재의 역할은 마음의 평온함을 준다고 말한다.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들이 거듭하여 말한 것처럼 미래에 대한 근심과 과거에 대한 후회를 줄이고 현재에 집중할 때, 인간은 흔들림 없는 평온의 상태에 근접한다. 여행은 우리를 오직 현재에만 머물게 하고, 일상의 근심과 후회, 미련으로부터 해방시킨다. 110p


여행이 행복했던 이유

여행기는 여행 당시에 느꼈던 그 평온함의 기억을 언어로 옮기는 것이다. 여행을 기억할 때 '그때 정말 좋았는데'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지금의 나는 여행 당시 잃었던 자아를 찾고,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두려워하는 불안정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와 여행 때의 나를 비교할 때, 비로소 여행이 행복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시간에는 눈 앞에 있는 것을 보고 귀에 들리는 것을 들을 뿐이다. 그것이 나와의 관계에서 나를 망칠 것인지 나를 발전시킬 것인지 재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것들을 하며 살아간다. 여행을 떠올릴 때, 당시가 행복하게 느껴지는 이유일 것이다.


한 편으로 그런 생각을 해본다. 지금을 여행 다니는 것처럼 산다면 하루하루 평온함을 느끼며 살지 않을까? 여행자의 마음으로 사는 방법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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